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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김영욱 전문기자(팀장), 김형수.최형규.김경빈 기자, 친훙샹 중국 베이징대 교수, 박승록 한국경제연구원] ▶ 중국 남부의 광둥(廣東)성 선전(深)시에 있는 중싱통신 본사 전시장. 이 회사가 생산 중인 전자교환기 등 통신설비와 휴대전화 단말기 등이 전시돼 있다. 중국 최고의 통신설비업체인 화웨이와 ‘제2의 화웨이’로 불리는 중싱통신에선 사진 촬영은 물론 공장 견학도 할 수 없었다. 화웨이는 전시장에서의 사진 촬영도 막았다. [선전=김형수 기자] 3년 전 미국 전투기가 이라크 상공에서 피격당했다. 미 정부는 이라크의 자체 기술로는 첨단 방공 시스템의 구축이 불가능하다고 생각, 중국 최고의 통신설비 업체인 화웨이(華爲)를 지목했다. 화웨이가 이라크를 도왔을 것이라는 추측이었지만 화웨이는 강하게 부인했다.
만 2년 뒤인 지난해 1월 세계적인 데이터 통신장비 업체인 미 시스코는 화웨이를 지적재산권 침해 혐의로 고소했다. 자신들이 장악하고 있는 인터넷 접속장비(라우터)와 이를 작동시키는 소프트웨어(컴퓨터 코드)를 화웨이가 무단 복제했다는 이유였다.
그러나 세계 통신업계는 복제 여부보다 ‘천하의 시스코’가 고소한 화웨이의 급성장에 더 관심을 가졌다. 화웨이는 곧 미 시장에서의 제품 판매를 중단했지만 지금도 ‘화웨이와의 경쟁을 두려워한 시스코가 라우터 시장을 장악하기 위해 제소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우리의 정보통신부에 해당하는 중국 정보(信息)산업부는 지난해 10월 모토로라.에릭슨.노키아 등 중국에 진출해 있는 세계적인 통신설비 회사들을 평가한 적이 있다. 이때 화웨이는 이들을 제치고 1등 업체로 선정됐다.
업종을 통틀어 중국 최고기업은 가전업체인 하이얼이지만, 기술에 관한 한 중국 최고로 대접받는 기업은 화웨이다. 장차 세계적인 통신설비 업체인 미국 시스코와 루슨트 테크놀로지, 프랑스 알카텔의 최대 라이벌이 될 것이란 평가를 받을 정도다.
?중국을 기술대국으로 키울 주역=화웨이는 중국을 세계의 공장에서 세계의 기술창으로 변모시킬 선봉장으로 꼽히고 있다. 초고속인터넷(ADSL) 접속장비에서 세계 최고는 프랑스 알카텔이다. 세계 시장에서 무려 40%의 점유율을 차지하는 이 회사가 지난해 화웨이를 깎아내리기 시작했다. "중국에서도 우리가 화웨이보다 점유율이 높다"고 주장했다. 화웨이가 프랑스 통신사업자인 LD콤과 제휴를 하고 프랑스에 진출했기 때문이다. ADSL 접속장비시장에선 화웨이가 세계 2위다.
전자교환기 시장에선 이미 세계 최고기업이다. 시장점유율 35%(지난해 기준)로 압도적이다. 지난 연말엔 스웨덴 에릭슨 및 핀란드 노키아 등과 치열한 경쟁을 벌인 끝에 홍콩과 아랍에미리트에서 각각 1억2천만달러와 5천만달러짜리 전자교환기 설비를 따내는 데 성공했다.
이동통신 분야의 기술력도 상당한 수준에 도달했다. 유럽의 이동통신기술 표준인 GSM 시스템은 자력으로 개발했고, 부호분할다중접속방식(CDMA)도 핵심기술과 생산능력을 갖춰 중국 이동통신회사인 롄퉁(聯通)의 설비 공급업체가 됐다.
광통신 설비와 데이터 통신장비 시장에도 진출했다. 2년여 전만 해도 화웨이의 벤치마킹 대상은 광통신 설비의 세계 최고인 미 루슨트 테크놀로지였다. 그러나 최근 시스코로 그 대상을 바꿨다. 화웨이의 런정페이(任正非.60)사장은 지난해 "시스코를 배우면서 추월하자"고 선언했다. 광통신 분야의 기술은 다 배웠다는 얘기다.
유망 시장으로 급부상 중인 데이터 통신장비 분야에 적극 진출하겠다는 속셈도 있다. 이를 위해 지난해 3월 시스코에 버금가는 스리콤(3com)과 합작, 데이터 통신장비인 라우터 생산공장을 중국에 설립했다.
任회장의 꿈은 ‘세계 3대 통신설비 업체’다. 세계 시장에도 본격적으로 진출하기로 했다. 매출액 대비 수출 비중을 현재 20%에서 2년 내 40%로 늘릴 계획이다. 조만간 세계 통신장비 시장에 파란이 일 것으로 보인다.
?기술독립 없인 민족독립 없다=이 같은 고기술의 배경엔 任회장의 ‘자주기술론’이 있다. 그는 "기술독립 없이 공업독립과 민족독립이 없다"고 강조한다. 회사명도 "중화민족을 위해 분투한다(華爲)"는 의미다. "외국 기업들은 돈만 벌 뿐 기술이전엔 관심도 없다"며 그는 처음부터 독자적인 기술개발에 전념했다.
매년 매출액의 10% 이상을 연구.개발(R&D)비로 투자했다. 2002년 R&D 투자는 29억위안(약 4400억원)으로 매출액(약 216억위안)의 13.4%였다. 2만2000여 종업원 중 R&D 인력은 1만명(46%)이나 된다. 이를 위해 스톡옵션제도 실시했다. 화웨이는 종업원들이 주식의 80%를 갖고 있는, 중국에서 보기 드문 종업원 지주회사다. 이 같은 노력으로 화웨이는 2300여개의 특허를 갖고 있다.
‘제2의 화웨이’로 불리는, 중국 내 통신설비 2위업체인 중싱(中興)통신도 기술력 확보에 전력을 기울이고 있다. 종업원 1만7000명 중 R&D 인력이 45%에 달한다. 석사 이상이 41%며 매년 매출액의 10% 이상을 R&D 투자비로 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