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마라톤 경험기

  • #100787
    Quality 67.***.145.82 2565

    지난 일요일 아침 태어나서 처음으로 가장 먼 거리를 달렸습니다.

    6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유학와서 졸업하고 직장잡고 생활이 정착될무렵 세운 계획하나.
    “3년내에 마라톤 함 뛴다..아자…”

    사실 어릴때부터 항상 반에서 일등하던게 있었습니다.
    당근 공부는 아니고, 바로 달리기였드랬습니다.
    하지만 대학가서는 소주에 찌들어 살았고
    한국에서 회사 다닐때도 맨날 회식에다 술이었지요
    미국와서는 공부한답시고 앉아서 기름진 음식만 먹다보니
    배도 심각하게 나오는것 같고 몸도 예전의 민첩함(?)이 없어지고 게을러지더군요.
    ‘3년내에 마라톤 뛴다’라는 계획은 어느센가 제 마음속 한쪽 귀퉁이에 맨날굴러다니는 부담스러운 자책이 되어버린지 오래됬습니다.

    지난 일요일 아침 일찍 일어나 차를 몰고 마라톤 도착지점으로 갔습니다.
    주최측에서 셔틀을 이용해서 모든 참가자를 출발지점으로 옮겨주게 되어있엇거든요.
    제가 도착했을때는 셔틀 타는 줄이 100m 넘게 길게 늘어서 있더군요.
    그때가 출발시간 1시간 반 전이었습니다.
    줄이 줄어드는 속도가 너무 느려서 혹시나 못 뛰면 어쩌나 했지요.
    아니나 다를까 1시간 넘어 가다린 결과
    주최측에서 announce를 했습니다
    셔틀 이동 속도가 느려서 race를 delay 시키겠다고요.
    휴~ 다행이다.
    그러나 약 1분후 다시 방송을 했습니다.
    차량 통제 문제로 셔틀을 중단하고 15분후 race 시작한 답니다.
    줄서있던 200~300 명들은 완전 황당 그 자체였습니다.
    환불이 문제가 아니가 지금까지 준비한게 아까워서 포기 못하겠더군요
    그래서 차를 몰고 출발 지점으로 무작정 달렸습니다.
    출발지점에 도착했을때는 이미 선두가 출발한지 20분 후 였습니다만
    다행히 차량통제가 아직 풀리지 않은 상태여서 자초지정을 설명했더니
    참가를 허락해주더군요.

    Half 와 full 마라톤 참가자 5000명중 꼴등으로 시작했습니다만
    후미에 뛰는 사람들을 지그제그로 추월해가며 열심히 따라붙었습니다.
    목표가 4시간 10분이었으니 전반은 2시간 약간 넘게 달리고
    후반전에 조금 선방하면 충분히 가능한 목표였습니다.
    실제로 half point를 통과할때 시간은 2시간 4분…Yes~

    문제는 그때 부터였습니다.
    그날 엄청나게 더울거라는 예보가 있었지요
    시에틀에 구름한점없는 90도라니 사실 너무나도 익숙하지 않은 조건입니다.
    금요일까지만해도 낯기온이 70도 정도 였는데 말이지요.
    서서히 기온이 올라가고 몸도 지쳐갈무렵 18mile 지점을 통과
    마의 구간으로 접어들었습니다.
    가파른 언덕이 2mile 연속으로 있는지점입니다.
    언덕이 시작되자마자 땅만보고 뛰었습니다
    언덕을 쳐다모면 기겁할것 같아서이지요.
    숨이 차 오르고 다리가 끊어질것같았습니다.
    이를 악물고 기어오르다
    이제 정말 죽을거 같다 싶기도 했지만
    사실 그보다는 ‘이제 거의 다 올라왔을거다’ 생각되더군요.
    그래서 얼마나 왔나 앞을 쳐다본순간
    그냥 걸음을 멈춰 버렸습니다.
    반 도 못 올라왔더군요.
    그냥 뜨거운 열기에 또 앞으로 저만큼이나 더 올라가야한다는 생각에
    그만 나도 모르게 거기서 기겁을 해버렸습니다.
    거기서부터는 언덕위까지 걸어 올라 갔습니다.
    내리막이 시작되자 다시 뛰기 시작했습니다만
    한 번 쉬어버린 다리가 내 다리가 아닌것 같더군요
    휘청휘청거리는게 잘못하면 쓰러지겠구나 싶더군요.
    22mile지점까지 그렇게 달렸습니다만
    다시 나온 언덕 중간에서 다시 굴복.
    걸어서 올라갔습니다.
    ‘조금만 더 가자’ ‘나는 할수있다’ 마음으로 되내이다
    다시 걷고있는 저 자신에 깜짝놀라 다시 뛰고를 반복했습니다.
    25mile지점에 나타는 마지막 언덕
    거기서는 아예 처음부터 걸어 올라갔습니다.
    1.2mile만 더 가면되는데 사실 평소에 10분이면 뛰는 거리인데
    정말로 다리가 떨어지지 않더군요.
    그 언덕을 넘고나니 26mile sign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26이라는 숫자가 어찌나 예뻐 보이던지
    정말 sign에 뽀뽀라더 해주고싶더군요
    Finish line도 보이기 시작하고 음악소리도 들리고
    사람들도 박수쳐주고
    가장 중요한건 finish line에 사진사들이 행사 사진을 찍기때문에
    가장 멋있는 모습으로 골인 해야하는데
    어떻게 들어왔는지 기억이 안나는군요
    몇일있다가 사진 올라오면 확인해봐야겠습니다.

    골인하고 발목에 차고있던 chip을 풀어주고
    바나나 하나랑 물병하나 잡고 터벅터벅 걸어 가는데
    가슴이 벅차올라 훌쩍거리고 말았습니다.
    주변에 있던 사람들이 수고했다고 등도 토닥거려주고
    모르는 사람들이랑 hug도 3~4번 한것 같습니다

    아내가 도착지점에 나온다고 했지만
    날씨도 더울것 같고 아이들이 너무 기다릴까봐
    아무도 나오지 말라고 했지요
    다행히 우는 모습을 제 가족들에게 보이지 않아서 다행입니다.
    (다른 분들은 또 다르게 생각할수도 있겠지만요)

    6년전 세운 계획을 3년 늦게 달성했지만
    아직도 젊기에 또다른 도전의 계획을 세울수 있다는 사실에 감사합니다.

    – 3학년 8반 Quality의 첫 마라톤 경험기 –

    • tracer 198.***.38.59

      축하드립니다.
      감동적이면서 동시에 무척 부럽네요.

    • zoo 69.***.51.57

      잘 읽었습니다. 저는 달리기는 정말 못하지만, 한번 도전해 보고 싶어졌습니다. ^^

    • ….. 98.***.211.100

      장하십니다. 저도 한 5년 전에 풀 마라톤은 아니고 하프 마라톤 계획을 세운 적이 있었는데. 여지껏 실행을 하지 못하고 있네요. 그저 님이 부러울 뿐입니다. 멋지십니다..

    • 다솜 85.***.151.22

      정말 대단하십니다. 더군다나 90도의 무더위 속에서 완주를 하시다니…
      저도 이 글을 읽고 마라톤에 도전하고 싶어졌습니다. 앞으로 5년 안에…

    • Quality 67.***.145.82

      참 결국 얼마나 걸렸는지는 말 안했군요.
      아주 우수운 성적 4시간 38분 걸렸습니다.
      일단 돈 내고 신청부터 하세요.
      그러면 신청비 아까워서라도 뛰게 됩니다.

    • kk 131.***.206.75

      짝짝짝…정말 휼륭하십니다. 십몇년전에 단거리 마라톤을 뛰다가 너무 힘들어서 버스올라탔다가 모든사람이 처다보는통에 얼굴을 푹 숙이고 결승점 전 전 거당에서 내려서 왔던 기억이 나네요…지금은 아침에 3 마일씩 뛰는데 같이 뛰는 사람들이 거의 마라톤 연습자들이라..저는 매번 꼴찌에 slowest네요…언제나 마라톤에 참가 할려나..

    • BS 71.***.120.71

      축하합니다. 완주 하셨군요.
      올 10월에 보스톤에서 하는 하프 마라톤 준비하고 있습니다. 뭐… 그냥 뛰면 되겠지 했는데. 별로 깨끗해 보이지 않는 찰스강에 확 뛰어들고 싶은 생각이 가끔 듭니다. 천성이 게으른놈이 뛰려니 힘이 많이 듭니다. 완주하셨다는 원글님 글을 읽으니, 용기도 생기면서, 동시에… 달릴 거리가 막막하게 느껴집니다.
      나중에 보스톤 마라톤 뛰실 계획 있으시면 번개나 한 번?

    • Quality 67.***.145.82

      BS님 반갑습니다.
      일단 시작했으니 보스톤 마라톤은 한 번 뛰어야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올해 10월초에 Portland (OR) 마라톤,
      11월말에 시애틀 마라톤,
      내년 5월에 벤쿠버 (BC Canada) 마라톤을 뛰고 나면
      내년 10월에는 보스톤에서 만날수 있겠네요.

    • 경험자 69.***.137.35

      대단한 일을 해내셨군요.앞으로도 적어도 풀코스 4번은 뛴다는 목표를 세워 연습도 하시고 대회 참가도 하시기 바랍니다.목표가 없으면 안됩니다.저도 한국 나이 40살에 시작해서 6년동안 풀코스 26번,100km울트라 마라톤 1번 달린 경력이 있는데
      미국와서는 LA 마라톤 한번 뛰고는 전혀 못하고 있습니다.처음 풀코스를 완주했는 그때의 감동이 지금도 생생하여 댓글 남깁니다.

    • 경험자 69.***.137.35

      1년에 적어도 4번을 말씀드린건데 1년이라는 말이 빠졌네요.

    • 터노 70.***.205.95

      훌륭하십니다.

      그런데 그런 마라톤이 있다는 것은 어디에서 정보를 얻는 것인가요? 저도 한번 해보고 싶네요.

    • Quality 67.***.133.200

      경험자님 조언에 감사드립니다.
      저도 한국나이로 따져보니 40이네요.
      울트라 마라톤은 50mi 짜리랑 100mi짜리가 있더군요.
      그것보다는 Triathlon이 개인적으로 괜히 땡기는군요
      “Swim 2.4 miles! Bike 112 miles! Run 26.2 miles! Brag for the rest of your life” — Commander Collins, (1978)

    • Quality 67.***.133.200

      터노님 runnersworld.com 에 가시면
      “race finder”가 있습니다.
      훈련방법이랑 유용한 정보가 참 많습니다.
      도움되시길…

    • 터노 70.***.205.95

      감사합니다. Quality 님 …
      제가 사는 동네에도 마라톤 경기가 많이 있네요.
      저도 한 3개월 준비하고 한번 도전해 보고싶습니다.
      감사합니다.

    • CPM Eng. 70.***.184.238

      저도 마라톤 준비하고 있는데, 계속 햄스트링과 힙쪽에 부상이 생겨서 차질이 생기네요. 부상방지만 해도 하프 뛰는데는 아무 이상이 없을거 같은데 너무 속상합니다. Quality님께서는 부상은 한번도 안 겪어 보신거 같네요.

      달리기를 취미로 하는 사람으로서 마라톤 완주 축하드립니다.

    • Esther 70.***.197.9

      저는 올해 breast cancer 3day 그거라도 해볼까 헀는데, 올핸 너무 준비를 안해서요..
      내년에는 저것도 하고 마라톤도 뛰어볼까 하는데…혹시 도움주시거나, 같이 뛰실분 계시면..좋겠어요..
      근데 3개월만 준비하고도 해프마라톤도 완주 가능한가요?
      아..
      저는 참고로 여자고 미국나이 32입니다..

    • Quality 67.***.145.82

      제 와이프 꼬셔서 2~3주 뛰게 했더니
      몸져 누워 1달을 제가 고생한적이 있습니다.
      그사람이 “운치” 기질이 있어서
      이건 특별한 경우이고요.

      제가사는 곳은 95%가 백인이라
      다른 한국사람들의 경우는 잘 모르겠습니다만
      우리동네 백인 아줌마들 경우 이야기를 들어보면
      3달 정도면 해볼만한것 같습니다.
      주중에 2번정도 가벼운 러닝하시고
      주말에 race mode로 열라게 뛰시면
      충분한 시간입니다.
      아니면 5K, 10K 프로그램도 있습니다
      주로 Half marathon walk으로 시작하는 사람도 많이 봤습니다.

    • Quality 67.***.145.82

      참 동네마다 running club 같은거 있습니다
      잘 함 찾아보세요.
      같이 뛰면 훨 덜 힘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