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TA(25) 누가 수출이 늘어난다고 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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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KBS 박종훈 기자 68.***.87.69 22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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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1 년 대외경제정책연구원 보고서를 보면 한미 FTA를 체결할 경우 거의 모든 분야에서 생산이 줄어드는 것을 알 수 있다. 특히 정부가 FTA 수혜 산업이 될 것이라고 주장하는 전기, 전자, 기계 산업 등 대부분 산업 분야에서 생산이 줄어드는 것으로 나와 있다.(24편 참조)

    그 렇다면 민간 연구소들은 한미 FTA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아마 일반 시청자들은 재벌 산하 경제연구소들이 당연히 FTA에 대해 찬성하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FTA에 대해 부정적인 목소리를 내는 곳은 시민단체 뿐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많을 것이다.

    그 러나, 실제로는 상당수의 경제 연구소가 한미 FTA에 대해 매우 부정적인 견해를 내놓은 적이 있다. 지난 6월 삼성경제연구소의 연구 보고서는 매우 중요한 시사점들을 소개하고 있다. 특히 수출과 고용 면에서 FTA의 효과를 심층적으로 분석했다는데 그 의의가 있다.

    삼성경제연구소는 한미 FTA가 대미 수출을 늘려야만 제 효과를 발휘하는 것이라고 단언했다. 그러나, 문제는 한미 FTA가 대미 수출을 늘리는데 거의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라는 점이다.

    삼 성경제연구소에 따르면 대미 수출은 전자, 자동차 같은 10대 품목에 의해 좌우되고 있다. 이들 10대 품목의 수출 비중이 53%나 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승용차의 경우 그 관세율이 2.5%에 불과하고 전자제품에 대한 관세율은 거의 대부분 0%, 즉 무관세다.

    이 때문에 관세가 조금 인하된다고 하더라도 경쟁력 회복에는 거의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게 삼성경제연구소의 설명이다. 중국이나 동남아와 경쟁할 경우 2,3%안팎의 관세 인하로는 실질적인 도움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삼성경제연구소에 따르면 한미 FTA를 체결할 경우 고급 기술 산업과는 달리 저급 기술 산업의 경우에는 경쟁력이 다소 회복될 수 있을 것이라고 한다. 섬유 산업의 경우 관세율이 10% 안팎에 이를 만큼 크기 때문이다.

    하 지만 FTA가 섬유 산업에 일시적인 도움을 줄 수 있을지 몰라도 근본적인 해결책은 아니라고 한다. 더구나 저급 기술 산업이 우리나라 전체 수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너무 작아서 경제 전체에는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설명하고 있다.

    이 때문에 한국은 한미 FTA로 거의 얻는 것이 없는 반면 미국은 한미 FTA로 많은 이익을 누리게 될 것이라고 한다. 특히 전자산업의 경우 부품 수입이 크게 늘 것이라고 전망했다. 또한 한미 FTA가 한국 전자 산업 고도화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내다 봤다.

    이 같은 전망은 바로 삼성경제연구소에서 나온 것이다. 농민단체나 시민단체가 아니라 재벌 소유의 민간 경제연구소의 분석 결과이다. 더구나 한국 자동차 업계를 대표하는 한국 자동차 공업협회도 비슷한 전망을 내놨다.

    한국 자동차 공업협회는 현대.기아차, 삼성차 등 국내 자동차 업계를 대표하는 기구이다. 이 협회에서 지난 2월 내놓은 자료를 보면 한미 FTA가 우리 자동차 업계에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라고 한다.

    우 선 현재 자동차 대미 수출이 줄어들고 있지만 그 이유는 경쟁력이 하락해서가 아니라 미국 현지공장이 가동됐기 때문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또한 미국의 관세율이 승용차의 경우 2.5%에 불과해 관세 인하가 대미 수출에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분석했다.

    또 한 트럭의 경우 관세가 25%이지만 미국시장에서 수출을 늘릴 수 있는 주력차종이 없기 때문에 수출이 늘어나기는 어렵다고 한다. 그리고 미국 알라바마 공장이 가동되고 있는 만큼 관세 인하에 따른 수출 증가는 한계가 있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이 처럼 삼성경제연구소와 한국 자동차 공업협회가 모두 한미 FTA에 대해 부정적인 견해를 내놓은 적이 있다. 이 때문에 취재진은 이번 특집 ‘한미 FTA, 정부는 진실을 말하고 있는가?’를 취재하면서 이들에게 인터뷰 요청을 했다.

    그러나, 삼성경제연구소와 한국 자동차 공업협회는 모두 인터뷰를 꺼려했다. 삼성경제연구소의 담당 연구위원은 당시 보고서를 내놓은 다음 여기저기서 전화도 많이 받고 매우 시끄러웠기 때문에 인터뷰를 하기는 곤란하다고 답변했다.

    한국 자동차 공업협회는 연구원이 해외에 나가 있다며 연구원 자체를 소개해 주지 않았다. 그리고 당시 연구 보고서는 연구원 개인의 실수이므로 인터뷰를 할 수 없다고 답변했다.

    이처럼 한미 FTA에 대해 많은 민간연구소들 특히 재벌 산하 연구소들이 부정적인 견해를 내놓은 적은 있었다. 그러나, 이 같은 보고서를 내놓은 다음 안팎에서 시달리는 바람에 그만 더 이상의 연구 진전이 없었던 것이다.

    이 때문에 이제 당당하게 FTA 반대를 외칠 수 있는 곳은 일부 시민단체밖에 남지 않았다. 그러나, 지금 현재 FTA 반대를 외치는 곳이 일부 시민단체 밖에 없다고 해서 경제학자들이 FTA를 찬성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한국을 대표하는 경제학자들의 모임인 한국 경제학회에서는 총회가 열릴 때마다 한미 FTA에 대해 우려의 목소리를 내놓고 있다. 정부의 성급한 결정이 이 나라에 큰 위협이 될 수 있다는 지적이다.

    그 러나, 이 같은 목소리들은 보도가 잘 되지 않는다. 보도가 되더라도 이들 경제 석학들이 왜 반대의 목소리를 내놓은 것인지 구체적으로 다뤄지지 않는다. 이 때문에 경제학자들이 FTA에 대해 모두 찬성하고 있다는 생각은 심각한 착각이다.

    즉 한미 FTA에 대해 농민이나 시민 단체만이 아니라 재벌 산하 경제연구소, 경제학자들이 모두 반대의 목소리를 내놓은 바 있다. 그러나, 이들의 목소리가 전달되지 않고 단지 과격 폭력 시위만이 신문이나 방송을 통해 전달되고 있다.

    그 러나 한 경제학자의 말처럼 경제학 교과서의 앞부분만이 아니라 끝까지 공부하면 FTA에 대해 맹목적인 찬성만을 하기는 어렵다. FTA에는 좋은 FTA와 나쁜 FTA가 있다. 우리에게 유리한 FTA도 있고 불리한 FTA도 있다.

    FTA 를 맺는 순서도 중요하다. 먼저 강대국과 맺고 약소국과 맺는가? 아니면 약소국과 맺고 나중에 경제가 성숙된 다음 강대국과 맺는가? FTA를 맺는 시기나 순서가 조금만 달라져도 FTA는 경제를 살리는 명약이 될 수도 있고 우리나라를 영원히 중진국에 묶어놓는 독약이 될 수도 있다.

    선 진국이 되려면 정부가 더 이상 건전한 비판을 두려워해서는 안 된다. 이 땅에 언로가 막혀서는 안 된다. 그러나, 취재진은 이번 취재과정에서 한미 FTA에 대한 건전한 비판의 목소리가 설 자리가 점점 좁아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맹 목적인 찬성론자들에게 다시 한 번 재고해 보기를 부탁드린다. 만일 한미 FTA가 정말 그렇게 절대선이라면 왜 지금까지 미국과 FTA를 맺은 나라 가운데 정상적인 나라는 왜 서너 개에 불과할까? 그렇게 좋은 것이라면 왜 세계가 나서서 미국과 경쟁적으로 FTA를 맺지 않을까?

    우리와 수준이 비슷한 대부분의 나라와는 FTA를 맺는 편이 유리하다. 그러나 너무 차이가 많이 나는 나라와의 FTA는 반드시 유리한 것이 아니다. FTA를 맺기 이전에 경제학적인 검토와 실증적인 분석, 업계의 목소리를 참고해 신중하게 결정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