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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양자협상 받으면 게임 진다
[2006-07-05 12:42]
북한이 오늘 새벽 대포동 2호 등 미사일 6기를 발사한 것으로 확인됐다. 이미 예상됐던 일이다. 김정일은 미사일 발사로 과연 무엇을 노리고 있나?첫째,자신을 둘러싼 불리한 국면을 일거에 바꾸고 미국과의 양자협상을 강제하겠다는 의미다. 즉 미 본토를 위협할 수 있는 새로운 대륙간 탄도탄의 등장을 알리면서 대테러전을 벌이고 있는 미국과 벼랑끝 직접 협상을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지금 김정일을 둘러싼 국면은 어떠한가?
그동안 6자회담에서 김정일은 별로 성과를 보지 못했다. 애초에 북한이 6자회담에 참여한 목적은 ▲동북아 구도를 미-일 대 중-러-남-북으로 나눠서 ▲평화적 핵이용권(경수로 제공)을 보장받으며 ▲ 핵보유국으로서의 국제적 지위를 인정받고 ▲ ‘조선반도 비핵화’를 빌미로 한반도평화협정을 체결하여 종국적으로 주한미군 철수를 유도하자는 것이었다. 그것이 현실로 가능하든 않든 방향은 그곳을 향했다.
그러나 북한의 이같은 의도는 미 국무부와 국방부의 대북 전문가들에 의해 뜻대로 관철되지 못했고, ‘중재역’을 자임한 중국의 지원도 김정일의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북핵문제가 계속 진전을 보지 못하자 ‘불량정권의 교체’를 대테러전의 전략적 목표로 세운 미국과, 북한의 스폰서격인 중국간의 고위급 전략대화가 지난해 8월 열렸다. 여기에서 ‘김정일 정권’ 문제가 거론됐다. 미-중간에 ‘북한정권 문제’를 주제로 고위급 대화를 나눈 것은 사실상 처음이었다.
이 전략대화에서 포괄적인 한반도 문제와 북한의 중국식 개혁개방화를 포함한 체제전환(Regime Change)과 체제변형(Regime Tranformatiom) 문제가 언급됐다. 중국 역시 북한의 개혁개방을 원하고 있다.
미-중간 전략대화가 있은 후 중국의 적극적인 노력으로 9.19 공동성명이 나왔다. 공동성명에서 ‘미국은 북한을 침공하지 않는다’는 문구가 들어가 ‘체제보장의 문서화’를 요구한 김정일의 요구는 부분적으로 관철됐다. 그러나 북한은 先경수로 제공을 주장하며 공동성명을 이행하지 않았다.
이 와중에 터져나온 것이 북한의 위조달러, 마약밀매 등에 따른 미국의 대북 금융조치였다. 방코델타아시아(BDA)에서 촉발된 금융조치는 김정일 정권의 급소를 찔렀고, 예상 외의 큰 효과를 보았다.
북한은 이근의 지난 1월 방미와 김계관의 4월 도쿄 동북아시아협력대화(NEACD) 등에서 미국에 금융조치 해제를 잇따라 요구했으나 거부당했다. 또 북한의 불법행위에 따른 미국의 적법적 조치에 관한 한 중국의 중재노력도 한계에 부닥칠 수밖에 없었다.
여기에 유엔 등 국제사회의 북한인권 압박과 재중 탈북자 미 망명을 포함한 북한인권법의 발효, 납치문제에 따른 일본의 경제제재 가속화 등 김정일 정권을 둘러싼 정세는 불리한 방향으로 흘러갔다. 아울러 8년 이상 순한 젖소마냥 김정일 정권에 안정적 수유(輸乳)를 해온 김대중-노무현 정권이 5.31 지방선거에서 참패했다. 김정일로서는 유리한 국면이 하나도 없는 것이다.
또 6자회담 내에서의 미-북 양자회담은 의장국인 중국을 비롯, 한국, 일본 등 주변국에 의해 일정한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다. 김정일은 미국을 직접 협상 테이블로 불러내 당면한 금융조치 문제를 비롯하여 미사일 협상, 북핵 협상, 나아가 종국적으로 주한미군 철수로 귀결되는 미-북 평화협정(한반도평화체제)까지를 계산에 넣은 것으로 보인다.
이 구도는 90년대 초반 제1차 핵위기 당시 NPT-IAEA 체제 하에서의 협상구도에서 벗어나 벼랑끝 전술로 미국과의 양자협상을 유도함으로써 결국 ‘제네바 합의’라는 대성공을 거둔 사례와 유사한 측면이 있다. 김정일은 지금 ‘과거의 성공 사례’를 염두에 두고 미사일을 쏘아 올린 것이다. 사람들은 대부분 변화된 현재를 객관적으로 읽지 못하고 과거의 성공사례에 얽매이는 측면이 있다. 국가대 국가간의 문제도 유사하다.
김정일은 지금 ’10년 전’ 되풀이 원해
둘째, 북한의 내부 사정을 무시하지 못한다.
98년 북한이 대포동 1호를 쏘아올렸을 때도 내부문제가 큰 요인이었다. 김일성 사망 후 94년~97년 북한에서는 극심한 식량난으로 3백만 명이 굶어죽는 대참사가 일어났다.
이 시기 김정일은 중국을 외교적 배경으로 하고 당독재에서 군사독재(선군정치)로 통치의 무게중심을 옮기면서 극도의 억압과 공포정치로 내부를 추스렸다. 식량난에 대한 주민들의 불만을 농업담당 서관히 비서를 ‘미제 간첩’으로 공개총살하고 이미 사망한 그 전의 농업담당(김만금)의 시체를 끄집어내 다시 총살하는 부관참시까지 하면서 공포정치로 체제를 유지했다.
이후 한국 미국 일본 등 국제사회의 도움으로 최악의 식량난에서 벗어나자, 김정일은 98년 광명성 1호를 쏘아올리면서 ‘체제의 건재’를 대내외에 알린 것이다.
물론 현재의 김정일 체제가 식량난 시기처럼 극도로 불안정한 상황은 아니다. 그러나 지난 10년 동안 중국의 개혁개방 성공을 비롯한 각종 외부 세계의 정보가 끊임없이 유입됐고, 이에 따라 김정일에 대한 주민들의 불만이 조금씩 고조되고 있다.
그동안 김정일 정권은 사회주의 강성대국을 계속 강조해왔지만 주민들의 의식은 이미 ‘돈 사상’으로 기울어져 가고 있다. 이같은 상황에서 김정일은 ‘미 본토를 때릴 수 있는’ 미사일을 과시함으로써 주민들에게 ‘대미 결사항전’을 고취하고 ‘사회주의 강성대국’을 강조하면서 내부결속을 다지려는 것이다.
셋째, 김정일은 중국에 대해서도 시위를 벌이고 있다.
김정일은 6자회담이 진행되는 동안 중국에 대해서도 불만을 가져왔다. 중국이 혈맹을 도와주지는 않고 자꾸 ‘중재’하면서 중국식 개혁개방을 요구한다는 것이다. 특히 BDA 금융조치로 중국에 대한 불만은 상당히 컸다. 마카오에서 들어오는 ‘검은 돈’은 김정일에게 중요한 통치자금이다. 이 때문에 김정일은 이 돈이 묶이자 중국을 겨낭하면서 “제3국이 대신 돈을 갚아라”는 식으로까지 막 나갔던 것이다.
김정일은 그동안 ‘중국은 딴소리 하지 말고 경제지원만 하면 된다’는 태도를 보여왔다. 따라서 이번 미사일 발사는 핵문제 등 군사문제는 우리가 미국과 직접 협상할테니 중국은 앞으로 지원만 하라는 의미도 포함돼 있다.
넷째, 일본과의 수교협상, 구체적으로는 식민지 배상금 협상을 재개하자는 의미를 담고 있다.
이번 미사일 발사로 가장 충격을 받은 나라는 일본이다. 98년 대포동 1호를 발사한 후 일본은 북한과의 수교 예비협상에 들어갔고, 식민지 배상금 은 50억달러~100억달러로 거론되었다. 그러나 2001년 일본인 납치문제가 불거지면서 협상은 진척되지 않았다. 지금 김정일의 시야는 98년 상황을 다시 연출하면서 종국적으로 식민지 배상금 문제를 겨냥하고 있다.
양자협상 받으면 핵, 미사일 문제 못푼다
그렇다면 이같은 김정일의 계산법은 성공할 수 있을까.
우선 장거리 미사일 발사는 대테러전을 벌이고 있는 미국을 때릴 수 있다는 점에서 그 충격파는 ‘핵보유 선언’보다 강력한 측면이 있다. ‘핵보유 선언’이라고 해봐야 어쨌든 ‘말 협박’에 불과한 것이었다. 또 당장 북한이 지하 핵실험을 한다 해도 이미 핵보유가 기정사실화 된 조건에서 ‘북한이 제 갈길 갔다’는 정도로 받아들일 수 있다. 어차피 자기 땅에서 벌인 핵실험인 만큼 ‘너희들 핵실험 할 줄 우리는 이미 알고 있었다’는 식으로 의도적으로 무시할 수 있다.
그러나 미사일 발사는 그렇지 않다. 눈 앞에서 벌어진 ‘엄연한 현실’이다. 북한이, 또는 북한의 지원을 받은 테러집단이 언제든 핵탄두를 탑재하여 미 본토를 때릴 수도 있다는 ‘공포감’을 생생히 보여준 것이다. 따라서 미국으로서는 어찌 됐든 눈 앞의 ‘현실’을 ‘해결’하지 않으면 안되는 상황에 맞닥뜨리게 됐다.
김정일이 노리는 것이 바로 이 점이다. ‘당신들 눈으로 직접 대륙간 탄도탄을 보았으니 앞으로 우리와 협상하든지 말든지 알아서 하라’는 뜻이다.
비록 장거리 미사일이 동해상에서 추락함으로써 ‘실패’했다고 간주할 수 있겠지만, 그렇다고 해서 ‘발사 현실’을 무시하기는 힘든다. 또 대테러전을 벌이고 있는 상황에서 분명한 문제해결을 요구하는 미국과 일본의 의회 및 언론의 제기가 잇따라 터져나올 것은 명백해 보인다.
김정일은 미사일 문제가 설사 유엔 안보리에 상정된다 하더라도 무력제재는 어렵고 기껏해봐야 지금까지 받아온 경제제재가 더 추가되는데 그칠 것으로 계산한 듯하다. 오히려 상황이 급해진 미국이 양자회담에 나오지 않을 수 없을 것으로 판단할 것이다.
따라서 만약 미국이 성급하게 북한과의 양자협상으로 미사일 문제를 풀려고 하거나, 핵문제도 6자회담 내 양자회담으로 해결하려는 식으로 나갈 경우, 또 시간이 지나면서 미-북 양자회담을 원하는 중국, 한국의 권유를 받아들일 경우 김정일의 미사일 전술은 성공할 가능성이 있다.
제2 금융조치 발동, 김정일을 협상장으로 끌어내야
북한은 미사일 문제를 제기함으로써 대미(對美) 어젠더 하나를 추가한 것이다. 더욱이 북한은 대포동 2호 협상가격을 2000년 말 미-북 미사일 협상에서 잠정 합의된 ‘3년간 매년 10억달러씩 제공’에서 훨씬 더 높은 가격을 새로 제시할 가능성이 높다. 김정일은 미국과 일본을 상대로 큰 도박판을 벌인 것이다.
이렇게 되면 미사일 문제와 핵문제를 섞어놓고 미국과 담판을 벌이려는 김정일의 전술에 말려들게 된다. 94년 제네바 합의의 재판으로 갈 우려가 있는 것이다. 아울러 북한이 애초에 6자회담에 참여하면서 노린 미-일 對 中 러 南 北 구도분할 전략도 속도가 붙게 된다.
따라서 미국은 미사일 문제를 유엔 안보리로 가져가 김정일 정권 제재가 불가피하다는 세계적인 여론을 불러일으키면서 더 강력한 제2의 금융조치를 실시해야 한다. 지금 김정일이 갖고 있는 카드는 핵과 미사일밖에 없다. 한걸음 더 나가면 서해 NLL 도발 등 좀더 구체적인 군사적 긴장을 불러일으키는 정도인데, 이같은 군사문제는 한-미 군사동맹으로 풀면 된다.
지금 김정일의 가장 취약한 곳은 ‘달러 부족’이다. 따라서 북한을 제외한 5자회담을 추진하면서 김정일 정권에 달러가 들어가는 맥을 끊고 더욱 강력하게 죄어 들어가야 한다. 특히 중국이 김정일 정권을 더이상 지원하지 못하도록 강력히 요구하면서 김정일이 손들고 스스로 6자회담으로 나오도록 해야 한다. 한국은 남북관계를 원점에서 재검토하고 한-미-일 동맹관계를 완전히 복원하면서 김정일 정권에 대한 제재에 동참해야 한다.
아 울러 5개국은 북한문제는 핵과 미사일이 문제가 아니라 결국 ‘김정일 정권 문제’라는 사실을 더 깊이 인식할 필요가 있다. 핵과 미사일 문제는 김정일 정권이 개혁개방 정권으로 교체되지 않는 한 계속 더 심각한 암(癌)으로 진행될 수밖에 없다. 김정일의 살길이 그 길밖에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김정일 정권의 교체라는 포괄적 방식이 구체적으로 진행돼야만 핵과 미사일 문제도 함께 풀리는 것이다.
만약 미국이 미사일 문제를 풀기 위해 북한과 양자협상에 들어간다면 10년 전처럼 실패할 확률은 거의 90% 이상이다.
손광주 편집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