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 김성광 목사님의 신학과 선진국

  • #101944
    사이비라뇨 62.***.226.74 3121

    사이비라뇨. 순복음 교단에 소속된 존경받는 강남교회 목사인 모양인데요. 순복음 교인들이 얼마나 많은데 사이비라 할 수 있겠습니까. 그냥 이대로가 개신교의 모습인거지요.

    법이 모세오경에서 나왔다 하고 함무라비 법전은 얘기도 안하니, 목사님이 학교는 땡땡이쳤거나, 아무리 봐도 순복음 신자 되려면 그냥 눈감고 귀막고 무조건 무식해지는 게 안전한건가 봅니다.

    • 사이비 64.***.211.64

      이런 사이비 기독교는 달리 이상한 논리를 주장해서 나온다기 보다는, 기본 교리에 충실하지 않아서 나오는 것입니다. 다른 소리하기 전에 가장 기본이 되는 것으로, 성경에 예수님이 하라는 것을 교인들에게 열심히 전하고 독려합니까?

      예수님이 말하는 “좁은길”은 희생과 고통이 따르는 것들이고 세상에서 돈 많이 버는 “복”을 받냐 안받냐와는 별로 상관이 없는 것입니다. 이런 어쩌면 depressing하기 까지한 말을 하면 교인이 줄어들겠죠. 뭔가 세상에서 일이 잘 풀리기 원해서 찾아온 사람들은 다 떠나는겁니다.

      그래서 교인들이 듣기 불편할 말은 좀 아끼면서 귀에 솔깃한 이야기만 자꾸하면 그게 사이비가 되는겁니다. 기본은 강조하지 않고 자꾸 자기 생각과 해석만 이야기하면 이상한 방향으로 나가기 마련입니다.

      남들을 오도하고 있으면 아예 맷돌 목에 걸고 물에 빠져 죽는게 낫다고 성경에 나옵니다. 자신의 인간적 견해와 성향을 신앙적인 것인마냥 포장하여 선동하는데 이용하는 사람들… 화 있을진저.

    • 피터판 12.***.236.18

      음… 순복음… 사이비 맞네..

    • 공대 99.***.0.157

      성경말씀은 어디다 버렸나요? 기복신앙.. 그거 사이비 맞습니다.

    • tracer 198.***.38.59

      사이비님, 공대님/
      기복신앙을 강조하면 사이비 기독교 교리라는 것을 어떻게 아십니까?
      성경에도 기도하면 원하는 일이 일어날 것이라 하지 않았나요?

    • 0xd055 76.***.6.14

      “성경에도 기도하면 원하는 일이 일어날 것이라 하지 않았나요?” 맞습니다. 그러나 그 구절만 따서 이야기하면 문제입니다. 성경에는 하나님 나라와 그 뜻을 먼저 구하라고 했습니다. 이것은 어디 묻혀서 잘 인용되지 않는 것도 아니고 교인이라면 다 들어본 구절이죠. 특정 종파나 신학의 해석이 아닙니다.

      기독교에 분명 “복”의 개념이 있는데, 그것은 세상에서 돈 벌고 잘 사는 것의 개념이 아닙니다. 세상적인 성공을 반대하는 개념은 아니지만, 그것이 “복스럽냐”를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선한 것이 열매로 나타날 때를 말합니다.

      성장에 중점을 둔 기복적 성향의 교회에서는 이것을 왜곡시키는데, 대놓고 한다기 보다는 중요하거나 불편한 말을 빼놓는 것으로 시작합니다. 오해를 방치하는 것으로 시작해서 결국에는 자신들의 “성공”을 믿고 용감하게 좀 더 심한 모습까지도 갑니다.

      기독교 신앙의 기본이 세상의 가치에 희망을 두지 않고 하나님을 최우선에 두는 것입니다. 성경에는 오히려 부자되고 잘 먹고 잘 사는 것을 경고하는 이야기는 많이 나오지만, 부자되라고 독려하는 말은 안나옵니다. 결과적으로 부자되는 것이 반드시 악한 것은 아니지만, 그것을 내가 추구하다보면 신앙에서 벗어나게 되는 것이 거의 확실해서 그런 것입니다. 새로운 이론이나 개인적 해석이 아닙니다. 성경을 보면 아주 straight-forward합니다. 사이비 목사라고 해도 이걸 부정하진 못합니다. 이걸 교묘하게 꼬아서 하나님 일에 쓸테니 부자되게 해달라고 욕심내는건 괜찮다는 식으로 면죄부를 배포합니다. 불가능한 일은 아니겠으나 아주 넓고 큰 함정이지요.

    • tracer 198.***.38.59

      0xd055님/
      “성경에는 하나님 나라와 그 뜻을 먼저 구하라고 했습니다.” 이 구절이 “기도하면 원하는 것이 이루어질 것이다”라는 구절보다 더 우선한다고 생각하시는 근거가 무엇이냐는 것이 제 포인트입니다. 성경에는 수많은 상충하는 의견들을 뒷받침할 수 있는 구절들이 무수히 많습니다.

      예를 들어 선한 것이 열매로 맺어지어 나타나는 것이 복이라고 할 때, 그 열매가 속세적 의미의 복이 아님은 어떻게 아시는지요? 그것조차도 특정한 해석 아닐까요?

      불편한 말을 빼놓는다고 하셨는데, 성서의 불편한 다른 말들을 다 빼놓는 대부분의 주류 종파들은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불편한 말들, 예를 들면 여성 비하(여성은 교회에서 말하지 마라)라든지, 어떻게 노예를 다루어야 하는지에 대한 구체적인 설명이라든지, 옆 부족과 전쟁에서 처녀만 빼놓고 아이와 동물과 여자들까지 모두 말살하라는 신의 명령과 같은 불편한 말들을 빼놓는 것은 어떤 도덕관과 가치관에 근거하는 것일까요?
      교회 바깥에서 보면 자기 나름대로 불편한 말들 빼놓고 자기 믿음에 적절한 구절만 강조하는 것은 매한가지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기복신앙을 강조하는 저질 사기꾼과 박애와 용서와 봉사를 강조하는 훌륭하신 목사님들하고 도덕적인 차이가 있는 것은 부인할 수 없지요. 그 도덕적인 차이를 가늠할 수 있는 가치관은 성서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사회적 동물로서 이미 가지고 있는 도덕관에 성서의 알맞은 부분을 취하여 뒷받침하는 것 뿐 아닐까요? 즉, 우리 인간이 하나님의 말씀 중 좋은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을 우리가 판단한다는 것이죠.

    • 발톱이 몸통에게 71.***.252.21

      교인들 대부분이 위 목사와 같은 생각을 가지고 있다 볼 때, 사이비의 비교 대상이 무엇이겠습니까? 2006년 통계청 자료는 한국에서 860만명이 개신교 신자라는데, 순복음 형제의 100만 신자들이 다 바보도 아니고, 다 간악한 사람들만 모인것도 아닐테고, 그들이 사실상 몸통인데, 누가 누구더러 사이비라 할 수 있나요.

      오히려, 목사의 말대로 신앙은 돈과 거리를 두어야 한다 생각하는 사람이 뭔가 잘못 알고 있는 거겠지요.

    • 공대 65.***.250.245

      크리스찬의 소망의 근거는 믿음입니다. 믿음은 값없이 주시는 하나님의 선물이며 절대로 구원 받을수 없는 죄인인 우리들이 하나님의 한없는 은혜로 구원을 받게 된다는 확신입니다. 따라서 매일 매일의 삶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를 생각하며 경건한 삶을 살아야 하며 세상의 가치관을 쫓는 것이 아니라 성령으로 거듭난 새로운 삶을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세상의 가치관이 잘먹고 잘 사는 것이라면 크리스찬의 가치관은 성경말씀에 중심을 두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나에게 어떠한 나쁜일이 일어나도 하나님의 선하신 뜻에 소망을 품고 감사하며 살아야 하고 나에게 어떤 좋은일이 일어나도 하나님앞에서 그 공로를 나에게 돌리지 않는 겸손함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예수님이 부자청년에게 모든것을 버리고 나를 따르라고 하셨던 이야기가 있습니다. 예수님을 따르는 삶은 세상적인 재물이나 부귀영화를 누리는 것이 아니고 예수님이 이땅에 오셔서 보여주신 진정한 크리스찬의 삶을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삶의 중심에 부자가 되거나 높은 위치에 올라가야 하는 일이 있는것은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부자가 천국에 들어가는 것은 낙타가 바늘귀를 통과하는 것보다 어렵다고 하셨습니다. 그만큼 재물에 많아질수록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일이 어렵다는 것입니다. 많은 목사님들이 세상적으로 성공한 교인들의 예를 들면서 복을 받았다고 하는 일이 있습니다. 모든일이 하나님의 주권하에서 이루어진다고 볼 때 틀린말은 아닐것입니다만 성공하거나 실패하거나 모두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복임을 알아야 합니다. 개인적으로는 하나님을 더욱더 알아가는 일이 바로 하나님이 주시는 복인것 같습니다. 크리스찬의 믿음이 세상적인 성공과 재물과 연관될 때 많은 분들이 삶에서 작은 어려움에 직면하고 또 바라는 대로 세상적인 성공을 하지 못할때 하나님을 떠나는 계기가 되는 것입니다. 진정한 믿음은 하나님의 선하신 뜻을 믿으며 매일매일에 대하여 감사하며 살아가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 tracer 198.***.38.59

      공대님/
      예수님이 부자가 천국에 가기 어렵다고 말씀하신 구절도 있지만, 세상에 칼을 가지고 오셨다는 구절도 있습니다. 나를 믿고 따르려면 가정을 버리라는 말씀도 있구요. 또, 앞서 말했듯이 성서에는 노예를 어떻게 부려야 한다는 지도말씀도 들어있고(예수님도 신약에서 단 한 번도 노예를 소유하는 것이 옳지 않다고 하신 적이 없습니다.) 여성은 교회에서 입을 열지 말라는 가르침도 있습니다.

      제가 주장하는 바는 공대님 같이 돈이 세상의 전부가 아니고, 기복신앙이 옳지 않고 남을 돕고 사랑하는 것이 선한 일이라는 생각을 성서에서 기원하는 기독교의 근본 교리라고 생각하는 것은, 성서에 나와있는 다른 구절들을 근거로 하여 기복신앙과 여성비하와 사이비교주들이 자신의 주장을 합리화하는 것과 똑같은 pick and choose 행위라는 것입니다.

      성서에만 근거하면 기독교의 근본교리를 어떻게 해석하느냐는 누구도 자기가 옳다고 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모두 주관적인 해석인데 누구 것이 옳다고 어떻게 증명하느냐는 것이죠. 결국, 우리는 성서 이전부터 이미 가지고 있던 속세의 도덕관을 잣대로 성서의 특정 부분들을 해석해야 하는 것이죠.

    • 공대 99.***.0.157

      tracer님/ 성서는 일반적인 학문의 대상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여러가지 비유로 말씀을 전하셨는데 그걸 각자 자기 입맛에 맞게 해석해서는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속세의 도덕관으로 성서의 특정부분을 해석하신다는 말씀은 동의 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성령님의 도움없이는 정확히 이해할수 없는 것이며 성령의 힘으로 거듭난 크리스찬이 아니면 아무리 목사가 설명을 해도 제대로 이해할 수 없게됩니다. 하나님은 한분이시며 하나님의 말씀도 항상 동일하십니다. 따라서 일반 신도들도 정신 똑바로 차려야 잘못된 길로 빠지지 않는겁니다. 예수님때 바리새인들도 하나님 말씀에 관해서는 일가견이 있는 사람들이었지만 예수님으로 부터 질책을 받았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믿는 다고 해서 그게 항상 옳은것은 아닙니다. 천국은 좁은길로 가는것이라고 합니다. 과연 요즘 크리스찬들이 좁은길로 가고 있는지 대로로 가고 있는지 되돌아보아야 합니다. 구약과 신약에서의 하나님께서 우리를 가르치시는 방법에는 약간의 차이가 있습니다. 성경 구절 구절들을 이해할때는 전체 문맥을 고려하여 이해하여야 합니다. 이성적으로 이해하는게 아니라 성령님의 도우심으로 이해하여야 합니다. 예수님이 이세상에 칼을 가지고 오셨다는 말씀은 세상과 타협하는 신앙이 아닌 세상을 이기는 신앙에 대하여 말씀하셨다고 생각합니다. 당시 예수님을 믿는 다는 것이 가정에서 사회에서 평화를 깰수도 있는 그런 일이었으며 따라서 예수님을 따른다는 것은 그만큼 어려울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말씀은 하나입니다. 하나님도 한분이십니다. 성령님도 한분이시고 예수님도 한분이십니다. 어떻게 성경말씀이 속세의 도덕관을 잣대로 해석을 할 수 있습니까?

    • tracer 198.***.38.59

      공대님/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서 질문드리면, 공대님은 공대님이 생각하시는 성서의 해석과 기독교의 근본 교리가 옳은 것임을 어떠한 잣대로 판단하십니까? 성령이 본인을 돕고 계시다고 믿으시는 건가요? 성령이 돕고 있는지 사탄이 혼동시키고 있는지 어떻게 알 수 있을까요? 말씀하신대로 많은 사람들이 믿는다고 옳은 것이 아니듯, 기복신앙을 주장하는 사기꾼 목사들의 성서 해석이 틀리다는 것을 어떻게 확신하시는지요? 성령님이 그 사람들의 해석에 도움을 주지 않는다는 것을 어떻게 알지요?

    • 0xd055 76.***.6.14

      “pick and choose”라고 충분히 결과적으로 보일 수 있겠다고 이해합니다. 제가 여러 번 길게 썼었는데, 너무 길어서 인지 포스팅 에러도 나고 그러네요.^^. 그래서 다 지우고 줄여 말씀드리려 합니다.

      – 신앙인들은 하나님의 뜻을 사모하고 원하고 찾기 때문에 성경을 보면서도 그것을 파악하고 깨닫기를 시도합니다. 전혀 예기치 못한 깨달음을 얻기도 합니다. 안믿는 사람들에게는 어찌 보일지 모르겠으나, “공대”님이 말씀하신 것과 같이 기독교에서는 “성령의 도우심”이 있어서 그런 것이 가능하다고 믿습니다.

      – 성경의 기록은 사람이 한 것입니다. 시대적 환경적 개인적 문화적 인식의 한계와 편견이 들어가 있습니다. 그냥 완벽하다고 우기는 사람들도 있으나, 사람의 조직으로서의 교회가 불완전하고 문제가 많은 것과 같이 사람이 적은 것이 오류가 없을 수 없습니다.

      – 믿음은 성경에서 어떤 해석을 통해 증거를 발견하여 생기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성경에 의해 정의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안믿는 사람이라도 개념적으로 그렇다는 것은 이해가 되시겠죠.

      – 성경을 읽으며 하나님의 뜻을 구하는 경우가 많지만, 법 처럼 적용되는 문구를 찾는 것은 아닙니다.

      믿음이 없는 상태에서는 굉장히 모호하게 들리고 불확실하게 보이시겠지만, 이런 다이나믹한 것이 기독교의 포인트 중 하나입니다. 성령의 활동이 있기에 가능해지는 것입니다. 어떤 다른 세상의 개념 밑에 들어가기 시작하면 다이나믹이 줄어들며 망하는 길로 접어듭니다.

    • tracer 198.***.38.59

      0xd055님/
      좋은 설명 감사합니다. 님과 같은 신자분들의 마음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한가지 더 여쭈어 본다면, 성서에 오류가 없을 수 없다고 하셨는데, 그렇다면 예수님의 부활 부분도 오류의 여지가 있을 수 있다고 보시는지요? 사해사본의 신약에는 예수님의 부활 부분이 없는 상태로 발견되었다고 들었습니다. 그 부분이 나중에 추가되었을 가능성을 배재하지 않으시는지요?

    • 공대 99.***.0.157

      길가는 가운데 세명이 다가와 각각 다른 길을 가르쳐 준다고 합시다. 과연 누구의 안내를 따라야 할 까요? 성경을 여러가지로 해석하고 적용하는 것은 있을수 있으나 말씀자체가 바뀔수는 없는 것입니다. 성경을 제대로 알고 있으시다면 그정도는 구분하실수 있으셔야 합니다. 물론 개인의 능력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 성령님의 도움이 있어야 합니다. 머리로 이해하려고 하면 이사람말도 저사람말도 다 맞는것 같을수 있으나 성령님의 도움을 의지한다면 바로 아실수 있습니다. 제가 믿는 하나님은 제가 필요해서 돈을 달라면 돈을 주고 제가 필요해서 직장을 달라면 직장을 주시는 분이 아니십니다. 이미 값없이 주신 믿음으로 이땅에서 받은 축복은 차고 넘치므로 세상적으로 주시는 것이 있던 없던 늘 감사하게 됩니다. 과연 이땅에서 무엇을 구할게 있을까요? 사라지고 썩어없어질 육신이지만 그래도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할수 있는 기회를 갖는 다는 의미에서 이땅을 살아갑니다. 원수를 사랑하십니까? 예수님이 사랑하라고 하신것은 해도 되고 안해도 되는 문제가 아니라 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웃에 대한 사랑은 이웃에 대한 험담까지도 자제 하는 일이라는 말씀을 들은적이 있습니다. 과연 우리의 삶은 어떠한지 돌아보아야 하는 때가 아닌가 합니다. 절에 다니는 사람들은 절간에 가서 성공을 기원하며 미신을 믿는 사람들은 굿을 하며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은 교회나 성당에 가서 성공을 빌고 있습니다. 과연 우리들이 하고 있는 행동들이 하나님 앞에서 부끄러운 일이 아닐까요? 누구는 기도를 열심히 해서 돈을 많이 벌고 누구는 기도를 안해서 돈을 못버는 것입니까? 돈을 벌건 못벌건 하나님께 감사하며 하나님의 뜻을 이해하려고 노력하여야 합니다. 하나님을 우리의 마법의 램프로 만들어가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과연 천국에 가는 일이 이렇게 쉬운일이겠습니까? 진정으로 하나님을 만나시는 계기가 있으시기 바랍니다.

    • tracer 198.***.38.59

      공대님/
      공대님이 이단이라고 부르고 성서를 잘못 해석하고 있다는 사람들은 본인이 성령의 도움으로 성령에 의지하여 성서를 읽고 있지 않다고 생각하신다는 말씀인가요? 그 사람들도 마찬가지로 공대님처럼 성령의 도우심으로 성서를 제대로 이해한다고 구분하고 있을 것 같은데요?

    • 공대 99.***.0.157

      tracer님/ 다른 사람들 말고 님은 어떠하십니까? 성경을 머리로 이해하십니까 아니면 성령님의 도움으로 이해하십니까? 님은 기복신앙이 하나님의 말씀에 비추어볼때 맞다고 믿으십니까?아닙니까!

    • tracer 68.***.105.176

      공대님/
      저는 기독교의 신과 같은 조물주의 존재를 믿지 않습니다. 그래서 저는 성서를 인간이 쓴 책으로 이해합니다.

      저는 기복신앙과 같은 이기적인 사고방식이 하나님의 말씀이 아니라 속세의 도덕관에 비추어 볼 때 옳지 않다고 믿습니다.

      이제 제 질문에 답해주실 차례입니다.

    • 0xd055 64.***.211.64

      사람이 가지는 도덕관이 기독교적으로 볼 때 불완전할 수는 있어도 무의미한 것은 아닙니다. 사실 그게 있기 때문에 신앙이라는 것도 있는 것이죠. 그런게 없다면 선한 것에 소망을 걸려는 선택의 여지도 존재하지 않을테니까요.

      “사해사본의 신약에는 예수님의 부활 부분이 없는 상태로 발견되었다고 들었습니다.” 말씀하시는 사해사본이 무얼 말씀하시는지 모르겠으나, 소위 말하는 dead sea scrolls라면 거기에서 신약이 발견된 바는 없습니다. 최근에 우표만한 조각하나를 가지고 마가복음의 일부가 아니냐는 주장이 있기는 했습니다.

      마가복음의 사본들 중에 16장8절에서 갑자기 끝나버리는 것들이 있습니다. 아마 그것을 말씀하시는 것 같습니다. 사본에는 유실되어 보통 끝이 없거나 처음이 없는 경우가 많다고 합니다. 그리고 물론 베껴쓰는 이들이 자신의 신앙적 입장에 맞게 조금씩 바꾸는 경우도 많이 있었습니다. 따라서 지금 우리가 보는 성경은 (특히 신약, 그리고 구약 일부분도) 처음부터 그렇게 쓰여진게 아니고 기원후 약 2세기 경까지는 수많은 버젼이 난무했다고 합니다.

      지금 성경에 들어간 마가복음의 끝은 보통 나중에 붙여진 것이라고 학자들이 말합니다. 190년경 문서에 이 끝 부분을 인용한 것이 있는 것으로 보아 적어도 그 때에는 존재했던 것으로 믿어집니다. (물론 동시대에 다른 버젼도 같이 돌아다녔습니다) 이것을 조작으로 보느냐 아니면 유실된 또는 미완성된 뒷부분을 제 2의 저자가 충실하게 완성시킨 것이냐는 각자에 달린 문제입니다. 이렇게 모호한 상태에서는 조작이기를 바라는 사람은 조작이고 자꾸 생각이 되겠고, 아니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아니라고 아니라고 믿겠죠.

      사람은 자기가 원하는 방향으로 결론을 내는데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는 이야기가 발견되면 그것을 증거로 삼는데 주저하지 않습니다. 종교 이야기가 아니라 살다보니 나는 논리적이고 과학적이라고 믿는데 사실 이런 버릇 때문에 그렇지 않은 경우가 많음을 봅니다. 마지막 돌 하나까지 뒤집어 보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tracer님은 그런 면에서 애쓰시는듯 해서 좋습니다.

      성경에 대한 학설들도 계속 새로운 증거에 의해 바뀌고 사라지고 하는데, 사람들은 이미 힘을 잃은 학설들을 계속 인용합니다. 물론 그쪽 전문가들은 안그러지요. 사해 사본이 발견되어 그 동안에 거의 정설로 여겨지던 추측성 학설들이 설자리를 잃은 것이 여럿 있습니다. 시대와 문화권이 확실한 문헌 자료가 생겨서 잃어난 일입니다.

      이런건 참 재미있고 흥미로운 일들이나, 믿음의 문제에 도움이 별로 안됩니다. 성경에서 한가닥 믿음의 증거를 찾는 것 보다는, 자기 자신을 돌아보고 하나님과의 관계를 생각하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그러고 나서 성경을 보면 많이 다릅니다. 어떻게 보면 성경을 기록하고 정리한 사람들의 입장에 더 가까와지기 때문에 그런 것이죠.

    • tracer 198.***.38.59

      0xd055님/
      좋은 내용들을 많이 배웁니다. 이에 우선 감사하다는 말씀 드립니다.
      제가 말씀드렸던 사본은 h ttp://en.wikipedia.org/wiki/Codex_Sinaiticus
      이것인데 마가복음 중 16장 8절에서 끝난다는 그 사본인 것 같습니다.

      말씀하신대로 근거가 불충분할 때, 사람들은 자기들이 이미 가지고 있는 믿음에 부합하는 근거들(그것이 학계에서 인정을 받든 안받든, 혹은 성서의 어떤 특정 부분이든)만 보려고 하는 것 같다는 생각입니다. 제 주장은 근거가 불충분하면 결론을 당장 내릴 필요가 없다는 것이지요. 미스테리는 미스테리로 인정하고 모르는 상태로 있는 것이 불편함이 없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설령 거짓 답일지라도 당장 답을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 편한 사람들이 있는가 봅니다.

      말씀 중 마지막 문단에서 하나님에 대한 믿음 이야기도 마찬가지 생각입니다. 왜 세상 다른 모든 일들은 근거에 기준하여 믿음을 가지면서 신의 존재에 관해서만은 왜 객관적인 근거를 무시하는 것이 오히려 당연하다고 생각을 하고 일단 믿는 것을 기정사실화 한다고 생각하시는지가 궁금합니다. 불충분한 근거로는 알 수 없는 사실인데도 해답을 갈구하는 마음으로 성급하게 믿음을 가지는 것이 아닐까요? 님은 왜 하나님이, 그것도 기독교의 하나님이 존재한다고 생각하시는지 여쭤봐도 될까요?

    • 0xd055 64.***.211.64

      다 같이 “믿음”이라는 말을 쓰셨지만 보통 논리적인 결론과 증거로 수긍하는 것은 accept하는 것이고, faith는 그것과는 다른 것입니다. 부부간의 faith도 논리적 증거로 받아들여지는 fact의 차원이 아닌 것을 이해하실겁니다. 즉, faith는 종교적 믿음에만 국한된 개념은 아닙니다.

      faith를 갖는 것은 내가 원하기 때문에 일단 시작되는 것이고, 그 안에 소망이 있어서 가능한 것입니다. 그런 소망을 가질 마음이나 필요성을 못느끼면 믿음을 갖는 것은 매우 힘든 일이 됩니다. 성경에 나오는 유명한 xx한 사람은 복이 있나니..하는 말도 이것과 연결시켜 볼 수도 있습니다. 거기에서 복이 있는 사람들은 소망을 품을 입장에 있는 사람들이니까요.

      일반적인 faith와 기독교의 faith의 차이라면, 후자에는 하나님이 개입하여 도와준다는 것입니다. 성령 하나님의 도움에 대해서는 구하면 준다고 했으니 실험하기에 어려운 것이 아닙니다.

    • tracer 198.***.38.59

      0xd055님/
      제가 생각하는 faith란 근거의 유무와 상관없이 그냥 원하기 때문에 믿는 것을 말합니다. 말씀하신대로 종교 뿐 아니라 특정 이데올로기라든지, 개인의 선택에 의해서 이루어지는 것이지요. 부부간의 애정과 신뢰 역시 faith로 무조건 믿을 수도 있고, 상대방의 언행에 기반하여 조건적으로 선택될 수 있는 부분입니다. 부모와 자식간의 사이도 무조건 faith로 굳건한 관계는 아니지요. 오히려 대부분의 경우 부부나 부모자식간의 애정과 사랑도 각자의 일관된 언행에 근거하여 깨어질 수도, 굳건히 결합될 수도 있는 인간 관계일 뿐입니다.

      제 말씀은 삶의 대부분의 경우 우리는 근거를 바탕으로 하여 믿음을 형성하고, 그 근거를 찾을 수 없는 믿음에 대하여 의문을 제시하는 데 반해, 종교 영역에서는 오히려 그 근거없는 믿음(faith)가 미화되고 권장된다는 것입니다.

      실제로 구하면 준다는 데 대한 실험(병자에 대한 기도 실험)이 있었으나, 기도는 결과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라는 연구 결과가 있습니다. (h ttp://www.beliefnet.com/News/2006/04/Study-Intercessory-Prayer-Has-No-Major-Effect-On-Recovery.aspx) 카더라 수준의 입소문(anecdotal evidences) 외에 기도의 효과가 객관적으로 입증된 경우는 없습니다.
      기독교의 faith에는 하나님이 개입한다는 사실도 개인의 주관적 믿음(faith)에 불과하기 때문에 동어반복일 뿐이겠네요.

    • tracer 198.***.38.59

      그러고보니 위에서 제 질문에 답을 안해주셨네요,
      0xd055님, 인간이 쓴 오류가 있을 수 있는 성서에서 예수님의 부활이나 기적과 같은 미신적 요소가 오류나, 다른 인간적 의도에 의해 첨가되었을 가능성도 배제하지 않으시는지요?

    • 공대 99.***.0.157

      tracer님/ 제가 님에게 믿음을 드릴수 없기에 어떻게 설명을 하던 이해가 안되는 부분이 있을것 같습니다. 개인적으로 모든 사람이 하나님의 말씀을 이해할 수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에서 벗어나서 말을 전하는 것은 이미 잘못된 것입니다. 본인들이 성령님의 인도하심으로 성경말씀을 이해한다고 주장을 하더라도 그들이 전하는 말이 성경과 다르다면 이미 사이비가 될 수 있습니다. 님이 성경을 인간이 쓴 서적으로 이해하는 한 아직은 이해가 안되시는 부분이 많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믿지 않으시면서 성경에 관심을 갖으시니 놀랍긴 합니다. 즐거운 하루 되세요.

    • tracer 198.***.38.59

      공대님/
      “그들이 전하는 말이 성경과 다르다면” 성경의 어느 부분과 다르다는 것을 말씀하시는지요, 위에서 말씀드린 것처럼 사이비라고 불리우는 많은 종파 신도들도 님과 같이 역시 성경에 그들의 믿음을 기반으로 하고 있습니다.

      이쯤에서 공대님과의 대화를 매듭지으면 좋겠네요.
      좋은 대화에 감사드립니다.

    • 0xd055 76.***.6.14

      성경이 100% 검증된 사실만을 기록하고 있을까? 일부러이든 실수로이든 어딘가 오류가 있지 않을까요? 하다못해 나름대로 권위가 있다는 번역본에도 오류가 있는 것을 볼 수 있는데 말이죠. 이것은 물론 매우 흥미있는 주제입니다. 저도 옛날 역사에 대해 배우는걸 좋아해서 종교와 상관없이 흥미를 갖습니다. 그런데 그것이 우리의 믿음에 얼마나 상관이 있는가는 완전히 다른 문제입니다. 계속 말씀드리지만, 성경은 단순히 믿음의 근거나 행동의 법전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성경이 없던 시절에도 하나님을 찾고 믿었습니다.

      전도하는 사람들이 성경구절을 인용하지만, 사실 안믿는 사람에겐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것입니다. 조금이나마 믿고 싶은 마음이 있는 사람에겐 다르겠지만, 전혀 관심이 없는 사람에게는 증거도 못되는 정확성이나 의도도 확실치 않은 나랑 관계없는 책에서 인용하는게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지금까지 기독교의 부활 신앙이 유지되는 것은 어느 메뉴얼에 나와 있길레 무턱대고 묻지마식으로 믿어서 되온 것이 아니고, 자신들이 알고 경험한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성령을 통해 inspire되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되면 믿는 것이고 아니면 못믿습니다.

      말씀하신 바와 같이 사람간의 faith는 깨어집니다. 그래서 자신의 의지로 시작한 믿음에 성령의 도움이 없으면 결국 깨지게 됩니다.

      성경에 나온 것들을 기독교인이 아니더라도 잘 지키면 참 이롭습니다. positive thinking이라는 것도 그렇지요. 성경에 나오는 기적들이 다른 방법으로 (이를테면 무당이..^^) 이루어진다고 해도 놀랄 것은 없습니다. 만약 그런 표적을 믿음의 증거로 삼는 사람이 있다면 그런 사람이 어리석은 것입니다.

      이런 이야기를 하면 또 복잡해지겠지만, 믿음의 조상이라는 사람은 성경이 없을 때 믿음을 가졌습니다. 선한 것을 바라고 그것에 희망을 거는 것은 인류 보편적인 행위라고 봅니다. 여기에서 시작하는 믿음이라면 종교의 타이틀에 관련없이 대화가 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