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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 자라나 외국에서 직장생활을 하는 분들은 정도의 차이로 공감을 해주실 거라 생각합니다. 한국에서 외국계 회사를 다니며 늘 잘한다 잘한다소리만 듣고 살다가 작년 MBA를 하러 나왔습니다. 그리 소심한 성격은 아니라 생각했는데, 학교에서 그룹프로젝트로 이런 저런일에 부딪치고 제 한계를 많이 느끼게 되었습니다. 무엇보다도 논리있게 말하는 영어실력이 부족함을 뼈저리게 실감했구요. 거기서 더 열심히 노력해야 할 말이라도 있을텐데, 여기 저기 말을 들어보면 한국에서 대학졸업하고 온 사람들에게는 영어는 10년이 지나도 어려운 문제라는 이야기들.. 영어를 따로 공부할 의욕은 사라지고 눈 앞에 닥치는 과제들만 해치우는 슬럼프에 빠졌죠.. 슬럼프라고 말하기도 우습습니다. 피곤하다 스트레스받았다며 이 정도면 됐지 뭐 하며 그냥 안주해버리는 제 못난 모습이었으니까요..
그런데 운이 좋게 이번에 summer internship을 얻게 되었습니다. 제 경력과 부합해서 그런지 처음으로 본 인터뷰에서 바로 오퍼를 받고 일을 시작했죠. 정말 뛸듯이 기뻤습니다. 커뮤니케이션 스킬이 그 무엇보다도 잡의 중요 부분을 차지하는 포지션입니다. 이제 2개월지나고 3주정도 인턴쉽이 남았는데 사회초년병시절에 앓던 월요병이 도졌습니다. 인턴이지만 제게 주어진 프로젝트가 정확하게 있었고 그래도 나름 MBA인턴쉽이라 샐러리도 상당히 높습니다. 같이 일하는 상사도 늘 미팅을 하며 프로젝트 진척 상황을 챙기는 모습에 아 난 정말 이번 기회에 공부많이 하겠다 싶었죠..
그런데 문제는 영어입니다. 아니면 영어와 함께 미천한 제 실력이 문제이던지요. 상사가 커뮤니케이션을 초안작성해오라고 해서, 완성해가면 정말 상사의 빨간펜으로 수정이 여러 번 들어갑니다. 그래도 다 배우는 과정이다 싶어서 열심히 수정하고 다시 올리고 미팅하고 하지만 결국은 상사의 글로 마무리가 되어버리죠. 너 영어가 문제다 너도 알지 하는 소리도 2번이나 들었구요. 이제는 의욕보다는 또 우울함이 앞섭니다. 제가 잘하려면 더 나아진 모습을 보여줘야겠는데, 제 글쓰기 실력이 3주안에 일취월장하리라고는 생각이 안되고 회사가 끝나고 집에 오면 기진맥진의 연속입니다. 어제도 상사에게 이메일로 올린 한 초안이 다시 새로운 내용으로 totally revised되어 돌아왔습니다. 그래머의 사소한 실수도 있겠지만 상사가 원하는 “그 스타일”로 글쓰기가 안 되는 것이 더 큰 문제인 것 같습니다.
오늘도 그 수정되어 돌아온 이메일을 보고 일이 손에 안 잡혀 힘들었습니다. 지금하는 프로젝트도 거의 마무리단계이고 그 후에 계약 만료시까지 3주동안 어떤일을 하게 될지.. 제가 디자이너도 아닌데, 회사에서 한 일은 엑셀,파워포인트로 자료만 만들고 있네요…
어떻게 하면 제가 이런 의기소침한 상태에서 벗어나 발전할 수 있을까요? 어떻게 회사에서 대범하게 굴며 앞으로 3주를 마무리 할 수 있을까요? 집에서 그냥 잠만 자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