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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히 예전에 읽었던 책을 책꽂이에서 꺼내어 중간쯤 펴서 다시 읽어 내리다가,
다음과 같은 구절을 발견하였다.
“죽음이란게 두렵지 않은 이유는, 우리가 태어나기 이전을 두려워 하지 않는 이치와 같다.”
그리스 말기 어느 쾌락주의자의 말이다.
내가 이땅에 태어나기 이전에 대하여 나 또한 두려워 해본적이 없다. 그 이유는 내가 존재하지 않았던 시기 였기 때문이다. 그럼 내가 죽어버린 이후또한 나의 존재는 없는 시기이다.
그런데, 나는 죽음이 두렵다.
왜?
지금의 내가 존재하고 있다는 것에 대한 집착이 아닐 수 없다.
태어나기 이전의 시기에 대하여 두려움이 없는 만큼 죽어버린 이후에 대하여도 그 어떤 두려움을 가질 이유가 없는 명약관화한 논리적 귀결이 보이는데도, 나는 죽음이 두렵다.
불교에서 우리는 번뇌를 버려야만 해탈의 경지에 들어갈 수 있다고, 한다. 그것은 바로 죽음이후와 탄생이전이 별 다를게 없다는 생각에서 이다.
하지만, 기독교는 죽음이후를 대비하라고 한다. 그리고 천국에 가려면, 나쁜짓 하지 말라고 한다.
태어나기 이전에 천국에 있었는지 지옥에 있었는지 알길이 없는데, 죽음이후에 그 무엇이 나를 기다리고 있을지 그 누가 증명해 낼 수가 있을까?
갓 태어난 아기들은 삶과 죽음을 결코 두려워 하지 않음이 명백해 보인다. 그 해맑은 얼굴엔 그 어떤 생과 사의 흔적은 존재치 않고 있다.
우리가 죽음을 두려워하는 이유는
내가 삶을 사랑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 말고는 다른 어떤 것을 찾을 수가 없다.그 삶의 대한 사랑속에, 나자신에 대한 사랑, 내 가족에 대한 사랑, 정다운 이웃에 대한사랑….
사랑말고 내가 죽음을 두려워 해야 할 이유가 과연 있을까?
내가 태어나기 이전에 나의 사랑은 존재치 않았고, 죽은 이후에도 나의 사랑은 존재치 않을 것이다. 오로지 살아있는 지금에만 나는 사랑하고 사랑받을 수가 있다.
그래서 나는 죽음이 두렵다.
살아있는 동안에 이 사랑이 없다면, 나는 죽음을 두려워 할 이유가 없으므로, 그 어떤 것도 두렵지 않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