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객실을 빠져나와 객차사이를 잇는 공간에서 담배를 꺼내 문 만기…
생각할수록 방금전 엉겹결에 속내를 내비친 사실이 더욱 창피해져서 애꿋은 담배만 연신 빨아대는데…‘오빠… 나랑 얘기 좀 하자…’
‘어? 그래…’담배를 열차밖으로 튕겨버리며 아영이를 따라 빈 객실로 들어서서는 쑥스러운 마음을 감추기 위해 털썩 맞은편 자리에 걸터 앉는다.
‘푸하하하… 오빠… 오빠답지않게 뭘 그렇게 쑥스러워하고 그러시나…’
‘뭐가…? 누가 쑥스러워한다고…’
‘아이고… 알았으니까 그건 됐고… 오빠 현주 얘기 어디까지 알아들었는데?’
‘아까 다 얘기했잖아…’
‘그거말고… 그러니까 오늘 한 얘기말고 이제까지 현주랑 나랑 얘기할때 들었던거…’
‘뭐… 대충 다…’
‘그럼… 현주 남자친구 얘기도?’
‘뭐? 아니… 현주 남자 친구 있냐? 그건 몰랐지!!! 알았으면…’
‘우리 하는 얘기 다 들었다며?’
‘내가 보이는데서 수화할때만 봤지… 근데… 현주 남자친구얘기는 한번도 못봤었는데…’
‘진짜?’
‘당연하지… 내가 들었으면 들었다고 하지…’
‘에이… 그럼 현주는 괜히…’
‘왜? 현주 남자친구 있는거 내가 알면 안되는거였냐?’
‘그게아니고… 아까 현주가 막 화낸거… 사실은 오빠가 이제까지 우리얘기 다 들었다고 하니까… 지 남자친구 얘기하는것도 다 들은줄 알고…’
‘글쎄… 남자친구 있으면 뭐 어쩌라구… 그게 내가 들으면 뭐 안될 얘기냐구…?’
‘그게아니라… 에이… 오빠가 못들었으면 됐네… 괜히 걱정했구만…’
‘뭔 소리야? 답답하게 하지말고… 제대로 좀 얘기해봐…’
‘그게… 음… 아니다… 내가 할 얘기가 아닌것 같다…’
‘야!!! 말을해 말을…!!!’갑자기 객실문이 열리며 현주가 객실안으로 쑥 들어서며 나와 아영이를 번갈아보더니 아영이 옆으로 앉으며…
‘아저씨… 어디까지 알아?’
‘현주야… 오빠 하나도 모른데…’
‘아까는 다 알아들었다며… 솔직히 말해!!! 어디까지 아는데…’
‘햐~아~ 이제 아주… 그래… 다 들었다… 어쩔래? 너 남자친구있다며… 안그래도 너 남자친구있으니까 괜히 딴 마음 품지말라고 아영이한테 혼나고 있는 중이다… 됐냐?’
‘오빠… 내가 언제…?’
‘니가… 니들끼리 제 남자친구얘기하는 것도 들었냐고 물어봤잖아… 그게 그말이잖아…!!!’
‘아저씨… 진짜 아무것도 몰라?’
‘너 남자친구 있는거 알았으면 됐지… 내가 뭘 더 알아야 되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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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 아영을 번갈아 바라보던 현주가 벌떡 일어나 객실밖으로 나가고…
현주를 따라 일어섰던 아영이가 무슨 생각에서였는지 다시 자리에 앉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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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빠~ㅅ!!!’
‘왜~에~ㅅ?’
‘오빠는 왜 자꾸 남자친구 얘기는 해가지구…’갑자기 언성을 높이는 아영이때문에 놀라 멀뚱멀뚱 쳐다만보는 만기…
‘휴~우~ 괜히 얘기꺼낸 내가 잘못이지… 오빠… 혹시라도 이제부터 현주앞에서 남자친구얘긴 꺼내지도 마… 알았지!!!’
‘왜?’
‘그게… 내가 말해도 되는지 모르겠다… 에~휴~ 그게 왜냐하면…’그렇게 시작한 아영의 이야기는 어느 현실성없는 드라마에서나 볼 수 있음직한
이야기였는데… 간추려보자면…++++++++++++++++++++++++++++++++++++++++++++++++++++++++++++++++++++++
1년연하의 남자친구와 3년 사귀였고 늦게 군대에 간 남자친구를 놀래켜주기위해 아영과 함께 깜짝 면회를 갔다가 다른 여자와 눈쌀찌푸리게 만드는 애정씬을 연출하고 있던 남자친구를 발견하고는 그 여자와 대면끝에 무려 2년여를 양다리 걸치기해온 사실을 알아내고는 충격을 받아 결별을 선언한것이 불과 한달전…
아영의 말을 빌자면 이 유럽여행은 현주가 전 남자친구에 대한 기억들을 떨쳐버리기 위해 떠나온 현주의 이별여행(우캬캬… 여러분 드디어 나왔습니다… 제목…)인 셈이였다.(키~햐~ 이 깔끔한 정리… 상황이 한눈에 들어오셨으리라 믿습니다…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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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영이 말을 마치기 기다렸다는 듯 숨을 고르기가 무섭게 질문을 던지는 만기…
‘오케이… 아~라~쓰~ 근데… 그게 무슨 엄청난 일이라고 내가 좀 알아 들으면 어떻다고…?’
‘어이구… 그 나쁜넘 이야기는 이제 정리됐는데… 문제는…’
‘문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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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얼굴을 뚫어져라 쳐다보며 뜸을 들이던 아영이 갑자기 정색을 하며…‘오빠… 현주 어떻게 생각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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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에 요지를 몰라 선뜻 대답을 못하고 계속 질문을 되새김질하는 만기가 답답했는지 아영이 다시 덧붙인다.‘오빠… 아까 현주 좋아한다며…’
‘내가 언제? 그냥… 뭐… 현주가 나를 좋아한다고 하니까… 뭐…’
‘왜 이렇게 펄쩍 뛰고 그러셔? 그래서… 좋다고~오 아님 싫다고~오?’
‘아니… 그게… 아까도 말했다시피… 싫은건 아닌데…’
‘실은… 우리가 수화로 말하면서 오빠 얘기도 꽤 많이 했는데… 내 생각에는 현주가 오빠 마음에 들어하는거 같거든… 그래서 일정도 바꿔서 오빠따라 이 기차도 탔고…’(음하하하하!!! 그렇지!!! 이런식으로 대화가 흘러가야지…)
‘그~으~래?’
‘내 생각엔 그래서 오빠가 그 나쁜넘 얘기… 자기가 말도하기전에 알았을까봐 화가 난거 같기도하고…’
‘그렇다는 말이지…?’ (우캬캬캬… 말되네…)
‘뭐… 내 생각이 그렇다는거지… 어때? 내가 현주랑 연결시켜 줘? 현주 정말 좋은 애거든…’
‘야!야!야! 연결은 무슨… 자연스럽게 서로 알아가다보면 뭐… 좋아질수도 있고 그런거지…’
‘그래도…’
‘여기까~아~지… 오늘은 여기까지만… 나도 내가 어떤 마음인지 모르고… 또 현주 마음도 본인만 아는거니까… 그리고 내가 정말 현주를 [여자]로 좋아한다고 판단되면 내 입으로 말하는게 좋지 않겠냐…’
‘뭐… 오빠 생각이 그렇다면… 혹시라도 생각바뀌면 말해… 내가 팍팍 밀어줄테니…’
‘알았다… 그나저나 이제 우리 객실로 돌아가자… 애들 많이 기다리겠다.’그렇게 다시 객실로 돌아온 우리에게 무슨 얘기가 그렇게 길었냐며 타박하는 철승과 현주의 잔소리가 이어지고…
그런 현주를 보다가는 감출수 없는 어색함에 어찌할 바를 몰라 눈을 감아버리는 만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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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eneva… Genev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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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결에 아련히 들려오는 안내방송에 화들짝 눈을 뜬 만기…
객차밖으로 플랫폼이 눈에들어오고 기차가 서서히 속도를 줄인다고 느낀 순간 부리나케 자고있는 현주, 아영, 철승이를 깨우며…‘야!!! 빨리 일어나… 빨리 일어나서 짐 챙겨… 빨리…’
모두들 화들짝 놀라 잠에서 깨어나며 부산스럽게 배낭을 챙기는 만기를 멍하게 바라만 본다.
‘야… 도착했어… 빨리 짐 챙겨…’
그제서야 사태를 파악하고 후다다닥 배낭을 챙기고는 잠이 들깬 눈으로 이미 객실밖으로 나서는 만기를 따라 나서는데…
만기가 먼저 기차에서 내려서고 뒤따라 내리는 현주를 도와준다.
이윽고 철승도 따라내리는데 아영이 보이질 않는다.‘야… 아영이는?’
‘어? 따라오고 있었는데…’
‘얘는 왜 안내려… 기차 출발할 모양인데…’보이지않는 아영…
뜻모를 안내방송과 함께 치~익~ 치~익~ 소리를 내며 다시 출발준비를 하는 기차…
도저히 안될것 같아 다시 기차에 오르려는 만기…‘형!!! 배낭을 주고…’
‘그래…’얼른 배낭을 벗어주며 기차에 오르려는데 벌써 기차는 서서히 움직이기 시작하고…
이때 배낭을 힘겹게 등에 메고는 모습을 드러내는 아영…‘야~ 뭐해? 빨리 내려…’
‘오빠… 기차가 출발하는데…’
‘야 내가 잡아줄테니까 뛰어…’아영이 잠깐 망설이는 사이 약간 속도를 높이는 시작하는 기차…
아영에게 빨리 내리라고 소리치며 그런 기차를 빠른 걸음으로 따라가는 만기…
만기가 기차를 따라가는것이 ‘빠른걸음’에서 ‘뛰기 일보 직전’까지 기차의 속도가 높아지고…
이내 결심을 했는지 아영이 난간에 서고…
드디어 뛰어내리는 아영…
그런 아영을 받아 안는 만기…
무사히 기차에서 내려서 착지하는듯한 순간…
그러나 관성의 법칙을 이겨내지 못하고 그대로 시멘트바닥에 나동그라지는 만기와 아영…
어느새 철승이 달려오며…‘누나!!! 형!!! 괜찮아?’
‘어… 괜찮아… 오빠는?’
‘나도 괜찮다…’먼저 일어서서 아영의 손을 잡아 일으키는 철승이를 도와 아영을 일으키는 만기…
너무 놀랐던 나머지 할말을 잃은체 서로 멍하니 쳐다만보고 있는데…‘아영이 괜찮아? 아저씨는?’
가뜩이나 커다란 눈이 더욱 커져버린 현주가 뛰어오며 묻는다.
‘응… 괜찮아…’
‘나도… 그나저나 아영이 너는 왜 늦게 나온거야?’그제서야 생각이 났는지 아영에게 따지듯 묻고…
‘오빠… 여기 제네바역 아니래… 그래서 다시 타라고 말하려는데 기차가 출발할것 같아서 다시 배낭가지러 갔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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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철승
‘?’ -> 만기
‘?!!!’ -> 현주‘여기 제네바역 아니라구? 아저씨 어떻게 된거야?!!!’
‘뭔소리야… 아까 안내방송에서 제네바 어쩌구저쩌구 하더만…’
‘오빠가 잘못들었겠지…어쨌든, 제네바역은 아닌게 확실해’
‘누나… 확실해요?’
‘확실해!!! 아까 그 기차… 제네바가 종착역이라서 그렇게 금방 다시 출발 안한다구…’그때서야 머리를 띠~잉~ 울리며 그렇겠다는 생각이 드는 만기…
모두들 살기띤 원망의 눈초리를 날리는 통에 위기감을 느끼며 어쩔줄 몰라하는 만기…
폭발직전의 현주가 드디어 제대로 폭발하려는지 입을 열려는 찰나…‘저… 한국분들이신거 같은데… 괜찮아요?’
현주의 등뒤로 웬 묘령의 아가씨가 나타나며 옥음을 날려 위기에 처한 만기를 구해내고…
뒤이어 굵직한 목소리의 남자분 다가서며…‘둘다 피나는데 응급약 없어요?’
그분이 가리키는 손을 따라 시선을 옮겨보니 아영을 안고 무의식적으로 굴렀던 기차선로 반대방향쪽… 즉 만기의 왼쪽, 아영이는 오른쪽 팔꿈치에서 각각 피가 흐르고 있었던 것이다.
‘일단 피부터 닦아내게… 저기 벤치로 좀 갈래요? 자기야… 자기가 배낭좀 들고와…’
온화한 말투로 우리를 벤치로 이끌며 뒤에 남자분이 들고온 우리 배낭을 가리키며 계속 말을 잇는 그 분…
‘혹시 배낭에 소독약이나 응급처치할만한거 있어요?’
‘제 배낭에…’배낭에서 수정이가 주고간 비상약통을 꺼내 건네주자 곧바로 아영이의 팔꿈치에 피를 닦아내고는 응급처치를 끝내고 만기까지 돌봐주신 후…
‘그런데 어쩌다가 달리는 기차에서 뛰어내리게 됐어요?’
그 한마디에 갑자기 현주의 눈에서 다시 살기가 되살아나며 나를 쏘아보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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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오늘도 어김없이 한껀(?) 올린 만기…
나중에 알고봤더니… 그… 나쁜(?) 안내방송… 크~으~ 다음 정차역 얘기였다는…
그렇게하여 또다시 여느 배낭족들과는 다른 행보를 걷게 되는 만기 일행…
스위스에서는 또 어떤 일들이 벌어질 것인지…
다음 이야기는 49박 50일 좌충우돌 유럽 생환기21 – 스위스의 닭살커플로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