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에 대하여 (내용의 압박이 있습니다)

  • #99957
    버즈 66.***.250.208 2662

    죄에 대해 생각해 봅니다. 히틀러도 죽기전에 회개했다면 천국갔을 것이고, 가스실에서 억울하게 죽은 착한 사람도 하나님을 믿지 않으면 지옥에 갔을 것으로 믿는 것은 말도 안된다는 비판이 있습니다.

    그런데 히틀러와 보통 착한 사람과의 차이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 보게 됩니다. 히틀러가 혼자 수백만명을 죽였다고 할 수도 있지만 히틀러뿐만 아니라 수많은 독일인들이 연합하여 그들을 죽였다고 할 수도 있습니다. 철학자 한나 아렌트의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이라는 책에는 유태인 학살에 있어 사악함의 대명사로 일컬어지던 아이히만이 히틀러에 충성심과 관료적 입장에서 단지 책상에 앉아 유태인 학살명령서에 사인을 하기만 하는 평범한 남자였다는 발견이 있다고 합니다. 이로 볼때 그가 유태인 학살에 다른 사람들보다 얼마 만큼 큰죄를 져야 하는지는 잘 판단하기 어렵습니다.

    히틀러 때문에 무고한 수백만명이 죽어갔지만, 무고한 수십만명을, 또는 수만명을 죽음으로 이끈 전쟁영웅들도 많을 것입니다. 나폴레옹처럼 말이죠. 죽인 인구수가 더 많다고, 또 죽은 사람들이 덜 무고한 정도에 따라 원인 제공자가 더 나쁜 죄인이 되는지는 의문입니다.

    사람을 죽인 것과 죽이지는 않더라도 큰 상해를 입힌 것, 또는 그냥 괴롭히는 것 들간의 차이도 애매합니다. 우리들 대부분의 사람들은 중죄없이 평범하게 살아가지만 아무런 작은 죄라도 짓지 않고 살아가는지는 자신이 없습니다. 누구라도 아이히만의 자리에 앉혀지면 큰 죄의식 없이 유태인의 가스실행 명령서에 사인하게 될 수도 있습니다. 큰 죄와 아주 작은 죄의 차이도 저는 잘 구별하지 못하겠습니다.

    기독교인들이 충무공 이순신 장군은 예수를 믿지 않아 지옥에 갔을 것이고, 예수를 믿은 일본군 장수는 천국에 갔을 것이라고 믿고 있다는 비판도 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충무공을 정말 존경하고 사모합니다. 아마 예수님 다음일 것입니다. 그분의 경이로울 정도로 빛나는 전술과 전공, 난중일기에 나타나 있는 애국애족하는 정신과 상놈이나 다름없는 병졸들의 이름까지 기록하는 부하사랑하는 마음 등 정말 가슴이 아려올 정도입니다. 하지만, 이순신 장군과 비교해 볼때 일본의 장수는 악인에 불과한 것일까요. 일본군 중에는 이제 일본이 통일되어 전쟁이 없는 세월이 오나 했는데, 히데요시의 명령에 의해 할수 없이 동원된 장수도 꽤 있습니다.

    조선으로 귀화한 사야가 김충선이 있는가 하면 일본으로 귀화하여 조선군과 싸우고 사무라이가 된 조선인도 있었습니다. 제가 이순신 장군을 사모하지만, 충무공도 초기 전공에 대한 보고에 있어 소홀한 점이 있어 원균과 사이가 벌어지는 계기가 된 일도 있었습니다. 과연 누가 죄인이고 의인인지 구별할 수 있을까요.

    이세상에 절대자가 계시다면 누가 그앞에서 나는 죄가 없다고 말할수 있을까요. 히틀러와 함께 나란히 절대자에 앞에 서있다고 가정할때, ‘나는 히틀러만큼 큰 죄를 짓지 않았다’고 한다면, 아마도 히틀러는 ‘당신은 2007년에 미국에서 살고 있지만, 나는 20세기 초중반의 독일에 살고 있었다’고 말할지도 모릅니다. 1차 대전에 패해서 전쟁배상 책임으로 허덕이던 독일에, 강력한 지도자를 필요로 하던 독일에 말이죠. 자신도 어쩔수 없었던 사정이 있었다고 말할지도 모릅니다.

    한국에서 극악한 살인으로 충격을 주었던 지존파 살인자들과 절대자 앞에 함께 선다면, 지존파는 극빈층에서 자라난 자신들은 세상에서 사랑을 받아본 기억은 없으며 증오심만 배웠다고 말할 수도 있겠습니다. 그런 사람들을 놓고 “나는 살인하지 않았고 모범생이었으니 저사람들보다 죄가 가볍다”고 말할수 있을지 저는 과연 모르겠습니다.

    이세상의 죄의 기준으로, 법을 기준으로 사람의 선악을 판단하는 것이 얼마나 공정한 것인지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사람이 과연 진화된 존재라면 구태여 죄를 짓지 않고 살아야 되는지도 의문입니다. 진화론에 따르면 아마도 인간공동체의 유지가 지고지선의 목적이고, 죄의 판단기준이 될 수도 있겠습니다. 하지만 그에 따르더라도 남을 속이고, 그보다 더한 범죄를 저지르더라도 공권력에 의해 잡히거나 법에 의해 처벌받지만 않으면 되는 것 아닐까요. 이 세상 기준으로 어떤 인생이 죄없는 인생인지 알수 있을까요.(이글을 일고 제기하시는 의문에 대해서도 아마 저는 답할 능력은 없을 것 같습니다.)

    • DC 68.***.224.51

      우리는 자유로이 타인을 판단하고 비판하곤 하지만, 태양아래 누구도 타인을 판단할 정확한 잣대를 갖고 있지 않습니다.

    • tracer 198.***.38.59

      “이세상에 절대자가 계시다면”
      이게 바로 키 포인트입니다. supernatural한 신이 있는지 없는지(또 있다 하더라도 어떤 신을 믿어야 하는지)가 아직 자명하지 않은 사회에서 구성원들은 natural한 사회의 가치기준과 도덕으로 사람들의 행위를 판단해야 합니다. 이 세상 이 사회 안에서는요.
      사후 세계가 있고 거기에 현세와 다른 기준이 부여되어 판단되더라도 그것을 알 수 없는 유한한 존재인 인간이 이해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지요. 그런 초자연적인 잣대를 짐작하여(당사자들은 확신하지만 근거가 없는 faith에 불과합니다.) 속세적인 인간사에 적용하려고 하니까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진화를 통해 사회적이어야 하고 서로 도와야 하는 종이기 때문에 이렇게 살아남았습니다. 기본적으로 도덕적이어야 살아남는 존재라는 말이지요. 물론 종종 극악무도하고 천인공노할 비도덕적인 psycopath/anti social인 사람들이 있습니다만, 그런 사람들이 놀랄만한 뉴스가 된다는 사실은 전반적인 사회 구성원들이 누가 시키지 않아도 기본적으로 도덕적인 것을 당연시한다는 말입니다. 물론 그 기본적인 도덕심을 신이 심어주었다고 한다면 더이상 할 말은 없습니다.

      역지사지의 마음으로 남에게 피해를 입하는 행위를 하지 않는 것과 잡혀서 벌을 받을까봐 나쁜 일을 하지 않는 것 중에 어떤 것이 더 noble하고 어떤 것이 더 cheap할까요?

      사족으로, 얼마전 과학뉴스에서 좋은 일(charity)을 하게 될 때 뇌의 반응을 조사하니 기분좋음을 느끼게 된다는 실험에 대해 읽었습니다. 저는 이 실험이 진화를 통해 인간이 서로 돕는 사회성이 뇌에 각인되었다고 해석하였습니다만, 종교인은 신이 도덕심을 심어 준 증거라고 해석 할 수도 있겠지요.

    • well 75.***.134.113

      어떤 실험의 결과를 자신의 기준으로 해석하는 것은 누구든지 뭐라고 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이런 결과를 상대방은 이렇게 해석할 것이다라고 생각하는 것은 지나친 비약일 수 밖에 없습니다.

      이런 생각을 가지게 된데는 cognitive dissonance에서 기인하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 tracer 198.***.38.59

      well/
      “해석 할 수도 있겠지요” 가 상대방이 이렇게 해석할 것이다라고 단정 지은 것으로 들리셨나요?
      cognitive dissonance보다는 confirmation bias에 대해 이야기하려고 쓴 사족이었습니다.

    • well 75.***.134.113

      tracer/

      ㅎㅎㅎ 네 맞습니다. cognitive dissonance보다는 conformation bias가 더 적절한 예인 것 같습니다.

    • 버즈 66.***.250.208

      진화된 존재가 인간이라면 고귀(noble)하다는 개념 자체가 들어가기 어려울 것입니다. 사회유지를 위해 유전적으로 학습된 사고이거나 행동일 뿐인데 특별한 가치를 부여할수는 없는 것 아닐까요.

      인간이 단지 고차원 사고를 할수 있는 진화된 동물에 불과하다면, 인간사회를 유지하는 것이 그렇게 귀중한 일인지 저로서는 공감이 가지 않습니다. (트레이서님에게 대한 것이 아니라 진화론에 대해 그렇다는 것입니다)

    • 버즈 66.***.250.208

      이자리를 빌어서 한가지 생각을 또 피력해 봅니다.

      과학이 종교를 부정한다는데, 제가 지금까지 지켜본바는 진화생물학에서는 신과 종교를 부정하지만, 여타 다른분야 과학, 특히 물리학 입장에서 볼때는 신과 인간의 영성의 존재를 부정하지는 않는다고 봅니다. 유신론자인 세계적인 물리학자도 있습니다.

      다만, 이런 과학자들이 말하는 신은 성경에서 말하는 인격적인 신보다는 우주 전체의 방향성을 철학과 연결지어 말하는 것 같습니다. 이쪽의 과학자들은 신의 존재에 대해 진화생물학과는 입장이 매우 다르더군요.

    • …. 96.***.47.174

      인간만이 고귀하다는 것이 오만한게 아닐까요? 생물의 입장에서 보자면 인간은 지능을 발달시키는 쪽으로 진화한 존재일 뿐입니다. 지능도 물론 대단한 능력이지만 저는 오히려 모든 생물들이 나름대로 경탄스럽고 대단해 보이는데요. 환경들에 적응 방식이 그토록 다양하다는 점이 대단하지 않나요?

      그리고 인간이 진화의 산물이라고 해서 왜 인간사회를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지 않나요? 인간 사회라는것은 인간이라는 동물의 장점을 가장 잘 살려주는 사회라고 생각하는데요. 인간 개개인이 자연에 나가서 과연 잘 생존 할수 있을까요?

      그리고 예를 좀 잘못 드신거 같은데요 유신론자인 과학자도 많이 있지만 자기 이론을 설명할때 신과 종교를 등장 시켜서 설명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자연 과학 논문에서 신이라는 개념으로 설명한 사람이 누가 있는지요..

      마지막으로 인간과 원숭이 사이의 중간형태 생물의 정의도 좀 불분명하긴 하지만 인간과 원숭이 사이 중간 종이 없는 이유는 공통의 조상에서 부터 각각 다른 쪽으로 특화해가는 방향으로 진화 했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지능을 발달시키는 방향으로, 원숭이는 운동성을 발달 시키는 방향으로 진화했지요.

    • 버즈 66.***.250.208

      답글 고맙습니다. 제가 1시간전에 읽어본 “신동아, 과학과 신의 만남” (2007.10.25)을 링크시켜볼려고 했는데 안되네요. 내일도 좋은 하루 되시길…

    • tracer 198.***.38.59

      버즈/
      과학이 종교를 직접적으로 부정한다기 보다는, 과학에 의해 발견된 많은 사실들이 종교가 주장하는 것들과 상충되는 것들이 많아지면서, 종교가 인간에 의해서 만들어진 사회활동의 하나이며 종교에서 주장하는 인격적 신의 존재 여부의 가능성은 매우 희박다는 유추가 가능하게 해 주는 것이지요. 진화론이 그 중에서도 종교에서 말하는 생명의 기원과 그 다양성의 설명에 크게 대립되기 때문에 생물학자의 무신론 비율이 더 높다고 생각이 됩니다.

      그리고 …님이 잘 써주신 댓글에 공감합니다. 종교가 오랜 시간동안 사라지지 않고 존재할 수 있었던 이유는 우리가 세계를 우리 인간 중심으로 생각하고 싶은 욕구를 충족시키기에 좋은 설명이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시간이 지나고 과학이 점점 더 많은 것들을 이해하게 해 주면서 종교가 사회에 설 자리는 점점 좁아지리라는 낙관적인 생각을 합니다.

    • 버즈 66.***.250.208

      여기 글을 주고 받으면서, 또 인터넷 서치를 통해 새로 알게 된 지식은 상당한 도움이 되고 있습니다. 절대자에 대한 인식은 조금씩 수정해 나가야 할 수도 있겠습니다.

      그런데, 성경적, 특히 구약의 인격적 신은 아니지만 초월적 존재로서의 신을 인정하는 지성인들이 있습니다. 어떤 목적, 방향성을 가진 우주의 법칙, 또는 자연의 법칙이 있다고 주장하는 과학자들도 있습니다. 있음을 느낀다고 하는 말이 정확할려나요.

      3, 4차원에서만 현상을 검증할 수 있는 현대 과학으로서는 그 절대적인 존재를 재단할 수 없다고도 말하고 있습니다. 과학을 따르시는 다른 분들은 구약에서 말하는 인격적, 지성적 신이 아니라도 다른 어떤 절대적 존재의 가능성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 tracer 198.***.38.59

      버즈/
      저는 그러한 존재(인격적 신이 아닌 순수한 natural law giver)에 대해서는 agnostic이 가장 합리적이고 정직한 입장이라고 생각합니다.

    • 버즈 66.***.250.208

      답변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