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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년대에 운동권 학생들은 ‘서로 총을 겨누고 단지 싸우지만 않고 있는
현재의 상태는 평화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국제정치에서 ‘공포의 균형’ 이라고 부르는 현실주의적 입장보다도, 그들은 이상주의적 발상에서 서로가 마음을 열고 진정한 평화를 달성해야한다고 믿었던 것 같다.그렇다면, ‘돈으로 독재정권을 무마하고, 그 무력 앞에 비굴해지면서 얻는 평화’는 과연 진정한 평화일까?
햇볕론자들은 자신들이 진정한 평화를 가져왔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1998년 DJ 취임 이후 약 10년간, 남북 정상이 단 한 번 만나 사진 찍고 포옹하고, 나중에 안지켜도 그만인 선언문 하나 남긴 것이 성과라면, 작년 북한의 핵실험을 정점으로 하는 그간의 핵위기는 너무나도 커다란 오점이 아닐 수 없었다. 북한을 전혀 바꿔놓지 못한 채 맨 땅에 파묻은 식으로 사라져버린 돈을 세는 일은 온국민에게 홧병을 안겨주는 일이다.그런데 이 햇볕정책이 참으로 역겨운 적반하장에 나섰다. 북한이 핵시설 불능화를 추진하는 것이 마치 햇볕정책의 공로인양 국민을 속이기 시작한 것이다. 그 출발은 일군의 무리가 인터넷 포털사이트에 어처구니 없는 여론몰이를 하는 것이고, 그 하이라이트는 8월이든 대선 두 달 전이든 남북정상이 다시 만나는 이벤트가 될 것이다.
자기들이 10년째 대한민국의 권력구조를 장악하고 있었으면서도 마치 여전히 지배세력은 따로 있고 자기들은 지금도 ‘보이지 않는 지배세력’에 맞서 투쟁이라도 하는 듯 눈속임을 시도하는 것이 친노 세력의 핵심적 말장난인데, ‘햇볕의 적반하장’도 그 연장선에 놓여 있다. 즉, 한반도의 평화를 원치 않는(심지어 전쟁을 불사하는) 한나라당, 조중동, 미국의 방해에도 불구하고 햇볕정책 덕에 북한이 핵을 포기한다…는, 말도 안되는 주장이 상당히 신빙성이 있는 양 인터넷 포털사이트를 타겟으로 여론몰이에 나선 것이다.
그들의 주장은 그 자체로 모순된 내용을 담고 있다. 대한민국의 기득권을 다 쥐고 있는 세력이 모든 것을 한 순간에 잃을 수 있는 전쟁을 불사한다?
북한에 돈을 줄 때는 최대한 불쌍한 표정으로 ‘북한은 전쟁을 도발할 힘이 없다’라고 말하고, 김정일 정권에 제대로 항의도 못하는 자신들을 변호해야할 때는 ‘그럼 전쟁하잔 말이냐?’라고 따져묻는 깃털처럼 가벼운 이중성과 저열한 말장난에 국민들이 현혹되어서는 안되겠다.
햇볕정책은 총체적으로 실패했다. 그 이유는 간략하게 다음과 같다.
1. 햇볕론자들은 김정일 정권의 독재적 속성을 간과한다.
그들이 ‘협력’을 빙자해 독재정권을 공고히 하는 데에 악용한다는 현실을 애써 외면하고, 민족주의 구호 외치기에 급급하다. 그들이 ‘북한은 변했는데 냉전수구적인 발상 때문에 이해를 못한다’고 우기는 동안 북한은 핵개발에 핵실험까지 마쳤다. 지난 몇 년간의 역사를 바로 알자.
2. 햇볕정책은 북한의 핵개발에 전혀 대처하지 못했다.
2002년 북한의 핵개발이 기정사실이 될 무렵에도 끝까지 사실이 아닐 수 있다며 말을 흐리다가, 나중엔 도리어 북한의 핵개발 실체를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햇볕론자들은 과연 대한민국의 소속이 맞는가?
TV에 출연해 ‘햇볕정책을 안했으면 북한이 핵개발을 안했겠는가?’라고 말했던 인사는 이 정부의 최고위층에 자리를 잡았었다.
3. 햇볕정책은 이론의 해석과 적용에서도 잘못되었다.
경제협력을 하다보면 정치적 협력도 가능해진다는 기능주의 통합론은 유럽통합에서 나온 이론이다. 남북한처럼 끔찍한 전쟁을 치르고 여전히 무력 대치 중인 국가간의 상황을 가정한 것이 아니었다.
4. 햇볕론자들은 ‘배제’와 ‘통일’을 동시에 말하는 모순을 안고 있다.
자신들에게 비판적이면 ‘냉전’, ‘수구’, ‘반통일’, ‘전쟁불사’, ‘사대주의’ 등등 각종 수식어를 붙여 비난하고, 마치 비판자들만 사라지면 진정한 통일이 가능할 것처럼 사람들을 속이는데, 과연 누구를 위한 통일인가?
남쪽을 편갈라 나눠놓고 북쪽의 누구와 무슨 통일을 하겠다는 것인가?
정작 자신들의 철 없는 발상이 김정일 정권에게 철저하게 이용당하고 있다는 생각은 못하는 것일까?
몇몇 정치인들은 자신들을 ‘평화세력’이라고 불렀지만, 글의 첫머리에 언급한 것처럼 현재의 ‘비전쟁 상태’를 ‘평화’라 부를 수 있을까? 그런 식이라면 조선의 조공 외교야말로 진정 ‘평화세력의 외교’가 아니겠는가?
개성에 가서 춤을 추는 것으로 핵 위기가 끝날 수 있다면, 유능한 한국의 비보이들을 파견하면 된다. 실존하는 안보 위기에 온갖 물타기를 하고 말도 안되는 음모론을 덧붙인 다음, 사진 찍고 쇼하는 것이 금방이라도 통일을 가져올 것처럼 감성을 자극하려는 유치한 시도는 국민을 속이는 사기극에 불과하다. 그리고 그 햇볕론자들은 제2의 거대한 사기극을 준비하고 있다. 어느 때보다도 국민들이 냉정하게 판단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