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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 눈에 비친 삼성·LG… “열정은 넘치는데, 완전 군대 스타일”
애플·구글보다 박한 평가
5점 만점에 애플 3.9점인데… 삼성전자 2.8점, LG전자 3.2점
‘친구들에 추천하겠다’ 항목도… 애플·구글보다 훨씬 낮아
좀비 되기 싫으면 도망가라?
“상사가 새벽 3시에 업무 지시… 가족 아파도 퇴근 못하게 해
매일 강조하는 건 위기, 위기… 칭찬? 들어본 기억이 없다”
한국 대기업, 장점도 있다
“의지할 수 있는 멘토 많고… 한다면 하는 문화는 좋더라”
美 기업엔 드문 건강보험 등… 사내복지는 최고로 평가해
[출처] 본 기사는 프리미엄조선에서 작성된 기사 입니다“좀비가 되기 싫으면 도망가라.”
미국 실리콘밸리에 사는 야닉(34·컴퓨터 프로그래머)씨는 직장평가 사이트 ‘글래스도어(glassdoor)’에서 한 글로벌 IT기업의 평판을 살펴보다 섬뜩한 문구를 발견했다. 그 회사의 캘리포니아주(州) 새너제이 법인에서 일했거나 일하고 있다는 직원들의 평가 중 절반은 살벌한 혹평이었다. “사생활이라곤 없다” “일과 휴가 사이의 균형? 최악이다” “군대처럼 명령에 따라 일한다”…. ‘친구에게 이 기업을 추천하겠느냐’는 질문에 ‘전·현직 임직원’이라고 밝힌 사람들의 70%는 ‘No!’라고 답했다. ‘좀비 양성소’ 취급을 받은 이 기업은 삼성전자였다.
이직(移職)을 계획 중인 야닉씨가 접속한 ‘글래스도어’는 세계 최대 취업 정보 사이트. 한 기업에 대한 평판을 그 기업의 전·현직 직원이라야만 쓸 수 있도록 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평판을 달려는 회사의 이메일로 인증해야만 회원이 될 수 있다. 예컨대 삼성에 대한 평판은 삼성 이메일을 쓰는 사람만 가능하다. 덕분에 이 사이트에 오른 평판은 이직 희망자들 사이엔 ‘진짜 믿을 만하다’고 통한다. 이 사이트에 평판이 단 한 개라도 거론된 기업은 현재 25만개. 그 회사에 다녀본 사람들의 적나라한 평판은 이직 희망자들에겐 최고의 정보가 되지만 해당 기업들엔 더없는 골칫거리다. 평판관리가 철저하기로 소문난 삼성전자조차도 “그 사이트에 대해선 공식적으로 줄 수 있는 코멘트가 없다”는 입장이다.
전·현직 근로자들은 아슬아슬한 수준의 혹평을 쓰지만 해당 기업들의 명예를 훼손하는 일은 거의 없다. 글래스도어가 그런 정도의 글을 상시 모니터링을 통해 지우기 때문이다. 지난해 3월 글래스도어에 대해 보도한 비즈니스위크에 따르면 이렇게 지우는 글은 전체 올라오는 글의 10%에서 15% 수준이다.
삼성전자뿐만 아니다. ‘글래스도어’에 올라온 한국 기업의 근무환경 평가 글 속엔 외국인 직원들의 원성(怨聲)이 자자하다. 한국 기업들이 구글이나 애플과 경쟁하는 수준으로 성장하면서 이 기업들에서 일하는 외국 인재도 늘었지만, 정작 이 해외 인재들은 한국식(式) 기업 문화에 충격을 받고 있는 것이다. “상사가 부하 직원에게 소리 지르는 일은 다반사다” “문제 제기를 해도 변하는 건 아무것도 없다” “상사가 무례(rude)하고 폭력적(violent)이다” 등의 지적이 올라온다. 그건 점수로도 나타난다.
이 사이트에선 기업 문화와 가치, 일과 휴가의 균형, 보수, 상사, 승진 기회 등 5가지 부문별로 각 기업의 점수를 매긴다. 최하 1점부터 최고 5점까지 줄 수 있다. 삼성전자는 총 평점이 2.8점, LG전자는 3.2점이었다. 25만개 기업의 평균평점인 3.3점에도 못 미친다. 세계 IT업계 5위인 삼성전자, 61위 LG전자의 체면이 말이 아니다. 반면 글로벌 시장에서 삼성전자와 경쟁하는 세계 IT업계 1위 기업 애플은 3.9점으로 35위, 세계 IT업계 2위 구글은 4.2점으로 8위다. 우리 기업들은 세계시장에선 ‘글로벌 기업’으로 대접받지만, 근무해본 외국인들의 평가만 보면 영락없는 ‘기업 문화 후진국’인 셈이다. 약진하는 한국 기업들이 도대체 왜 이런 평가를 받는 것일까.
◇”할 일 다했어도 6시에 퇴근하는 건 잘못된 행동”
미국에 기반을 둔 글래스도어는 누구나 실명과 직장 정보를 입력하면 가입할 수 있다. 지난 11일 기자도 가입한 후 한국의 대표적인 기업을 검색해봤다. 웬만한 한국 기업들은 거의 다 나왔다. 삼성전자를 검색하니 익명의 리뷰 1000여개가 화면을 가득 채웠다.삼성의 기업 문화와 관련해 외국인 직원들이 가장 빈번하게 지적하는 건 ‘눈치 보기’였다. “일을 다 끝내도 퇴근하지 않고 상사의 눈치를 보는 문화를 이해할 수 없다” “윗사람이 아직 일하고 있다는 이유가 내가 퇴근하지 못하는 이유가 된다는 게 이해되지 않는다. 이 회사에선 어떤 성과를 내느냐보다 몇시에 출근해서 얼마나 자리에 앉아 있고 몇시까지 일하는지가 더 중요한 것 같다”…. 삼성전자에 근무한다는 한 미국인 매니저는 “근무 시간이 긴 직원이 좋은 직원이란 강력한 믿음이 퍼져 있다”고 적기도 했다.
평판만 보면 LG전자 미국법인도 삼성전자와 같은 회사가 아닐까 생각될 정도였다. LG전자의 한 미국인 직원이라는 평가자는 출근 시간은 엄격한데, 퇴근 시간은 사실상 없다고 지적했다. “출근이 1분이라도 늦으면 상사로부터 질책을 듣고 5분 늦으면 서면경고를 받는데, 정시 퇴근은 나쁜 행동으로 취급된다. 할 일 다해도 6시에 퇴근하는 건 지탄받는 짓이다.”
구글과 애플은 과연 어떤 평가를 받고 있을까. 애플의 한 직원은 “여기선 상사에게 눈도장 찍는 게 전혀 중요하지 않다”며 “어디에 있든 담당 업무가 진행되고 있으면 그것으로 족하다”고 말했다.
이 같은 차이에 대해 구글 본사의 김현유(미키김) 상무는 “퇴근하지 않고 자리를 지키는 게 한국 기업에서 중요한 건 ‘잡일’과 관련이 있다”고 말했다. 김 상무는 삼성전자에서 4년간 일하다 2007년부터 구글에서 일하고 있다. 그는 “한국기업에선 뭘 보고하라든지 자료를 만들라는 등의 잡일이 수시로 떨어지기 때문에 자리를 지키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김 상무는 “미국 기업에선 미리 일정을 잡아서 하는 문화라 예정에 없던 그런 잡일이 잘 없고, 있다 해도 직원이 자리에 앉아 있는지는 중요하지 않다”고 말했다.
◇”이곳에서 미팅이란 한 사람만 떠드는 것”
상사들이 부하 직원들에게 던지는 메시지에도 한국 기업과 미국 기업 간에 차이가 있다. 한국 기업에선 늘 위기를 강조한다. 한 미국인 직원은 “한국 기업은 조직원들에게 정신 차리라는 이야기만 한다”며 “늘 위기인 회사에 내가 왜 남아 있어야 하나”라고 말했다. 김현유 상무는 “한국 사람들이 보면 지나치다 싶을 만큼 칭찬을 자주 하는 게 구글의 문화”라고 말했다. “CEO가 회의나 전체 이메일로 프로젝트에서 성과를 보인 직원을 구체적으로 칭찬하는 경우가 자주 있다”는 것이다.
한국 기업의 회의 스타일도 외국인 직원들에겐 이해 못할 기업 문화로 꼽혔다. LG전자의 한 외국인 프로그래머는 “소통은 없고 지시만 있다”며 “완전 군대 스타일”이라고 말했다. 삼성전자에서 2년간 일했던 한 미국인은 “한국 기업에선 참석자 중에서 직급이 제일 높은 ‘대장’이 혼자 이야기하는 게 당연한 문화”라면서 “그 외 나머지는 그 대장이 뭘 물어봤을 때만 예외적으로 이야기한다”고 말했다. 현대캐피탈의 한 미국인 매니저는 “온종일 회의를 하지만 진척되는 건 없다”며 “프로젝트가 빙하 움직이는 속도로 진행된다”고 적었다.
구글과 애플은 정반대라고 한다. 회의에서 제일 말을 많이 하는 사람은 보통 내용을 제일 잘 아는 실무진이고 ‘대장’은 이를 보조하는 역할을 한다. 즉 한국에선 ‘대장이 주도하고 실무진이 보조’하는데 미국에선 ‘실무진이 주도하고 대장이 보조’한다는 것이다.국내 대기업과 회의가 잦은 애플의 한 한국계 직원은 “실무진이 적극적으로 의견을 개진해야 더 생산적인 협의와 실행이 가능한데 한국 기업에선 실무진이 말이 없다”면서 “그들은 경영진 미팅 후에 경영진의 말을 해석하기 위해 다시 별도의 미팅을 갖는다. 이런 시간 낭비가 어디 있나”고 말했다.
연세대학교 경영학과 주인기 명예교수는 “한 외국인 직원이 글래스도어에 ‘그들(한국 기업)에게 조언은 무용지물이다. 왜냐면 그들은 변화할 가능성이 전혀 없기 때문이다’란 글을 남겼다”며 “생각보다 심각한 문제일 수 있다”고 말했다. 주 교수는 “선진국 근로자들을 고용해본 적 없는 우리 기업이 앞으로 일류 인재들을 지속적으로 확보하기 위해선 다양한 문화적 기반의 직원들을 포용하는 방법을 배워야 한다”고 말했다.
◇퇴근 후 시간도 회사가 소유해
미국에선 회사가 업무 외 시간을 침해하지 않는 분위기다. 구글 김현유 상무는 “승진 축하나 새로운 팀원 환영 등 팀원이 모일 일이 있으면 점심을 같이 먹든지 오후에 사무실에서 간단히 다과를 한다”며 “퇴근 시간 전에는 모든 걸 마무리한다”고 했다.
하지만 미국에서도 한국 기업은 다르다. 휴일이나 퇴근 이후의 시간도 기업이 좌지우지한다. 현대모비스의 한 직원은 리뷰에서 “토요일도 당연히 회사에 나가야 한다”고 말했고, 삼성의 한 직원은 “상사는 (퇴근 시간 이후에도) 나에게 일을 강요한다”고 적었다. 한국 기업의 한 외국인 매니저는 “개인적 삶이 없다”며 “가족과의 시간을 소중하게 생각하지 않는 사람만 지원해야 한다”고 말했다. 미국 새너제이의 삼성전자 반도체사업부의 한 매니저는 “심지어 아이가 독감에 걸려 위급한 상황인데도 이해해주지 않았다”며 “삶의 균형이 완전히 무너졌다”고 말했다. 삼성전자의 전직 미국인 매니저는 “상사가 오전 3시에 전화를 걸어 당연하게 업무 지시를 한다”고 말했다.◇직원들 열정과 사내 복지만큼은 최고
하지만 글래스도어에 한국 기업의 단점만 올라오는 건 아니다. 장점도 많았다. 외국인 직원들은 우리 기업의 ‘열정’과 ‘복지’를 대표적인 장점으로 꼽았다.
미국 새너제이에서 일하는 삼성전자의 미국인 직원은 “(삼성은) 매일 열심히 일하는 사람들이 모인 위대한 기업”이라 말했고, 다른 직원은 “열정적으로 집중해서 일하는 분위기”를 삼성전자의 장점으로 뽑았다. LG전자의 한 전직 미국인 직원도 “당신은 LG에서 많은 멘토를 만날 수 있다. 또 회사는 직원들의 성장을 열정적으로 독려한다”고 적었다.
높은 보수와 잘 갖춰진 사내 복지 역시 장점으로 언급됐다. “보수, 보너스, 유급휴가 모두 훌륭하다. 게다가 치과·안과까지 보장하는 건강보험!”(현대캐피탈) “훌륭한 보수와 더불어 아이 교육비를 지원받고 건강보험까지 보장된다.”(삼성전자)
해당기업 전·현직 임직원만 글 올릴 수 있어… 회원 數는 3000만명
글래스도어
미국에 기반을 둔 세계 최대의 직장 평가 사이트.
한 회사의 근무 환경에 대한 정보를 실제 그 회사에서 일했던 사람이 쓴 리뷰를 통해 제공한다. 리뷰는 기업 문화와 가치, 일과 휴가 간의 균형, 상사, 급여 및 보수, 승진 기회 등 6개 항목을 기준으로 작성된다. 점수는 1~5점으로 매긴다. 최고점이 5점이다. 이와는 별개로 친구들에게 다닐 만한 직장이라고 추천할 것인지 여부를 ‘예·아니요’로 답한다.
전 세계에서 3000만명의 회원이 25만개 이상의 기업에 대한 리뷰를 올렸다. 한 달 페이지뷰(Page View·자료를 열람한 횟수)는 7500만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