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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큰딸아이가 드디어 꽃물을 만들었네요. wife가 회사로 전화를걸어서 알려줬는데 퇴근길에 딸아이에게 선물로 줄려고 빨간꽃을 사들고 가는길에 아이가 자궁에서 막나온 모습에서 부터 여태껏 성장해온 지난 세월이 하나하나 단막극처럼 지나가더군요. 그러면서 표현하기어려운 무슨 느낌이 드는게 분만실에서 딸아이의 검은머리카락이 살짝보이기 시작할때 느꼈던 느낌과 비슷하더군요… 잘커준 딸아이에게 그리고 앞으로 여자로 살아갈 딸아이에게 감사의 마음이 전해졌으면 하는맘에 몇글자 끄적여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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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경
손세실리아
포도 두 근 샀더니
맛이나 보라며 덤으로 준 천도복숭아를
단숨에 먹어치운 딸아이가
화살나무 종아리처럼 붉은 깡치를 들고
버릴 데를 찾아 두리번거리기에
아파트 화단에 던지라 했더니
길가에 침 뱉는 무식한 사람쯤으로
나를 빤히 올려다본다씨앗은 생명이라고
집안에 들이면 귀신 내ㅉㅗㅈ는다는
키 작은 개복숭아나무도 거기 살고
모시나비의 집도 바람자락도
거기서 함께 키를 키운다고
저 혼자 헉헉 숨 몰아쉬다가
어떤 놈은 말라 죽고
어떤 놈은 썩어 나자빠지고
또 어떤 놈은 흙에 뒤섞여
꼼지락꼼지락 發芽하는 거라고
최후까지 기를 쓴 놈들이 살아남아
참외도 되고 호박도 되고
사과나무 한그루 그늘이 되는 거라고
엄마의 몸이라고그제서야 안심하고
낙엽 수북한 화단 기름진 흙에
천도복숭아 씨를 내려놓고 돌아오던 날 밤
열세살 딸아이 홑청에 꽃물이 배었다==
어린 물고기 – 나윤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