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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나라에서 진보 담론의 주인은 386세대다.
386을 빼놓고선 울나라를 얘기할 수 없을 것인데,그 후세대에 비해 머릿수가 충분하고 유사한 정서적 배경을 공유하고 있다는 점, 특히 정치 참여적 성향을 내면화하고 있다는 점에서 그렇다.이 들이 사회주도층으로 진입하기 이전에 이미 정권의 주력으로 등장했다는 점을 보자. 노무현 정권은 386정권이었다. 내 예상조차도 앞지르는 압도적 성장이다. 게다가 그 후세대는 머릿수 면에서 크게 부족하지 않지만, 정치적 각성이 전무한 세대이고, 이들은 민족주의적 감성외엔 공유 지분이 있다. 386의 치세는 오래갈 것이다.
이 시대에 “내가 원하는 대로 세상이 바뀌어야 한다” 바꾸고 나서는 “내가 원하는 대로 세상이 돌아가야 한다” 고 울나라에서 줄창 외쳐대는 자들은 오래도록 386일 것이다. 냉정히 보자면 한나라당이 해야할일은 기득권 386에게 자신의 세력을 인계하는 것일 뿐이다.
우리는 386내부의 분화, 뉴라이트에 대해 주목할 수 있다. 결론지어 말하자면 뉴라이트란 386운동권과 다르지 않다. 그저 이념의 족쇄가 번거로웠을 뿐이다.
문제는 이들이 ‘진보’의 주창자라는 것이다. 그리고 이들은 아직 진보의 정당한 주인임을 주장한다. 이들의 진보는 어디로 갈 것인가? 여기까지가 서론이다.
이 들은 왕성하게 외국 이론의 수입 창구역할을 해왔다. 서양철학과 변증법적 유물론, 사적 유물론을 다룬 소련의 국정교과서들과 북조선의 정치물들과, 유럽의 신좌파 알튀세르니 그람시니 네그리니 하는 것들과, 나아가서는 영국 노동당 제3의 길에, 근래에는 페미니즘과 포스트모너니즘까지 수입했다.
그리고 이들의 주력은, 대다수는 이중 북조선의 노선을 채택했다. 북조선의 노선은 이들 중 가장 천박하고 대중없고, 앞뒤가 맞지않는 신앙고백같은 것이다. 왜 이들은 제일 싸구려를 택했을까?
혹자는 그저 쉬웠기 때문에, 대학생의 눈높이에 맞기 때문일 거라고 한다. 아직도 현존하는 주사파의 지능지수를 고려해 본다면 일리 있는 지적이다. 북조선의 노선은 무식하고 맹목적인 팬덤과 썩 잘 어울린다.
하 지만 다른 면에서 보자면 다른 이론들은 하나같이 “우리 사정”이 아니기 때문이다. 무척이나 그렇다. 맑스를 읽었다고 해보자. 당신은 포이에르바하의 테제라는 걸 보고 포이에르바하가 무엇인지 아는가? 나는 잘 모른다. 당신은 고타 강령비판을 보면서 고타가 무엇인지를 아는가? 나는 모른다.
직수입된 이론들은 모두들 그 사회의 배경을 진지하고 치열하게 공유한 대안적 담론들 이겠지만, 그건 그 동네 사정일 뿐 우리는 모른다. 386도 몰랐을 거다. 당신은 서퍼리지 무브먼트를 아는가? 알 게 뭐냔 말인가. 불과 몇십년도 안 된 일이지만, 625한국전과 같은 레벨이지만 우리는 모른다. 우리네 사정이 아니니까. 아, 이건 페미니즘 꺼다.
그러니 그들은 가장 이해하기 쉽고 한국현실에 맞는 변혁론을 “채택했다”. 그것의 공급자는 북조선 당국의 대남 정치 선전부였고, 이들의 공조는 당시의 대한민국 정부를 매우 불편하게 했고, 그 때문에 비극과 갈등이 난무했다. 그게 소위 386들의 비장함의 냉정한 현실이다.
이제 그것을 버릴 시기가 가까워 오고 있다. 386들은 더 이상 그러한 변혁론을 가질 필요가 없고 사실상 그것이 거추장스러웠음을 두 단계로 증언했다. 하나는 노무현 정부의 행동을 통해, 두번째는 뉴라이트를 통해. 쉽게 동의할 수 있는 사실인데, 뉴라이트와 노무현 정부는 그 정치적 지향점이 유사하다. 그저 다른 곳에 붙어 있을 뿐이다.
뉴라이트와 노무현정부의 공통점은 그들이 기반했거나 잠재적으로 후원했던 이론적 기반을 깔끔하게 포기했다는 점이다. 그 자리에 적당하게 자본주의 강성대국 정도를 치환해 넣었다. 이 지향의 치환은 매우 무분별한 것으로 영국과 미국과 같은 제국 차원의 나라들이 사용하는 경제적 자유기반의 자본주의라는 것의 한국성이나 부작용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체 기존의 것을 대체하는 의미로 대충 집어 넣었다. 뉴라이트와 노무현정부 둘다 마찬가지다.
이들은 그때 그시절 무분별하게 변혁담론으로 “주체사상”을 채택했던 때와 같이, 지금 무분별하게 주류담론으로서 “시장주의”를 채택하고 있다. 머리나쁜 건 약으로 안되기 때문이다.
차 이점은 그들이 주체사상을 채택했던 이유에 대한 태도이다. 뉴라이트의 친북조선적 성향은 정부에서 민중으로 변했다. 북조선 정부는 전복하고, 북조선 민중은 구원하자는 논리다. 이들은 북조선 정부의 팬에서 안티 팬으로 변모했을 뿐, 여전히 북조선에 집착한다. 어떻게 보자면 그때나 지금에나 이들은 황장엽의 팬이기도 하다.
반면 참여정부는 북조선 정부나 북조선 민중이나 여전히 친화적이다. 그동안 발전은 있었던 모양으로 주체사상을 더 이상 믿지는 않는 것 같다. 이들의 사상은 폐기되었고, 온갖 주류사상들과 비딱한 성격에 기반한 잡탕으로 대체된 반면, 대략의 대북 친화적 감성은 유지된다고 봐야한다.
문제는 386의 변화만큼 큰 다른 축도 변하고 있다는 것이다. 북조선의 노선은 변했다. 경제적인 이유로. 소련에 빌붙어서 혹은 중국에 빌붙던 경제가 별볼일 없어지고, 중국의 번영을 목도하는 북조선은 미국과의 관계정상화에 애가 달았다. 결혼하자고 협박하고 강간하고 자살시도하듯이 관계정상화하자고 핵만들고 미사일을 쏘고 핵실험을 한다. 북조선은 지금 미국의 스토커국가다. 이들은 더 이상 주체스럽지도 않고 자주스럽지도 않다. 지도자의 영도력에 대한 신뢰 외의 관념은 최소한의 자존심만 남겨두는 선까지 포기할 것이고, 그러니 울나라에 그런 인자를 뿌려댈 이유도 별로 없다.
그러니 끝났다. 386들이 진보를 자칭하던 가장 큰 이유가 해소될 상황에 처한 지금, 386들이 주창하는 진보는 그로테스크한 형태로 달성되어 버릴 가능성이 크다. 단기적으로는 이라크 민중들이 계속 저항한다는 조건으로 적어도 화합적인 평화 체제까지는 간다는 것이다. 장기적으로는 북조선은 자본주의의 압박을 견뎌내지 못할 것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나라 진보가 채택했던 우리 사정 – “민족사의 모순”-은 친일파만 남기고 해소되어 버린다. 현재도 남아있고 일부 재생산된 NL 계열 운동권들은 무뇌아들 답게 현재 일어나는 해빙무드를 “진보의 달성”인지 “진보의 왜곡”인지 판단을 NL 운동권 수뇌부에 의뢰할 것이고, NL운동권 수뇌부는 보수주의자답게 북조선의 현재 입장과 내부 조직 논리에 기반해서 편한대로 결론내릴 것이다. “진보의 달성”이 될 가능성이 높다.
결국 한국사회 진보의 쟁점은 이제 아련한 “친일파 청산”과 “국보법 폐지” 밖에 남지 않는 것이다. 민중들이 더 고통에 신음하고 세상이 새로운 문제에 쉴 새없이 봉착하는 와중에도 우리의 진보는 마지막 두 목표만 남기게 되는 것이다. 다시말해 진보는 남북간의 해빙무드와 함께 용도 폐기될 것이다. 원래 운동권의 것이지 우리 사람들의 것은 아니었으니 이제 드디어 이십년에 걸친 낚시질의 종장이 도래했다고도 하겠다.
그러므오 진보는 사라지거나 재창조될 운명이다. 노무현이 진보라고 우기는 웃기는 세상에서 사라질 수 밖에 없겠지. 새로운 단어를 만들고, 그것에 의미를 뒤집어 씌우고 현재의 문제에 변혁상을 제시하는 새로운 마케팅이 필요하다. 개인적으로 ‘진보’라는 단어 자체를 바꾸었으면 좋겠다. 너무 빨아먹어서 가치가 없다. 마치 도요다가 렉서스를 만들듯이 새 단어를 만들어야 한다. 온갖 무식한 신경증환자와 출세주의자 기회주의자들이 너무 진보를 남용해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