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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에 대해 생각해 봅니다. 히틀러도 죽기전에 회개했다면 천국갔을 것이고, 가스실에서 억울하게 죽은 착한 사람도 하나님을 믿지 않으면 지옥에 갔을 것으로 믿는 것은 말도 안된다는 비판이 있습니다.
그런데 히틀러와 보통 착한 사람과의 차이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 보게 됩니다. 히틀러가 혼자 수백만명을 죽였다고 할 수도 있지만 히틀러뿐만 아니라 수많은 독일인들이 연합하여 그들을 죽였다고 할 수도 있습니다. 철학자 한나 아렌트의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이라는 책에는 유태인 학살에 있어 사악함의 대명사로 일컬어지던 아이히만이 히틀러에 충성심과 관료적 입장에서 단지 책상에 앉아 유태인 학살명령서에 사인을 하기만 하는 평범한 남자였다는 발견이 있다고 합니다. 이로 볼때 그가 유태인 학살에 다른 사람들보다 얼마 만큼 큰죄를 져야 하는지는 잘 판단하기 어렵습니다.
히틀러 때문에 무고한 수백만명이 죽어갔지만, 무고한 수십만명을, 또는 수만명을 죽음으로 이끈 전쟁영웅들도 많을 것입니다. 나폴레옹처럼 말이죠. 죽인 인구수가 더 많다고, 또 죽은 사람들이 덜 무고한 정도에 따라 원인 제공자가 더 나쁜 죄인이 되는지는 의문입니다.
사람을 죽인 것과 죽이지는 않더라도 큰 상해를 입힌 것, 또는 그냥 괴롭히는 것 들간의 차이도 애매합니다. 우리들 대부분의 사람들은 중죄없이 평범하게 살아가지만 아무런 작은 죄라도 짓지 않고 살아가는지는 자신이 없습니다. 누구라도 아이히만의 자리에 앉혀지면 큰 죄의식 없이 유태인의 가스실행 명령서에 사인하게 될 수도 있습니다. 큰 죄와 아주 작은 죄의 차이도 저는 잘 구별하지 못하겠습니다.
기독교인들이 충무공 이순신 장군은 예수를 믿지 않아 지옥에 갔을 것이고, 예수를 믿은 일본군 장수는 천국에 갔을 것이라고 믿고 있다는 비판도 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충무공을 정말 존경하고 사모합니다. 아마 예수님 다음일 것입니다. 그분의 경이로울 정도로 빛나는 전술과 전공, 난중일기에 나타나 있는 애국애족하는 정신과 상놈이나 다름없는 병졸들의 이름까지 기록하는 부하사랑하는 마음 등 정말 가슴이 아려올 정도입니다. 하지만, 이순신 장군과 비교해 볼때 일본의 장수는 악인에 불과한 것일까요. 일본군 중에는 이제 일본이 통일되어 전쟁이 없는 세월이 오나 했는데, 히데요시의 명령에 의해 할수 없이 동원된 장수도 꽤 있습니다.
조선으로 귀화한 사야가 김충선이 있는가 하면 일본으로 귀화하여 조선군과 싸우고 사무라이가 된 조선인도 있었습니다. 제가 이순신 장군을 사모하지만, 충무공도 초기 전공에 대한 보고에 있어 소홀한 점이 있어 원균과 사이가 벌어지는 계기가 된 일도 있었습니다. 과연 누가 죄인이고 의인인지 구별할 수 있을까요.
이세상에 절대자가 계시다면 누가 그앞에서 나는 죄가 없다고 말할수 있을까요. 히틀러와 함께 나란히 절대자에 앞에 서있다고 가정할때, ‘나는 히틀러만큼 큰 죄를 짓지 않았다’고 한다면, 아마도 히틀러는 ‘당신은 2007년에 미국에서 살고 있지만, 나는 20세기 초중반의 독일에 살고 있었다’고 말할지도 모릅니다. 1차 대전에 패해서 전쟁배상 책임으로 허덕이던 독일에, 강력한 지도자를 필요로 하던 독일에 말이죠. 자신도 어쩔수 없었던 사정이 있었다고 말할지도 모릅니다.
한국에서 극악한 살인으로 충격을 주었던 지존파 살인자들과 절대자 앞에 함께 선다면, 지존파는 극빈층에서 자라난 자신들은 세상에서 사랑을 받아본 기억은 없으며 증오심만 배웠다고 말할 수도 있겠습니다. 그런 사람들을 놓고 “나는 살인하지 않았고 모범생이었으니 저사람들보다 죄가 가볍다”고 말할수 있을지 저는 과연 모르겠습니다.
이세상의 죄의 기준으로, 법을 기준으로 사람의 선악을 판단하는 것이 얼마나 공정한 것인지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사람이 과연 진화된 존재라면 구태여 죄를 짓지 않고 살아야 되는지도 의문입니다. 진화론에 따르면 아마도 인간공동체의 유지가 지고지선의 목적이고, 죄의 판단기준이 될 수도 있겠습니다. 하지만 그에 따르더라도 남을 속이고, 그보다 더한 범죄를 저지르더라도 공권력에 의해 잡히거나 법에 의해 처벌받지만 않으면 되는 것 아닐까요. 이 세상 기준으로 어떤 인생이 죄없는 인생인지 알수 있을까요.(이글을 일고 제기하시는 의문에 대해서도 아마 저는 답할 능력은 없을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