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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오는 내내 비행기에서 잠만 잔 만기…
내리기 전 세수를 마치고 뽀샤시 (또는 부시시) 한 모습으로 귀국장에 등장…
당당히 세관을 통과(?)하지 못하고 세관원분께 덜컥 붙잡혀 사정 설명을 하고 있는 만기…‘학생… 조폭이야? 왜 이렇게 칼이 많아…?’
‘그게… 제가 여행경비를 많이 아껴서요… 친구들 주려고 산 거라니까요…’
‘글쎄… 왜 이렇게 많냐고?’
‘진짜 친한 친구들이 딱 14명이라서요…’한참을 다른 짐까지 훑어보던 아저씨…
‘진짜 딱 사람 숫자 맞춰서 사온거야?’
‘저 다른거 아무것도 못사고 그것만 사 가지고 왔어요…’
‘에이… 가져가…’다행이 무사히 세관을 빠져나와 입국을 기다리던 친구들 품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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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지하철 2호선이 내 배낭과 함께 50일의 추억을 삼켜버린지 약 2개월 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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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들과 모여살고 있는 전세아파트…
‘만기야… 전화받아라…’
‘누군데?’
‘아가씬데… 사투리 쓴다…’
‘누구지? 여보세요?’
‘아저씨… 오랜만이야…’
‘어~~~ 너~~~ 현주구나…’
‘응… 나… 여기 서울이야…’
‘그래? 지금 어딘데?’
‘여기 서울역… 아영이랑 같이 왔어… 시간 괜찮아?’
‘물론이지… 기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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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의 속도로 옷을 갈아입고 달려나간 서울역…
반가운 얼굴들이 거기에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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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저씨… 왜 연락 한번도 안했어?’
‘어… 실은… 여차저차해서… 이러쿵저러쿵…’
‘에이 바보… 그럼 여행때 만난 사람들 연락처 하나도 없겠네?’
‘그래… 니들처럼 이렇게 먼저 연락 안해주면 하나도 연락못하는거지 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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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때와는 또다른 느낌으로 나타나 잠깐동안 아주 잠깐동안 만기의 마음을 설레게했던 현주는 이제 곧 시집이라는 것을 간다는 말로 만기에게 충격을 안겨 주었으니…양가 모두 교육자 집안으로 현주가 어렸을때부터 가족끼리도 잘 알고 지내온 사이라는 설명과 함께 얼마전 약혼까지 했다고 한다.
졸업과 동시에 결혼날짜를 잡아 놓았다는 말을 들으니 새삼 놓친 고기가 더 커 보인다는 말처럼 현주가 더 예뻐보인것은 그 날 현주의 뒤에서 빛나던 샹들리에때문만은 아니었으리라…부산에 내려오면 꼭 한번 연락하라며 남겨준 현주와 아영의 전화번호는 그 후 언젠가 이제 현주가 시집가서 전화번호가 바뀌었다던 어머님의 목소리만 듣게 해준 역할밖에는 더이상 다른 용도로 쓰여지질 않았다. 맹세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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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유행가 가사처럼 흰눈이 내리고 바람이 몹시 차갑던 어느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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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기야… 전화받아라…’
‘누군데?’
‘아가씬데… 사투리 쓴다…’
‘누구지? 여보세요?’
‘오빠… 오랜만이네요…’
‘누구?’
‘아… 섭섭하네… 저 00인데요…’
‘그게? 죄송한데… 제가 기억이 잘…’
‘기억 안나세요… 융프라우에서 끝까지 같이 맥주 마신…’
‘아~~~아~~~ 기억나지… 와… 오랜만이네… 졸업은 했구? 지금 한국?’
‘네… 오빠 어떻게 지내세요?’
‘나야… 뭐… 잘 지내지…’
‘현주는?’
‘어~ 그 녀석 좀 있으면 시집간다더라…’
‘네? 그럼… 오빠랑은?’
‘뭔 소리야… 나랑 그런 관계 아니였다니까…’
‘그럼… 잘 됐네… 여자친구는 아직 없죠?’
‘뭐가 잘돼… 여자친구 아직 없다…’
‘내가 그 때 융프라우에서 얘기했잖아요!!!’
‘크크크… 그때 그 농담…’
‘농담아니라니까… 휴… 하긴 오빠가 5센티만 더 컷어도 내가 어떻게 해 보는건데…’
‘야… 오랜만에 전화해서 쓸데없는 소리말고… 어디니? 서울이면 내가 밥한번 살께…’
‘그게아니라… 그럼 나한테 밥사지말고 내 친구한테 한번 사요…’
‘???’
‘내가 오빠 소개팅 시켜주려는 거니까…’
‘웬 소개팅?’
‘오빠 남주기 아까워서 내 친구한테 오빠 자랑 많이 해 놨으니까… 그냥 만나봐요…’
‘진짜?’
‘그럼… 내 친구 너무 예쁘고 착해요… 일단 만나보고 맘에 들면… 나한테 오빠친구들 소개시켜주기…’
‘그래… 그럼 뭐… 일단 만나나 볼까?’
‘어허… 튕길일이 아니라니까 그러시네… 약속 잡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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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없어졌을지도 모르겠다. 신촌 쟈무쉬…
1995년 1월 14일 오후 2시 15분…
약속시간보다 15분가량 늦게 나타난 만기를 향해 일어서던 두명의 낯선 여인들…
정작 융프라우 그녀는 바쁜일이 있다며 못 나오고는 친구를 두명씩이나 보내다니…그렇게 만났다.
그 두 여인중 한명이 현재 나와 함께 같은 곳을 바라보며 살아가고 있는 내 사랑하는 아내이다.‘옷깃을 스치는 것도 인연’이라는 불가의 말이 있다.
자의에 의해서든 타의에 의해서든 살면서 누군가를 만나게 되기도 또 헤어지게 되기도 한다.
때로는 긴… 또 때로는 짧은 누군가와의 만남…
그런 만남들 하나하나를 소중하게 생각하고 또 그것들이 내 생을 엮어가는 실타래임을 잊지 않는다면 일상에서 마주치는 모든 이들과의 단적인 만남들 조차도 분명 가볍게 여길 수 없으리라 생각한다.그래서 만기는 이렇게 생각한다.
내가 살면서 누군가를 만나게 되는 것은 인연이 아니라 기적이라고…
오늘도 여러분 옆을 수시로 스쳐지나는 기적들이 늘 행복한 기적이길 빌며…
드디어…
길고 긴 생환기의 막을 내립니다.
글을 쓴다는것…
결코 가볍지 않게 시작했는데, 생각보다 그 무게가 훨씬 무겁네요…
인내심을 가지고 끝까지 읽어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 말씀드립니다.
늘 행복한 기적이 이루어지는 커플스가 되었으면 하는 바램을 가져보며…
이상 만기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