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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의 논쟁을 읽어보고
제가 평소 생각해오던 것들을 한번 정리해봤습니다.1. 영양학적 관점으로 볼 때 채식주의자는 완전한 영양 섭취가 가능한가?
일단 탄수화물이나 지방 섭취에는 별다른 문제가 없습니다.
많은 분들이 우려하시는 것은 단백질인데요.
사실 식물에도 단백질이 꽤나 풍부하게 함유되어 있습니다.
쌀만 먹거나 밀만을 먹으면 필수 아미노산 결핍의 우려가 있지만
쌀과 밀을 적절히 배합하여 충분히 섭취하면 필수 아미노산을 모두 섭취할 수 있다고 합니다.
철분 역시 여러가지 채소에서 충분히 얻을 수 있죠.
비타민 B12의 경우 채식에서 결핍되기 쉬운 영양소인데
일부 식물성 식품에도 존재하긴 하므로 이런 부분을 잘 보완하면
비타민 B12 결핍성 빈혈도 예방이 가능합니다.
제가 아는 한은 몇가지만 주의하면 채식만으로도 균형잡힌 영양의 유지가 불가능하지 않습니다.2. 알약으로 영양을 섭취하는 것은 어떨까?
건조된 알약 형태로 필요한 모든 영양소를 공급해주고,
필수 미네랄이 함유된 물을 마시면 이론적으로 적당한 영양상태를 유지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균형잡힌 영양소를 배합한 알약을 만드는 것이 그냥 식품을 생산하는 것보다 비용이 많이 들 것 같네요.
그리고, 다른 신체부위처럼 우리의 위장관도 적당히 운동을 해줘야 하는데
자연스럽게 음식을 섭취하지 않고
그런 정제된 알약으로 영양을 섭취하면 위장관계에 뭔가 문제가 발생할 소지가 있을 것 같습니다.
알약처럼 극단적 예가 아니라도
영양은 충분한데 섬유소가 부족한 식단으로 식사를 계속하면
대장운동이 둔해지고, 변비가 심해지고, 치질의 원인이 되기도 하며,
그런 상태가 수십년 지속될 경우 다른 사람보다 대장암의 리스크가 다소 증가할 우려도 있죠.3. 육류의 생산은 가격대 영양 비율로 따져서 경제적인가?
인류학자들은 원시사회에서의 육류, 주류를 사치품으로 분류하더군요.
고기를 얻기 위해서는 얻을 수 있는 고기보다 훨씬 많은 식량을 가축에게 먹여야 하고,
영양적으로 가치가 별로 없는 술을 얻기 위해 많은 곡식을 소모해야 하기 때문이죠.
그러고보면 우리가 뭔가 중요한 일을 기념하는 행사에서 술과 고기를 손님에게 대접하는 것도 다 이유가 있습니다.
그래서인지 조선시대에는 여러차례 술이나 고기를 금지하는 어명이 내려졌습니다.
영조 때에는 금주령을 어기고 변방에서 술 먹었다는 모함을 받은 관리의 사형을 왕이 친히 칼을 들고 집행한 적도 있다네요.
세종도 백성들에게 농사에 필수적인 소와 전쟁 무기인 말을 먹는 것을 금지한 적이 있다고 하죠.
오늘날의 상황을 봐도 우리가 대량의 고기를 소비하기 위해 많은 무리를 하고 있는 게 틀림 없어 보입니다.
그래서 생산비용과 이윤을 맞추려다보니 소에게 동물성 사료를 먹였을 것이고
그 결과 광우병 같은 재앙이 발생했겠죠.
오늘날 식량 위기의 한축에 육식이 자리하고 있다는 지적도 일리가 있어 보입니다.
돈 많은 국가 사람들이 먹을 가축의 사료 때문에 가난한 나라 사람들의 식량 가격이 올라간다는 것이죠.
순전히 영양분의 생산만을 생각한다면 가격대 영양 비율에서 떨어지는 고기의 생산을 중단하고
더 경제적으로 생산이 가능한 작물의 재배에 올인하는 것이 효율적일 것입니다.4. But, 육식의 폐지는 현실적인가?
사실 현대 인류 진화론에서 육식은 인류의 지능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고 여겨지고 있습니다.
원래 침팬지와 같이 밀림에서 나무 열매를 주식으로 하면서 개미나 어쩌다가 잡은 작은 동물을 먹고 살던 인간의 조상이
초원으로 나가고, 직립보행을 하게 되면서 먼저 포식자들이 먹고 버린 동물성 단백질원을 획득했습니다.
주로 뼈 속의 골수를 석기로 깨뜨려 먹은 것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양질의 단백질과 지방질이 예전보다 훨씬 많이 공급되면서
두뇌의 용량이 더 커지는 것을 제한하고 있던 영양 요인 (진화 용어로 constraint)이 풀린 것이죠.
그 결과 인간 조상의 뇌용적이 커지고 지능이 향상되었다는 설이 있습니다.
인간이 아니라도 인간의 가장 가까운 친척인 침팬지 역시 고기를 아주 귀중한 자원으로 생각합니다.
침팬지 수컷들은 종종 협동해서 비비 원숭이나 콜로부스 원숭이, 어린 영양을 사냥하여 잡아 먹습니다.
이웃 침팬지 무리와 전쟁을 한 뒤 패자들을 잡아 먹기도 합니다.
여러 원시사회들을 보아도 인간은 늘 고기에 굶주려 있었습니다.
가축이 별로 없는 문화권에서는 구더기, 쥐를 잡아 먹는 것이 아주 일상적이었고,
인구는 많은데 많은 양의 고기를 생산할 가축(소, 돼지)은 없었던 지역에서는 거의 예외 없이 식인의 풍습도 있었습니다.(중남미 문명들, 파푸아뉴기니 등)
고기를 갈구하는 것은 인간의 본성에 가깝다는 생각이 들 정도입니다.
중남미의 원주민 문명들의 경우 전쟁 후 포로를 대량 살육하여 그 고기로 축제를 하곤 했는데
정권 유지 차원에서도 중요한 의미를 가졌다고 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매춘을 꼴보기 싫은 풍습으로 생각함에도 근절이 되지 않는데,
육식은 매춘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지지하는 사람이 아직 대다수입니다.
단지 윤리적 선택으로 육식의 풍습이 사라지긴 어려울 것입니다.
게다가 지나친 육식이 건강에 해롭다지만 적당한 육식은 나쁠 것이 없습니다.5. 유기농은 친환경적이고 윤리적인가?
이 문제로 늘 와이프와 싸우는데
저는 유기농을 위선적, 이기적이라고 생각합니다.
유기농을 하면 농약이나 화학 비료에 토양이 오염되지 않아서 친환경적인 면이 있겠죠.
가능하다면 그렇게만 농사를 짓는 것이 이상적이라는 건 누구나 동의할 것입니다.
하지만 유기농은 일반 농경에 비해 효율이 떨어집니다.
따라서 같은 양의 식량을 얻기 위해 더 많은 농경지가 필요하죠.
만약 모든 농사를 유기농으로만 짓는다면 경작지를 늘리기 위해
더 많은 자연을 파괴해서 농경지로 만들어야 합니다.
게다가 더 많은 농경지를 유기농으로 전환하면 농업의 코스트를 증가시켜 전반적인 식량가격을 올리게 될 것입니다.
따라서 환경을 사랑한다면서 유기농을 고집하는 것은 위선적이고, 돈이 있는 사람이 자기 몸을 위해 유기농만 고집하는 것은 다소 이기적이라고 생각합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에게는 식품에 허용범위 이내로 미량 묻어 있는
잔류농약, 화학비료 성분, 항생제, 호르몬은 별로 중요한 문제가 아닙니다.
문제는 그런 잔류 성분을 어떻게 규제하느냐이지
일부 환경단체들처럼 대책 없이 공포를 조장하고 금지하는 것은 대안이 아닙니다.6. 앞으로 뭘 해야 하는가?
한쪽에서는 기본적 영양도 없어서 사람들이 굶어 죽어가지만
다른 한쪽에서는 먹는 것이 단순한 생계가 아닌 엔터테인먼트의 하나로 자리 잡고 있고,
게다가 영양 과잉으로 인한 여러 질병 때문에 신음하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식량을 과소비하는 사람들에게 식량을 제한하고
제한해서 남은 식량을 굶어 죽는 사람들에게 배급해줄 수도 없는 노릇입니다.
영양 경제학적으로 비효율적이라고 해서 축산업을 규제하고 위축시킬 수도 없구요.
이건 제가 감히 답할 수 없는, 정말 거대한 주제 같습니다.
일단 불필요한 음식 소비를 줄이고 쓸데 없이 버리는 음식물을 최소화하는 것이
소시민으로서 할 수 있는 가장 좋은 실천이 아닐까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