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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8개월 쯤 전에 layoff란 글을 올렸었는데, 얼마전에 벌써 세번째 layoff가 있었습니다. 워낙 경기가 안좋다 보니 회사 입장에서도 한치 앞을 내다 볼 수가 없어서 그런지, 거의 두세달 만에 layoff 얘기가 나오네요. 한번 얘기가 나오면 전체 규모와 대상자 선정에 한달 남짓 시간이 걸리거든요. 그러니 거의 지난 9개월 동안 계속 layoff랑 조직 개편만 한 셈이네요.
지난번 layoff 때는 제게 많은 도움을 주셨던 한국인 선배님한테 안 좋은 소식이 있어서 많이 안타까웠었거든요. 그게 벌써 4개월 전인데 아직 직장을 못 구하신 것 같더라구요. 실력이 없으신 것도 아닌데, 워낙 senior 인데다가 경쟁사들도 최근에 layoff를 다들 해서 그런지 job market이 꽁꽁 얼어붙었네요.
처음 layoff때 조직이 정비 되면서 두 팀을 맡게 됐었는데, 그 중 한 팀은 미국인 senior staff engineer 두명만 있는 아주 작은 팀이었습니다. 근데 두번째 layoff때 그 중 한명을 거의 등떠밀듯이 다른 팀으로 보냈구요, 이번에는 나머지 한명을 내보냈습니다. 두 명 모두 실력이 많은 사람들이었는데 조직 자체가 불필요해 지면서 그런 결정이 내려진 거죠. 말은 director인데, 전 이 두 번의 결정 과정에 전혀 참여하지 못했고 위로 부터 일방 통보를 받았습니다. 잠깐이지만 그래도 제 밑에 있던 사람들인데 아무 것도 해줄 수 없다는 게 참 기가 막히더군요. 특히 이번에 layoff 된 친구는 저랑 예전 직장에서도 같은 팀에 잠깐 있었고 지난해 말에 있었던 performance review도 제가 잘 해줘서 전혀 걱정을 안하고 있었는데 뒤통수를 맞은 것처럼 갑자기 나가게 됐습니다. 게다가 저는 그 결정을 2주일 전에 통보 받았는데, 보안상 미리 얘길 해 줄 수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아마 그 친구는 저를 많이 원망하겠죠. 사실 전 아무 결정권도 없는 상황이었지만 말이죠. 그렇다고 그만두는 사람 붙잡고, 전 아무 힘이 없었다고 변명을 하는 건 – 믿을 지도 모르겠거니와 – 너무 제가 이기적인 것 같아서 차마 못하겠더라구요. 그 친구는 당장 회사를 그만 두게 됐는데, 전 그 친구한테 남아있을 제 이미지만 걱정하는 것 같아서 말이죠.
이번에 이렇게 안좋은 상황을 경험하면서 참 사람이 많이 겸손해지는 것 같습니다. 그동안 참 안하무인으로 살아왔다는 생각도 들구요. 석사 졸업하고 10여년만에 director가 되면서 혼자 참 잘났다는 생각도 많이 하고, 나만 열심히 일하고 output만 좋으면 언제까지고 승승장구 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면서 자만에 빠져 있었는데, 이렇게 전세계 경기가 한번에 안 좋아지니까 저란 사람이 얼마나 무능한지, 제가 할 수 있는 일이 얼마나 없는지, 여러가지로 참 한심해 보이네요. 생전 제 job security 걱정 해본적이 없었는데, 이젠 ‘다음엔 나도 포함되겠구나’ 하는 생각이 드니 (제가 윗 사람이어도 당연히 저를 짜르겠습니다… 회사가 오래 버티고 살아 남으려면 저같은 second level manager 보다는 당연히 똘똘한 engineer들이 더 필요하니까요.) 걱정도 많이 되구요. 그렇다고 요즘 같은때 같은 쪽 분야에서 manager/director 자리가 나올리는 만무하고 말이죠.
쫌 속으로 건방지게 생각했던거 말고는 그래도 별로 잘못한 일 없이 열심히 살아 왔다고 생각하는데 왜 이런 상황에 오게 된 걸까요? 제 잘못은 아니라고 믿고 싶은데 말이죠…
밤 10시반부터 11시반까지 매주 하던 회의가 오늘 취소 되서 오랜만에 몇자 적으려고 시작했는데, 두서 없이 너무 길이 길어졌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