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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보는 박근혜!
아래 글은 필자가 금년 1월 2일에 홈페이지에 올렸던 글이지만 우리 시국진단 회원님들께는 너무 충격이 있을 것 같아 보류했던 글입니다.
이하 금년 1월 2일의 글(일부 수정)
다음 대선에 대해! 국민은 희망을 거는 것이 아니라 불안해하고 있다. 대부분이 한나라당에서 대통령이 나오는 것을 바라고 있지만, 한나라당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있는 잠재적 주자들 대부분이 사상적으로 위험하거나 북에 놀아나기 쉬울 정도로 내공이 없다.
김문수에 대해서는 그가 어째서 불안한 인물인지 그동안 충분한 자료를 내놓았다고 생각한다. 한마디로 그가 만일 대통령으로 당선되면 그날부터 애국 국민들이 노심초사해야 할 그런 인물이라고 생각한다. 이 글에서는 가장 먼저 공식적으로 대선 출정식을 마친 박근혜에 대해 냉정하게 평가해보고자 한다.
과연 박근혜는 얼마나 믿음직한가? 이 글을 쓰면서 필자는 필자에게 돌아올 불이익을 충분히 짐작한다. 우리 사회에는 분석에 의하지 않고 나름대로 형성된 감성에 의해 ‘오빠부대’가 된 사람들이 참으로 많다. 전라남도에 가서 김대중을 비판하면 멱살을 잡히듯이 필자 역시 수적으로 압도하는 이른바 ‘박빠’들에 의해 돌 세례를 받을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이 글은 바로 그런 박빠들에게 내놓는 글이다. 필자는 사실에 입각하여 이 글을 쓴다. 그리고 한 구절 한 구절 써 나갈 때 필자의 가슴에 오는 충격과 아픔도 박빠들의 그것들이나 다름없다는 것을 이해해주기 바란다. 그리고 필자의 염려 사항들에 대해 냉정하게 해명함으로써 박빠들의 뜻을 성취하기를 간절히 바란다. 필자가 이 글을 쓰는 이유는 이것이 국가의 운명이 달려 있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필자가 “무엇이 내게 이로우냐”에 따라 세상을 살았다면 두 차례Tlr이나 감옥에 가지 않았을 것이며, 이 글도 쓰지 않는다. 필자가 쓴 글 하나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필자를 떠나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그래도 필자는 이 글을 쓴다. 이 글은 필자의 주관적 생각을 쓴 것이 아니라 사실들을 쓴 것이다.
그러면 지금부터 중요한 사실들을 열거해 보기로 한다.
1. 2001년까지 박근혜는 김대중과 김정일에 준엄했다.
2001.8.23. 김대중은 방한 중인 베트남 국가주석에게 “한국이 불행한 전쟁에 참여해 본의 아니게 베트남인들에게 고통을 준 데 대해 미안하다”고 사과했다. 이는 국가에 대한 모독이고 박정희 대통령과 32만 파월 장병 전체에 대한 모독이었다. 이에 대해 당시 한나라당 부총재였던 박근혜가 매우 용감하게 나섰다.
“크게 우려하지 않을 수 없으며 참전용사들의 명예를 이렇게 손상시켜도 되는 건지 묻지 않을 수 없다. 6 25참전 16개국 정상이 김정일 위원장에게 ‘불행한 전쟁에 참여해 북한 국민에 고통을 준 것에 대해 사과한다’고 한 것과 같은 엄청난 일로 참전용사들의 가슴과 대한민국의 명예에 못을 박는 것과 같다”
베트남전쟁은 당시 팽배해 있던 아시아 공산화 도미노를 저지시키기 위해 313,000명의 장병이 가서 4,960명이 전사하고, 10,962명의 부상자와 12만 명의 고엽제 호소자를 냈던 피나는 반공전쟁이었다. 이런 면에서 김대중이 이 발언을 한 것은 공산주의 국가인 베트남 앞에서 1960년대의 반공국가 대한민국을 무릎 꿇린 일대 반역행위가 아닐 수 없다.
박근혜 역시 위와 같은 반듯한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한나라당 부총재로서 김대중과 김정일에 대해 사상적 적대감을 분명하게 표현했던 것이다.
2. 박근혜는 왜 북에 갔는지, 어떤 동기와 과정을 거쳐 북에 갔는지 그리고 3박4일의 일정은 어떻게 소화되었는지 등 밝혀야 할 것이다.
평양 강가에 있는 백화원초대소는 김정일이 최고의 손님만을 영접하는 곳이라 한다. 여기에 다녀간 한국 사람들은 정주영(98.10), 김대중(00.6), 임동원(02.4), 정동영(05.6), 노무현(07.10), 박근혜(2002.5) 이렇게 6사람인 것으로 검색된다. 정주영이 간 것은 금강산 사업을 트기 위해 간 것이고, 김대중-임동원-정동영-노무현이 간 것은 김정일에 충성하기 위해 간 것이었다. 하지만 이들은 형식상으로는 공무를 위해 백화원초대소를 갔다. 그런데 여기에 박근혜가 끼어 있는 것은 얼른 납득되지 않는다. 공적으로 간 다른 사람들은 1박2일이었다. 그런데 박근혜는 개인적으로 갔는데도 무려 3박4일이다.
보도에 의하면 박근혜는 김정일이 베이징에까지 보내 준 ‘김정일 특별전용기’를 타고 평양에 가서 2002년 5월 11일부터 3박4일간 여기에 머물었고, 공식적으로는 5.13일 김정일과 3시간에 걸쳐 단독면담 및 만찬을 했으며 박근혜는 김정일에게 여러 가지 유익한 공적 문제를 제기한 것으로 나타나 있다.
김정일의 서울답방에서도 긍정적인 대답을 들었다 했고, 금강산의 이산가족 면회소 설치, 국군포로 생사확인, 금강산댐 공동조사 등 여러 가지 주제들에 대해 대체적으로 긍정적인 반응을 얻었다고 보도됐다. 또한 보도를 보니 비록 김정일이 아버지를 살해하려다 어머니를 살해 했지만 그런 아픔을 극복하고 서로 적장이었던 김일성의 아들과 박정희의 딸이 만나 아버지 대에서 이룩하지 못한 7.4공동성명의 열매를 맺자는 다짐들이 있었다고 한다. 이러한 장미 빛 명분과 남북화해를 위한 목록들이 쏟아져 나왔지만 이들을 약속으로 담은 공동선언문 같은 것도 없었고, 그래서인지 이후 지켜진 것들이 없다.
그런데, 필자에게 의문이 가는 것이 한 가지 남아있다. 2002년 5월 당시 박근혜는 한나라당에 있지도 않았고, 단지 “한국미래연합” 창당위원장이라는 작은 자리에 있었다. 보도에 의하면 박근혜 의원은 당시로서는 잘 알려져 있지 않은 “유럽-코리아 재단”(http://www.traditionkorea.com/bbs/zboard.php?id=dohobu_per&no=49) 의 이사 자격으로 방북을 했다.
대통령 특사로 갔다면 이는 공무수행을 위해 간 것이 된다. 그러나 박근혜는 이름 없는 어느 한 재단의 이사장도 아닌 이사 자격으로 간 것이다. 필자의 생각이 일천한지는 모르겠지만 이는 공식적으로는 공무수행으로 간 것이 아니라 개인 자격으로 간 것이다.
아버지 대에서 열매를 맺지 못한 7.4 정신을 아들과 딸이 마무리 짖자는 것은 말잔치에 불과하다. 왜냐하면 박근혜는 당시 겨우 국회의원에 막 당선되었던 사람이고, ‘한국미래연합’이라는 당을 만들기 위한 창당위원장에 불과했기 때문에 당시로서는 7.4정신의 열매를 맺게 할 수 있는 공적 위치에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결국 박근혜는 사적인 자격으로 북한에 가서, 사적인 신분으로 김정일의 서울답방, 이산가족 면회소 설치, 국군포로 문제 등 국민이면 누구나 간절히 바라는 그런 국가문제에 대해 김정일의 생각을 물어 본 것에 불과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높은 김정일을 만난 겸에 이것저것 물어본 것에 불과한 것이다.
그 방북은 박근혜가 스스로 노력해서 간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또 그럴 수 있는 성질의 것도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누가 주선했는지, 어째서 국회의원 자격으로 가지 않고 유럽-코리아 재단의 이사 자격으로 가게 되었는지, 그 재단과의 관계는 어떤 것인지, 공적 자격도 아니면서 사적인 자격으로 김정일로부터 특별전용기와 3박4일간의 백화원초대소라는 최고급 대접을 받게 된 근거 등에 대해 알고 싶은 것이다.
3. 방북 후 박근혜는 김정일을 칭찬했고, 그와 함께 6.15선언을 이행할 것이라고 말했으며, 북한이 저지른 수많은 만행들에 대해 굳게 침묵했다.
박근혜는 북에서 돌아오자마자 이렇게 말했다.
“당시 김 위원장은 이산가족 상봉을 위한 상설면회소 설치, 국군포로 및 6·25 전쟁 당시 행방불명된 이들의 생사확인, 금강산댐 공동조사, 남북 축구대회 등의 약속을 했다. 그런데 그 약속이 거의 다 지켜졌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약속을 지키려고 북한 쪽에서 노력을 많이 했다”(2005-06-27 오마이뉴스)
네이버 뉴스에는 이런 기사가 있었다.
박근혜 대표는 사석에서 “(김 위원장과 나름대로의 신뢰가 형성돼 있음을 강조하듯,,) 김 위원장과 말이 잘 통했다. 약속을 잘 지키는 사람인 것 같다”라는 발언을 했으며. 박 대표가 최근 김대중(金大中) 전 대통령의 ‘햇볕정책’에 대해 “남북화해의 물꼬를 튼 것은 의미 있는 일”이라고 평가하고 대북정책에 있어 한나라당의 유연성을 강조하고 있는 데에는 이런 김 위원장과의 개인적 신뢰가 크게 작용하고 있다는 후문이다. 박정희(朴正熙) 전 대통령의 딸은 김일성(金日成) 전 주석의 아들로부터 커다란 환대를 받았다. 박근혜(朴槿惠) 의원이 전한 바에 따르면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박 의원이 제안한 거의 모든 사안에 대해 ‘OK’를 했다는 것이다. 김 위원장이 싫어하는 판문점을 박 의원이 통과하도록 해준 것도 이례적이다.
기자 : 판문점 귀환은 누가 제의했나?
박근혜 : “김 위원장이 ‘뭣 때문에 돌아가느냐. 육로로 편하게 가면 되지’라고 해 이뤄졌다.”
기자 : 김정일 국방위원장에 대한 인상은?
박근혜 : “대화하기가 편한 사람으로 느꼈다. 시원시원하게 대답을 해 주었다.”
기자 : 어떤 선물을 주고받았나?
박근혜 : “김 위원장이 IT(정보통신)분야에 관심이 많다고 들어 우리나라에서 개발한 최첨단 비디오 기기를 선물했다.”
아래는 연합뉴스(2005-06-27) 기사다.
박대표 “김정일은 약속 잘 지키려 노력”
(서울=연합뉴스) 김경희 기자 = 한나라당 박근혜(朴槿惠) 대표가 27일 서울 외신기자클럽 기자회견에서 북한 김정일(金正日) 국방위원장을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언급을 해 눈길을 끌었다. 박 대표는 이날 회견에서 `김정일 위원장을 믿을 만한 협상대상이라고 보느냐’는 질문에,,
“지난 2002년 방북시 김 위원장을 만나 여러 가지 약속을 한 사항이 있었다”면서 “이산가족상봉 상설면회소, 국군포로 생사확인문제, 남북 축구대회 등 약속이 거의 다 지켜졌고, 약속을 지키려고 북에서 상당히 노력했다”고 답변했다.
4. 박근혜는 미국에 가서 김정일을 감싸고 다녔다.
2005년 5월 16-22간 6박 7일의 일정 미국을 방문하여 미국과 우리 애국국민들의 정서와는 반대되는 발언들을 하여 모두를 놀라게 했다. 2005년 5월이라면 미국과 북한 관계가 전쟁 직전의 모드로 악화되어 가고 있었으며, 우리 애국세력은 연일 미국이 북한을 공격해주기를 바랐다.
이 때 박근혜는 미국에 가서 이런 말을 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대화하기가 편한 사람으로 느꼈다. 시원시원하게 대답을 해 주었다.” “김 위원장과 말이 잘 통했다.” “약속을 잘 지키는 사람인 것 같다”
북핵 해법에 대해 박근혜는 이렇게 말했다.
“미국이 생각을 바꿔 지금처럼 북을 몰아치지 말고, 북에 유연성 있게 대하라, 북을 압박하지 말고 고위급을 보내 북에 비전을 제시하라, 그런 일이라면 내가 가서 김정일을 만나 설득해 보겠다. 김정일은 약속을 잘 지키는 사람이며, 말이 잘 통하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미국의 대북 압박 정책에 반대한다. 북한체제를 보장해주고 마셜플랜으로 북을 지원하겠다는 전제 하에 북핵을 포기시켜야 한다.”
이 말은 북핵이 불법무기가 아니라는 의미인 것이다. 이는 당시 김대중의 포괄적 접근과 같은 것이었다.
아래는 2005년 03월 18일자 연합뉴스다.
박대표, 워싱턴 북핵외교 마무리, 헤리티지 재단에서 연설하는 박근혜 대표, 북핵정책서 유연성 발휘 주목
(워싱턴=연합뉴스) 김병수기자 = 제1야당 대표 자격으로 첫 미국방문에 나선 한나라당 박근혜(朴槿惠) 대표가 17일 사흘간의 워싱턴 방문을 마쳤다. 박 대표는 이번 워싱턴 방문에서 도널드 럼즈펠드 미 국방장관, 잭 크라우치 백악관 국가안보 부보좌관, 리사 머코스키 상원 동아태소위원장 등 행정부와 백악관, 의회 핵심인사들을 만나 북핵 해결과 한미동맹 강화를 위한 초당적 외교를 펼쳤다.
눈길을 끈 것은 박 대표가 미국의 심장부인 워싱턴에서 그간의 다소 경직된 대북관에서 탈피, `유연한 대북정책’ 기조를 선보였다는 점이다. 박 대표는 ‘그동안 북핵문제 해법에 있어서 평화적 해결과 북한의 무조건적인 6자회담 복귀를 주장하는 등 원칙적인 입장만 되풀이해왔다. 때문에 각론이 없다거나 미국의 입장에 치우쳐 있는 게 아니냐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며 미국정책을 비판했다.
박 대표는 이번 방문에서 북핵 문제와 관련, 한미 양국정부에 `대담하고 포괄적인 접근’을 촉구했다. 또 그는 “북한이 핵을 포기하면 체제안전, 경제지원, 북미수교 등 무엇을 줄 수 있는 지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제안을 명확히 할 것”을 주장했다. 북핵 6자회담 무조건적 복귀를 주장해온 미국의 입장보다 6자회담 참여를 위한 명분을 먼저 제시하라는 북한의 요구를 상당부분 감안한 발언으로 받아들여진다.
그는 이와 함께 미국에 대해 북한과의 진실한 대화에 나서는 등 전향적 자세를 촉구하면서 비중 있는 의회지도자나 행정부 고위인사를 북한에 파견할 것을 제안했다. 6자회담 틀내에서의 북미 양자대화의 중요성도 언급했다. 이 또한 대미 직접 대화를 요구하는 북한의 입장을 배려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뿐만아니라 박 대표는 자신이 직접 방북할 의사가 있음을 내비치기도 했다. 박 대표는 연설에서 지난 2002년 방북,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허심탄회한 대화를 나눈 사실을 언급한 뒤 “만약 다시 만난다면 저는 핵무장이 북한의 체제보장이나 경제발전에 아무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점을 설득할 것”이라고 밝혔다.
북한판 마셜플랜 등 잇단 대북 유연 발언 제시
이번 방미(訪美)에서 박 대표는 북한에 대해 상당히 유연한 자세를 보여 큰 관심을 끌었다. 박대표는 워싱턴포스트, 뉴스위크 등 미 주요 언론과의 인터뷰, 헤리티지 재단 주최 오찬간담회를 통해 “북한이 핵을 먼저 포기할 경우 체제 보장과 대대적인 경제재건을 위한 ‘북한판 마셜플랜’을 북에 제시하자”고 미국에 제안했다.
또한 “미국이 북핵 문제의 해결을 위해 북한에 대해 대북경제지원과 북미수교와 같은 구체적이고 대담한 제안을 해야한다”며 북미간 직접 대화와 미 고위층의 특사파견을 언급하기도 했다. 컬럼비아대학 연설에서는 방북 의사까지 내비치는가 하면 “김정일 위원장을 다시 만난다면 그를 설득하겠다”면서 “북핵 문제와 관련해 미국에서 보고 듣고 느낀 점을 북한의 김정일 국방위원장에게 가감 없이 솔직하게 전하고 싶다”고 언급하기도 했다.
5. 박근혜, 국보법 대폭 수정하자 했다
국보법 폐지에 반대하는 한나라당은 개성공단에 얼씬도 하지 말라”는 김정일의 호령이 떨어지자마자 곧바로 국보법에 대한 명칭 변경에 동의 한다느니, 정부참칭을 포기할 수 있다느니, 이상한 각도로 돌변했다. 정부참칭을 없앤다는 것은 북괴를 정부참칭집단으로 보지 않겠다는 의미가 된다.
아래는 동아일보 기사다,(2004-09-20)
박근혜 대표 인터뷰 “국보법 정부참칭 조항 삭제 가능”
한나라당 박근혜(朴槿惠) 대표는 “국가보안법 2조(반국가단체 정의)의 ‘정부 참칭(僭稱)’ 조항을 없앨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 . “국보법 명칭도 바꿀 수 있다”고 밝혔다. 박 대표가 국보법 2조의 일부 개정과 법 명칭 변경 가능성을 언급한 것은 이번이 처음으로 향후 국보법 관련 여야 협상에 탄력이 붙을 전망이다. ‘정부 참칭’이란 ‘멋대로 정부를 자처한다’는 뜻이며, 국보법 2조는 반국가단체를 ‘정부를 참칭하거나 국가를 변란(變亂)할 것을 목적으로 지휘통솔체계를 갖춘 단체’로 규정하고 있다.
6. 박근혜, 6.15선언 반드시 실천하자 김정일과 약속 또 약속 했다
아래는 동아일보 기사다,(2002.5.15)
“2002년 5월14일, 박근혜는 동아일보 기자들과의 귀국 인터뷰 중 김정일과의 대화내용을 묻는 기자들에 대한 발언에서 “6.15공동선언도 7.4공동성명에서 그 뜻이 뿌려진 것이다. 7.4공동성명 채택당시 씨앗이 뿌려졌지만 아직 완성이 안됐는데 우리 세대에 결실을 보아 평화통일을 위해 같이 힘을 합쳐 노력하자는 얘기를 했다. 내가 ‘약속하셨죠?, 라고 말하자 김 위원장은 ‘약속합니다’ 라고 말했다”
아래는 연합뉴스 기사다.(2004-06-15)
박근혜 대표, 6.15행사 참석
한나라당 박근혜 대표는 오늘 개혁성향 소장파 의원들과 함께 김대중 도서관 등이 주최하는 6.15 남북 공동선언 4주년 국제 토론회 개회식에 참석할 예정입니다. 그동안 6.15 남북정상회담을 ‘대북 퍼주기 회담’ 이라며 평가절하 해 왔던 한나라당으로서는 이례적인 일로, 박 대표는 이 자리에서 서울을 방문 중인 리종혁 북한 아태평화위 부위원장과 어떤 형식으로든 만날 것으로 보여 주목됩니다.
7. 박근혜를 저간의 시각
아래는 독립신문 기사다.(2010.3.17)
박근혜 평양 나들이 해명해야
박근혜가 대선에 꿈이 있다면, 우선 자신의 정체성부터 솔직하게 밝히고 주변정리를 깨끗이 하는 것이 우선돼야 (webmaster@independent.co.kr)
박근혜가 대통령이 되기 위해 풀어야 할 문제들
1997년 15대 대선 때, 김대중이 김종필과 손잡은 뒤 그 특유의 사기성 웃음을 띠며 내 뱉은 제 일성(一聲)이, “이제 김종필 총재와 손을 잡았으니 내 사상검증은 끝났다”는 것이었다. 김종필과 손을 잡았으니 더 이상 공산주의자로 보지 말라는 협박성과 자신감의 일갈이었다. 김종필, 따로 설명이 필요 없는 사람이다. 나라를 도탄에서 구하겠다며, “반공(反共)을 국시(國是)의 제 일”로 삼고 5.16혁명을 주도한 인간이며, 공산당을 때려잡기 위해 “중앙정보부”를 창설하고 숫한 공산당을 잡아 없앤 그런 철저한 반공 주의자였다.
노추(老醜)의 극치, 김대중과 손잡고 “친북정권(親北政權)”세우는데 일등공신 역할을 톡톡히 한 덕으로 국무총리 감투를 뒤 집어 썼던 국가 배신자가 바로 김종필이란 인간이다. 그래서 절대로 김종필을 용서할 수가 없다. 역사는 그를 역적(逆賊)으로 기록할 것이고, 민족은 그를 배신자로 단죄할 것이다. 역사를 무시하는 자는 반드시 대가를 치러야 하니까. 김종필의 배신으로 친북정권 10년이 이어지면서 겪은 나라의 고통은 대한민국 건국 이후 6.25 다음가는 아픔이었다. 그 폐해(弊害)는 지금도 우리에게 엄청난 어려움을 준다. 이 죄 값을 김종필은 반드시 치르고 가야 한다.
아직도 그 여진(餘震)의 영향권을 벗어나지 못한 상태에서 다음 대선을 위한 기 싸움이 온 나라를 달구고 있다. 다시 말해 현재 권력과 미래 권력과의 싸움이 도를 넘고 있다. 지나치게 높이 오르려는 용은 반드시 다치게 되는데 말이다. 그래서 독선이 지나치면 패망으로 가게 되는 것이다.
지금 박근혜가 그렇다. 용이 되겠다는 꿈을 누가 시비할 수 있겠는가. 아버지용처럼 훌륭한 용이 되어 주었으면 하는 마음에서, 박근혜에 대해 몇 가지 짚어 볼 필요를 느끼는 것뿐이다. 김대중의 사기발언에 온 국민이 지독한 홍역을 치르는 그런 바보짓은 두 번 다시 하지 말자는 것이다. 진정으로 박근혜가 대선에 꿈이 있다면, 우선 자신의 정체성부터 솔직하게 밝히고 주변정리를 깨끗이 하는 것이 우선돼야 한다고 본다.
박근혜, 정말 아리송한 여인이다. 겉으로는 어머니의 우아함을 그대로 들어내 보이면서 속으로는 어떤 권력자도 따를 수 없는 독선과 아집, 그리고 김대중 뺨칠 만큼 술수와 계략이 뛰어난 여인이기도 하다. 영남 판 김대중을 꿈꾸며 깊숙이 들어앉은 그 문턱 앞에서 숨이라도 크게 쉬었다가는 파리 목숨이다. 한 편으론 무섭고, 한 편으론 가엾은 여인이다.
우선 2002년으로 거슬러 올라가 보자.
그 때, 박근혜는 몸담고 있
우리의 박근혜 대표님 화이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