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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메리칸 드림은 이제 옛말이에요. 코리안 드림을 꿈꾸는 사람이 더 많을걸요.”
삼남매가 2004년 미국으로 이민한 이모(26·여)씨는 24일 이같이 말했다. 텍사스주에 거주하는 이씨는 언니·남동생과 함께 10년간의 미국 생활을 접고 오는 9월 한국으로 돌아오기로 결정했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현지 취업이 힘들어진 데다 취업을 해도 임금과 생활비 등을 비교하면 한국생활이 더 유리하다고 판단해서다. 이씨는 “미국에서 대졸 초임은 3만5000~4만 달러 수준인데 세금은 30%나 내야 한다”며 “거기서 월세(1000 달러)·보험료(220 달러) 등 생활비를 제하면 저축은 꿈도 못 꾼다”고 설명했다.
매년 비자 갱신 때문에 골머리를 앓아야 하고 병원비가 터무니없이 비싼 것도 역이민 결심에 도움이 됐다. 그는 “최근 교통사고를 당해 병원에 이틀간 입원했는데 3만 달러가 나왔다”며 “그래서 수술은 한국에서 받았는데 40만원에 다 됐다”고 말했다. 이씨는 “주변에 역이민을 원하는 친구가 적지 않다”며 “영어·한국어가 능통해 좋은 직장을 구할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직장인 최모(39)씨는 국내 대기업의 위계질서와 과도한 업무 등이 지겨워 10년 전 캐나다로 갔다. 하지만 막상 가보니 현지인들과 마음을 터놓기 어려웠고, 한인 사회는 폐쇄적이라서 답답했다. 제대로 된 직장도 구하기 어려웠다. 결국 3년 전 한국으로 돌아왔다.
24일 외교부에 따르면 지난해 우리 국민의 해외 이주(이민)규모는 1962년 정부 통계 작성 이후 역대 최저치인 90명으로 집계됐다. 이민자가 정점을 찍었던 1976년(4만6533명)의 0.64%에 불과한 수치다. 반면 이씨·최씨처럼 한국으로 역이민 오는 재외동포는 2000년 이후 2009년 8301명으로 정점을 찍었고 지난해엔 9621명을 기록했다. 이는 2001년 5623명에 비해서는 38% 늘어난 수치다. 이민 가는 사람은 줄고, 들어오는 사람은 늘어났다는 의미다.
외교부 관계자는 “우리나라의 경제발전과 엄격해진 현지 이민법, 글로벌 금융위기로 어려워진 현지 취업 등이 이민자 감소의 원인으로 꼽힌다”고 분석했다.
실제로 가난했던 1960년대엔 국제결혼 등에 따른 이민이 대다수였다. 산업화가 본격화되던 70년대엔 ‘취업 이주’가 많았다. 중동·유럽 등으로 건설근로자·광부들이 파견되면서 70년 취업이주는 1만6268명을 기록했다. 처음으로 1만 명을 넘어섰다. 경제성장이 본격화한 80년대엔 ‘투자 이민’이 새 트렌드였고 이민 열풍은 2000년대 초반까지 이어졌다. 홈쇼핑 방송에서 이민 상품을 팔 정도였다. 하지만 글로벌 금융위기 등을 거치며 이민자 수는 대폭 감소했다. 2008년 2293명에서 2010년에는 1000명 선이 깨진 889명을 기록했다. 이민중개업체인 이노라이프 이정미 실장은 “이민 관련 문의가 10년 새 반으로 줄었다”며 “비자 취득 시 높은 영어점수를 요구하는 등 이민법이 엄격해진 것도 한 원인”이라고 설명했다.
건강보험 등 사회보장제도와 언어·문화적 차이도 이민을 망설이게 하는 이유가 되고 있다. 프랑스로 유학 가 아예 정착하려고 하다가 3년 만에 돌아왔다는 김모(26)씨는 “언어문제뿐 아니라 음식·문화 등도 적응하기 힘들었다”며 “프랑스보다 한국에서 사는 게 훨씬 다이내믹하고 재미있다”고 말했다. 김씨는 귀국 후 대학에 편입해 졸업을 앞두고 있다.
채승기·구혜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