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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퓰리즘하면, 아르헨티나의 페론이 떠오른다. 던트 크라이 포 미 아르젠티나. 얼마나 아름다운 노래이며 가사인가? 오늘날 아르헨티나인중에 페론을 좋게 말하는 아르핸티나인은 별로 없다. 그러나 여전히 그들은 패로니즘이란 포퓰리즘 마약에서 벗어난건 아이다.
아마 페론이 포퓰리즘의 뿌리가 되었다고 말하면 옳은 말일까?
포퓰리즘이 사실상 등장한건 공산주의 말ㅋ시즘이 뿌리라고 보는게 더 옳을것이다. 초기 마크시즘이 나올때는 봉건제국주의의 가난에 짜든 대중들에게 공산주의는 이상주의 유토피아 시스템을 재현해주는 채제로 받아들여졌다. 만약 그 시절애 내가 태어났다면 나도 공산주의를 받아들였고 그 실현을 위해 노력했을수도 있다. 순진할수록 그게 실현가능하다고 믿기 쉽지만 결국 세상의 좋은 시스템이라고 믿었던것들은 지배계급의 부패와 사리사욕으로 안좋게 끝장을 보게 된다. 아이 어쩌면 불완전한 인간섭리 또는 생태적인 근본 때문일수도 있다.
그리고 인텔리나 무지한 대중이나 모두 공산주의의 감언 이설에 속은 꼴이 되었고 공산주의는 처참한 최후를 결국 맞이한다.
그러나 공산주의가 모두 몰락한건 아니고, 남미 지역 같은데선 공산주의의 스핀아웃 버전이 독재를 변장해서 나타나 사람들에게 매력적으로 인기를 끌기 시작했고 그게 포퓰리즘이라고 이룸 붙여졌다. 그러나 원래 포퓰리즘은 공산주의자들의 이상주의 유토피아에 대한 감언 이설이다.무지한 대중은 이런 감안이설과 포퓰리즘에 휘둘릴수 밖에 없다. 무지하기 때문에 결국 그 고통의 몫을 받게 된다. 무지하기 때문에 용서받는게 아니다. 죄명이는 이 포퓰리즘을 무기로 대중을 선동하는 방법을 자신의 최대 무기로 이용하고 있다. 김일성보다 더 악랄할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