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9박 50일 좌충우돌 유럽 생환기1 – 여는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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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년만기 24.***.74.254 5334

    1994년 9월… 지하철 2호선은 내 인생의 50일을 삼켜버렸다.

    인간은 망각의 동물… 그래서 너무나도 소중한 내 청춘의 단편들을 하루하루 다이어리에 소중히 간직했건만…
    유럽 여행을 하며 매일 썼던 다이어리 속 일기 그리고 고마운 사람들의 연락처, 유럽 각지를 돌며 남겼던 필림과 사진들…
    그 모든것들이 들어있던 사라진 나의 Backpack…

    보름이 넘게 백방으로 수소문을 해 봤지만, 그 날 이후 나의 Backpack은 내 소중한 기억들과 함께 그렇게 영영 내 곁으로 다시 돌아오지 않았다.

    그리고 14년이 지난 지금…
    이미 아득히 멀어져버린 기억을 조금씩 더듬어 끼워 맞추어 나가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새삼 느끼면서 이제 잊고있던 내 인생의 50일을 추억이란 이름으로 조심스럽게 끄집어 내어보려한다.


    이 글의 제목이 ‘여행기’가 ‘생환기’가 된 이유는 유럽여행을 작심한 그 시점부터 나의 철저한 무계획과 무대뽀(포?) 정신에서 말미암은 것이다.

    대학 동기 5명과 함께 봉천동 어느 허름한 아파트를 전세내어 무언가 뜻을 이루어보겠다며 숙식을 같이 한 지 1년여가 지난 1994년 여름…
    단기사병(일명 방위라고들 했죠… 요즘도 방위라고 하는지는 모르겠지만…)으로 국방의 의무를 마친 나는 현역으로 제대한 다른 동기 녀석들과는 달리 벌써 4학년 여름방학을 맞이하고 있었다. 다행히 방학직전 국내 모 그룹에 인턴사원으로 입사가 확정되었고 마지막 학기중 교육을 받고나면 졸업전후쯤 정식채용이 이루어질 것이라고 내정된 상태라 취업준비에 열을 올리고 있던 다른 4학년들보다는 한결 여유롭게 방隙?시작할 수 있었다.

    여름방학이 시작되고 한 2주정도가 흘렀던 것 같다. (정말 어떻게 이렇게 날짜 또한 까마득히 잊었는지…)
    대구에 계신 부모님께 하나밖에 없는 아들 얼굴이라도 보여드려야 겠다는 생각에 주섬주섬 짐을 꾸리던 나를 보며 친구가 물었다.

    ‘어디 가냐?’
    ‘응… 유럽…’ (웬 유럽?… 말한 나도 깜짝 놀랐다… 정말 내가 왜 그 때 그런 말을 하게되었는지 아직도 알 수 없지만 또렷이 기억나는 건 난 분명 그렇게 대답했다는 것이다.)

    놀란 눈으로 나를 쳐다보던 친구가 다른 방에 있던 친구들을 불러 모았다…

    ‘얘들아… 야…. 만기 유럽 간댄다…’
    ‘뭐…’
    ‘언제…?’

    모두들 황당한 표정으로 하나 둘씩 큰 방으로 모여 들었다.

    ‘진짜 가려구…?’
    ‘어… 한번 가 보려구…’
    ‘여권은…?’
    ‘나 그런거 없는데…’
    ‘여권도 없이 무슨 유럽은… 정신 차려라 만기야…’
    ‘유럽은 여권없어도 갈 수 있는 거 아니냐?’
    ‘이런… 무식한 넘… 그건 비자지… 비자는 없어도 되는데 여권은 있어야지…’
    ‘여권이랑 비자랑 똑같은 거 아니야?’
    ‘헉… 이런 진짜 무식한 넘…’
    ‘야! 야… 여권이랑 비자가 뭔지도 모르는 넘이 무슨 유럽 여행이냐… 그냥 조용히 집에서 쉬어라…’
    ‘시~러~ 나 그래도 갈꼬야~~~’
    ‘임마… 넌 안돼~~~ 아무 준비도 없이 무슨 유럽이냐 유럽이~~~’
    ‘나 진짜 갈거라니까~~~’
    ‘마~~~ 어디 여행갈거면 너 좋아하는 설악산이나 갔다와라 헛소리 하지 말구…’
    ‘이~~~씨! 나 진짜 간다니까…’
    ‘만기야~~~ 여권이 없으면 못 간다니까~~~’
    ‘진짜? 그럼 여권은 어디서 파는데?’
    ‘허걱~~~’
    ‘갈켜줘… 얼른 가서 하나 사 오지 뭐~~~’
    ‘얘들아… 만기 이넘 안돼겠다… 좀 재워라…’


    그 날 난 결국 유럽은 커녕 대구에도 내려가지 못했다. 다시 생각해봐도 여권이랑 비자도 구분못하던 내가 왜 그 때 갑자기 유럽을 가겠다고 했는 지 도저히 알 수 없는 일이지만, 분명한 것은 ‘세계는, 내가 경험하는 그 만큼의 크기… 더 넓은 세상을 향해 배낭여행을 떠나자’라는 2001년 대한항공의 배낭여행 광고 카피와 같은 원대한 꿈은 절대 없었다라는 것이다.

    어쨌든, 그 날부터 정확히 6일후 난 런던의 밤하늘 아래 있었다.
    .
    .
    .
    한국을 출발해 런던에 도착하기까지는 ’49박 50일 좌충우돌 유럽 생환기2 – 독일의 날개 루프트한자(Lufthansa) 1’ 에서 이어집니다.

    • done that 66.***.161.110

      좋은 글 기대하겠읍니다.
      요번에 이주동안의 기억이 들은 메모리카드를 잃고난 터라, 가방을 잃어버리셨다는 데–
      그때가 시즌이어서 이주후에 다시 갔어도 똑같은 사진을 찍을 수가 없어서 섭섭했었읍니다.

    • 건들면 도망간다 71.***.199.38

      역시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 만기님.
      무궁한 소재가 언제 또 등장 할까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목이 더 쭉 늘어나기전에 올려 주세요.

    • eb3 nsc 76.***.232.250

      만기님의 글..벌써 기대가 됩니다..
      여권과 비자…첨에 정말 구분을 할수가 없었죠..
      여권이 뭔지..비자가 뭔지…그러던 내가…이제 영주권 준비 6년차로 가다보니…
      반 변호사가 다 되서…한국에서 온사람들 카운셀링(?)까지 할 정도니……
      기대할께요…

    • J 71.***.72.187

      만기님 글은 읽기도 전에 먼저 웃음이 나옵니다. 아마도 전작의 힘이 아닐지..
      기대가 큽니다. 얼렁 올려주세요

    • 6년만기 24.***.74.254

      기대하고 계신 분들이 계시다니 부담이 되네요… 그냥 읽으시면서 잠깐은 웃고 또 잠깐은 각자의 옛 추억들을 떠 올리실 수 있는 시간이 되셨으면 합니다. 그런 마음으로 생환기2 올려드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