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쳔이지만… 창조론에 대해 뚜렷하게 할 말이 없다는 것이 창피스럽네요

  • #100765
    sk 67.***.13.212 3463

    사실 기독교인 분들 중 교회에 몸만 가는 것 뿐인 분도 많죠. 그분들도 아마 못 믿겨도 그냥 절에 가는 심정으로 가시는 것일 겁니다. 기독교는 기본적으로 말이 안되는 것 투성이니까 거듭나기 전까진 절대로 하나님을 못 믿으시리라 생각됩니다.

    저는 거듭난 크리스쳔입니다. 제게 거듭났다는 말은, 이제 하나님을 모르던 때로 돌아갈 수 없다는 말입니다. 그래도 머리에 든 지식이 산더미같아서 사회생활하는게 조금 걱정이 되긴 합니다. 엔지니어로써 봤을때 창조론은 말도 안되고, 앞뒤도 증거부족인데 반해 진화론은 더 그럴싸하고, 지적창조론도 괜찮은 이론을 제기하긴 합니다만, 성숙도는 잘 모르겠고, 일단 기존 과학계에서 종교적이라고 배척하니 신뢰가 좀 떨어집니다.

    하지만 아무리 증거불충분이라도 믿어야 하고, 이걸 안 믿는 다른사람에게 설명해 보자니 납득시킬 수도.. 이게 수학이라면 공부 더 하라고 하겠지만, 수학도 아니고… 이중 잣대를 가지고 사는게 괴롭습니다.

    창조론… 모세가 얼마나 본대로 적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너무 대충같습니다. 후세 사람들이 납득가게 적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생각해 보았습니다. 그래도 지적창조론 공부는 좀 해 봐야겠습니다.

    • tracer 198.***.38.59

      지적설계론 “intelligent design” 은 현재의 과학에 대한 정의를 바꾸지 않는 이상, 과학이 아닙니다.
      현재 지적설계론은 대부분의 진화는 인정하나 몇몇 진화에 의해 설명할 수 없는 생물 구조(irreducible complexity)는 신이라든가 다른 지적인 개체에 의해 디자인되었다 라는 게 다입니다. 결국 곁가지 다 쳐내고 나면 “we don’t know, god did it” 일 뿐이지요.
      그 이론에 대해 실험을 할 수도 없고, falisifiable하지도 않습니다. 결국 과학이 아니고, 공립 학교 과학시간에 소개해서도, 가르쳐서도 안되지요.

    • 철가방 221.***.192.208

      저는 하나님을 믿지만…교회는 안나가고 있습니다. 세상이 좋아서 입니다. 저 친구들은 불교인,카톨릭신자,이슬람교,등등을 믿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아무튼 친척들과도 종교는 다릅니다. 친구나 친척들과는 종교얘기는 가급적 않합니다.
      이데올로기나 종교얘기는 밑도 끝도 없기 때문입니다.
      단, 통일교,여호아의 증인,몰몬교,JMS,대순진리교,영생교,단군교,남묘호랭개교 등의 사람들과는 접촉을 않합니다. 제자신의 원칙이 있기 때문입니다.

      예전에 ‘사후의 세계’란 책자를 읽었습니다. 그저자는 미국인 심장내과 의사(비종교인)인데…수많은 환자들의 마지막 ‘죽음의 순간’을 곁에서 지켜보다가…그들의 마지막 순간에 ‘하는 말이나 행동’을 보고서야…비로서 종교를 믿게(갖게) 됐다고 하더군요. 자세히 표현하자면, 신앙이 있는 사람의 임종순간과 비신앙인의 임종순간이 확연히 틀렸고, 너무나 극적인 현상(환희와 섬뜻함)이 그에게는 큰 충격과 사후세계가 있다는 것을 간접체험을 하게 되며, 결국 그는 믿음을 갖게 된 것입니다.
      우리는 종교에 대해 선택할 수 있는 ‘자유의지’가 있습니다만, ‘스스로 종교를 선택할 수 있거나 계기가 주어지는 것’도 선택할 수 있는 이의 타고난 운명인 것 같습니다. 물론,제 개인적인 소견이었습니다.

    • tracer 198.***.38.59

      철가방님/
      “통일교,여호아의 증인,몰몬교,JMS,대순진리교,영생교,단군교,남묘호랭개교 등의 사람들과는 접촉을 않합니다. 제자신의 원칙이 있기 때문입니다.”
      –> 어떤 원칙인지 여쭤봐도 될까요?

    • sk 67.***.13.212

      tracer님 의견에 동감합니다만, 오픈마인드가 아닌것처럼 보여서 아쉽습니다. 저의 의도는 많은 생각을 exploit하는 것입니다. 아직은 아무런 주장도 할 준비가 안 되어 있습니다.

      저는 과학은 한도가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과학은 툴을 만들어 내는 것입니다. 이것을 자(ruler)에 비유하자면, 고대 과학이 30cm 자 였다면, 지금의 과학은 1m 자고, 내일의 과학은 100m 자일겁니다. unified theory가 나오지 않는 이상, 무한대를 잴 수 있는 자는 미래에도 나오지 않으리라 생각됩니다.

      과학은 언제나 현상을 보고 원인을 찾아왔습니다. 화학과 물리학이 그렇고, 심리학과 사회학이 그렇습니다. 그 과정에서 많은 추론이 사실처럼 받아져왔고, 많이 고쳐졌지만, 아직 모르는 것이 널려있습니다. 한의학과 양의학의 차이 역시 그렇습니다. 양의학은 한의학의 비과학적인 의술이라 criticize하지만, 틀렸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통계학도 과학입니다. 사회학적으로 볼 때, 통계적으로 증명이 된 수치가 과학적으로 안 맞는다면, 과학 (현재 모델)에 문제가 있는 겁니다.

      그렇다고 creationism/IC가 통계학 레벨로 과학적으로 검증할만한 상대냐고 물으면 두 손 번쩍 들고 항복해야 합니다. 그만큼 creationism은 현재 과학의 틀에선 논의 자체가 안됩니다. leap of faith없이는..도저히 안됩니다. IC는 그런 도저히 나눌 수 없는 원자같은 것이 있고 이건 도저히 나눌 수 없다고 주장할지도 모릅니다. 물리학자는 ATOM을 최소한의 단위로 놨었지만, 지금은 쿼크로까지 내려갔습니다. 이론물리학자는 초끈을 논의합니다. 과학자의 눈에는 (저같은 엔지니어의 눈에도) IC는 당연히 충분하지 않습니다.

      기본으로 돌아가서, 그러면 신이 존재하느냐라는 질문을 해볼 수 있습니다. 존재하느냐 아니냐는 아주 틀에 박힌 흑백논리적인 질문이고, 이런 질문은 하지 않아야 겠지요. 과학적으로 할 수 있는 최선은 신이 존재할 가능성이 있는가 정도일겁니다. 우리는 외계에 생명이 존재하는지는 모르지만, 존재가 가능하다고 있다고 믿습니다. 화성에서 물을 찾는데 혈안이 되어있는 이유는 우리가 물 기반의 생명이기 때문에 물이 있으면 생명이 가능하다라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화성탐사선이 좋은 결과를 보여줬으면 좋겠군요.) 같은 맹락으로 신이 존재할 수 있는가는 뭐 수학과 이론물리학 정도밖에는 접근이 불가능하고, 그들도 다차원 세계가 있다는 것 이외엔 아무것도 증명할 수 없습니다. 현재로썬 God doesn’t exist, God exist 둘 다 지극히 주관적인 주장이라고 생각됩니다. 다시 자 얘기로 돌아가서, 신자는 과학도의 자가 너무 짧아서 이해못한다고 할테고, 과학도는 자로 잴 수가 없는 것은 존재해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신자는 자 비슷한 같은 것(IC)을 들이댔고, 과학도는 중간에 눈금도 없는게 무슨 자냐고 reject합니다.

      공교육 과학에서 creationism을 가르쳐야 하는지는 모르겠습니다. creationism은 분명히 darwinism에 반대하는 양대 세력입니다. 이런 레벨로 봤을때, 사회적으로 받아지는 개념을 정확히 알려주는 것은 공교육의 책임이고, 다른 교과에서라면 거론될 수 있지만, 과학교과서는 아닌 것 같습니다. 과학교과서는 과학적으로 검증이 된 생각만 들어가야 합니다. Darwinism이 과학적으로 얻을 수 있는 최고의 생각이라는 이유에서 과학교과서에 기재될만합니다. darwinism이 총으로 싸운다면 creationism은 고함만 지를 뿐입니다 (멍멍으로 들리겠죠).

      100% 제 의견입니다. (과학적으로 검증하면 10%정도겠죠)

    • done that 66.***.161.110

      PBS에서 방영한 NEWTON을 보셨는 지요?
      우선 저는 수학과는 담을 쌓았다고 말하고요. 저는 수학이 어떻게 생겼났는 지를 모릅니다. 학교에서 배우니까 있는 거라고 생각했는 데, 요새 과학자들이니, 양자역학에 대한 프로그람을 보면서 느낀 저의 생각입니다. 그전에는 자연의 법칙을 공식화시키는 사람을 이해하지 못했고, 불가능하다고 생각하였읍니다.

      자연은 어떻게 생겼났는 지 모릅니다. 무언가가 합쳐지고 반응하면서 지금과 같은 환경을 만들었다고 생각해서 (저절로라고는 밎기지가 않아서) 어딘가에 누군가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걸 종교라고 해도 되고, MOTHER NATURE라고 생각합니다. 단 자연이 무질서하게 보여도 무언가를 기초로 돌아가고 있읍니다. 그걸 공식으로 만들어내는 게 수학자, 물리학자들인 것같읍니다. 뉴톤의 중력설이 이루어지는 과정을 보면서, 인간의 힘이 위대하다고도 느끼고, 무형의 중력에서 공식을 만들어 내는 것과 그과정에서 CALCULUS를 발견한 걸 보면서, 과학이 증명할 수있는 자연의 법칙은 무한하다고 느꼈읍니다.

      그걸 증명할 수없는 CREATION에 의문을 가질 뿐입니다. 또한 누구나 믿음의 자유가 있기에 배우고 싶은 누구에게나 기회가 주어져야 겠지요. 하지만 저는 증명을 요구하는 과학만 주장하는 사람도, 종교룰 배경으로 증명을 무시하는 CREATION도 멀리 합니다. 하지만 증명이 된 SCIENCE는 믿읍니다.

    • 1236 24.***.172.74

      왜 창조론->기독교? 아니면 진화론? 이분법을 적용할 필요 없는듯..전 관심도 없지만 알라가 창조 했다고 믿으면 안되는건지? 구태여 특정 신을 콕찝어서 안믿는다 뿐이지 기독교 안믿는다고 진화론자는 아니겠죠..one nation under who’s God? 이라는 범퍼 스티커가 생각나네요.

    • tracer 198.***.38.59

      sk님/
      우선 신의 존재 여부를 이야기할 때, 중요한 것은 신을 어떻게 정의하느냐 입니다. 그것이 grand mystery of universe정도인지, 아니면 인간사에 간섭하고 기도를 들어주고 자연의 법칙을 마음대로 주무를 수 있는 인격적 신인지를요. 전자의 경우 어떤 과학자도 그러한 신의 존재에 의심을 가지지는 않으리라 봅니다.

      creationism이 진화론과 동등한 무게를 가지고 있고 마치 과학계에서 논쟁이 있는 것 “처럼” 보이게 하는 것이 creationist들의 전략입니다. 실제 과학계에서는 creationist나 intelligent design movement에 대해 전혀 논쟁 대상으로 생각하지 않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과학 활동이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모르는 일반 사람들을 대상으로 마치 큰 controversy가 있는 것처럼 느끼게 해서 혼동을 주는 것이지요. “모든 의견을 학생들에게 소개한다” 라는 등의 그럴듯한 문구를 통해서요.

      하지만, 이 사람들은 스스로 creationism/creation science가 과학이 아니고 과학계로 비집어 들어가지 못한다는 것을 잘 알기 때문에 정치가들을 포섭해서 새로운 법 제정을 하는 과학적이지 않은 방법을 택하는 것입니다. 진짜 과학이라면 논문과 peer review를 통해서 스스로를 입증하겠지요.

      nova의 judgement day라는 다큐멘타리를 추천합니다. creationism/intelligent design 법정 공방을 다룬 내용입니다.

    • sk 131.***.0.103

      trace님, 신격화 자체가 인격을 부여하는 것입니다. 천둥번개를 아무도 신이라고 하지 않습니다. 천둥번개를 다루는 지적인 존재를 신이라고 부르겠죠.

      1236님, 무교도 종교입니다… copyleft처럼 말입니다. 그냥 생각 안하고 중용을 지키며 사는 사람들이 봤을땐 왜 이리 시끄러운가 싶고 귀찮을것입니다. 그런 삶의 방식을 저는 인정합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이것에 왈가왈부 하는 사람들을 인정함이 있었으면 하는 소망입니다. 님은 stakeholder가 아니지만, 일부 사람들에겐 중요한 사안입니다.

    • tracer 198.***.38.59

      sk님/
      무교가 어떻게 종교인가요? 무교는 종교를 가지지 않는 것을 말하는데..

      그리고, IC는 무엇의 줄인 말인가요?

    • sk 131.***.0.103

      잘못 말했군요. 신이 없다고 믿는 것을 무교라 착각했습니다.
      IC는 지적창조론입니다.

    • tracer 198.***.38.59

      sk님/
      지적 설계론(intelligent design)은 들어봤어도 지적 창조론은 처음 들어보네요. 아마도 같은 것이라 생각합니다.

      제우스 신이 없다고 믿는 것도 종교인가요? 그렇다면 크리스챤들은 최소 두 가지 종교를 가지고 있는 것이네요. 야훼를 믿는 종교와 제우스 신이 없다고 믿는 종교.

      신이 없다라고 믿는 것은 산타 클로스가 없다라고 믿는 것과 같은 정도의 믿음입니다. 달리 말하면 신의 존재에 대한 믿음이 없는 것을 말합니다. 믿음이 없는데 어떻게 종교가 될 수 있나요?

    • sk 131.***.0.103

      제가 말한 종교는 믿음과 같은 레벨입니다. 같은 비유로, 나의 몸은 나의 종교다 라는 정도와 같습니다.

      산타와 신을 비교하다니…. 얼마나 종교를 하찮게 보시는지 알겠습니다. 한번도 이 토픽에 깊게 고민하지 않으셨을 것 같습니다.

    • AGEHA 68.***.125.136

      tracer님은 아니지만, ^^ 종교를 하찮게 보는것과는 무관한것 같습니다. 신이 없다고 믿는 사람에게는 신이든 산타이든 어짜피 없는것엔 매한가지겠지요. 없다고 믿는것에 대해서 가치를 부여해야 한다는것이 더 이상합니다. sk님께서는 아마 신 vs 산타클로스 담론에서 그 신을 기독교의 God으로 받아들이신것 같습니다만. 신이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있어서 ‘신’은 기독교의 혹은 다른 종교의 신도 아닙니다.

      전 개인적으로 신이 있다고 생각합니다만. 그 신이 특정종교에 해당된 신인지는 모르겠습니다. 그럼 저는 신이 있다고 생각하므로 = 종교를 가치있게 보는것인가요? 저에게 있어서는 신과 종교는 별개입니다.

    • sk님이 211.***.195.52

      하는 말은 tracer님을 반대하기 위한 반대로 밖에 생각이 안 드네요.
      무교가 종교라니 황당한 논리 전개군요.

      한번도 이 토픽에 깊게 고민하지 않으셨을 것 같습니다.

      ->가벼운 인신공격까지…….제가 봤을 땐 tracer님이야 말로 논리와 근거를 갖추고 이야기를 하는데 sk님이 역으로 근거없이 감정적인 글을 전개하시는 듯 하군요.

    • m….. 72.***.32.163

      sk님이 말씀하신 무교의 의미는 atheist이나 agnostic를 의미하는 것 같은데요. 이것도 지나치면 종교처럼 되죠. 제가볼때는 너무 지나치면 skeptic이 되지 않을까 생각도 합니다.

    • 키히 143.***.138.230

      무교가 종교라는 말은 틀린 말입니다. (당연히도, 무교는 의미 자체가 ‘나는 종교가 없다’라는 말이니..) 종교 = 신념 + 제의를 합쳐놓은 것인데.. 신념도 없고 제의도 없는 경우(교회도 안다니고 믿지도 않아)와 신념은 있고 제의는 없는 경우(믿지만 교회는 싫어서 안 다녀)와 신념은 없지만 제의는 있는 경우(교회는 다니는데 믿는 건 못하겠어) 등 여러가지 상황이 있을 수 있습니다. 무교..라는 건 그 중 어느 것을 표현하는 것일까요?

      sk님이 하시고 싶으셨던 말씀은 ‘무신론(atheism)도 신념이다’라는 표현이었을 텐데, 그렇게 간단하게 말할 수 있는 개념은 아닙니다. ‘신념’이라는 표현 자체에는 ‘검증할 수 없는’ 이란 뉘앙스가 들어있고, 이 부분은 신자와 무신론자들이 ‘(신의 존재와 부재 중에) 무엇을 검증할 것인가’에 대한 의견이 일치하지 않으므로 논란의 여지가 있지요.

      논란의 여지를 제거하고 좀더 정확히 표현하면 ‘무신론도 신학과 같은 류의 철학이다’라는 것이 되는데.. 뭐.. 이건 ‘무신론을 종교학에서도 다룬다’라는 것 이외에 아무 뜻이 아니기 때문에 아무도 공감/반발하지 않습니다. (신자들의 의도와는 다르게 이러한 문장에서는 무신론자들이 반응하지 않습니다)

      제가 인터넷에서 종교 논쟁을 가끔 보면서 느끼는 것은, 개신교인들이 너무나 지식 없이 조금 들은 것을 가지고 떠드느라 오히려 대다수 신자(저 같은..)들의 입장을 난처하게 만든다는 것입니다. 거기에 비신자들의 무지가 더해지면 높은 폭발력을.. -.-;

      너무 sk님만을 깐 거 같아서 이번엔 tracer님의 표현에 대한 수정을 가해드리겠습니다. ‘신이 없다고 믿는 것은 산타가 없다고 믿는 것과 같은 정도의 믿음’이라고 하셨는데, 이것도 분명 어느 책에서 읽은 구절을 읊고 있는 것이라 생각이 됩니다만, 그 의미를 제대로 알고 계신지 궁금하군요. ‘같은 정도’라는 표현이 종교에 대한 몰이해를 나타낸다고 생각됩니다. 산타는 물리적으로 작용하는 데 반해 신은 영적으로 작용하는 것이라서 산타의 부재는 훨씬 간단히 부정할 수 있습니다. 솔직히 크리스마스에 산타에게서 선물 받아 보신 분, 아무도 없잖아요? 저 문장이 원전에서 무슨 이야기를 하고 있었을까 하는 얘기는 하자면 너무 길어지므로 생략하겠습니다만, 저렇게 표현된 문장은 sk님이 말씀하신 ‘무교=종교’ 정도로 곡해된 표현에 다름 아닙니다.

    • tracer 68.***.184.134

      m…님/
      skeptic은 다 나쁜 것 같이 얘기하시네요. ^^
      skeptic이 단지 극단적인 회의주의만 가리키는 것은 아닙니다. skeptical한 마음가짐은 과학과 진리탐구의 근본이 되는 자세라고 생각합니다.

      skeptic.com 참조하세요.

    • 키히 143.***.138.230

      적고 나서 다시 훑어보니 군데군데 설명이 약간 부족한 부분이 있군요. 조금 보충해 넣습니다.

      ‘무교=종교’ 얘기는 사실 종교인들이 ‘무교도 신념이니 나의 신념에도 관심을 가져봐’라는 얘길하고 싶은 건데, 무교인 중에 무신론자(atheist)들은 그렇게 말하는 종교인(성직자를 포함해서)들보다도 종교학에 대해 더 많이 알고 있는 경우가 많아서 오히려 까이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는 무신론자들은 입장의 차이를 알고 있고 종교인들은 입장의 차이를 모르는 데서 발생하는 문제인데요, 무신론자들의 입장은 ‘그래 무신론도 신념이란 건 알겠는데, 너희는 신념을 종교와 혼동하고 있는 거야. 나는, 과학 철학적 입장에서, 가설을 세우고 그 가설이 직접 입증되거나 그 역이 부정되기 전까지는 가설을 신뢰하지 않아. 그에 따라 (아직까지는) 모순 없이 세워진 것이 나의 신념 체계지. 너희는 가설을 일단 믿고 그 가설이 부정되기 전까지 계속 믿으려고 해. 너희들의 신념 체계는 과학적이지 않아.’라고 말합니다.

      여기에 대해 종교인들의 반응은 ‘너희들의 귀납적 신념 체계는 너무 고지식해서 다양한 가능성을 배제하는 경향이 있어. 또한 정신적 영역에는 확대되기 힘들고 말이지. 우리의 연역적인 신념 체계를 동시에 도입해봐. 나름 많은 것을 설명할 수 있고 정신적으로 도움이 많이 된다고.’여야 하는데, 실제로는 어떤지 다들 아실 겁니다. ‘어 그래? 너희도 똑같이 신념 체계란 걸 쓰네. 그래 같은 입장에서 얘기해보자.’

      헉.. 이렇게 무식할 수가.. 라는 반응이 무신론자들에게서 나올법 하죠.

    • 키히 143.***.138.230

      이번엔 산타에 대한 얘길 해보죠.

      보통 산타 믿음을 신 믿음과 동일시 하는 것은 연역적 신념 체계를 비판하기 위해서 사용하는 것입니다. 연역적 신념 체계에 대해 간단히 설명하면 ‘산타가 있어. 착한 애들에게 선물을 주지. 어? 나 선물 받았어. 산타는 정말 있구나’ 라는 식이 되는 것입니다.

      과학이 위치한 귀납적 신념 체계에서 바라보면서 누구나 익숙한 산타의 예를 들면서 연역적 신념 체계를 산타에 투영시키고 그 방향에 있는 종교학도 싸그리 도매금으로 넘기는 방식이죠. 무지에서 기인했다기 보다는 사기에 가까운 방법인데, 아무래도 무신론자들이 복잡한 얘기 하기 귀찮으니 이런 방법을 사용하는 것 같습니다. 실제로 종교는 그런 식으로 단편적으로 구성되어 있지 않고 그 작용도 ‘선물’ 따위로 단순하지 않습니다. (기복 신앙은 제외)

      한국 사람들만 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은 얘기인데, 한의학과 양의학을 비교해서 연역체계와 귀납체계의 차이를 보죠. 한의학은 신체를 기의 순환에 따라 설명합니다. (다분히 연역적이죠) 그리고 그에 따라 침술, 한약(주로 식물) 등을 처방합니다. 양의학은 신체를 분자들의 구조 및 이동으로 설명하며 해부/약물 실험 등을 통해 그에 걸맞는 이론을 가지고 있으며 처방 또한 수술, 화합물 약재 등으로 이루어지죠.

      양의학을 하는 사람들은 침술이라던지 보약이라던지 하는 것들을 믿지 않고 심지어 ‘위약 효과’라고까지 몰아세우지만, 저는 어렸을 때 돌아가신 친할아버님이 실력 있는 침술사였기 때문에 그 효과에 대해서는 체험적으로 알고 있습니다. 일반 병원에 가면 일주일씩 기브스해야 하는 발 삔 것이 침 한방에 바로 낫더군요. 물론 과학적으로는 아직도 설명이 안 되고 있습니다. 아.. 요새 한의사들은 전혀 다릅니다. 조선 말기/일제 시대의 유명한 한의사들은 해방 후 다 무면허로 영업 정지되었고 요새 한의사들은 양의나 마찬가지로 설명할 수 있는 종류의 시술만 하더군요.

      결론은, 물리 세계에 적용되는 귀납 체계와 정신 세계에 적용되는 연역 체계의 상호 보완적인 융합을 이루어야지, 둘을 같은 곳에 놓고 비교해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이부분에 있어 종교가 물리 세계의 이론을 침해하려는 막대한 실수(천동설/지동설 논쟁)를 한 덕택에 둘 간에 대립이 커졌지만요..

    • tracer 68.***.184.134

      키히님 좋은 말씀 잘 들었습니다.
      산타 부분에 대해서.. 제가 중요한 단어를 빼 먹었네요.
      산타의 존재에 대한 믿음과 신의 존재에 대한 믿음은 “저에게 있어서” 같은 정도의 믿음입니다. 저는 말씀하신 영적인 작용이라는 근거 또한 신을 믿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 근거 불충분의 이유로 믿지 않습니다.

      그리고, 공교롭게도 제가 5-6세 때, 잠결에 현관문 앞에 오신 산타 할아버지의 모습을 너무나도 생생하게 기억해서 국민학교 6학년 정도가 될 때까지 친구들과 그 기억을 기반으로 논쟁했답니다. 저에게는 너무나 사실적인 “체험” 이었거든요.
      (물론 나중에 생각해 보면 그것은 유아원 선생님이었을 것입니다. 여태까지 그 산타가 분장한 사람이었다는 것을 제게 알려 준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저의 체험을 부정하실 수 있나요? 만일 그러실 수 있다면, 저도 같은 맥락에서 영적인 “체험”들을 부정할 수 있습니다.

    • tracer 68.***.184.134

      키히님/
      제가 글을 올리면서 산타의 예를 한 번 더 드셔서 저도 좀 추가하겠습니다.

      제가 의미한 산타의 예는 근거에 기반한 것입니다. 산타를 믿지 않는 이유는 산타가 존재한다는 것을 입증할 만한 근거가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산타가 없다는 것을 증명할 수는 없습니다. 인격적 신 역시 그 존재를 입증하는 근거가 절대적으로 부족하고, 구체적으로 이슬람이나 기독교의 신의 경우는 오히려 그 존재의 불가능함을 보여주는 근거가 더 많기 때문에 믿지 않는 것입니다. 하지만 역시 신이 없음을 증명할 수는 없으므로 저에게 있어서 산타가 있을 것이라고 믿는 정도와 인격적 신이 있을 것이라고 믿는 것은 비슷한 정도라는 것입니다.

      말씀하신 연역적 사고에서 garbage in/garbage out의 오류를 말씀드리려고 든 예는 아닌데, 그렇게도 쓰이나 보군요.

    • 키히 143.***.138.230

      tracer님// ‘같은 정도’가 아니라 ‘같은 종류’라는 표현을 쓰시는 게 적당합니다. (열심히 설명 드렸는데도.. 방법은 같지만 위치가 다릅니다) 그렇게 하면 ‘저에게’라는 표현은 안 쓰셔도 무방합니다.

      tracer님은 한의학의 침술도 안 믿으시겠군요. 체험 얘기는 더 해 봐야 소용이 없을 것 같아 반론하지 않겠습니다. 사실 ‘체험적’이란 표현을 쓴 게 오해의 소지가 아닐까 하는데, 제 핵심은 그게 아닌데다가, 체험이 연역 체계와 귀납 체계에 미치는 영향이 다릅니다. tracer님은 귀납적 신념 체계만을 선택하신 분이시고, tracer님의 ‘산타 가설’은 이미 여러 귀납적 정보에 의해 부정되었을 텐데 노이즈로 판명된 ‘산타 체험’을 억지로 가져오시는 이유를 모르겠군요.

      뭐.. 거듭 말씀드리지만 연역적 신념 체계를 선택하느냐 귀납적 신념 체계를 선택하느냐 하는 것은 각자 개인의 선택이고, 장단점이 있습니다. 현대 사회는 분명 귀납적 신념 체계를 이용해서 발전해 왔고, 높은 효율성을 자랑하지만, 사람들이 정말 귀납적 신념 체계 하에서 행복합니까?

      저는 이 세상의 물리적 이론을 모두 알아내는 것보다 사람들이 행복해지는 방법을 알아내는 것이 더 우선이라고 생각하는데, 불행히도 과학은 지극히 비인간적(잔인하다는 뜻이 아니라 인성이 배제된다는 뜻)이라 그런 것에는 관심이 없습니다. 공학은 좀 나은 것 같은데, 역시 수치적인 효율성이 목적이지 인류 사회의 발전/행복과는 거리가 있습니다.

    • tracer 68.***.184.134

      키히님/
      말씀하신대로 같은 “종류”의 믿음이라고 하는 게 더 적절할 것 같네요.

      침술을 아주 안믿지는 않지만 예전보다는 많이 skeptical한 자리로 옮겨가고 있습니다. “기”의 존재에 대해 제대로 입증이 되지 않은 것 같네요. 기의 존재에 대한 근거자료를 알고 계시면 소개 부탁드립니다.

      제가 산타의 체험을 귀납적으로 알게 된 근거들을 통해 부정한 것처럼, 신의 존재도 역시 귀납적인 근거들을 통해 부정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신이 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의 연역적인 argument가 전혀 설득력이 없다는 것을 더해서요. 굳이 억지로 든 예라고는 생각되지 않네요.

      저는 과학이 사람들에게 행복을 더 가져주었다고 생각하고, 진리를 탐구하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생각하는데, 그 부분은 agree to disagree해야겠네요. 세상을 바라보는 주관적인 관점차이니까요.

    • tracer 68.***.184.134

      키히님/
      그리고, 귀납과 연역을 아주 구분지어 생각하시는데, 연역이 온전하고 “유용한” 사고가 되려면 올바른 premise는 필수적이지요. 그 올바른 premise는 결국 귀납적으로 충분한 근거를 쌓아서 사실이라고 믿을 수 있는 정도의 것이어야 하지 않나요? 연역에서 premise가 참이라는 것을 우리가 입증할 수 있는 데는 한계가 있고 결국, 실생활에서 “유용하게” 쓰일 수 있는 납득할 만한 귀납적 근거가 있어야 합니다.

    • 키히 143.***.138.230

      으음.. 한가지 동의는 얻었군요. ‘과학이 행복을 가져다 주었다는 사실에 입장 차이가 있을 수 있다’

      여기서 시작하겠습니다. 제가 아는 역사는 과학이 인류를 망쳐놓았다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정말 입장 차이일 뿐인가요? 제가 너무 비관론적인지 모르겠지만, 과학은 그리스 로마로부터 중세에 이르기까지 귀족들의 소일거리에 불과했고, 고대로부터 근대에 이르기까지 공학은 다수의 적을 제거하고 효율적으로 민중을 지배하는 데 크나큰 기여를 해 왔습니다.

      사실 제가 공학자이긴 합니다만.. 저로서는 저의 연구/개발 활동이 인류 공영에 이바지하고 있다고 말씀드리기 힘들겠군요. 제가 속한 회사/국가의 이익에는 분명 이바지하고 있고, 저는 실상 모순적이고 이기적인 인간이라 그 정도에서 만족하고 있을 뿐입니다.

      일부 학자들은 종교도 공학화하여 우민을 효율적으로 착취하도록 발전해 왔다고 주장하고 그 때문에 종교를 반대한다고 하지만, 사실상 그들이 대안으로 내세우는 과학이란 것은 인성이 배제되는 탓에 종교에 있는 자정작용조차 없기 때문에 대안이 될 수 없습니다.

      순수하게 과학적으로 얘기해서는 우생학(뭔지 아시리라 생각합니다. 모 소설의 열악유전자배제법이라던지 히틀러의 유태인 학살 등의 근거가 되는 학문이지요)적으로 인류의 우량 유전자 개조가 합리적이지만, 그런 것이 정말 행복한 사회인가요? 인체에 관련한 진리를 탐구하기 위해서는 인체 실험이 필수적이고, 과학은 그에 대해 긍정적인 지원을 하겠지만, 글쎄요.. 전 그런 사회에 살고 싶지 않군요.

      합리적이기만 한 과학은 이러한 것에 해답을 주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인간 자체가 비합리적이기 때문에 철저한 합리성에서 행복을 느끼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극단적으로 합리적인 과학에 제동을 걸기 위해 인문학의 필요성을 인식하신다면 종교학도 인정하셔야 할 것입니다. 종교학은 가장 뿌리 깊은 인문학의 부류이니까요. 아 물론 종교학에는 무신론도 포함됩니다. 신의 존재/부재는 아직 증명되지 않았으니까요.

    • 키히 143.***.138.230

      연역적 사고에 대해서는.. 사실 종교에서 기본 원리라는 것들이 너무나 ‘직관적으로 당연’한 것들이 많아 (그리고 과학적으로 ‘비합리적’인 것이라) 귀납적 체험으로 부정되기가 쉽지 않습니다.

      실례를 들자면, ‘신이 존재하며 신은 너희를 사랑한다. 신이 너희의 행복을 위해 말씀하셨다. 1. 신에게 경배하라. 2. 이웃에게 잘 대해라. (거짓말하지 말고 도적질도 하지 말고 간통도 하지 말고 가난한 자들은 보살펴주고) 3. 이 계명들을 잘 지키면 장수하고 행복하게 산다. 0. 죽어서 천당도 가고 영원히 산다.’ 뭐 이정도인데, 여기서 체험으로 부정할 만한 것이 무엇이 있습니까?

      한편, 과학적으로 따지면 이러한 계명들은 철저히 비합리적입니다. 있는지 없는지 모르는 신에게 예물을 바치는 것도 이상하지만, 이웃에게 사랑을 베풀 필요도 없습니다. 나의 이익을 높이기 위해 안 들킬 것 같으면 물건을 훔치기도 하고 거짓말도 적당히 하고 유전자를 널리 퍼뜨리기 위해 간통도 적당히 하고.. 그래야겠죠. 흄이 말하기를 ‘나의 왼발가락의 통증 대신에 인류의 멸절을 택한다고 해도 나의 선택은 (나에게는) 합리적이다’라고 했습니다. 과학적 합리성이란 것은 그런 것이죠. 철저한 가치의 배제. 혹은 상대성에 의한 가치의 역전.

      잠깐 샜는데, 종교는 연역적인 체계를 취할 뿐 아니라 ‘가치’에 대해서 다루고, 과학은 귀납적인 체계를 취하면서 ‘가치중립적인’ 태도를 취하기 때문에 서로 다른 것입니다. ‘가치’란 것은 검증이 쉽지 않기 때문에 연역적인 체계를 취할 수 밖에 없다는 얘기를 먼저 했어야 했는데 그 얘기가 빠져서 약간 혼돈스럽게 해 드렸군요.

      참고로 저는 경전 원리주의자가 아니기 때문에 6일의 창조에서 그 6일이 정확히 60*24*6초를 의미한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따라서 성경의 문자적 해석과 과학의 불합치를 이용해서 반론하려는 시도는 반사.) 그리고 성경에 천동설을 의미하는 구절이 나오긴 하지만 그것이 반론되었다고 해서 기본 원리가 무너진다고 생각하지는 않거든요.

    • tracer 68.***.184.134

      one word, “vaccine”

    • 과학이 211.***.195.52

      인류를 망쳐놓았다?

      제가 이 게시판에서 본 가장 황당한 이야기군요.

      종교(기독교:신/구교 포함)가 세상을 망쳐놓은 것이 더 찾기 쉬울 듯 한데요.

      귀찮게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서 십자군 전쟁이니 이런 것 까지 안 가더라도 가까운 사례로서는 조르쥐 따블유 부쒸라는 맛이 살짝 간 개신교 광신도와 그 분의 충복(식민지 총독)인 이메가라는 분이 있습니다.

    • tracer 68.***.184.134

      키히/
      과학이 모든 미스테리를 풀어줄거라는 scientism으로 제한해서 생각하면 맹목적인 종교와 다를 바 없을 것입니다. dogmatic한 사고가 첨단 기술과 맞물리면 열거하신 비참한 결과들을 낳게 되겠지요. 하지만 과학이라는 진리탐구 방법의 매력은 시스템 적으로 dogma를 거부하는 데에 있습니다. 과학은 인류가 자연현상을 이해하게 해 주는 매우 유용한 수단입니다. 말씀하신 대로 과학은 가치 중립적이고 그것을 어떻게 이용하는 가는 과학 이외의 다른 믿음들(가치관들)이 작용합니다.

      인류는 과학을 발전시키면서 동시에 윤리와 도덕도 함께 발전시켜 왔습니다. 종교가 도덕적인 삶을 이끄는데 도움이 된 것 또한 사실이나, 제 생각에는 인간이 진화를 통해 내재해 있는 도덕적인 성향을 종교는 단지 실용적으로 반영한 것이라 생각합니다. 우매하고 원시적인 도덕률들(종교들이 많이 가지고 있는)에서 인류를 해방시켜 준 데에 과학적 사고가 큰 기여를 했다는 것은 부정하지 못할 것입니다.

    • mn 194.***.126.70

      지적 창조론을 따라가고 다른 기독교적 신학을 따라가다 보면 뭔가 막힐때마다 신의 이름으로 포기하게 됩니다.
      예전에는 많은 기독교인들이 병을 신의 벌로 치부해서 치료는 신에게 의지해야만 한다고 했지요. 예로 폐렴같은 병도 사람은 치료할 수 없는 병이다 라고 포기하였지요. 과학자들은 이에 반해 모르는 부분을 더 파고 들어갔고 많은 부분에서 원인과 치료법을 찾고 해결책을 찾아 왔습니다.

      창조론이나 지적 설계론을 절대적으로 믿으면 과학이나 기술은 발전하기 어렵습니다. 여기 대부분 이런일에 종사하는 사람들인 것으로 아는데 모든것을 신의 섭리로 돌리시나요?

    • 제 생각엔 141.***.206.239

      과학의 기본은 가설을 세우고 그 가설이 타당한지를 검증하는 과정인데, 창조론은 결론을 이미 정해놓고 그 결론에 부합되는 것만 모아서 (사실 결론에 부합되지 않는 것도 많지만 그럴 듯하게 논리를 조립하는 경향이 큼) 결론을 ‘정당화’ 내지는 ‘합리화’시킨다는 점에서 과학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지적설계론도 근본적으로 창조론과 다르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지극히 개인적 생각이지만 창조론에 지나치게 집착하는 개신교인들은 참 stupid하다고 느낍니다. 성경의 모든 내용이 literally 곧이곧대로만 쓰였을까요? 창세기의 서술들을 그냥 상징과 비유로 생각한다면 진화론과 성경은 딱히 배치되는 점도 없고, 진화론이 신앙을 방해하지도 않습니다. 어차피 우주의 생성과 생명의 탄생 및 진화를 당시 사람들에게 설명해봐야 제대로 이해나 했을까요. 고등교육을 받았을 현대의 창조론자들조차도 진화론을 까대면서도 그 내용을 제대로는 이해하지 못하고 있던데요. 창조론자 중에 생물학자나 인류학자는 아직 본 적이 없습니다. 가장 유사 분야가 의학이나 생화학 정도죠.

    • 남부맨 129.***.131.202

      재미있는 얘기군요. 안나온 부분중에 제가 얘기하고 싶은 부분은 과학이나 종교나 진리에 이르는 서로 다른 길이라는 시각입니다. 산정상을 오를때 그 정상에 오르는 방법이 딱 한가지뿐이라고 산사람들이 말하지는 않지요. 그런 의미에서 기독교만이 참된 종교라는 일부 기독교 근본주의자 (한국에 많죠..-_-)나 과학만이 진리에 이르는 길이라는 주장도 (리차드 도킨스의 God delusion에서 이런 의견을 표출했습니다) 서로를 인정하지 않는다는 극단적인 견해입니다. 서로가 서로를 인정하지 않으니 과학과 종교가 충돌하는 양상을 띠고 그래 누가 이기나 보자라는 대결구도를 띄는것이지요. 이 문제는 누가 맞다, 틀렸다라는 식으로 접근하면 죽을때까지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 같은겁니다. 우린 접근방식이 달라라는 태도 이 문제를 접근하면 그나마 대결하는 양상에서 조화를 띄는 방식으로 나아갈 수 있는 가능성이 열리죠.

      어떤 님께서 과학은 연역적체계이고 종교는 귀납적체계라고 하셨는데 그것이 그렇게 딱딱 나누어지는 것은 아니고 오히려 오버랩되는 부분이 많습니다. 예를 들면 다윈의 진화론은 귀납적방법으로 도출한 이론입니다. (자세한 말씀은 안드려도 아실것같다는 느낌이 쓰신 글의 수준으로 보아서 느껴지네요.) 반면에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은 연역적방법으로 도출한 것이구요 (아인슈타인이 이론실험으로 가설을 세우고 그것이 입증되기까지 수십년의 세월이 걸렸습니다.) 그에 반해 종교가 연역적이다라..직관적이다라고 말씀하시는게 오히려 이해가 빨리 올것 같은데요. 또 어떤 님은 과학이 가치중립적이라고 하셨는데 과연 과학이 가치중립적이냐, 주관적이냐 객관적이냐 아니냐는 과학철학의 영역에서 아주 오래된 논쟁거리중에 하나입니다. 대표적인 경우가 폴라니/토마스 쿤의 입장과 칼포퍼의 입장(자세한 것은 아실것 같으니 생략하고 전 폴라니의 personal knowledge의 입장입니다. 결국 과학도 과학자가 하는것이구요 과학이 가치중립적이라는 말은 누구의 과학인가라는 문제로 파고들면 결국은 가치중립적일 수가 없습니다. 예를 들면 광우병의 경우에 있어서 미국도 과학적근거를 가지고 말한다라고 하고 한국사람들도 과학적근거를 가지고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과연 과학이 가치중립적이기만 할까요? 과학역사는 과학이 악용되어 사람을 죽이는 살상무기로 사용된적이 있다는 생생한 교훈을 들려주고 있습니다. (수소폭탄 개발로 히로시마 폭격등등..

      중략하고..춤추는 물리라는 책을 읽어보신적이 있으신지요. 재미있는 것은 현대양자역학의 이론적,실험적 결과들이 이천년전의 선불교의 직관적 사상과의 놀라울정도로 유사성을 띄고있다는 점입니다. 기독교에서도 성경구절들이 역사적 사실들로 으로 입중되고 있다..(e.g. 노아의 방주) 그러고요, 제 룸메이트인 무슬람친구도 알라가 위대한 이유는 실험없이 그 모든 진리를 직관적으로 꿰뚤었다. 현대과학이 입증하고 있다하고 막 저를 설득할려고 그러길래..코란만 읽지말고 딴 책도 좀 읽고그래라고 한마디 해 줬습니다. 먼길을 돌와왔는데 제가 말씀드리고자 하는것은 과학과 종교는 좀 더 깊이 들어가면 서로가 겹치는 부분이 많으면서도 진리에 이르는 다른 길을 가지고 있는 두 얼굴의 한 몸뚱이 ㅆㅑㅁ쌍동이 라는 것입니다. 암튼 재미있게 잘 읽었습니다.

    • 남부맨 129.***.131.202

      제가 원래 나쁜말은 잘 안하는 성격이지만 원글님의 글에 대해 한마디하자면 본인이 거듭난 크리스챤이라고 하시고, 머리에 든 지식이 산더미같아서 사회생활하기 어렵다라고 말씀하시면서 토론하시는 수준이 그정도면 앞으로 한참을 더 거듭나셔야 된다…라고 말씀드리고 싶네요. 지적창조론 공부 계속하시지요. 참고로 지적창조론은 A kind of theory that cannot be considered as a theory입니다. 이런 거창한 (답도 나오기 힘든) 문제제기보다는 왜 같은 크리스챤인 소망교회 장로가 나라를 이렇게 쑥대밭으로 만드는가? 왜 미국 원숭이 크리스챤이 우리에게 과학이라는 이름으로 쓰레기 소고기까지 우리에게 먹이려드는가라는 점에 대해 문제제기를 한다면 좀 멋있어 보이고 답도 좀 나올거 같습니다. 그럼 화이팅..

    • tracer 198.***.38.59

      남부맨님 좋은 말씀 잘 들었습니다.

      과학 자체는 순수하게 가치 중립적이라고 생각합니다. DC님 말씀대로 칼 자체가 도덕적 가치를 지니지 못하는 것 처럼 과학이라는 앎의 수단이 가치를 지닐 수는 없지요. 과학과 종교가 둘 다 인류의 진리 탐구의 두 가지 다른 길이지만, 이제 종교를 과학과 비슷한 수준의 길로 인정하기에는 인류가 너무 많은 것을 깨닫지 않았나 싶습니다.

      한 쪽은 선교와 간증으로 도배하고, 다른 한 쪽은 대화를 포기하게 되는 지난 종교 대화들과는 달리 이번 대화에는 많은 분들이 진지하게 참여해 주셔서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습니다.

      재미있네요, 또 다른 의견들도 듣고 싶습니다.

    • 키히 143.***.138.230

      여러분들의 좋은 말씀들 잘 들었습니다.

      많은 분들이 개신교(혹은 포괄적으로 기독교)에 대해 반감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은 익히 알고 있습니다만, 감정적으로 치우쳐서는 얻을 수 없는 인간 본성에 대한 분석이 필요합니다.

      광우병이 어쩌네 대통령이 어쩌네 하는 이야기들은 독자들을 감정적으로 쉽게 편향시킬 수도 있겠지만, 실상 종교 얘기와는 관련이 없습니다. 광우병을 이끌어낸 소 사육법이 신의 계시에 의해 만들어진 것입니까? 대통령은 종교적인 입장에서 FTA를 진행하고 소고기 수입법에 합의한건가요? 종교를 가진 지도자들이 저지르는 실수/패악은 대부분의 경우 ‘종교의 무용론’을 주장하는 데 쓰여야지 ‘종교의 해악론’을 주장하는 데 확대되어서는 안됩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철저히 비종교적인 입장에서 정치를 하기 때문입니다.

      ‘과학이..’ 님이 예로 드신 십자군 전쟁이나 미국이 관여하는 이라크 전쟁 등도 실상 그 뒤에 경제적/정치적인 알력이 있다는 건 역사 시간에도 배우고 책/신문에도 나오고 하니 알고 계실 겁니다. 천안문 사태나 볼셰비키 혁명/숙청이 종교와는 무관하다는 것을 볼 때 종교는 기껏 일부 케이스의 dogma를 제공해줄 뿐이며, 그러한 dogma는 어떤 형태로든 제공될 수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사용자가 갖다 쓰기 나름이죠). 조선 시대의 노론/소론 분쟁을 보자면 학문조차 대량 학살의 dogma를 제공하는 데 쓰일 수 있음을 알 수 있죠. 공산주의도, 민족주의나 전체주의도, 어떤 이념이라도 집단을 하나로 묶어 사고력을 마비시키며 인류 규모에서의 패악을 끼치는 데 사용될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제가 dogmatism으로 흐른 종교를 옹호하는 것은 절대 아닙니다. 종교는 항상 신의 의도를 개인적으로 파악하려는 노력이 있어야 하고, 따라서 지도자들이 잘못 나가거나 의도적으로 종교를 악한 방향으로 이용하더라도 모든 평신도들이 진실을 파악하고 자성하려는 움직임이 있어야 하는데, 한국 개신교회는 너무나 매너리즘적으로 돌아가기 때문에 그런 움직임이 일부 소수 목사들로 국한된다는 점은 정말 할말이 없을 정도로 부끄러운 현실입니다. 그렇지만 종교 자체가 ‘사람들을 행복하게 하려는 신의 의도’를 파악하여 자신의 삶에 적용하는 개념이라는 면에서 역사 전반에 걸쳐 스스로를 자정해왔고, 그러한 자정은 계속될 것이라고 (계속되어야 한다고) 저는 믿습니다.

      역사 전반에 걸쳐 지극히 당연한 것으로 여겨져 온 노예 제도가 현대에 이르러 결국 사라진 것은 결국 ‘만인은 신 앞에 평등하다’라는 믿음을 가지고 힘썼던 종교인들(마틴루터킹 목사라던지)의 공로가 아닌지요? (물론 인도의 경우 힌두교가 신분제도를 강제하는 역효과가 있긴 합니다만..)

      반면 과학은 자정 능력(?)이 없습니다. 가치를 설정하는 종교에 비해 과학은 가치 중립적이기 때문이죠. (글을 쓰면서 과학, 공학 및 기술을 섞어 쓴 경향이 있는데, ‘과학은 가치중립적이다’라는 전제에는 저도 동의하며, 제가 쓴 단어 중 인류에 폐해를 끼치는 것들은 ‘기술’로 바꿔서 읽어주시길 부탁드립니다.) 좋은 쪽으로도 나쁜 쪽으로도 사용될 수 있습니다.

      ‘(종교보다) 과학(이라고 쓰고 ‘기술’이라고 읽음)이 (더) 치명적이다’라고 제가 얘기한 이유는, 종교는 대부분의 경우 그저 구실인데 비해 실제로 사람들은 (과학이 이끌어낸) 기술에 의해 죽어나가기 때문입니다.
      창과 방패를 예로 드셨지만, ‘철’을 기준으로 생각하면 어떻습니까? 철을 발명해 낸 것은 가치 중립적인 행위일까요? 적을 효과적으로 죽이기 위해서가 아닙니까? 그러한 맥락에서 방패를 고려하더라도.. 전쟁에서 누가 방패만 들고 싸웁니까? 내가 창에 맞아 죽을 기회를 줄이고 한번 막은 틈을 타서 상대방을 다른 손의 창으로 찔러 죽이기 위함이 아닙니까?

      서로 의견 충돌이 있을 때 기껏 주먹 다짐하고 일주일 쯤 지나면 원상회복될 수 있었던 일을, 기술의 발전으로 인해 수족을 잘라낼 수도 있고 사망에 이르게도 할 수 있고, 이제는 지구를 열번도 더 박살내기까지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모든 기술은 이기적입니다. 상대방은 고려하지 않고 자신의 이익만을 추구합니다. 대부분이 상대방을 효율적으로 착취해서 자신의 이익을 극대화하는 방향으로 발전하지요 (상대방은 개인인 경우도 있고 집단인 경우도 있고 자연인 경우도 있습니다). 더해서 제로섬이면 그나마 다행일지도 모르는데 더해서 마이너스 섬인 경우가 더 많습니다. 그건.. 에너지 효율이 100%가 되지 못하고 항상 엔트로피가 증가하는 과학 법칙 때문일까요.. 어쨌든.

      더구나 기술은 대체로 시야가 좁아서 심지어 인간을 유익하게 하려고 의도했던 기술조차 인간에게 위협을 가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플라스틱, 프레온 가스, 온실 효과, 등등.. 예를 더 많이 들지 않아도 인류의 풍요를 바라고 발전시킨 기술들이 도리어 큰 자연 재해로 인류에게 보답하고 있는 경우는 많은 것을 다들 아실 겁니다. 요새 말이 많은 광우병도 실상은 소들에게 단백질을 많이 보충해줄 수 있도록 사료를 혁신적으로 개량한 것(쉽게 말해 동물뼈 갈아넣기)에서 비롯된 거구요. 엄청나게 비윤리적인 방식이지만 기술적으로 볼 때는 전혀 문제점을 느낄 수 없습니다.

      따라서 기술만으로는 안되고 무언가 ‘윤리’를 정할 수 있는 것이 필요한 거죠..

    • tracer 198.***.38.59

      과학의 가장 큰 장점은 바로 자정능력(self-correcting mechanism)입니다.

      과학적 truth는 어디까지나 provisional truth입니다. 현재까지의 근거에 입각한 사실이고, 아무리 튼튼한 과학적 이론이라도 틀릴 수 있다는 것을 전제로 합니다. 과학의 과정은 끝없는 error-correcting이라고 할 수도 있지요. 그래서 더더욱 믿을만한 것이구요.

      absolute certainty는 인간에게 불가능합니다. 하지만, 종교를 비롯한 dogmatic한 이데올로기들은 바로 이 absolute certainty를 주장하기 때문에 많은 불행을 안겨다 주는 것이지요. 이러한 이분법적 사고 방식과 세계관은 수많은 예외와 회색지대가 존재하는 현실 상황에 적용하기 힘들기 때문입니다.

      재미있는 점은 과학을 배격하는 종교인들은 과학적 사실들이 계속 바뀐다는 사실을 마치 과학의 약점인 것처럼 생각한다는 것입니다.

    • 남부맨 129.***.131.202

      키히님이 본인이 크리스챤이라고 말씀해주시고, 같은 크리스챤한테 믿을려면 무조건 다 믿어야지..이 사이비야 라고 공격받으실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지적설계론은 근처에도 가지말라고 솔직히 말씀해 주시는 것은 참 보기 좋았습니다. 하지만 이번 글은 좀 납득이 안가네요. 과학에는 자정작용이 없기때문에 윤리적 기능이 있는 종교가 필요하다는 말씀이 하고 싶으신건가요? 종교만큼 인간의 역사와 오래하지는 않았지만 과학도 이젠 진화론자들이 신의 무용성을 주장할만큼 발전했구요, 과학에도 과학윤리, 과학철학등 복잡, 세분화 되었기때문에 자정작용때문에 종교가 필요하다는 말씀은 너무 단순한 시각으로 과학을 바라보시는 거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무엇보다도 tracer님이 말씀하신대로 자정능력으로 따지자면 오히려, 과학이 종교보다는 훨씬 더 앞서는거 아닐까요? 일단 눈감고 믿어봐, 이건 무조건 절대진리야라고 말하는게 과학에서는 통하지 않기때문이죠.

      또 종교보다 과학이 치명적이다라고 말씀하셨는데 이건 쉽게 반박될 수 있는 순진한 주장입니다. 역사가 오래 ㄷㅚㅆ기도 하지만 종교는 지배계층을 유지하는 이데올로기로 오용되기도 하고, 종교전쟁을 통해서 엄청난 사람이 죽어나간 사실처럼, 과학이 오용된 사례보다 훨씬 더 많습니다. (과학전쟁으로 엄청난 사람이 죽어나갔다는 신문기사 보신적 있으세요? 최첨단 과학은 인간의 수명연장과 불치병치료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오히려 과학은 이성적 영역을 (인식론, 형이상학), 종교는 감성적 영역을 (존재론, 윤리학)과 밀접하며 서로를 보완해주는 관계라고 말씀하시면 오히려 이해가 빠를것 같은데요.

      안타까운 점은 종교가 지금도 정치의 시녀역할을 하고 심지어는 과학도 가끔 강자가 약자를 찍어누르는 수단으로 이용된다는 것이지요. 그래서 예를 든 것이 광우병이지요. 지금 한국의 일부 종교단체가 광우병에 대해서 하는 설교나 미국이 과학이라는 이름으로 내세우는 주장들을 접해보신다면 아실것입니다. 아실만한 분이시니.

      참고로 철저히 비종교적인 입장에서 정치를 한다는 주장도 순진하신 주장입니다. 부시는 기독교이고 미국보수 Republican 크리스챤의 압도적 지지끝에 간신히 대통령이 된 사람입니다. 그런 사람이 자기 지지계층의 이익과 눈치를 안 볼수는 없겠죠. 자기나라 수도를 하나님께 봉헌하겠다는 어느나라의 대통령은 말할것도 없지요. 합리적인 자세를 가지신 크리스챤 이신만큼 과학에 대해서도 너그러운 자세를 가지시면 좋겠네요.

    • 키히 118.***.214.137

      으음.. tracer님과 남부맨 님이 여러가지 보충 반론을 해 주셨는데, 제가 했던 얘기들과 약간씩 핀트가 안 맞아서 설명을 어떻게 해드려야 할지 모르겠군요. 저도 글을 쓰면서 명확한 정의 없이 용어를 사용한 부분이 있어 그부분 때문에 혼란스럽게 해 드린 영향이 있는 것 같습니다. 내용이 좀 많긴 하지만 용어들이 조금씩 재정의되는 것에 유의하시면서 제가 쓴 부분만 차근차근 다시 읽어보시면 제 의도를 파악하는 데 조금 보탬이 되리라 생각이 듭니다.

      일단, 과학이 자정작용이 없다는 표현은, 그 자체로 잘못된 표현이라고 인정하겠습니다. 제 의도는 과학이 자기 이론을 재수정하려는 힘이 있느냐 없느냐 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과학은 물론 자신의 엄밀성/무모순성에 대한 자정작용이 있습니다만..). 저는 과학의 발전 방향이 (혹은 그 목적이) 인간의 행복과 관련이 없기 때문에 윤리적인 자정작용이 없다는 뜻이었습니다. 근본적으로 과학이 순수성을 유지하여 엄밀성을 지속적으로 추구할 수 있는 이유가 인간과 관련된 가치 체계를 갖지 않는 데서 기인하기에 이는 피할 수 없는 부분입니다. 자연선택이 아닌 인위선택에 의한 유전자 선별이 후손 개체의 능력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과학적’인 자정작용을 거쳐 엄밀한 결론을 얻어냈다고 칩시다. 그 결론은 아마도 좋은 유전자를 가진 사람들에게 혜택을 주는 것이 후손의 발전에 좋다..라는 우생학의 형태가 될 텐데, 누가 봐도 비윤리적인 결론이지만 과학은 그것을 옹호합니다. 뒤집어 생각해보면, 인간은 유전학의 힘을 빌어 식물을 개량하고 동물을 개량하여 사용해오고 있습니다만 자기 자신을 개량하는 것은 꺼리고 있습니다. 왜 이런 모순된 일이 벌어집니까? 물론 최근에 들어서는 점차 스스로에게도 유전학을 적용하려는 움직임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저는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하지만 과학적으로만 보면 해볼만한 것 아닐까요?)

      과학윤리 및 과학철학이 그 역할을 담당할 것이라 하셨는데, 가치체계 없이는 당위성을 부여할 수 없다는 면에서 과학철학 등은 ‘왜 그래야 되는지 설명할 수는 없지만 이렇게 하자’는 협의에 불과하게 됩니다. 왜 인간복제를 하지 말아야하는지에 대한 설명을 과학철학이 할 수 있습니까? 또한 기본적으로 과학철학 등이 논할 수 있는 주제는 과학기술의 적용에 국한된다는 점을 아셔야 합니다.

      과학 전쟁이라는 단어까지 쓰신 것은 제가 도중에 부연설명을 드렸음에도 불구하고 앞쪽에서 얘기했던 것이 너무 임팩트가 강해서 제대로 보정이 안되는 경우인 것 같군요. 제가 말씀드리고 싶었던 것은, ‘기술 발전의 목적은 효율적인 착취이다’라는 것과 그러한 목적이 전쟁으로 훌륭히 수행될 수 있기 때문에 대부분의 경우 전쟁은 기술과 결탁하여 기술발전을 유도하게 된다는 점입니다. 다시 말씀드려 종교에 의해서가 아니라 ‘종교의 껍질’을 쓴 인간의 ‘칼’에 의해서 사람들이 죽어나가는 것이며, 인간은 애초부터 타인을 죽여서 이득을 취하기 위한 의도로 ‘칼’을 갈아온 것이라는 점이요.

      종교가 없어지면 종교 전쟁은 없었을 것이다는 주장이야말로 순진한 생각이라고 말씀드리겠습니다. 정말로 중세가 카톨릭 체제가 아니었으면 십자군 전쟁이 없었을 것이라 생각하십니까? 개신교/이슬람의 충돌에 의해 미국과 중동이 대립하고 있는 것이라 생각하십니까? 종교는 허울 좋은 구실에 불과하며 이것을 제거하더라도 어떤 다른 것으로도 교체될 수 있습니다. 때로는 국가로, 때로는 민족으로, 때로는 이익 보장이나 위험 감소 주장으로..

      제가 ‘비종교적’이란 표현을 쓴 것도 ‘그들의 종교는 껍데기이다’라는 의미입니다. 남부맨님이 말씀하신 ‘지지계층의 이익’이라는 것이 정확히 무엇을 지칭하는지 잘 모르겠지만, 그것이 ‘종교적 이익’은 아닐 것 같습니다. 이슬람을 믿는 중동 민족을 날려 버리는 것이 부시 지지층의 소망은 아니겠지요? 교회 선교에 국가적인 지원을 하는 것이 우리 대통령의 정책은 아니지요? 사실상 카테고리로 묶여 있을 뿐이지 종교 집단이 종교적 이득을 위해 정치적인 행동을 취하는 일은 드뭅니다. 따지고 보면 종교와는 상관없는 개인적/단체적 이득에 불과합니다. (기껏 들자면 종교 단체의 면세 혜택.. 정도인데, 저는 과세를 주장하는 쪽이라, 하하, 공격을 피할 수 있겠군요.)

      >> 오히려 과학은 이성적 영역을 (인식론, 형이상학), 종교는 감성적 영역을 (존재론, 윤리학)과 밀접하며 서로를 보완해주는 관계라고 말씀하시면 오히려 이해가 빠를것 같은데요.
      이부분은 저도 동의하며 앞에 제가 쓴 글에도 설명된 부분입니다. ‘과학이 가치 중립적인 것에 관심을 갖고 종교는 가치 체계에 관심을 가진다’라고 말씀드렸습니다. 한 문장으로 요약되어 있지 않고 흩어져서 설명이 되어서 요지 전달이 좀 부족했던 것 같네요.

      으음.. 저는 종교를 가진 과학기술인으로서, 과학에 대해서도 비판적인 자세를 가지고 있고 종교에 대해서도 비판적인 자세를 가지고 있습니다. 어느부분이건 스스로에게 비판적인 자세를 유지해야 깨끗함을 유지할 수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남부맨님은 종교와는 상관이 없기 때문에 제가 과학에 대해 거는 비판만을 아프게 느끼시는 것 같은데, 제가 과학에만 비판을 가하는 것은 아닙니다. 저는 둘다 견제와 보완이 필요하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지적 설계론 같은 것은 제대로된 융합이 아닙니다. 인터넷에 그런 글이 공격적으로 올라오지 않아서 그렇지 많은 신자들(주로 과학자)도 허황된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모든 유종교 과학자들을 비이성적 과학자로 매도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

    • 키히 118.***.214.137

      쓴 글을 읽어보니 또 고칠 데가 많군요 ㅠㅠ 제대로 정리되지 않은 글이 한번 쓰이면 계속 남는다는 점이 인터넷 쓰레드의 문제점인 것 같습니다.

      마지막 댓글의 ‘종교적 이익’이라는 부분에 오해의 소지가 있어 조금만 덧붙입니다.

      일단, 그 전 글까지 얘기하던 것은 신앙인인 지도자들이 ‘신의 (깊은) 뜻을 헤아리지 않는다’는 점에서 그들의 종교는 허울에 불과하다는 얘기였습니다. 마지막 댓글의 ‘종교적이익’ 문단은 덧붙인 설명으로서, “더구나 그들은 ‘종교적 이익’을 위해 정치행동을 하는 경우도 드물다..” 라는 것이 해당 문단의 요지입니다.

      이전까지의 ‘비종교적’이란 표현는 ‘비신자적’이란 표현으로 바꾸는 게 더 깔끔하겠군요. 신의 뜻(종교적인 해석을 얘기하는 것이 아니라 깊은 뜻)을 고려하지 않는다는 점에서요. 그리고 뒷부분의 ‘종교적 이익’ 부분은 종교적 이익을 고려하는 것이 옳다는 뜻이 아니라 종교적 이익을 고려하는 경우도 별로 없으니 걱정하지 말라는 의미였습니다.

    • tracer 68.***.184.134

      키히님/
      우생학에 대한 언급에 또 태클 걸겠습니다. ^^

      과학이 말해주는 것은 좋은(무엇이 좋은 성향이냐도 arguable한 것이지만) 종자들의 사람들을 교배했을 때 우량한 인종이 나올 수 있다. 라는 사실까지만 입니다.(그것도 사실인지 아닌지는 좀 더 살펴보아야 하겠습니다만,) 그 사실을 옹호하느냐 그 사실을 비윤리적으로 생각하느냐는 과학이 다룰 수 있는 영역 바깥입니다.

      즉, 과학은 스스로 어떠한 사실을 “옹호”하거나 “비난”할 능력이 없습니다. 과학은 어디까지나 자연현상의 사실을 밝혀내는 도구에 불과하기 때문입니다. 가치중립이라는 말에는 동의하면서 과학이 특정한 이론을 옹호한다고 말하는 것은 모순입니다. eugenics를 연구하는 과학”자” 는 그 사실에 대해 가치를 부여할 수 있겠지요. 그 가치에 관한 이야기를 하는 게 과학 윤리입니다.

      “왜 이렇게 해야 하는지 알 수 없지만 이렇게 하자”라는 것은 dogma이지 바람직한 윤리나 철학이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윤리학에도 마찬가지로 그 주장을 뒷받침할 만한, 납득할만한 근거를 제시해야만 설득력이 생기는 것입니다.

      과학 윤리는 과학의 수단을 통해 우리가 할 수는 있지만, 윤리적인 이유에서 자제해야 할 것, 해도 될 것들을 구분하는 분야입니다.

    • 키히 143.***.138.230

      tracer님/
      ‘과학이 옹호한다’라기보다는 ‘과학이 그러한 주장의 토대로 사용된다.’라고 써야겠군요. 과학은 행동의 주체가 될 수 없으니까요. 이런 식의 답변을 원하신 것입니까? 단어 하나하나에 계속 꼬투리를 잡는 이유를 모르겠군요.. 제가 설명이 부족해서겠지만, 말하고자 하던 의도에서 계속 빗겨나가도록 유도하고 계시지 않습니까. (아니면 의도는 대충 파악하셨고. 알면서 그냥 추가로 꼬투리만 잡으시는 건가요?)

      상황을 설명을 드려보죠.
      키히: 과학은 자정능력(도덕적 무결성)이 없기 때문에 윤리적인 뒷받침이 필요하다.
      tracer님: 과학은 자정능력(무모순성)이 장점이다.
      키히: 아 제가 말한 자정능력은 도덕적인 부분을 얘기하는 거다. 예를 들어 과학은 비윤리적인 주장을 옹호한다(옹호하는데 쓰일 수 있다).
      tracer님: 과학은 옹호나 비난을 할 수 없다. 주체가 아니라 도구이기 때문이다.

      네 맞습니다. 하신 말씀 다 맞습니다만, 말씀하시는 부분들이 제 주장의 핵심 내용이 아니지 않습니까..


      그리고, 윤리 부분은, 애시당초 ‘윤리’라는 것이 납득할만한 과학적 ‘근거’에 의해 설득하는 것이었나요? ‘과학윤리’라는 것이라 하더라도 말입니다. 제가 처음 말씀드린 ‘윤리는 귀납적으로 도출되기보다는 연역적으로 제시된다’는 주장에 tracer님께서는 동의하지 않으시는 것이었군요. (그래서 계속 대화이 이렇게 겉도는..)

      과학 윤리에서 배아세포 연구를 하지 말아야 할 근거를 어떻게 들고 있는지 궁금합니다. 진화론적 관점에서 볼 때는 침팬지와 인간의 차이는 아주 크지는 않기 때문에 (침팬지도 인간처럼 사고를 하고 사회를 이루고 감정을 느낀다고들 하죠) 유인원을 대상으로 하는 실험과 인간을 대상으로 하는 실험을 어떤 ‘과학적인 근거에서’ ‘윤리적으로’ 구분할 수 있을까요?


      붙여서, 쓰다가 과학의 중립성에 대해 생각난 것을 추가로 말씀드리겠습니다. 이부분은 전에 얘기하던 주장 중 일부를 포함하는데, 역시 정제되지 않았으니 단어하나하나에 집중하지 마시고 전체 맥락을 살펴봐 주시죠.

      과학의 언어는 분명 가치 중립적이지만, 과학의 전반적인 구성이 가치중립적으로 되어 있다고 생각하는 건 착각입니다. 모든 것에 대해 모든 것을 알아내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에 인류는 일부 분야를 선택해서 연구할 수 밖에 없습니다. 과학의 각 분야는 인간이 연구하기로 결정해서 선택된 것입니다.

      선택 기준이 무엇이었을까요? 일부/전체의 인간에게 유익하거나 유용한 분야들(이라고 판단된 것들)입니다. 이 경우 일부에게 유익하다는 것들은 극단으로 가면 자기 만족에 불과한 소일거리성 연구까지 갈 수 있고, 이 경우는 별로 문제시될 것이 없습니다만.. 일부에게*만* 유용한 것들로는 군사과학기술을 대표적인 예로 들 수 있겠습니다.

      과학의 분야 선택 자체가 일정한 가치 판단 체계하(기득권자들의 이득?)에서 선택되었을진대 저같으면 ‘과학은 순수히 가치 중립적이다’라고 순진하게 말할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 tracer 68.***.184.134

      키히님/
      글쎄요, 잘못 사용하신 단어들이 제 생각엔 핵심에 가까운 말들이라 생각했습니다. 과학의 가치중립에 대해 이야기하는 중에 과학이 어떠한 가치를 옹호한다는 말이 그렇게 minor한 실수일까요?

      앞서 말씀드린대로 어떠한 윤리 statement라도 귀납적으로 정당한 근거가 바탕하지 않으면 아무리 연역적 사고가 옳아도 쓸데 없게 됩니다. (garbage in/garbage out)
      그러므로, 저는 과학은 귀납적, 윤리는 연역적이라는 이분법적인 사고방식에 동의할 수 없습니다.
      연역적 사고는 자기 스스로만으로는 옳게 사용되지 못할 수도 있다는 말이죠. 연역적 사고에서 전제가 true가 되려면, 귀납적으로 확인된 정당한 근거가 있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동양인은 서양인에 비해 신체적으로 열등하다.
      a는 동양인이고 b는 서양인이다
      그러므로 b는 a보다 신체적으로 우월하다.

      위의 연역적 사고의 참/거짓 여부는 첫번째 전제가 true이냐 false이냐를 따져보아야 하고, 그것은 귀납적으로밖에 알아볼 수 없습니다.

      배아세포 연구를 반대하는 주장이 어떠한 근거를 가지고 있나 보아야겠죠. 일반적으로 반대하는 입장은 종교적인 이유인데, 단지 150개의 세포로 이루어진 수정란에 영혼이 있느냐 없느냐가 이슈이지요. 그 근거를 확인하는 데에는 연역적 사고는 별로 쓸데가 없습니다. 만일 그 이슈가 확인이 되면(영혼이 있다, 혹은 없다) 그 다음부터는 연역 체계가 가동되겠지요.

      다시 말씀드리지만, 어떠한 종류의 과학실험을 하느냐 선택하는 것은 그 실험의 대상이 intrinsic한 가치를 내재한 것이 아니라, 보는 사람의 입장에서 우리의 이익 여부에 따른 가치를 부여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일부에게”만” 유용한 것들이 그”것”이 가치를 가지고 있는게 아니라 보는 사람의 이해관계 때문에 가치가 부여된 것이지요.
      같은 메스를 의사가 사용할 때와 강도가 사용할 때 가치가 다른 것 처럼요.

      과학은 추상적인 이데올로기가 아니라 방법입니다. 자연의 현상을 초자연의 개입 없는 설명을 찾기 위한 수단입니다.

    • tracer 198.***.38.59

      배아줄기 세포나 유인원을 대상으로 한 실험에 대해 조금 더 덧붙이면..

      배아줄기세포에 대해 첨연한 대립이 이루어지는 이유는 그 조그마한 150개의 세포 덩어리를 사람으로 간주하느냐 아니냐하는 의견의 차이입니다. 그 의견이 하나로 모아지지 않기 때문에 논쟁이 끊이지 않는 것이지요. 그러므로, 배아줄기세포 연구 자체에는 특별한 가치가 없습니다. 과학은 단지 이 연구의 잠재성과, 이 연구에 필요한 사항(인간 수정란을 사용해야 한다는)을 알려줄 뿐입니다.

      “유인원을 대상으로 하는 실험과 인간을 대상으로 하는 실험을 어떤 ‘과학적인 근거에서’ ‘윤리적으로’ 구분할 수 있을까요?”
      –> 바로 말씀하신 과학적인 관찰 결과인 “침팬지도 인간처럼 사고를 하고 사회를 이루고 감정을 느낀다”라는 사실이 침팬지를 대상으로 하는 실험이 비윤리적이라는 입장에 근거를 실어줄 수 있습니다. 그러한 근거 없이 직관적으로 된다, 안된다를 결정하는 것이 윤리나 철학이 아니지요. 앞서 말했듯, 근거없는 연역은 수학에 그칠 뿐입니다. 인간 사회에 적용할 수 있는 윤리가 될 수 없지요.

      그렇게 귀납적이고 과학적인 방법으로 알려진 사실들이 근거가 되어 동물실험에 반대하는 윤리가 형성되는 것입니다. racism이 과학적으로 밝혀진 사실(race는 only skin deep)에 의해 반대되듯이 말이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