쪽팔려서 고개를 못 들겠네

  • #3728472
    칼있으마 73.***.237.212 292

    사내자식이
    약관의 나이가 되었으면

    사안의 옳고 그름은 가리지 않고
    냥 제 속한 데서 냥 당파쌈질이나 하고 앉아

    정작 나라와 백성은 돌

    보지

    않는 위인들이
    넘치고 넘치는 위기의 때에

    얼릉 출사를 해서

    충심으로

    주상

    을 보필해도 시원치 않을 판국에

    빈둥빈둥 방구석에 틀어박혀
    야동의 노예가 되어

    호색,
    탐색에만 몰입을 해서야 쓰겠느냐.

    당장 집을 나가 서울로 가거라.

    아버지가 등을 떠미는 바람에
    이태를
    서울 고시촌에 머무른 적이 있었다.

    그곳에서
    머릴 싸매고 과거시험 공부에 매진한 결과

    고진감래요,
    지성이면 감천이라고

    장원급제하여
    출사를 하게 되었고

    3년 계약직 공무원,

    군인의 길

    을 걷게 되었었다.

    돌이켜 봄 그 때 희망 근무지를

    여의도가 아닌
    군대로 써 낸 게 얼마나 다행인지.

    만약 그 때 여의도로 써 냈다면
    지금 때의 연세로 보나 인품으로 보나
    총리 내진 장관을 하고 있을 터,

    평소의 내 성품이 소문난대로

    올곧기가 대쪽같아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아닌 건 아니라고의 직언을 서슴지 않았기에

    아마 지금쯤
    주상을 보필하다 말곤

    너같은 게 무슨 주상여이 색휘야.
    당장 내려와이 좀마나.

    라고 퍼붓고 나온 다음날

    70 여군데의 압수수색을 당하곤
    콩밥을 먹으며 빵돌이를 하고 있을텐데

    다시 생각해 봐도
    그 때 군대에서 공무원 생활을 한 게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무튼,

    서울에서 이태를 머무르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이 있다면

    차범근.

    어쩌다 그와의 악수였다.

    악수 후 난 무조건
    그의 광팬이 되기로 작정을 했고

    내가 우리나라에 자긍심을 갖게 된 계기도
    바로 그 때문였다.

    차범근 보유국.

    그가 국대 감독직에서 물러날 때엔
    세상이 무너지는 것 같아
    거의 십박열하룰 앓아 누웠었었었고

    졸속행정을 일삼는 축구협회에 회의를 느껴
    협회에 사의를 표명하곤
    축구와 절연을 하고 살았었는데,

    차범근 축구교실.

    그의 축구교실이 없어진단 뉴스다.

    아마 십박열하룰 앓아 눌라고 그러는지

    마음 구석구석과
    뼈 마디마디가
    슬슬 아파온다.

    우리나라의

    축구의 상징.

    랜드마크가 지워지는 느낌에서다.

    무튼,

    그러다 글 박지성이 이었고

    박지성을 손흥민이 잇더니

    어젠 손흥민이

    그 바닥의 세계를 쥐고 흔들었다.

    평점 10 점 만 점인 10 점에

    헤트트릭.

    그냥 세 골을 넣은 게 아니라
    짧은 시간에 소나기 골을 퍼 부은 거라.

    몸살기운이 사라지면서
    차범근의 사고로
    해지되었던 나라에 대한 자긍심이
    다시 부활한 날였다.

    손흥민 보유국.
    .
    .
    .
    .
    .
    손흥민 보유국의 자긍심에

    바운스바운스.

    신난 위에
    찬물을 쩐트리는 외신이 있어 봤더니

    차범근, 박지성, 손흥민.

    을 백날 보유하면 뭐하냐.

    그래봤자

    접대부

    보유국.

    인 걸.

    아, 쓰바.

    이거야 원,

    쪽팔려서 고개를 못 들겠네.~~~

    • 러브 174.***.65.211

      부랄도헌테도 무시당하는 진정 병 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