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수성명] 이명박, 책임이다.(II)

  • #100621
    ddanzi 208.***.157.15 19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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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총수성명] 이명박, 책임이다.(II)

    2008.5.15.(목)
    딴지총수

    2007년 10월 4일, 이 여성이 사망했다. 인간 광우병으로.

    발병 전 버밍험 대학 지리학과 학생이었던 그녀 이름은 엘리자베스 스미스(Elizabeth Smith). 광우병으로 사망한 162번째 영국인이었던 그녀의 죽음을 영국의 모든 언론은 대대적으로 보도했다. 가장 최근의 광우병 사망자였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23세에 불과했던 그녀가 아름다웠던 데다 최초로 광우병 진단을 받은 날이 바로 자신의 21번째 생일날이었으며 우등생이었던 그녀는 광우병 진단 바로 다음 날 휴학해 다시는 학교에 발을 들여놓지 못했다거나 하는, 소위 기사거리가 되는 드라마틱한 요소를 갖췄기 때문만도 아니었다. 그녀의 죽음에는 훨씬 더 큰 상징성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녀의 아버지 로저 스미스(Roger Smith)는 영국 동부해안 지방인 서포크(suffolk)에서 영국국교회의 교구목사를 지낸 사람이었다. 그리고 그의 교구민 중에는 단순히 신자를 넘어 그와 오랜 친구 사이이자 그 지역의 하원의원, 존 검머(John Gummer)란 정치인이 있었다. 모든 언론이 나선 건 바로 이 존 검머 때문이었다.

    지금부터 그 이야길 해보자.

    1990년 영국

    그녀가 죽던 날로부터 17년 전인 1990년 5얼 6일, 당시 농수산식품부장관이었던 존 검머는 자신의 지역구인 서포크의 한 행사장에 전국 언론을 다 불러 모았다. 광우병이 확산 일로에 있던 1990년 영국사회의 최대 이슈 중 하나는 광우병이 과연 인간에게 전염되는 질병인가 하는 것이었다.

    그 날 그가 언론들을 불러 모은 건 농수산식품부 장관으로서 바로 그 우려를 불식시키기 위한 목적에서였다. 그리고 그가 대중의 우려를 불식시키기 위해 택한 방법은 카메라 앞에서 그의 네 살배기 막내 딸 코델리아( Cordelia)과 함께 쇠고기 햄버거를 먹이 보이는 것이었다.

    이 장면을 연출한 후 카메라 앞에 다시 선 그는 과학자들과 정부는 광우병이 인간에게 전염되지 않는다는 걸 보증하며 자신은 물론 딸에게도 계속해서 쇠고기를 먹일 거라면서 마지막에 이렇게 덧붙인다.

    there is no need to worry. you can’t do anything more than that.

    걱정할 필요가 없어요. (안전하다는 걸 입증하는 데 내가 이렇게 먹고 자식에게도 먹이겠다는 데) 이 이상 뭐가 필요하겠어요.

    당시 BBC 화면 보기

    바로 다음 화면에는 존 검머가 언급한 소위 과학자를 대변하는, 도널드 애치슨 경(Sir Donald Acheson)이 등장한다.

    의료사회주의라고까지 불리는 영국의 의료는 국립보건원- NHS(National Health Service)이 운영하는 국영 시스템이다. 모든 병원이 국유화되어 있고 이를 통해 전국민이 무상으로 진료를 받는다. 당연히 모든 의사들도 여기에 소속되어 있다. 도널드 애치슨 경은 당시 이 시스템의 수장(Chief Medical Officer)이었다. 그러니까 영국의 모든 의사를 대표하는 동시에 영국 의료정책의 방향을 정하는 데 있어 가장 권위 있는 자문위원으로, 영국에서 인간의 질병에 관한 한 그 이상의 공식적인 권위는 없다 보면 된다.

    그런 그가 방송에 나와 이렇게 말했다.

    Beef can be eaten safely by everyone, both adults and children, including patients in hospital

    쇠고기는 누구나 안전하게 먹을 수 있습니다. 성인이든 아이든 병원의 환자까지도 포함해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몇몇 학교에서 학교급식에 영국산 쇠고기 사용을 금지하자, 딸에게 햄버거를 먹인 날로부터 열흘 후인 1990년 5월 16일, 존 검머 장관은 농수산식품부 장관 자격으로 다시 한 번 공식성명을 발표한다.그 성명서엔 그 이후 존 검머를 언급할 때면 항상 따라다니는 다음의 한 줄 문장이 포함된다.

    British beef is perfectly safe to eat.

    영국 쇠고기는 완벽하게 안전하다.

    영국정부가 이렇게까지 인간광우병의 위험성에 대해 과소평가했던 이유는 무엇일까. 1997년 노동당이 집권하자, 가장 먼저 했던 일 중 하나가 바로 광우병조사위(The BSE Inquiry)를 발족시키는 것이었다.

    우리나라의 대법원장에 해당되는 수석재판관 필립스(Lord Chief Justice Lord Phillips)가 이끈 이 조사위는 2년 반 동안 2천7백만 파운드, 우리 돈으로 500억이 넘게 소요된 광범위한 조사 끝에 630명의 증인과 333명의 증언을 기반으로 4000페이지에 달하는 일명 ‘필립스 보고서'(Phillips Report)를 2000년 10월 26일 발간한다. (PDF 전문 보기)

    이 보고서에 따르면 보수당의 영국정부는 사태의 초기부터 정책의 방향성을 영국 축산업의 자신감을 유지하는 데(“maintain confidence”) 둔다. 1987년 발발 초기부터 동물성사료를 광우병의 원인으로 간주하는 가설을 이미 수립하고도 영국 정부는 이 정보의 유포를 엄격히 제한했다.

    영국에서 그러한 질병이 발견됐단 뉴스가 퍼질 경우, 영국 축산물 수출에 심각한 타격을 주고 그로 인한 정치적 파장을 염려했기 때문이었다. 한 마디로 공공의 안전보다는 산업과 정치의 논리가 앞섰던 것이다.

    실제 그런 영국 정부의 노력 덕에 그로부터 6년 후인 1996년 영국정부가 광우병의 인간전이를 공식적으로 인정하기 전까지는, 92-93년 사이 한 해 동안 확인된 광우병 소만 10만이 넘었고 최초의 인간 광우병 – 변형 크로이츠펠트-야곱병(vCJD) – 환자인 스테판 처칠(Stephen Churchill)이 95년 사망했음에도 불구하고, 영국 축산산업의 매출은 그 사회적 파장에 비하자면 충격적인 감소를 면할 수 있었다. (화폐가치를 환산한 86년 대비 95년의 축산산업 감소폭이 10퍼센트가 되지 않았다. – 필립보고서)

    Stephen Churchill
    1995.5.21.19세.사망.

    그렇게 광우병이 인간에게는 완벽하게 무해하다는 정부의 지속적이고 대대적인 캠페인을 접하던 영국 국민들에게, 1996년 3월 20일, 광우병이 인간에게 전이될 수 있는 가능성을 인정하는 영국 정부의 발표는 엄청난 배신일 수밖에 없었다. 더구나 그로부터 일주일 후 EU가 내린 영국산 쇠고기의 전세계 수출 금지령은 영국 국민들에게 치욕적이기까지 했다.

    보건부장관이었던 스테판 도렐(Stephen Dorrell)이 영국 하원에 야곱병 조사단(CJD Surveillance Unit)의 연구 결과를 보고하는 형식으로 공개된 이 날의 발표를 보면서, 영국 국민들이 가장 먼저 머리 속에 떠올린 인물이 바로, 6년 전 TV에 나와 자신의 딸에게 햄버거를 먹이던 존 검머였던 것이다.

    이때 상실한 국민적 신뢰를 끝내 회복하지 못한 보수당은 결국 다음 해인 1997년 선거에서 18년간의 장기집권을 끝내고 토니 블에어의 노동당에 패했고, 존 검머는 영국 대중의 조롱과 비난을 한 몸에 받으며 그렇게 산업논리로 국민의 안전을 외면한 정부의 기만적 쇼를 상징하는 인물이 되고 말았다. 그 날 이후 정치인들이 펼치는 식품 관련 캠페인을 비난할 때면, ‘검머스런 짓을 한다'(doing a Gummer)는 표현이 하나의 관용어구로 자리잡아 지금도 사용된다.

    그런데 그런 쇼가 있던 날로부터 17년 후 그리고 그렇게 조롱의 대상이 된 날로부터 11년 후, 자신이 딸에게 먹였던 쇠고기 햄버거를 먹고 자란 그의 친구 딸이, 이번에는 사망하고 만 것이다. 모든 언론이 그를 다시 한 번 지면에 불러낼 수 밖에 없었던 이유다.

    그렇게 미필적 고의에 의한 친구 딸 살해자가 된 존 검머는 메이저수상 아래서 환경부장관까지 역임하고 2007년 BBC가 선정한 10대 환경영웅에 선정되는 등 유능한 보수정치가였음에도 불구하고,

    대중의 기억과 역사 속에선,

    정치적 목적을 위해 딸에게 햄버거를 먹이려 했던 어리석은 아버지로, 국민들을 호도했던 정치적 쇼맨쉽의 가장 나쁜 사례로, 식품의 안정성에 관한 어떤 정부 발표도 더 이상 믿지 못하게 만든 장본인으로, 영국 쇠고기는 완벽하게 안전하다는 기만적 어록으로, 그리고 아래 사진의 주인공으로, 영원히 기록된 것이다.

    2008년 한국

    지난 5월 5일, 전국 주요 일간지와 포탈엔 농림수산식품부와 보건복지가족부가 공동으로 낸 1면 하단 광고가 일제히 게재된다.

    내용은 다음과 같다.

    미국에서 수입되는 쇠고기와 미국사람이 먹는 쇠고기는 똑같습니다! 3억 미국인과 250만 재미동포, 96개국 세계인들이 즐겨 먹는 바로 그 쇠고기가 수입됩니다. 1997년 동물성 사료 급여 금지 이후 미국에서 태어난 소는 단 한 마리도 광우병에 걸린 바가 없습니다. 정부는 철저한 검역시스템을 갖추고 수입산 쇠고기 표시를 확실히 하겠습니다. 광우병, 들어올 수도 없고 들어오지도 않습니다. 국민의 건강은 정부가 책임지고 확실히 지키겠습니다.

    같은 날 주요 포탈에도 다음과 같은 배너가 실린다.

    정부가 이렇게 다급하게 대국민 홍보에 나선 걸 본 적이 과연 있었던가 싶다. 온,오프를 망라하는 광고의 분량도 그렇지만 정부가 만든 대국민 홍보문의 문장이 이렇게 단정적인 표현으로 가득했던 전례도 찾기 힘들다. 그리고 무엇보다 정부가 만든 대국민 홍보문장이 이렇게 느낌표만으로 끝나는 걸 본 건, 분명, 처음이다. 이 양반들이 참 다급하긴 다급했나 보다.

    그 다음 날인 5월 6일, 한나라당의 심재철 원내부대표는 원내 대책회의 도중 “광우병에 걸릴 확률은 45억분 1이고 광우병에 걸려있다 하더라도, 광우병에 걸린 소로 등심스테이크 먹어도 특정위험물질(SRM)만 제거하면 절대 안전하다.”는 발언을 한다.

    그는 이어 “한국인이 잘 해먹는 우족탕, 꼬리곰탕도 안전하다. 미국에 있는 우리의 재미 동포들이 아무 문제없이 소고기 잘 먹고 있는 것이 이를 증명한다.” 며 미국 쇠고기의 안전성을 역설한다.

    “절대 안전하다.”

    존 검머의 “perfectly safe”라는 문장이 오버랩 된다. 이 발언이 논란이 되자, 그는 “실험실에서 강제로 조건을 만드는 경우에는 살코기에서도 프리온이 발견될 수도 있지만 자연환경에서는 실현될 수 있는 증거가 없다는 것이 과학적 소견”이라고 해명한다.

    “과학적 소견”

    존 검머의 유명한 “perfectly safe”라는 발언 바로 뒤는 이렇게 이어진다.

    This is the view of our top scientists.

    우리의 최고 과학자들 소견이 그러하다.

    그렇게 시간과 공간을 뛰어넘어 두 정치인의 광우병에 대한 표현은 판박이다. 매체를 통한 광고 역시 비슷하긴 마찬가지다.

    영국에서도 존 검머가 방송에 등장해 딸과 함께 햄버거를 먹은 바로 다음 주인, 1990년 5월 17일부터, 아래의 두 장짜리 보도자료와 함께 영국의 전 매체를 통한 광고 게재가 시작된다.

    당시의 보도자료 첫 페이지

    영국 쇠고기는 완벽히 안전하다고, 오늘(5월 17일 금요일)있었던 기자회견을 통해 육가공축산협회 회장 제프리 존이 말했습니다. 광우병에 대한 혼란스럽고 모순되며 부정확한 정보들이 난무함에도 불구하고 영국 소비자들은 쇠고기 소비를 중단하지 않는 훌륭한 지각을 보여주었습니다.

    영국과 나머지 유럽의 가장 저명한 과학자들이 광우병이 인간에게 위협이 된다는 그 어떠한 증거도 없다고 결론지었다는 걸 다시 한 번 강조하고 싶습니다. 이 사실은 영국 보건 당국이 성인이든 아동이든 환자든, 쇠고기를 먹는 것이 안전하다고 확정적으로 발표한 것으로 보증되었습니다. 우리는 오늘 아침 전국의 주요 신문에 소비자들이 이러한 진실에 근거해 스스로 판단할 수 있도록 광고를 게재하였습니다… (후략)

    역시 매우 익숙한 수사다.

    그러나 엄밀히 말해 1990년의 영국이나 2008년의 대한민국이나, 대중을 안심시키기 위해 정부부처와 정치인들이 전면에 나서 판박이 논리와 수사와 광고로 일종의 정치쇼를 하는 건, 그 자체만으로는, 비난거리일 수가 없다.

    대중의 불안을 진정시킬 의무가 그들에게는 있는 것이니까. 그리고 아무래도 과학적인 데이타를 덤덤하게 나열만 하는 것보다 그렇게 단정적인 발언을 하는 게 효과적이란 것도 부인할 수 없는 것이고.

    그런데,

    차이

    1990년의 영국과 2008년의 대한민국은 그 유사점과는 비교할 수 없이 결정적이고 중대한 차이점이 몇 가지 존재한다. 지금부터 그걸 따져보자.

    첫 번째,

    필립스 보고서는 존 검머를 비롯한 영국 정부가 행한 대국민 안전 캠페인을 한 마디로 어리석고 터무니없는 과장(“absurd exaggerations”)이라고 표현하며 정부가 저지른 수많은 과오를 꼼꼼하게 지적한다. 그러나 그러면서도 다음과 같은 마지막 결론도 동시에 내고 있다.

    The Government did not lie to the public about BSE.

    정부가 국민들에게 광우병에 대한 거짓말을 한 것은 아니었다.

    당시 영국 정부는 실제로 광우병이 인간에게는 어떤 해도 끼치지 않는다고 스스로 믿고 있었다는 것이다. 영국 정부가 자국 축산업 보호를 위해 광우병의 안전성에 대해 과장된 선전을 하며 대중들로 하여금 스스로 조심할 수 있도록 선택할 기회를 박탈한 것은 명백한 사실이지만, 당시까진 광우병이 인간에게 전이된다는 과학적 증거가 발견되지 않았다는 것 역시 사실이었다는 거다. 그래서 정부가 거짓말을 한 것은 아니었단 거다.

    그러니까 영국 정부의 잘못은 알면서도 거짓말을 한 게 아니라, 그 인과관계가 완전히 밝혀지지 않은 과학적 중간 단계였음에도 불구하고, 섣불리 낙관적인 결론을 내리고 그것을 근거로 대중들을 호도했다는 것이었다. 물론 이것만으로 정부는 결코 책임을 면할 수 없다. 이 책임에 대해 광우병의 인간 전이 가능성을 처음으로 공식 인정하는 발표를 영국 하원에서 직접 했던, 당시 보건부장관 스테판 도렐은, 당시를 후회한다며 다음과 같이 증언한다.

    It is never the right phrase to say, in particular as scientific knowledge is developing, that there is no conceivable risk.

    특히 과학적 이해가 여전히 축적되는 과정 중에 있을 때에는, 생각할 수 있는 그 어떤 위험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식의 말은(당시 영국 정치인들이 광우병과 관련해 가장 흔히 사용했던 문장이다), 결코 해선 안 되는 표현이다.

    그렇게 영국 정부는 최소한 국민들에게 거짓말을 한 건 아니라는 마지막 면죄부는, 정권이 바뀐 후에도, 받을 수가 있었다.

    반면

    우리의 정부와 정치인들은,

    도축과정에서 SRM이 완벽히 제거되지 않을 위험성과 그런 SRM이 검역과정에서도 걸러지지 않을 위험성이 존재하는 것이 엄연한 사실이고, 광우병이 여전히 알려지지 않은 부분이 훨씬 많은 미지의 질병이란 것이야 말로 팩트인데도, 이런 객관적 정보들을 국민들에게 알리지 않았다.

    그러니까 영국 정부는 적어도 당시 과학자들에게 의지한 채 그런 주장을 했던 거라면 우리 정부는 제대로 걸러지지 않은 SRM에 대한 과학자들의 지적마저 무시하고 있는 거다. 그러면서 농림수산부 장관씩이나 되는 사람이 광우병은 지구상에서 사라져 가고 있고, 앞으로도 발생 안 할 것으로 믿는다고 청문회에서 발언한다. 도대체 어떻게 책임지려는 걸까. 국민들더러 과학적 판단을 하라 타박하면서 정작 과학적 우려를 무시하고 있는 건 바로 정부인 거다.

    나아가 우리 정부는 재미동포는 모두 잘 먹고 있으니 괜찮다는 따위의, 과학도 아닐 뿐 아니라 팩트와도 틀린 근거를 들이대는 동시에, 자신들이 체결한 협상의 부실함을 감추기 위해, 미국 소비자들은 30개월 이상을 먹지 않는다는 매우 중요한 단서 역시 생략한다.

    또한 OIE 기준이 권고사항일 뿐 국가에 강제할 수 있는 규정이 아님에도 마치 그것이 국가간 강제규약인 것처럼 변명하고, 실제로는 그 OIE조차 SRM으로 규정했으며 심지어는 미국도 SRM으로 규정하고 있는 부위의 국내수입마저 허용했음에도, 이를 국민들에게 전혀 밝히지 않았다.

    5월15일자, 한겨레신문 ⓒ한겨레
    OIE에선 빨간색으로 표시된 부위, 미국에선 파란색으로 표긴 부위를 광우병 SRM으로 규정하고 있으나 우리 정부는 이 부위들을 모두 수입가능 하도록 했다.

    국민건강을 위협할 수 있는 그런 부위를 수입 허용해줬다는 것도 국민들로선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심각한 직무유기지만, 그 보다 훨씬 더 중대한 사안은, 그래 놓고도 그런 사실을 국민들에게 전혀 알리지 않았다는 거다.

    이런 은폐에 대해, 그저 말을 하지 않았을 뿐이다, 라고 답하는 게 정부가 할 수 있는 유일한 변명일 게다. 그러나 국민들이 스스로의 건강을 지키기 위해 당연히 알아야만 할 사실들을, 만약 정부가 깜빡 하고 알리지 않았던 거라면, 그것만으로도 매우 중대한 과실에 해당되는 거다. 차라리 그랬으면 좋겠다.

    그러나 만약 그 사실을 일부러 알리지 않았다면, 그건 고의에 해당되는 것이고 그리고 그런 고의를 우리는,

    거짓말이라고 한다.

    두 번째,

    영국 정부가 신뢰했던 건 자국의 과학자들이었다. 존 검머에 이어 방송에 나와 어른, 아이는 물론 환자까지 쇠고기를 먹어도 안전하다고 말했던 도널드 애치슨경은 당시 그 근거를 이렇게 들었다. ( 전문보기 )

    The Government have taken advice from the leading experts in this field. They have consistently advised us that there is no scientific justification to avoid eating British beef.

    정부는 이 분야에서 최고의 전문가들로부터 자문을 받았으며, 그들은 일관되게 영국 쇠고기를 먹지 말아야 할 어떤 과학적 정당성도 없다고 조언했다.

    사태 초기부터 광우병에 관한 한 가장 적극적인 경고메시지를 보냈던 과학자의 한 사람으로, 영국정부가 초기부터 광우병에 대한 잠재적 위험을 국민들에게 알리는 데 실패함으로써 2016년 쯤이면 영국에서만 매년 50만 명 정도가 광우병으로 사망할 수도 있다는 충격적인 전망을 내놓은 바 있는 영국의 임상미생물학자 리차드 래시(Richard Lacey) 리즈대학 교수조차,

    존 검머가 쇠고기는 절대 안전하다고 발언하던 당시엔 쇠고기를 먹지 말아야 한다고 주장하는 대신 영국 내에 감염된 모든 소를 모두 즉각 도살, 소각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데 그쳤었다. ( 이렇게 과학자들조차 광우병의 잠재적 위험에 대해 낙관적 판단을 내렸던 이유는, 물론 실제 인간 전이에 대한 연구가 충분히 진척되지 않았던 탓도 있었지만, 당시 보수당정권이 자국 축산업 보호를 위해 영국 내 민족주의를 자극한 결과라는 분석이 유력하다.)

    반면,

    우리의 정부가 신뢰하고 있는 건, 미국이다.

    정부가 게재한 신문광고의 첫 문구는 미국사람이 먹는 쇠고기와 똑같다는 거다. 정부가 국민들로부터 신뢰를 얻기 위해 가장 앞에 내세운 게 바로 그렇게 미국이다. 미국사람들도 먹는 데 뭐가 문제겠냐는 이 사고방식. 이런 사고방식의 저변엔 미국에 대한 절대적 신뢰가 전제되어 있다.

    정부의 관료들이 각종 토론회를 통해 월령 구분 제대로 안 되고 있는 거 아니냐, SRM이 완전히 제거되지 않을 수 있지 않느냐며 미국시스템에 의문을 제기하는 시민사회에 대해 들려주는 답변 역시 마찬가지다. 아니 그렇게 못 믿으면 어떻게 하느냐는 거다. 미국을 믿으라는 거다.

    미국의 도축 및 검역 시스템이 과연 그렇게 신뢰할 만한가를 따지기 이전에, 일국의 정부가 자국민을 설득하기 위해 스스로 의지하고 있는 게 그렇게 미국에 대한 거대한 믿음이란 사실만으로도, 과연 자격 있는 정부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내가 왜 우리 정부를 놔두고 미국 정부가 잘 해줄 걸 믿고 살아야 하는 건가. 우리 정부는 그럼 왜 있는 건가.

    게다가 미국의 광우병 대처 시스템은 과연 그런 정도의 신뢰를 보낼 수 있는 대상인가.

    2004년 켄사스 주의 육가공업체인 크릭스톤 팜(Creekstone Farms)은, 2003년 광우병으로 중단된 일본으로의 쇠고기 수출 재개를 위해, 미 농무부에 자신의 농장에서 도축하는 모든 소에 대한 광우병 속성 테스트를 승인해 달라는 요청을 한다.

    모든 테스트 비용은 크릭스톤이 자비로 부담하겠다면서 농장 내에 광우병 연구소를 설립하겠다는 계획도 함께 발표한다. 통상적인 테스트가 며칠이 걸리는 데 반해 크릭스톤 팜이 미 농무부에 승인을 요청한, 일본과 유럽에서 실제 사용되고 있는, 속성 테스트는 두당 20달러 비용에 4시간이면 결과가 나오는 것이었다.

    광우병 검사를 모든 소에게 자비로 실시하겠다는, 너무나 바람직한 이 요청에 대해 미 농무부는 승인을 거부한다. 정부더러 해달라는 것도 아니고 다른 업체를 참여시켜 달라는 것도 아닌데, 자비로 스스로 알아서 하겠다는 광우병 검사를 오히려 정부가 나서서 못하게 한 것이다.

    더구나 그 속성테스트 킷을 개발한 곳이 바로 미국의 Bio-Rad사로 미국업체다. 미국업체가 만들어 일본과 유럽에 판매되고 있는 이 테스트킷의 개별 도축장 사용을 정작 미 정부는 불법으로 만들어 버린 거다.

    그러면서 미 농무부가 내놓은 이유가 가관이다. 모든 소에 테스트를 하는 것은 비용 면에서 비효율적(“not cost-effective”)이란 미 정부의 정책을 바꿀 수 없다는 것이다. 비용을 자신들이 대겠다는 업체에 내놓은 변명으론 참 황당하다.

    2년간 그렇게 몇 차례나 승인거부를 당하자 결국 2006년 3월, 크릭스톤 팜은 미 농무부를 지방법원에 제소하기에 이른다. 제발 광우병 검사를 하게 해달라고. 2007년 3월, 드디어 지방법원으로부터 미 농무부의 금지는 ‘비합법'(“unlawful”)이란 승소 판결이 난다.

    그러나 패소한 미 농무부는 2008년 5월 기어코 연방법원에 항소를 한다. 그러면서 내놓은 그들의 항소 사유는 더 황당하다.

    more widespread testing does not guarantee food safety and could result in a false positive that scares consumers.

    더 많은 테스트를 하는 것이 안전을 보장하는 것은 아니며 양성오류(정상소를 광우병으로 진단할 수도 있다는 의미)로 인해 소비자들을 겁줄 수도 있다.

    정상적인 정부라면 정상소를 광우병으로 진달할 수 있는 ‘False Positive’ 가 아니라, 거꾸로 광우병 소를 정상소로 판정하여 식용으로 유통되는 ‘False Negative’를 걱정해야 한다. 그런데 미국정부는 광우병 소가 식용으로 통과되면 어떡하나를 걱정하는 게 아니라, 정상소가 광우병 판정을 받으면 어떡하냐를 걱정하고 있다. 이 무슨 해괴한 정부인가.

    미 농무부가 이렇게 광우병 검사를 자비로 하겠다는 업체도 무려 4년을 끌며 막고 있는 이유는 사실 간단하다.

    그러다가 광우병 소가 더 많이 발견될 까봐.
    그 결과, 미 축산 육우업계가 타격을 입을까 봐.

    미 농무부가 전체 도축소의 1퍼센트 이하만 표본 검사하도록 정하고, 그 어떤 도축장도 자체적으로 광우병검사를 못하게 하고 있는 진짜 이유다. 이렇게 광우병 소를 어떻게든 찾아내야 할 정부가, 오히려 그걸 막기 위해 소송까지 하는 나라, 그런 나라가 바로 미국인 것이다.

    소의 월령 구분이란 게 소 이빨을 육안으로 보고 판정하는 것이라 완벽할 수가 없다거나, SRM 제거 과정이 허술해 잔여물질이 남아 있을 수 있다거나, 육회수공정(AMR)의 특성상 뼈에서 살만 발라내는 게 불가능하다거나 하는 따위의 기술적인 문제는, 그래서 오히려 부차적이다.

    광우병 자비로 검사하겠다는 업체조차 소송으로 막고 있는 미 농무부의 기본적인 사고방식만 놓고도, 우리 정부는 미국의 시스템을 근본적으로 의심해야 할 의무를, 우리 국민들의 건강 앞에 지고 있는 것이다. 다시 한 번 강조하자. 이런 상황에선, 의심하는 게, 정부의 마땅한 의무다.

    더구나 축산업계의 전직 로비스트들이 미 농무부 핵심관료로 재직하며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해 미국의 식품시스템이 붕괴하고 있다(2008년 5월 14일 CNN – “Nation’s food system is collapsing” – 기사보기)고 미국 내에서조차 비판이 들끓는 상황에서, 우리 정부는 뜬금없게도 미국을 믿으라고 말하고 있다.

    광우병에 관한 한 미국인들도 믿지 못하고 있다는 미국 정부를, 우리 정부는 우리 국민들에게 믿으라고 설득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정부를 어떻게 국민들이 믿겠는가.

    세 번째,

    영국 정부가 수많은 정치인과 과학자들을 동원하며 결국 보호하고자 했던 건 자국의 자존심과 축산 관련 산업이었다. 미 정부가 광우병 검사하겠다는 업체를 소송까지 하며 막는 것 역시 결국 자국의 산업논리 때문이고.

    그런데 우리 정부가 그 이익을 열심히 대변하고 있는 건 미국의 축산업자들이다. 국민세금으로 절대 안전하다며 광고까지 해주면서. 전세계 어느 정부가 자국민 세금으로 다른 나라 산업을 대신 홍보해주나. 이 세 번째 차이점에 이르러선 화가 나는 걸 넘어.. 주먹이 운다, 씨바.

    자신들이 저지른 과오를 숨기려다 보니, 미국 축산시스템이 완벽해 줘야 하는 거다. 그래서 미국이 부탁도 안 했는데 자기들이 먼저 나서서 미국을 변호해줘야 했던 게다. 국민저항이 상상을 초월하니 다급하게 보이는 구멍부터 막느라 도대체 지금 자기들이 무슨 짓을 하고 있는 지도 모르는 게다. 이런 황망한 정신상태를 선조들은 이렇게 표현하셨다.

    똥오줌을 못 가린다.

    우리 정부는 왜 이런 결정을 내린 걸까. 그 결정의 근거를 이해하기 위해 먼저 그 동안 정부가 내놓은 해명들을 간단하게 살펴보자.

    우리 정부가 분노하는 국민들 앞에 처음으로 공식 해명을 한다며 나선 게 소위 끝장토론이다. 이 자리서 정부는 쇠고기 시장을 전면 개방할 수 밖에 없었던 이유에 대해 미국의 개방 주장을 뒤엎을 만한 방어논리가 없었다고 말한다.

    사실은 이 말 자체가 이미 협상이 엉터리였단 걸 드러내는 자백에 다름 아니다. 물건을 사는 쪽이 그 물건이 위험하지 않다는 걸 입증하지 못해서 그 물건을 사줄 수 밖에 없다니. 세상에 그런 장사가 어디 있나.

    2003년 우리나라에 조류독감이 발생했을 때 조리해 먹으면 안전하다고 아무리 장관들이 삼계탕을 먹어대도 일본정부는 한국산 닭고기 수입을 전면 금지했다. 70도 이상 끓인다 하더라도 우리 닭고기가 여전히 안전하지 않다는 걸, 일본정부가 입증하지 못하면, 그럼 우리 닭고길 당연히 수입해줘야 한다고 우리나라의 어느 관료가 일본에 주장할 수 있었나.

    항의는 해도 그런 논리를 펴지는 못하는 거다. 검역에 대한 최종판단은 어디까지나 일본정부의 권리니까. 그런데 우린 지금 미국에 대해 그러고 있다. 우리가 미국의 축산산업을 위해 미국 쇠고기를 먹어줄 무슨 의무라도 타고 난 국간가.

    그러니 검역주권을 포기했단 말이 나올 수밖에 없는 거다.

    그날 제시된 또 하나의 근거가 바로 OIE 기준이었다. 그러나 이 OIE 기준이란 게 국가간 강제사항이 아니라는 건 우리 정부도 이미 알고 있는 거다. 그걸 모르는 정부가 어딨나.

    더구나 OIE는 스스로 과학적 기준을 마련하고 판정하는 연구기구도 아니다. OIE는 각국의 농업담당 전문인사가 파견되어 국가간 무역에 있어 최소한의 기준을 마련하는 협의기구에 불과하다. 그리고 그런 정보들을 특히 저개발국 회원국에 제공하여 동물성 질병에 대처하도록 하는 연대기구다.

    그 공식 홈페이지에 가서 아무리 뒤져보라. 강제조항이란 말이 단 한 마디라도 나오는가. 그런데 그곳에 담당자를 파견한 정부가 그걸 왜 모르겠나. 유럽이든 일본이든 다들 이 기준보다 높은 자체 기준들을 따로 가지고 있다.

    더구나 미국 스스로도 OIE 규정, 안 지킨다. 미국과는 다르게 모든 SRM을 완전 금지하고 있어 미국보다 훨씬 높은 수준의 안전규정을 가진 EU의 30개월 이상 쇠고기에 대한 수입요구도, EU가 아무리 OIE 규정을 들며 요구해도, 콧방귀도 안 뀌는 게 미국이다. 그렇게 미국이 안 지켜도 GATT고 WTO고 간에 그 어떤 규정으로도 누구도 어떻게 할 수 없는 게 OIE 기준이라고.

    그런데도 얼마나 변명할 게 없으면, 스스로 그렇지 않은 줄 알면서도, 그렇게 OIE에 목을 매달고 있겠는가.

    이어 미국과의 재협상 가능성을 묻는 기자들의 질문엔 무슨 대단한 원칙이라도 되는 냥, 지금의 과학적 지식을 뒤엎을 만한 새로운 과학적 발견이 나오기 전까지는 재협상은 안 된다고 답한다.

    그럼 우리가 작년까지 30개월 미만 살코기만 수입하다 이번에 30개월 이상 뼈까지 전면개방을 한 건, 그 사이에 30개월 이상은 절대로 안전하다는 무슨 엄청난 과학적 발견이라도 이뤄져서 그렇게 한 건가.

    다급하게 마련하느라 준비한 해명의 논리들이 스스로 어떤 자체 모순이 있는 건지 충분히 따져보지도 못한 거다.

    더더욱 심각한 건, 정부가 이번에 미국으로부터 받아낸 조건이라며 전면개방의 근거로 내세운 소위 <강화된 사료조치>는, 실제 협상테이블에선 그 구체적인 내용이 논의조차 되지 않았다.

    이번 협상에 참가했던 농림수산식품부 관계자는 ” 협상과정에서 강화된 사료금지 조처와 관련해 구체적으로 어느 수준으로 할 지에 대해서는 미국과 협의를 하지 않았다” 고 고백하고 있다. (2008년 5월 12일, 한겨레 기사보기)

    작년에 정부가 미국의 사료공장을 둘러보고 직접 작성한 문서만 봐도 정부 스스로도 미국의 사료 공정을 믿지 못하겠다고 기록하고 있으면서 말이다. (2008년 5월 15일, SBS 보도 뉴스보기)

    그런데도 실제 협상 테이블에선 그 구체적 조건을 따져보지도 않았다는 거다.

    이런 해명들이 전혀 먹히지 않자, 정부가 그 다음 고작 내놓은 게, 미국에서 광우병이 발생하면 그럼 수입을 중단하겠다는 거다.

    그럼 그 동안 이미 수입 되어버린 소들은. 그래서 우리가 먹어 버린 건. 뱃속에 들어 가버린 건 어쩔 건데. 책임질 수도 없는 걸 다 책임질 수 있단 식으로 말하는 건 야바위꾼들이 하는 짓이다.

    그리고 엄밀히 말하자면 미국에서 광우병이 발생하면,이 아니다. 미국에서 보다 광범위한 광우병 검사를 통해 광우병에 걸린 소가 추가적으로 발견되면, 이라고 하는 게 객관적인 거지. 지금도 공식적으로는 도축소의 1퍼센트 미만, 실제로는 0.1퍼센트의 광우병 검사밖에 이뤄지지 않는 미국에, 광우병 소가 단 한 마리도 없다고 누가 장담할 수 있나.

    이런 상황에서 광우병이 발생하면 그때서야 수입 중단하겠단 말을 모든 문제의 해결이라도 되는 양 내세우는 건 정말이지 국민들을 우습게 보는 거다. 지금도 협상의 본질적 조건을 고칠 생각은 않고 그저 국민들이 넘어가주기만 바라고 있으니 이런 대책이 나오는 거다.

    하여, 나는 단정할 수밖에 없다. 그 어떤 해명도 급조된 논리일 뿐이라고.

    그러나 개인적으로, 우리 정부의 고위급 직업관료들이 이 정도의 비논리도 스스로 몰랐다곤 생각하지 않는다. 그들도 그들 분야에서 엘리트다. 지금까지 지적한 모순들이 무슨 대단한 지적 수준이 되야 생각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말이다. 더구나 지난 정권까지만 해도 그들 스스로 나름의 방어논리로 무장하고 있었다. 지금 정부를 공격하는 논거가 바로 그들이 지난 정권 하에서 직접 작성한 문서들로부터 나오고 있으니 말이다.

    그래서 난 이번 협상은 논리가 우선이 아니었다 믿는다.

    이치를 먼저 따졌다면 이렇게 결정할 수가 없다. 지난 정권 내내 유지해왔던 정부의 논리가 일거에 뒤집힌 건, 이번에 어떻게든 협상을 타결하겠다는 결정이 먼저 있었고 그리고 그 결정을 뒷받침 하기 위해 새로운 논리 개발이 그 뒤를 따른 거라고밖에 볼 수 없다. 그런데 불합리한 조건으로 결정부터 해놓고 그걸 백업할 논리를 찾다 보니 이렇게 여기저기 구멍이 생길 수밖에 없었던 거고.

    그러니 왜 부담하지 않았어도 되는 리스크를 우리 국민들이 져야 하는 지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엔 답변을 못하고 그저 확률에만 매달릴 수밖에 없었던 거다. 직업 관료들은 그렇게 이미 내려진 결정을 열심히 수습했던 것에 불과하다. 그리고 그렇기에 아무리 국민들이 들끓어도 그 관료들을 문책할 수가 없는 거고. 결정은 그들이 내린 게 아니니까.

    이 많은 오류들을 관통하는 정부의 어떤 통일된 기조와 입장이란 걸 도저히 발견할 수가 없었던 건 그래서다. 정부가 강조하던 <강화된 사료조치>가 실제 협상테이블에선 논의조차 되지 않았다는 것 역시 이에 대한 강력한 방증인 것이고.

    이 대목에 이르자,
    난 다음과 같은 의문을 가지지 않을 수 없었다.

    이런 국가간 협상의 최종 의사결정권자는 이명박 대통령인데, 그래서 협상이 의미하는 바를 알고 했던 모르고 했던 결국 이명박 대통령 본인의 책임일 수 밖에 없는 건데, 그런데 도대체 왜, 이명박 대통령은 이런 불합리한 협상조건을 승인했던 걸까. 사람들이 바로 이 대목을 도대체 이해할 수 없으니 캠프 데이비드 숙박료라 단정하는 것도 결코 무리는 아닌 것이다.

    지금까지의 여러 정황으로 보자면, 정부는 아마도 그렇게 미국이 원하는 쇠고기 전면개방을 안겨주고 한미 FTA의 조기 타결을 원했다… 는 게 그나마 가장 근접한 해석일 테지만, 그런 판단이 옳다 그르다를 떠나, 그래도 여전히 의문이 남긴다.

    왜냐.

    미국이 원하는 쇠고기 문제는 미국이 원하는대로 다 줬지만 정작 우리 손에 쥐고 돌아온 건 아무 것도 없지 않은가. FTA라 는 게 미의회가 통과시켜줘야 되는 건데 부시가 그런 보장을 해줄 수도 없는 거 아닌가. 게다가 협상의 기본이 바로 앉은 자리에서 서로 주고 받을 거 확실히 하고 나서, 도장을 찍어도 찍는 거다. 그런데 우린 협상 테이블에서 유일하게 받아낼 거리였다고 주장하는 <강화된 사료조치>조차 그 구체적 내용을 미국에게 일임했다. 도장부터 찍었다.

    개인이 전세집 하나 얻을 때도 그렇게는 안 한다. 어느 누가 주택의 계약조건을 공란으로 둔 채 사인을 하나. 이명박 대통령 본인이 집을 살 때도 그렇게는 절대 안 할 게다. 아니 동네 복덕방 할아버지도 그렇게는 못하게 한다. 나중에 싸움 난다고. 하물며 국가간 협약을 이런 식으로 사인해버렸다는 건, 나로선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는 일이다. 다른 건 몰라도 이명박 대통령이 탁월한 장사꾼의 자질만은 발휘할 거란 최소한의 기대조차 배신하는 결정이다.

    그 의문은 결국 이명박 대통령 본인이 풀어준다.

    안 먹으면 된다.

    이 말은 소비자가 선택하면 된다는 말이다. 그러니까 시장에서, 해결된다는 논리다. 대통령 본인 표현대로 하자면 소비자가 마음에 안 들면 적게 삼으로써. 나는 비로서 이명박 대통령의 결정이 이해가 갔다.

    흔히 이명박 대통령을 시장주의자라고 한다. 기업규제를 철폐하고 시장에 맡기라는 게, 대통령으로서의 첫 일성이었다. 실제 각종 기업규제의 철폐와 공기업 민영화를 강력하게 추진하고 있고.

    이렇게 기업활동에 대한 규제를 철폐하고 그들의 이익추구와 그 분배를 철저히 시장에 맡기겠다는 시장주의 – 그 이익추구의 자유를 지나치게 강조하느라 그 경쟁에 필요한 공정한 룰에 대한 관심은 상대적으로 적단 점에서, 그런 사회는 결국 승자독식 약육강식 사회일 수밖에 없단 점에서, 보다 정확하게는 ‘시장근본주의’라고 하는 게 훨씬 적확하다고 개인적으로 여긴다만 – 기조에 대해서는, 개인적으로 동의할 순 없다 하더라도 그것 역시 하나의 정책기조일 수 있단 걸 받아들인다. 그런 신자유주의 기조가 현재 전세계를 석권하고 있는 것도 부인할 수 없는 현실이고 말이다.

    그러나,

    광우병 걱정하는 국민들에게 안 먹으면 된다는 논리를 펴는 건, 공공의 안전까지, 시장에 맡기겠다는 거다. 이익을 시장에 맡기겠다는 것까진 좋다. 그런데 공공의 안전을 시장이 알아서 하도록 맡기는 정부가 도대체 어디 있는가.

    예를 하나 들자.

    도로 위의 모든 차에겐 원하는 곳에 가장 빨리 도착하는 게 이익이다. 거기 아무런 규제가 없다면 결국 덩치 크고 엔진 큰 차가 언제나 이긴다. 그래도 어쩔 수 없다고, 능력의 차이를 인정하라고, 그렇다고 큰 차더러 일부러 덩치를 줄이라고 할 순 없지 않냐고, 그들이 먼저 도착해서 또 더 멀리 갈 수 있게 되면 그런 선도그룹이 결국 뒤쳐지는 차들을 이끌 수 있으니 좋은 거 아니냐고, 속도제한 같은 건 두지 말자고, 운전자의 자율에 맡기자고, 그렇게 말하는 게 우파다. 반면 그러면 작은 차만 언제나 뒤쳐진다고 차와 엔진의 크기를 적정선에서 규제하고 공정한 주행이 가능하도록 속도제한을 둬서 가능하면 비슷하게 도착하게 하자며 교통법규을 더 정밀하게 만들라는 게 좌파의 논리인 거고.

    그런데 이명박 대통령처럼 공공의 안전까지 시장에 맡겨버리는 건, 그 도로에서 아예 차선 자체를 없애버리는 것과 같은 결정이다. 그리고는 각자 운전자가 조심하면 된다는 거다. 겁나면 차 끌고 나오지 않으면 된다는 거다. 사고 나면 그때 가서 차량통제 하겠다는 거다. 그게 그런 사고방식이다.

    이익을 시장에 맡기겠다는 것까진 좌우를 따질 수 있다. 여기까진 그 정책 기조를 두고 좌우가 논란을 벌일 수도 있다고. 하지만 공공의 안전을 시장에 맡기겠다는 게, 정부가 국민들더러 알아서 살아 남으라는 게, 이게 도대체 좌우와 무슨 상관이고 진보 보수와 무슨 상관이 있는가 말이다. 광우병이 좌파만 걸리냔 말이다.

    이건 보수도 아니고 실용도 아니고 시장주의도 아니고 심지어는 시장근본주의도 아니고 그냥, 철학의 부재, 그 외 아무 것도 아니다. 하여 나는 다시 한 번 이렇게 결론내지 않을 수 없다. 이 모든 건,

    이명박, 책임이다.

    그래서 난 두렵다.
    이건 시작에 불과할까봐..
    두 눈 크게 뜨고, 살아야겠다.

    – 딴지총수
    ( oujoon@gamil.com )

    • …. 71.***.0.249

      딴지일보 망하지않았나? 아직안망했나?
      그리고 김어준은 이미 황구라사건때 버러우했어야했는데
      황구라사건때문에 김어준의 말은 믿을수가없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