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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살 연하의 20세 미국 여성과 재혼하여 미국에서 배다른 아이를 키우고 있는 전 남편에게 유전자 결실 질환을 앓고 있는 초등학생 아이를 보내라고 명령하는 대한민국의 법을 따라야 하는 것인가요.
너무 억울하고 무섭고 불안해서 오랜 고민 끝에 제 이야기를 씁니다.
저는 초등학교 2학년인 8살 아이의 엄마이고, 제 아들은 유전자 결실로 인한 희귀 난치성질환을 앓고 있습니다. 그런데 한국 법원의 판결로 인해 제가 낳고 제가 혼신을 다해 키워온 아픈 아이가 법적으로는 저와 당장 분리가 되어, 전 남편이 있는 미국으로 보내져야 하는 상황에 처해 있습니다. 그리고 최근 대한민국은 제도까지 바꿔가면서 초등학교 2학년이자 본인의 의사를 명확히 표현할 수 있는 아이를 마치 물건 빼앗듯 강제로 데려가도록 만들어 놓았습니다.
저는 저의 선택과 결정을 단 한 번도 의심한 적이 없고, 아이를 온전히 지켜내고 올바르게 성장시켜 내겠다는 마음도 앞으로 변함이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 대한민국은 저에게 잘못을 하고 있다고 하고, 저의 절규와 외침은 귀담아 듣지 않고 아이를 전 남편이 있는 미국으로 돌려보내라고만 명령하고 있습니다. 이런 생각을 갖고 있는 제가 잘못된 것인지, 여러분들이 저와 같은 입장이라면 어떤 선택과 결정을 하실 것인지 꼭 읽어 봐주시고 의견을 주시길 부탁드립니다.
저는 서른 살이 되던 2010년 1월에 전 남편과 결혼하였습니다. 결혼 기간 약 10년 중 전 남편과 같이 산 것은 3년 정도 인데, 전 남편은 결혼 직후 제 친정 부모님으로부터 유학자금 미화 330,000 달러(현재의 환율로 환산하면 454,905,000원입니다)를 빌려 혼자 미국 유학을 떠났고, 저는 한국에 혼자 남아 일을 하며 전 남편에게 유학비를 보내주다가 한국 병원에서 시험관 시술로 아이를 가졌습니다.
전 남편은 미국으로 유학을 떠날 때에는 유학이 끝난 후 한국으로 오겠다고 약속하였지만, 그 약속을 어기고 일방적으로 미국에 정착하였고, 저는 그래도 출산의 기쁨을 아이 아빠와 함께 누리고 싶어 임신 6개월에 미국으로 갔습니다. 미국에 일가친척이 아무도 없고 영어와 운전도 못해서 미국 생활의 적응이 힘들었고, 임신 중 전 남편으로부터 수 차례 폭행을 당하기도 해 부부 사이에 갈등이 있었지만, 가족, 친지 중 이혼한 가정을 접해본 적이 없었고, 보수적인 친정 분위기상 참아야 한다고 생각하여 헤어질 생각은 하지 않았습니다.
이후 저는 2016년에 어려움 속에서 미국에서 아이를 출산하였으나, 출생 직후 발견한 아이의 선천성 심장 문제로 생후 4개월에 수술을 한 이후에야 아이와 함께 한국으로 돌아올 수 있었고, 이후 아이와 저는 한 번씩 미국에 가서 전 남편과 함께 몇 개월을 지내며 생활을 하곤 하였습니다. 미국에서 아이를 키우면서 생활하던 중, 양육에 대한 가치관의 차이, 이로 인한 가정폭력, 전 남편이 친정에서 빌린 유학자금 약 4억 원을 갚지 않는 문제 등이 발단이 되어 부부 사이의 큰 다툼이 시작되었고, 그 갈등이 개선되지 않아 서로 힘든 시기를 거친 끝에 2019년 4월 이혼이 성립되었고 동시에 아이에 대한 주양육권자는 엄마인 저로 정해졌습니다.당시 전 남편이 거주하던 주에서는 부부 중 한 쪽이 이혼을 원하면 법적 이혼이 가능하였고, 이혼이 시작되면 아이는 주(State) 밖으로의 이동이 금지되어 있어서 저는 아이와 함께 저의 원래 주거지인 한국으로 올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던 중 2019년 6월 전 남편의 동의 하에 3주 계획으로 한국에 왔다가 여권 문제로 미국에 돌아가지 못하는 일이 생겼는데, 그러자 전 남편은 다음 날 바로 미국 FBI 및 미국 경찰, 대한민국 경찰에 대해 저를 아동납치범으로 신고하였고, 약 열흘 후 미국 법원은 제가 아이를 불법적으로 억류하였다는 전 남편의 주장을 받아들여 저의 친권과 양육권을 빼앗는 결정을 하고, 한국 법원은 아이를 미국으로 돌려보내라고 판결하였습니다.
헤이그 아동반환 사건의 법원의 판결 이후 전 남편은 저에 대해 이행명령, 과태료, 감치재판을 잇달아 신청하고, 공중파 방송, 언론을 통해 일방적인 사실관계만을 주장하면서 저에 대한 비난을 멈추지 않았습니다. 그 사이 저는 2차례의 과태료 결정과 2차례 감치 결정을 받아 2차례 아이와 떨어져 구치소에서 감치 되었고, 전 남편이 의도한 대로 아이를 탈취하고도 법을 따르지 않는 나쁜 엄마라는 낙인이 찍히고 언론의 비난을 온몸으로 받아 왔습니다.
저는 법원의 명령을 따르지 않아서 받는 불이익을 온몸으로 감수해왔고, 전 남편의 언론플레이에 대해서는 철저하게 침묵으로 일관하며 온갖 비난과 낙인을 감내해왔습니다. 판결에도 불구하고 아이를 양육하고 있는 이유를 설명하기 위해서는 아이가 앓고 있는 질병과 이 사건의 배경 등 내밀한 사정을 이야기할 수 밖에 없는데, 언론을 통해 아이의 사생활이 온 국민에게 공개되고, 이혼한 부모의 이야기가 노출되는 것은 초등학생 아이의 건전한 성장에 적절하지 않다고 판단했기 때문입니다.
전 남편이 아무리 저를 괴롭혀도 아이에게는 “아빠는 너를 보고싶어하고 좋아한다. 지금은 엄마가 너에게 해 줄 수 있는 것이 더 많아서 내가 너를 키우고 있지만, 성인이 되면 언제든지 아빠를 만나서 함께 시간을 보내라. 아빠는 한국 사람이고 언제든 한국에 올 수 있지만 아마도 사정이 있어서 지금은 너를 보러 못오는거같다. 지금이라도 아빠가 너를 보러 한국에 와주면 좋겠다.” 라고 말해왔고 앞으로도 아이가 아빠에 대해 좋은 감정을 가지기를 원한 것도 제가 이렇게 제 입장을 공개적으로 말하기 꺼려왔던 큰 이유였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상황이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대한민국은 올해 4월 1일부로 헤이그 아동반환 사건에는 아동의 의사에 반하는 인도 강제집행을 하지 못하도록 하는 기존의 규정이 배제되도록 제도를 바꾸고, 마치 물건을 빼앗듯 아이에 대해 강제집행 할 수 있도록 제도를 변경해 버린 것입니다.
반복되는 소송, 형사고소, 언론 제보 등에도 저는 아이의 질병에 대해 상세히 이야기 하거나 현재 초등학교에 재학중인 아이가 건전하게 성장하는데(교우관계를 포함하여) 적절하지 않을 것이라 생각하여 아이를 보호하기 위해 침묵하였으나, 더 이상 침묵을 하면 아이를 지킬 수 없을 것 같다는 두려움이 너무 커서 아이에 대한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입니다.첫째, 아이는 희귀 난치성 질환을 앓고 있습니다.
제 아이는 선천성 심장병을 가지고 태어나서 생후 4개월에 수술을 하였는데, 그 이후에도 다른 건강한 아이들과는 분명히 다른 발달 지연을 보여왔습니다. 매 끼니를 두 세시간씩 먹여도 다른 아이 먹는 것의 1/10도 안되는 양이였고, 몸짓도 너무 작고, 감염도 잘 되고, 걷고, 말하는 시기도 늦고, 너무나도 예민해서 엄마인 저와는 잠시도 떨어지지 않았습니다.
제 아이는 출산 이후 수신증, 심장 기형 등 각종 질환들을 겪어 왔는데, 2020년 10월 유전자 검사를 통해 염색체 결손이라는 선천적 장애가 있다는 것이 진단을 받았습니다. 이 질환은 유전적 문제로 인해 전신에 걸쳐 수많은 증상이 평생 지속되고, 수많은 병원 치료와 돌보는 가족의 노력과희생이 필요한 질환이라고 합니다.
제 아이는 현재 심방 및 심실 중격결손, 세포성면역결핍, 수신증, 구개수인두부전, 섭식 장애에 따른 성장 기능 상실, 골 연령 저하, 선택적 합구증, 분리 불안, 발달 지연, 소아기의 행동장애, 발작 등의 질환과 증상을 앓고 있고, 저는 이 때문에 아이 출생 당시부터 현재까지 커리어와 개인으로서의 삶을 잠시 내려놓고 오로지 아이의 건강 회복과 온전한 성장만을 위해서만 살아왔습니다.
선천적 면역결핍으로 제 아이는 다른 아이들에 비해 자주 아프고, 한 번 아프면 심하게 앓았습니다. 40도가 넘는 고열이 지속되면 뇌 세포에도 영향을 주게 되고, 경련 등 더 심각한 증상이 생길 수 있기 때문에, 대부분 엄마들이 그렇듯 저는 아이가 아픈 내내 밤을 지세우며 한 시간 간격으로 일어나서 체온을 재고, 2~3시간 간격으로 해열제를 먹이며, 죽 위주의 음식을 계속 챙겨줄 뿐만 아니라 각종 감기약을 챙겨 먹여주고 있습니다.그리고 유전적 질환을 치료하고, 아이를 온전하게 성장시키기 위해, 저는 주 2~3회 파트타임으로 일하면서 나머지 시간에는 모두 아이와 함께, 아이를 위하여 보내고 있습니다. 얼마전까지 아이는삼킴 장애로 인해 음식 넘기기를 어려워하고 많은 양을 먹지 못해서 하루 4끼를 챙겨주었는데, 죽 처럼 넘기기 쉬운 음식에, 고기는 가장 부드러운 안심을 구워서 200번 넘게 잘라 간 고기처럼 만들고 이렇게 줘도 매 끼니 먹는 시간이 1시간 넘게 걸렸습니다.
저는 4년 이상 외래 진료, 놀이치료, 언어치료, 감각통합치료 등을 빠짐없이 다니고 있고, 매일 정해진 시간마다 약물을 복용하고 성장호르몬 주사를 맞히며, 일상생활 속에서도 발음 연습, 척추 교정 등 상시적인 재활 훈련을 시키고 있습니다. 오로지 아이를 몸과 마음이 건강한 성인으로 키우겠다는 책임감으로 저와 친정 식구들은 혼신의 힘을 다하고 있습니다.
아이를 미국으로 보내라는 헤이그 아동사건 판결 이후 전 남편이 제기한 또 이행명령 소송에서 법원의 한 판사님은 전남편에게 “미국에서의 예상 치료 내역과 예상 치료비 이를 부담할 경제적 능력이 있는지, 아이의 의료보험은 구비되었는지, 아이가 미국으로 갈 경우 누가 돌볼 예정인지, 어떠한 보육원 등 기관에 보낼 것인지, 병원 치료 외 추가로 받고 있는 놀이치료, 언어치료, 감각통합치료 등은 미국에서 어떻게 계속 할 것인지 등에 관하여 구체적으로 소명하도록 요구하였으나, 전 남편은 여기에 대하여는 어떠한 소명도 하지 않았고, 그 소송을 취하하기도 하였습니다.
단적으로 아이는 성장호르몬 치료를 4년째 받고있고 앞으로 성장이 끝나는 시점까지 치료를 지속해야 하는데, 미국에서는 값비싼 의료비로 인해 성장 호르몬 약값만 월 천 만원 가까이 나올 것인데, 미국에서 이혼 과정에서 아이의 옷 살 돈 조차 없다며 신발조차 신기지 않아서 저에게 보내던 사람이 아이에게 필요한 모든 치료를, 한국에서 제가 해주는 만큼 최고와 최선의 치료를 해 줄지 저는 도무지 확신할 수가 없습니다.
저는 절대 아픈 아이를 미국으로 보낼 수 없습니다.
둘째, 전 남편은 아이와 영상통화도 하지 않고, 면접교섭을 위해 단 한 번도 한국에 오지 않았으며, 현재는 미국에서 25세 연하의 미국 여성과 결혼하여 배다른 아들을 키우고 있습니다.
면접교섭과 관련하여서도 아이와 미국에 있는 전 남편 사이의 화상통화는 항시 허용되고 있으나, 전 남편은 2019년 10월 이후로 4년이 훨씬 지난 현재까지 아이와의 영상통화를 하지 않고 이를 거부하고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전 남편은 2023년 1월 초에 방송 촬영을 위해 3일 정도 왔다가 간 것을 제외하고는 지난 4년 넘는 기간동안 아이를 보러 한국에 오지도 않았습니다.
그리고 한국에 왔을 때에도 그 목적이 방송 촬영을 위해서라고 생각되는 것이, 미리 온다고 연락도 없었고, 언제 간다는 말도 전혀 하지 않았고, 방송국 팀과 함께 다니면서 저와 아이를 촬영하려고 하였고, 제가 촬영팀을 피해서 전 남편에게 아이와의 만남 자리를 만들어주었지만, 전 남편은 3년만에 만난 아이는 보지도 않고, 저를 동영상 촬영을 하고, 이것을 방송팀에게 보내는 것에만 신경썼습니다. 그 후에도 지속적으로 기사를 내보내고 각종 sns에 저의 이야기를 싣고 있는데만 집중하는데, 저에게 고통을 주는 데만 관심이 있는 것이라고 여겨질 뿐입니다.
전 남편은 저를 감치시켜 놓고 하루 아침에 엄마와 분리되어 불안해 하고 있는 아이에게 대리인인 변호사를 보내 아이를 미국으로 데려가기 위한 강제집행을 시도하였는데, 전 남편은 그 기간 교제중인 25살 연하의 백인 여자친구와 낚시여행을 하고 그 사진을 sns에 게재를 하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을 하였습니다. 그리고 실제로 전 남편은 25살 연하인 20살 백인 여성과 만나 아들을 낳고 결혼하여 새 가정을 꾸리고 있습니다.
전 남편이 신청한 강제집행 당시 아이는 제가 감치 중이어서 곁에 없었지만 “엄마하고 같이 살겠다”라고 명확히 두 차례나 답변하였고, 이에 따라 전 남편이 신청한 강제집행은 불능처리 되었습니다. 당시 시행되던 법원의 강제집행 예규에 따르면 아이의 명확한 거부 의사가 있으면 집행을 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아이를 진정 사랑하고 상식적 정서를 가진 아빠라면 아이를 최우선에 두고 생각을 할 텐데, 전 남편은 지속적으로 FBI 및 미국 경찰에 저를 아동납치범으로 신고하면서 미국 입국 즉시 체포되는 상황으로 만들어 놓아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을 만들 놓았고, 이혼 후에 돈이 없다며 미국 법원이 인정한 위자료를 저에게 주지 않고, 양육비조차 준 적 없으면서, 또한 친정 부모님께 빌린 약 4억원의 대여금도 모두 갚지 않고 있습니다.
전 남편은 현재까지도 아이에 대한 실종 신고, 저와 저의 친정 식구에 대한 아동학대 고소, 약취 유인 고소 등 지속적인 형사 고소를 남발하며 악감정을 표출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모든 고소 사건에 대해, 경찰, 검찰 및 형사 법원은 모든 고소를 기각시키고 아이에게 엄마인 저의 보호가 필요하다고 자세히 기록한 결정문을 내었으나, 전 남편은 저에 대한 비난을 멈추지 않고 있습니다.
셋째, 아이의 복리와 미래가 존중이 되어야 합니다.
아이의 유전자 결손 진단을 받자 출생시부터 여러 병원을 다니면서 원인도 모른 채 앓아왔던 모든 질환에 대한 퍼즐이 맞춰지는 기분이자 앞으로의 아이의 삶이 너무 걱정이 되어 하늘이 무너지는 듯 하였습니다. 성장하면서 수많은 병들이 발현될 수 있다는 사실도 더욱 절망적이었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아이의 아픔을 조금도 알아채지 못하고, 치료할 의지도 없어보이는 전 남편이 있는 곳으로 아이를 돌려보낼 수는 없었습니다.심지어 몸도 아픈 아이가 아이의 의사와 상관없이 아무런 언어도 통하지 않는 미국으로, 엄마도 없이 새로운 가정을 꾸린 아빠와 미국인 새엄마에게서 커야 한다면 그 고통은 얼마나 클까요. 아이가 5년 만에 미국에 가서 제대로 치료도 받지 못하고 엄마와 하루아침에 분리된 트라우마 속에서, 제대로 된 보살핌도 못 받고 살아가게 될까봐 너무나 두렵습니다. 아픈 아이에 대한 아무런 대책도 없고, 언어가 통하지 않는 교육환경에 방치될 것이 분명해보이는 상황에서, 아이를 미국에 보내라는 법원의 명령이 도대체 올바른 결론인지, 이것을 엄마가 따라야 하는 것인지 하루에도 수십 번씩 스스로 자문하며 지낸 세월이 벌써 4년이 지났습니다.
8년 전 폐암 수술을 하고 그럭저럭 잘 지내오신 저의 아버지는 아이 아빠가 아버지를 포함한 친정 식구들에 대해 아동학대 고소, 약취 유인 고소 및 일 30만원의 손해배상을 요구하는 소송을 마주하고서는 병세가 악화되어 2년 전 돌아가셨습니다. 그럼에도 저는 아이에 대한 엄마로서의 책임감으로 혼신을 다해 아이를 지키고 있습니다.
정작 저는 하루에 양치 한 번 겨우 할 만큼 저 자신을 돌보는 것은 오래전에 잊었고, 예민한 아이를 보듬어주고, 병원 및 치료실에 다니고, 약을 챙겨주고, 면역력이 약해 늘 주변 청결을 유지하면서, 근육 발달이 늦어 잘 삼키지 못하는 아이에게 삼킬 수 있는 음식을 만들어 주는 등 온종일 아이를 위한 시간만을 보내고 있습니다. 혼자 있을 때에는 너무 힘들어 울기도 하지만 아이 앞에서는 최대한 밝은 표정을 짓고 웃으며 장난도 치고 아이가 최대한 밝게 자랄 수 있도록 매일매일 노력하고 있습니다.
전 남편은 이미 20년 전 아버지와 연락을 끊었고, 본인의 누나와도 연락을 하지 않고 있습니다. 저는 전남편의 어머니와 누나가 한 집에 살았다고 하는데도, 10년 가까운 결혼생활 동안 전 남편의 아버지나 누나를 한 번도 만나지 못했습니다. 제 뜻에 맞지 않으면 본인의 부모, 형제와도 인연을 끊은 모진 사람이 아픈 아이를 얼마나 희생적으로 키워낼 수 있을지, 그런 전 남편에게 아이를 보내는 것이 맞는 것인지 고민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전 남편이 아이를 진심으로 사랑하고 존중하고 최선을 다해 치료에 전념할 사람이라면, 저 보다 정서적으로 안정되게, 최대한 건강할 수 있도록 정성을 다 해줄 사람이라면 아이를 전 남편에게 보내고 편안하고 행복한 저의 새 삶을 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러나 너무나도 이중적인, 남들한테는 아이를 뺴앗긴 불쌍한 아빠인 척 온갖 곳에 말을 하면서 정작 아이를 보러 오거나 아이와의 전화 통화조차 거부하고 있는, 또 20살 애인과 작년에 태어난 아이와 함께 행복하게 살고있다고 공공연하게 말하는 그에게 아이를 보내라는 판단이 옳은 것인지, 법원의 판단을 차마 따르지 못하고 있는 제가 잘못하고 있는 것인지 도무지 해답을 구하기 어렵습니다.
앞으로도 아이를 보내라는 이행명령, 과태료, 감치 재판이 이어질 것이고, 강제집행의 시도도 여러 차례 있을 것이지만, 오직 아이의 건강과 미래를 생각하고 버티며 인생을 “살아내어” 볼 생각입니다.
긴 글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