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9박 50일 좌충우돌 유럽 생환기9 – 파리의 여인들… 길상사1

  • #83686
    6년만기 24.***.74.254 5209

    정말 막막하기만 하던 파리행…
    오직 영어와 불어만이 존재하던 그 도버의 밤배에 아름다운 우리말로 내 청각을 자극시킨 두 여인…
    지금 생각해봐도 정말 잊을 수 없는 기억이며, 동시에 만일 그렇게 그분들을 만나지 못했더라면 여행 자체가 정말 최소한 10배는 힘들었을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자… 이제 만기의 여행 운명을 바뀌게 해준 그 두여인들의 첫 만남 장면으로 넘어가 보자…
    .
    .
    .

    파르라니 깍은 머리…
    회색 승복…

    그렇다. 그 두 여인은 다름아닌 비구니 스님들이었던 것이다.
    두 분 모두 나이를 가늠하기 어려울 정도의 동안에 방금 바다의 밤바람때문인지 약간 홍조를 띤 얼굴로 무슨 말인가를 주고 받으며 내가 서있던 곳을 지나쳐 가는 중이었다.

    ‘저기요… 스님…’

    물에 빠진 사람 지푸라기 잡는 심정으로 몇발자국 떨어져 지나쳐 가시던 스님들을 다급히 불러세우는 만기…
    어디선가 부르는 소리에 잠시 놀라는 듯 멈춰서서는 목소리가 들린 쪽으로 고개를 돌리시는 스님들…
    만기 두손을 모아 합장을 하며 고개를 숙이고는 넉살좋게…

    ‘나무관세음보살…’

    스님들 마주 합장해주시며…

    ‘…관세음보살…’

    ‘스님들… 한국분들이시죠? 어디까지 가세요?’

    약간은 경계의 눈초리를 보내며 대답을 주저하시는 스님들…
    그제서야 만기는 지금 스스로의 모습이 어떻게 보일 지 돌아보게 되었는데…

    3일동안 깍지 않은 산적수염(만기가 수염이 좀 빨리 자라는 편이랍니다…ㅋㅋ), 시커멓게 그을린 얼굴, 이리뛰고 저리뛰느라 땀자국으로 얼룩진 면티, 별로 단정해보이지 않는 반바지, 먼지 묻은 샌들…
    이런 몰골로 급한 마음에 달려들듯 다가가 다짜고짜 어디로 가냐고 묻는 나를 보고 소리를 지르지 않은 것만도 천만 다행이라 생각하며 아직도 경계의 눈초리를 풀지 않고 계신 스님들에게 자초지종을 설명할 요량으로 한 발더 다가서려는 찰라…

    ‘스님들 무슨 일 있으세요?’

    어디서 나타났는 지 스님들 뒤로 건장한 체구의 뿔테 안경을 쓴 남자분 하나가 불쑥 나타나며 역시 나에게 경계의 눈초리를 보낸다.

    ‘아~~~ 안녕하세요? 한국분이시네요…’
    ‘네… 그런데… 무슨 일이신지?’
    ‘다름이 아니고요… 제가 사실은 배낭여행 중인데… 주저리주저리….’

    장황하게 어떻게 이 배를 타게 되었으며 막상 타고보니 기대와는 달리 아무 배낭족도 발견할 수 없었고 그래서 파리에서 어떻게 해야할 지 막막하다는 것 등을 얘기했고 한참을 듣던 이 형(나중에 알았지만 저보다 8살 많은 영국유학생…)은 황당하다는 표정으로…

    ‘네… 그랬군요… 근데… 보통 배낭여행 하는 사람들은 다 영국에서 네덜란드로 이동을 하는데 아무 대책없이…’
    ‘그러게요… 제가 좀 무대뽀라서… 그나저나 제일 궁금한 것이 제가 탄 버스가 파리에 몇 시쯤 도착하는 건지 알 수 있나요?’
    ‘음… 보니까 우리랑 같은역에서 출발한 것 같은데… 제가 알기로는 그 버스 아마 우리랑 같은 시간에 도착할거에요!’
    ‘그게 몇 시?’
    ‘새벽 4시정도…’
    ‘헉… 그렇게 일찍…’

    그 형과 대화를 나누는 모양을 한참 지켜보시던 스님중 한 분…

    ‘그럼… 보살님은 도착하면 어디로 가실 건가요? 여행하기에는 이른 시각인데…’
    ‘글쎄요… 저도 그게… 뭐 정한것 없이 무작정 버스를 탄 것이라…’
    ‘그러시면…’

    무언가 말씀을 하시려던 조금 어려보이는 스님(나중에 이 스님을 난 작은스님이라고 불렀다. 나보다 10살 많은 작은 스님…)이 갑자기 옆에 계신 스님(이분은… 큰스님…ㅋㅋ… 물론 작은 스님보다 더 연세가 있으신)을 보더니 황급히 말을 멈춘다.

    큰 스님… 작은 스님에게 눈치를 주며 만기에게 한마디…

    ‘보살님 사정은 딱하지만 저희도 객(客)이 되어 가는 길이라…’
    ‘스님… 그래도 보살님 사정이…’
    ‘허~어~ 참… 스님 저 좀 잠깐보세요…’

    갑자기 작은스님을 이끌고는 몇발자국 떨어진 곳으로 가 이야기를 나누시는 스님들…
    뻘줌하게 서서 스님들을 바라보는 만기와 그 형…
    얼마지나지 않아 스님들이 오셔서는 이번엔 형을 데리고 갔다가 다시 돌아오셔서 큰스님이…

    ‘저… 보살님 사정은 안되었지만 아까 말씀드린것처럼 저희도 객이 되어 가는 길이라 어떻게 도와드려야할 지 모르겠네요…’
    ‘아이구… 스님!!! 괜찮습니다. 일단 파리에 도착하면 무슨 수가 생기겠지요 뭐…’
    ‘그래도 낯선땅 초행길에 말도 안 통할텐데…’
    ‘에이… 걱정하지 마세요… 거기도 사람사는 곳인데…’

    여기까지 말하는 순간…
    갑자기 사람들이 휴게실에서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옆에 있던 형이 곧 배가 도착하기에 각자 자기가 타고 온 버스로 돌아가라는 안내방송이 나왔다며 스님들에게 돌아가자고 말했고…
    만기도 그 뒤를 따랐다.

    막상 앞서가던 그 형과 스님들이 버스에 오르는 것을 보자 서운한 감정이 들지 않는 것도 아니였으나 그런 생각을 할 겨를도 없이 더 큰 문제에 봉착하게 된 만기…

    (아~~~ 내가 타고 온 버스가 어떤거였더라?)

    그렇다. 아무 생각없이 다른 사람들을 따라 내렸던 버스… 정말 기억이 나지 않았다.
    빨리 탑승을 하라는 것인지 안내방송은 계속 나오고, 수많은 버스중 내가 타고 왔던 버스가 어떤 것인지 알 길은 없고…
    처음에는 설마 하는 마음으로 이 버스 저 버스를 오가며 혹시 내가 탔던 버스가 기억나려나 다니던 만기…
    어느덧 사람들은 거의 탑승을 완료했고 이제 이리저리 우왕좌왕 돌아다니고 있는 것은 만기뿐…
    정말 눈물이 날 것만 같았다.
    버스안에서 사람들이 다 나만 쳐다보고 있는것 같았다.
    왠만한 일에는 눈도 꿈쩍안하는 만기… 이때는 정말 너무도 당황스러워 발만 동동 구르고 있었는데…
    .
    .
    .

    ‘뭐 잃어버렸어요?’

    내 뒤에서 아까 그 형의 목소리가 들렸다.
    뒤를 돌아보니 형과 작은스님이 걱정스러운 눈빛을 보내며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네… 저… 제가 타고온 버스가 어떤건지…크~히~잉(진짜로 안 울었다… 그냥… 뭐… 의성어다…)’
    ‘아까 내리면서 보니까 우리차 세번째 버스 어디쯤에서 내리는 거 같던데…’
    ‘아~~~ 그럼 내릴때부터 보셨어요?’
    ‘그냥… 뭐… 동양인처럼 생긴 사람이 이 시간에 파리쪽으로 도버를 건너는게 신기해서…’
    ‘그럼 형 차는 어디있는데요…’
    ‘저기… 일단 그 쪽으로 가보죠…’

    성큼성큼 앞장 서 걷는 그 형을 따라 형이 예상하던 버스에 도착해 밖에서보니 맨 뒷좌석 바로 앞칸… 내가 타고 왔던 그 자리가 비어있었다.
    그렇다… 이렇게 난 또 여행의 한고비를 넘기며 런던에서부터 타고 왔던 버스를 찾은 것이다.
    또… 눈물이 날 뻔(?) 했다…

    ‘정말 고맙습니다… 배낭이랑 다 이 버스에 있는데 못 찾았으면 큰일날 뻔 했어요… 고맙습니다…’
    ‘이제 됐죠… 여행 잘하세요… 그만 가시죠 스님…’

    연신 고개를 숙이며 고맙다고 하는 나를 걱정스런 눈으로 바라보던 작은 스님…
    그 형과 돌아서서 몇발자국 걷다가 다시 내게 돌아서 오신다.

    ‘저… 보살님…’
    ‘네…’
    ‘저기요… 파리에 거의 저희랑 거의 같은 시간에 도착하시는 것 같던데… 먼저 도착하시면 어디 가지 마시고 저희 기다리세요…’
    ‘네?’
    ‘저희가 먼저 도착해도 제가 큰스님께 말씀드려서 기다려 드릴테니까… 꼭 기다리세요… 알았죠?’
    ‘왜~~~?’
    ‘그냥… 기다리세요… 꼭… 알았죠?’
    ‘네… 그렇게 하겠습니다.’

    말씀을 마치고 총총걸음으로 돌아가시던 작은 스님의 입에 걸린 인자하신 작은 미소…
    난 아직도 그 미소를 잊을 수 없다… 아니 아마도 평생 잊지 못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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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윽고 버스는 도로를 질주하였고, 기억으로는 파리에 도착하기 전까지 편도 일차선 시골길을 한참이나 달렸던 것 같다.
    다른 사람들은 버스가 출발하자마자 다시 잠이 들었지만 만기는 파리에 도착하기까지 단 한숨도 잠을 잘 수 없었다.

    잠을 잘 수 없었던 이유는…

    황당한 사건을 겪고난 후의 후유증…
    앞으로의 여행에 대한 불안…
    또는 작은 스님의 마지막 말씀을 통해 무언가를 기다릴 수 있다는 기대감…

    등등이라고 생각하시는 독자들은 아직 만기를 제대로 파악하시지 못하신 것이리라.

    위에 나열한 사항들은 버스에 오르자마자 채 5분도 지나지 않아 모두 만기의 머릿속을 빠져나간 사항이다.
    그럼 왜 만기는 한숨도 못 잤을까?

    눈치 빠른 분들은 이미 감 잡으셨으리라…
    그렇다. 원인은 단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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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마려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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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까 미리 언급하지 않았던가… 만기… 우유 못 마신다고… 못 마시는 이유까지 말씀드린 바 있다.
    그렇다. 만기는 밀려오는 요의에 거의 죽을뻔 했다.
    아~~~ 그 말 못할 고통이여~~~
    당해보지 않은 사람을 결코 알 수 없는 죽음의 고통…
    조금이라도 버스가 덜컹거릴때마다 어금니를 깨물며 절로 신음을 흘리게 만든다는 그 무시무시한… 크~으~으~음~~~

    그렇게 인고의 몇시간을 보낸 만기는 버스에 내려 짐을 찾자마자 작은스님과의 약속도 잊은채 급한 용무를 처리하기 위해 냅다 달리는데…


    일단 여기까지 올려드리고 생각보다 길어질 것 같아서 글을 끊어가야 할 것 같네요…
    49박 50일 좌충우돌 유럽 생환기9 – 파리의 여인들… 길상사2 로 이어가겠습니다.
    저번 글에서 말씀드린 바와 같이 요즘은 좀 바빠서 다음글 연재가 좀 늦어질 것 같다는 양해의 말씀 미리 드립니다.
    커플스 식구 여러분… 좋은 하루 되세요…
    참!!! 대한민국 화이팅입니다…. 올림픽!!!


    • 기다림 12.***.58.231

      퇴근하려고 하는데 글이 올라와서 반갑게 읽었습니다. 참 만기님 글은 전혀 예측 불허군요. 파리로 가는 배에서의 두명의 스님과 만남… 재미있네요… 다음글 기다릴께요.

    • 미시가미 76.***.186.249

      저도 혼자 여행하는 편인데 이렇게 잼난 일을 못 겪어봤답니다. 여행이 넘 스리이이이일 있으세요. 담편 기달릴께요.

    • 만기팬 204.***.196.151

      넘 재미는 글 감사합니다. 바쁘실텐데.. ^^ 다음 글도 빨리 올려주세요.

    • eb3 nsc 76.***.232.250

      변호사 땜에 우울했던 일들이 만기님 글을 일고 잠시나마… 웃어봅니다..
      감사 합니다…복 받으실거예요…

    • 뉴욕하늘 96.***.39.186

      만기님의 글을 항상 눈팅만하다가 다음편을 기다리지 못하고 흔적남깁니다.
      그거 아시죠… 만기님 모르시는사이에 팬이 늘어나고 있다는 사실을…
      다음편 빨리 올려주세요.

    • 생환기팬 66.***.206.162

      버스안에서의 고통이 얼마나 엄청난 고통이었을지 저도 동감합니다. ^^
      다음편도 기대하겠습니다.

    • 뜨로이 209.***.224.254

      오늘 만기님글을 다 읽었습니다. 시간가는줄도 몰랐네요. 너무 특이한 여행기라 뻥?이 좀 섞이지 않았을까 의심도 될 만큼 재미있는 글입니다. 겪으신 일 뿐만아니라 글을 쓰는 솜씨까 더 일품인것 같네요. 아직 여행일정의 반에 반에 반도 안 온것 같은데, 끝까지 다 쓰시고 잘 정리해서 책으로도 내 보세요. 분명 인기가 있을 겁니다. 이런 여행을 젊었을때 (싱글일때) 떠나보지 못한것이 아쉽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