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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 앙일보 하재식] #사례 1=변호사 A씨는 2년 전 사법연수원 졸업 뒤 곧바로 개업하면서 사무실 등을 마련하느라 1억원 넘는 빚을 졌다. 그러나 사건 수임(受任.변호사가 사건을 맡아 변론함)이 좀처럼 되지 않았다. 손에 쥐는 돈이 쥐꼬리만 해 빚 상환 압력과 생활고에 시달렸다. 이후 정신적 스트레스가 심해졌고, 급기야 지난해 말 암으로 숨졌다. A씨가 입주했던 건물의 경비원은 “법원에서 오는 우편물보다 금융회사의 독촉장이 더 많았다”고 말했다.
#사례 2=변호사 경력 7년인 B씨(38)는 지난 두 달간 세 건밖에 수임하지 못했다. 카드사에서 신용대출 2000만원을 받아 직원 월급을 주기도 했다. 그는 1년 전 부업으로 친척과 함께 차린 음식점에서 벌어들인 150만원, 4개 기업에 자문해 준 대가로 받은 100만원을 집에 갖다 줬다.
‘변호사 자격증=인생 보장’이란 표현이 옛말이 되고 있다. 요즘 서울 서초동 법조타운에선 수억원의 빚을 지고 있거나, 카드 돌려막기로 사무실을 꾸려 가는 변호사가 부지기수다. 또 일부 변호사는 수임료를 100만원대로 낮추는 등 출혈경쟁에 나서고 있다. 인근 식당들로부터 “밀린 밥값을 왜 서너 달 넘게 갚지 않느냐”며 항의를 받는 변호사도 적지 않다. 이 같은 현상은 변호사 수가 늘어나면서 변호사의 1인당 수임 건수가 줄고 있기 때문이다.
?10년간 수임 건수 40% 줄어=본지가 3일 입수한 서울지방변호사회 소속 변호사들의 ‘연도별 수임 건수 현황’에 따르면 1995년 53.8건이었던 변호사 1인당 수임 건수는 지난해 34.6건으로 35.6% 감소했다. 현재 서울지방변호사회 소속 변호사는 5124명으로 대한변협에 등록된 전체 변호사(7517명)의 68%를 차지한다.
수임 건수가 크게 준 것은 변호사 수 급증이 주된 원인이다. 서울 지역의 경우 지난해 전체 수임 건수가 16만3135건으로 95년(10만2059건)보다 59% 증가했다. 반면 같은 기간 변호사 수는 1896명에서 4717명으로 150% 늘었다. 이는 사법시험 합격자 수가 99년 1000명으로 늘면서 변호사가 매년 600~700명씩 증가하는 데 따른 것으로 분석된다.
?”서초동 법조타운, 심리적 공황”=변호사 최모씨는 “후배 변호사가 ‘사무실 운영비가 없다’며 300만원을 빌려간 뒤 갚지 않고 있다”며 “변호사들이 자존심이 강해 말을 안 해 그렇지 심리적 공황 상태”라고 전했다.
반면 일부 판.검사 출신 변호사는 건당 수임료로 5000만~1억원을 여전히 받고 있다.
대한변협 관계자는 “전관예우 때문에 사건을 싹쓸이해 한 달에 수억원을 쉽게 버는 변호사도 꽤 많다”며 “변호사 업계 상위 20%와 하위 80%의 양극화가 심해지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