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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지사 김문수>
새누리당 소속 대한민국 제32대·제33대 경기도지사는 김문수(金文洙)이다.
김문수는 어려운 유년기를 보내면서도 노력하여 서울대학교에 입학하였고
자신이 대학생이던 시절, 전태일 씨가 분신 자살하는 사건을 접하고 충격을 받게 된다.
(전태일 씨의 어머니 이소선 여사)
이에 김문수는 노동운동가로 변신하여 공장에 위장취업하여 자신이 직접 한국 노동계의 현실을 겪었고
학생운동, 노동운동 등을 하며 좌익활동을 전개해 나아갔다.
이때 그는 김근태·심상정 등과 함께 활동했었다.
1993년 2월 25일
김영삼 정부가 출범하게 되는데 김영삼은 대통령에 당선된 직후
급진적인 개혁을 주장하며 노동운동/학생운동을 했었던 이들을 대거 정계에 입문시킨다.
이때 김영삼의 발탁에 의해 정계에 입문하게 된 사람들이 김문수·노무현 등이다.
김문수는 좌익활동을 포기하고 민주자유당에 입당하면서 이렇게 말을 남겼다.
혁명의 시대는 갔다.
그 후 김문수는 1996년 4월 11일에 치루어진 대한민국 제15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신한국당(前 민주자유당) 후보로 출마하여 당선된 것을 시작으로 하여
정치인으로써의 활동을 시작하게 된다.
좌파측에서는 김문수가 민주자유당에 입당, 신한국당 소속 국회의원에 선출된 것에 대해
그를 ‘변절자’라고 공격하고 비난하였으나 일부 좌파들은 과거 김문수의 활동을 근거로 하여 김문수를 좋게 평가하였다.
즉, 김문수는 우파측에서도 좋게 평가받고 좌파측에서도 좋게 평가받는 그러한 사람이 된 것이었다.
김문수는 2006년 5월 31일 치루어진 제4회 지방선거에서 경기도지사 선거에 도전하여 당선되었고
2010년 6월 2일 치루어진 제5회 지방선거에 다시 출마하여 재선에 성공한다.
김문수는 3선의원+제32대·제33대 경기도지사 활동직을 경험하며
정치인으로써의 변신에 성공하였고 그의 경기도지사직 수행 경험은
박근혜 비대위원장에 비해 강세(强勢)로 작용하였다.
2012년 4월 22일
결국 박근혜 후보를 제외한 새누리당 소속 정치인들 중 이른바 ‘잠룡(潛龍)’이라 불리고 있던
김문수 경기도지사는 2012년 4월 22일, 공식적으로 새누리당 대선 경선에 출마할 것을 선언하게 된다.
<경상남도지사 김태호>
이 사람의 이름은 김태호(金台鎬)이다.
그는 1998년 6월 4일 치루어진 제2회 지방선거에서
경상남도 의회 의원 선거에 출마하여 당선되는 것을 시작으로 하여 정치 인생을 시작하게 된다.
그 후 2002년 6월 13일 치루어진 제3회 지방선거에서는 경상남도 거창군수에 당선되었고
2004년 6월 5일 치루어진 재보궐 선거에서 한나라당 경상남도지사 후보로 출마하여 당선된다.
김태호가 경상남도지사에 당선된 지 2년이 지난 2006년 5월 31일, 제4회 지방선거가 치루어지는데
김태호에 맞서 야당에서 출마한 사람은 대표적인 친노(親盧) 인사인 김두관이었다.
그러나 이 선거에서도 김태호는 김두관을 꺾고 재선에 성공하여 제33대 경상남도지사의 임기를 시작하게 된다.
2010년 8월 11일
정운찬 국무총리가 총리직에서 사임한다.
정운찬 국무총리가 사임하기 전, 이명박 대통령은
정운찬 국무총리의 후임으로 김태호 경상남도지사를 생각하고 있었다.
김태호는 1962년생으로 2010년을 기준으로 했을 때 48세의 젊은 총리 후보자였기에
많은 이들의 주목을 받았고 언론 또한 김태호를 집중적으로 취재, 보도하기 시작했다.
2010년 8월 29일
김태호 국무총리 후보는 국무총리 내정 후보에 대한 청문회에서
야당에서는 김태호 후보에 대한 비리에 의문을 제기하였고
결국 이명박 대통령과 김태호 후보에 대한 여론이 악화되자
그는 스스로 국무총리 후보직에서 사퇴한다.
그는 이 사건 이후 중국으로 건너가 유학을 하게 되었고
2011년 3월 1일, 다시 한국으로 귀국한다.
2011년 4월 27일
김태호는 경상남도 김해시 을 선거구에서 치루어진
재보궐 선거에 한나라당 소속으로 출마하였고
44,501표(51.02%)를 득표하여 당선에 성공한다.
김해시는 한나라당의 지지기반인 경상남도 지역이었지만
노무현 前 대통령의 고향이라는 점을 감안하여
김태호가 당선된 것은 크다고는 할 수 없어도 이변(異變)이 아닐 수 없었다.
그는 2012년 4월 11일 치루어진 4.11총선에서도 경상남도 김해시 을에서 출마하여
63,290표(52.11%)를 득표하여 재선에 성공한다.
2012년 7월 11일
이러한 경력을 가지고 있는 김태호는 “낡은 정치의 리더쉽과 싸우겠다”고 선언하며
새누리당 대선 경선에 참여할 것을 선언하게 된다.
<임태희와 안상수>
임태희(任太熙)는 2000년 4월 13일 치루어진 제16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당선된 것을 시작으로 하여
제17대·제18대 국회의원직을 역임하게 되었다.
그는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 제24대 노동부 장관에 취임하였으며
후일 이명박 대통령의 비서실장으로 취임하게 된다.
2012년 5월 8일
임태희는 대선 출마의 뜻을 공개적으로 밝히고 새누리당 대선 경선에 참여하게 된다.
안상수(安相洙)는 1999년 3월 30일 치루어진 재보궐 선거에서
인천광역시 계양구 갑·강화군 갑 선거구에서 당선된 것을 시작으로 하여 정치활동을 시작하였다.
그는 제3회 지방선거·제4회 지방선거에서 인천광역시 시장 선거에서 당선되었고
제32대·제33대 인천광역시 시장직을 수행하게 된다.
그러나 안상수는 시장직 재임 중 인천광역시 재정 파탄의 원흉이라는 비난을 받았고
결국 여론이 악화되어 제5회 지방선거에서 민주당 송영길 후보에게 패배하여 3선에 실패한다.
2012년 5월 6일
안상수는 2012년 5월 6일, 새누리당 당사에서 대선 출마 선언을 하고 새누리당 대선 경선에 참여하게 된다.
<새누리당 대통령 후보 경선>
2012년 7월 9일
이 두 사람이 주장한 오픈 프라이머리 경선이 받아들여지지 않자
이재오와 정몽준은 “새누리당 대통령 경선에 불참하겠다”고 선언한다.
이는 새누리당 대선 경선에 인지도가 높은 후보들이 불참한 것이었는데
이렇게 된다면 국민들의 큰 관심을 갖게 할 수가 없었다.
다음 편에서 다룰 얘기이지만 당시 민주통합당 대통령 경선같은 경우는
문재인, 손학규, 김두관, 정세균 등 네임드급 정치인들만이 참여했었다.
여튼 결국 이재오와 정몽준의 경선 불참 선언으로
새누리당 대통령 경선은 박근혜, 김문수, 김태호, 임태희, 안상수 이 다섯 사람이 참여한 경선으로 이어지게 된다.
새누리당 대선 경선의 방식은 아래와 같다.
국민참여선거인단(대의원/책임당원/선거인단) 80% + 여론조사 20% 반영
2012년 7월 21일 ~ 2012년 8월 19일
이 기간동안 새누리당 경선에 참여한 후보들은 전국을 돌며 자신에게 한 표를 호소하였다.
선거 유세 기간 도중 박근혜 후보의 팬클럽인 박사모 회원들이 박근혜 후보의 연설이 있을 때는 환호하다가
다른 후보들이 등장하면 비난하거나 자리를 뜨는 등의 사건이 있기도 하였다.
※민주통합당같은 경우는 지역을 돌 때마다 투표를 하는데 새누리당은 같은 날 전국에서 동시에 투표하는 방식이었다.
<새누리당 대통령 후보 – 박근혜>
2012년 8월 20일
새누리당 대선 후보 경선의 결과가 발표되었다.
새누리당 국민참여 선거인단 총 투표수는 82,589표였고 이 중 유효 투표수는 82,494표였다.
경선은 대다수 사람들의 예상대로 박근혜 후보의 압승이었다.
-선거인단 득표수 7만1176표
-여론조사 지지율 74.7%
-총 득표수 8만6589표
-총 득표율 : 83.97%
김문수 후보는 경선 결과 2위를 차지했다.
선거인단 득표수 : 5622표
여론조사 지지율 : 16.2%
총 득표수 : 8955표
총 득표율 : 8.7%
김태호 후보는 경선 결과 3위를 차지했고
-선거인단 득표수 2616표
-여론조사 지지율 3.3%
-총 득표수 3298표
-총 득표율 : 3.2%
임태희 후보는 경선 결과 4위를 차지했으며
-선거인단 득표수 : 2341표
-여론조사 지지율 : 1.6%
-총 득표수 : 2676표
-총 득표율 : 2.6%
안상수 후보는 경선 결과 5위를 차지하였다.
-선거인단 득표수 739표
-여론조사 지지율 4.2%
-총 득표수 1600표
-총 득표율 : 1.6%
다음은 박근혜 후보의 대통령후보수락연설의 일부분이다.
원문 링크 : http://www.wikitree.co.kr/main/news_view.php?id=81171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 당원동지 여러분! 정말 감사합니다.
오늘 제가 이 자리에 서게 되고, 새누리당의 대통령 후보가 된 것이 저에게는 큰 영광입니다.
오늘 저의 승리는 당원 여러분의 승리이고, 국민 여러분의 승리입니다.
여러분이 아니었다면, 저 박근혜는 없었을 것입니다.
고비 고비마다 저를 믿어주시고, 어려울 때 일으켜 세워주신 분들이 바로 여러분이십니다.
정말 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
-국민 대통합-
새로운 대한민국을 만드는 큰 길에 모든 분들이 기꺼이 동참하실 수 있도록 저부터 대화합을 위해 앞장서겠습니다.
이념과 계층, 지역과 세대를 넘어, 산업화와 민주화를 넘어, 모두가 함께 가는 국민 대통합의 길을 가겠습니다.
-부패척결과 정치개혁-
저는 이 자리에서 분명하게 약속드립니다.
부패와 비리에, 어느 누가 연루되어 있다고 해도, 결코 용납하지 않을 것입니다. 과감히 털고 가겠습니다.
진정한 개혁은 나로부터, 가까운 데서부터 시작해야 합니다.
저와 제 주변부터 더욱 엄격하게 다스리겠습니다.
-국민 행복-
경제민주화는 국민행복의 첫걸음입니다.
중소기업과 대기업이 함께 성장하고, 비정규직과 정규직이 차별없이 대우받도록 하겠습니다.
경제적 약자도 공정한 기회를 갖도록 만들겠습니다.
도움이 필요한 국민에게 힘이 되어드리겠습니다.
원천적으로 자립이 불가능한 분들은 국가가 보호하고, 일할 능력과 의지가 있는 국민은 일을 통해 자립할 수 있도록
한국형 복지제도를 확립하겠습니다.
-마치며-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 당원동지 여러분! 저의 삶은 대한민국이었습니다.
오늘까지 제가 존재할 수 있었던 이유는 바로 국민여러분이 계셨기 때문이었습니다.
저는 이제 제 삶에 마지막으로 주어진 무거운 책임을 안고, 국민 여러분과 함께 가고자 합니다.
제가 가는 이 길 앞에 수많은 고난이 놓여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저는 두렵지 않습니다. 진실과 정의가 살아 있기 때문입니다.
저는 외롭지 않습니다.저의 가족인 여러분이 계시기에 혼자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국민 모두가 하나 되는 대한민국, 모두 함께 행복을 누리는 새로운 대한민국을 반드시 만들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다음 이야기>
문재인(文在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