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떼기

  • #409438
    Lymph 70.***.168.129 3684

    바닷가에 살다보니
    밤마다 호젓하게 산책다니는게 습관이 들어버렸다.
    한국에서 살때완 다르게, 혼자 살다보니 집에 있으면
    인터넷도 쳐다보기 지겹고, 군것질만 생각나고..

    언제부턴가, 밤 열시에 바닷가에 있는
    별다방에 들르는게 습관이 되버렸다.
    거기 경치가 좋기도 좋고,
    더블 모카를 내 입맛에 맞게 잘 만들어주는 녀석때문이다.

    이름이 Matt인데, 아마 중국계 아메리칸인듯한 녀석이다.
    처음 올때부터 봤는데, 웃음도 많고
    항상 자기가 만들어준 커피는 어떠냐고 꼭꼭 물어보는
    친절한 녀석이었다.

    한 8개월인가 산책을 다녔을때쯤부터
    10시에 꼬박꼬박 들르다보니
    턱을 슬쩍 내밀며 ‘왔어?’ 란 표정으로 웃음 짓고
    에스프레소를 뽑기 시작한다.
    모카를 내밀면서, 그날 가장 안나간 케익종류나 쿠키종류를
    한개씩 주면서 special call이라며 주기 시작했다.
    타이밍이 교묘하게 맞을때 자기 혼자 closing하면서
    청소할때 내가 자칫 늦게라도 들른 날은(머 일부러 케익얻어먹으려고
    늦게 갔던건 아니다) 남은 케익이랑 쿠키랑 전부다 주는 날도 있었다.

    어저께 누군가와 미치도록 얘기가 하고 싶어 핸드폰 목록을 살펴보다
    전화할 사람이 한명도 없다는걸 또다시 깨달았을때,
    또 별다방으로 걸어갔다.
    변함없이 그녀석이 모카를 만들어 주며, 이번주가 마지막이라고
    그동안 고마웠다고 한다. 고마운건 나였는데?
    음 뭔가 울적한 마음에 별다방에 왔는데 왠지 더 우울해진듯하다.
    그녀석이 준 치즈케익 팩토리표 치즈케익도 아무런 맛이 안 느껴진다.
    왠지 더 답답해져서 한참동안 앉아있으니 그녀석이 가게 닫더니
    내앞에 앉는다.

    맷 녀석이 나한테 물어보고 싶었던게 있단다. 그러라고 했다.
    “미안한데 너 혹시 게이니?”
    푸하하하하 진짜 그 질문 듣고 기절할뻔했다.
    “전혀 아닌데…맷 넌 게이냐?”
    “아니 나도 스트레잇”
    “왜 내가 게이같아보이냐?”
    “아니 여자직원들한텐 농담도 안하고 표정이 경직되보이길래..이녀석 게인가 생각했지..”
    “어, 난 여자애들한테 수작부리는것처럼 보이기도 싫어서 여자애들이랑 대화하는거 꺼려해..”

    야간조에 있던 네명 혹은 다섯명이 날두고 게이냐 아니냐에 대해서 내기도 걸었던 모양이다. 이 자식들-_-; 그렇지만 모처럼만에 웃었던거 같다.

    이녀석이 간다니 진짜 아쉬운 마음이 가득하다.
    또 한번 정을 떼야겠구나 라고 생각해본다.
    친구는 아니지만, 기댈곳 하나 없는 미국땅에 정이란게 오고갔던 모양..
    무언가 조그만 선물이라도 준비해야겠다.
    그리고 앞으론 여직원들한테도 웃어는줘야지..
    수작거는것처럼 보이는게 게이로 보이는것보단 나을거 같다.

    • md 165.***.161.152

      ㅎㅎ 그래도 외모가 멋지시니 그런 오해가…. ㅎㅎ 바다도 가까이 있고 좋은 데 사시네요.

    • SET8 65.***.124.222

      따뜻한 지역의 바닷가 동네에 사시는군요.
      저두 같은 바닷가 지역인데, 이곳은 너무 추워서 산책할 엄두가 안 나는군요. ㅠㅠ
      별다방은 아니지만 안틱 분위기의 제가 좋아하는 이쁜 local 까페가 있긴 한데, 것도 저녁 6시면 문을 닫아 버리고… ㅠㅠ
      글의 분위기에서 느껴지듯…웃는 얼굴이 더 잘 어울릴거 같아요.

    • sb 128.***.120.189

      글의 마지막 부분을 보기 전까지는 여자가 쓴 글인 줄 알았어요;

    • 밤마다 98.***.1.209

      해변가를 산책하신다니 자주 보는 사람은 좀 무서울 것도 같은데 ㅋㅋ 전에도 원글님글을 읽은 기억이 있는데 감수성이 있으신 분 같네요.

      저는 그런 정뗄 사람이라도 있었으면 좋겠네요.

    • Lymph 70.***.168.129

      md//외모 전혀 안 그렇게 생겼습니다. 못생긴 옆집아저씨 스탈-_-; 게이도 곱게 생겨야 하는거였군요..ㅎㅎㅎ
      SET8//네 북가주는 따뜻해졌습니다. 머 그냥 남방 하나만 걸치면 괜찮은듯..밤이라도요..웃으면 울던 아이가 멈추는 형상..
      sb// …
      밤마다// 감수성은 없고, 먹성만 남은듯..-_-;;

    • Esther 75.***.97.209

      어떤 심정인지 100000000000%이해해요…

    • Le 68.***.1.10

      그러게요…. 게이로 오해 받으려면 살짝 스타일리쉬 해줘야 되는거 아닌가요? ㅎㅎ
      전 아예 그 ‘정떼기’가 싫어서 금방 떠날 사람(ex:유학생)하고는 친해지는게 두려울 지경입니다….

    • 림프님 70.***.202.219

      “절 아는 사람이 없어서 좋아요..”

      림프님 글을 보니, 동부에서 오랫동안 싱글로 살던 내 친구가 생각납니다. 림프님과 비슷한데, 그 친구는 치즈케익같은 먹는 타령보단, 일식집가서 혼자술마시던지 방에 혼자 틀어박혀 쏘주를 마시곤 하며 전화를 해대곤 했는데…지금은 한국서 교수님이 되셨으니 곧 결혼 소식이 들려올려나…한때는 공중 화장실에서 남자가 자꾸 말을 건다고 자기가 그렇게 멋있냐고 야릇한(ㅎㅎ) 농담을 하곤 했는데…미국사람들은 스트레이트나 게이나 참 찔러대는거 잘합니다.

      제가 이 싸이트에 오랫동안 안들어오다가, 어제 부턴가 들어와서 보면서 다시 중독현상이 오려고 합니다. 그래서 자주 안 들어올 생각이 벌써 듭니다.(이 싱글 싸이트에는 웃기도 하지만, 뭔가 웃으면서 슬픔이 내재해 있고 회한이 느껴지기도 하고 분노가 느껴지기도 해요) 그러다가 방금전 림프님 글을 아래서 보았는데…

      림프님이 하신, 윗 말씀이 참 솔직하면서도 인상적입니다. 내 머릿속에 확 꽂혓습니다. 이 말속에는 과거의 자아, 현재의 자아, 그리고 미래의 자아등의 참으로 많은 의미가 내포되어져 있는것 같아서입니다.
      미국서 사신지 3년이 채 못돼셨을거라 짐작이 되는데, 제가 틀렸을 수도 있구요.

      미국 참 위험한 나라입니다. 겉으로 쉽게 들어나지 않지만요. 알지못하는 사이에 당신의 영혼을 빼앗길 수도 있습니다. 조심하세요.

    • 지미생 68.***.207.110

      공감이 가는 글입니다…
      미국에서 생활하다보면 한국에서는 별로 중요치않게 생각하거나…관심없었던것들이 괜시리 친근감이 느껴지고 다시한번 돌아보게 되는거 같습니다.
      저도 집앞에 GAS STATION이 있는데요, 거기서 GAS넣을때마다 REDBULL을 꼭 사먹거든요…거기 항상있는 인도계친구가 한명 있는데..이제는 제가 GAS넣으려고 파킹하고 그 안으로 들어가면 이미 활짝웃는얼굴로 REDBULL을 꺼내놓더라구요.
      그래서 별로 마시고 싶지 않은날에도 인사나 한마디 건넬까…해서 들어간적도 많아요. 당연히 그친구가 있겠지..하는 마음에 들어갔는데 가끔 그친구가 아닌 다른 아르바이트생이 있고 그러면 괜시리 섭섭하고 그렇더라구요…이름도 모르는친군데…ㅎㅎㅎㅎㅎ
      미국에서 생활하다보면 사람 성격이 바뀌는거 같아요.제생각엔 두가지 같은데요..더 감성적이고…따뜻하게 변하는사람…그리고 다른한사람은 개인주의적이고 차갑게 되는사람…
      근데 웃긴건요…이 두가지타입다…그리고 어떻게 다른식으로 변하든…안변하든..
      외로운건 마찬가지라는 겁니다…^^
      저만그런가요…??? ㅎㅎㅎ
      그래도 원글님은 남자라서 밤에 그렇게 돌아다니기도 하고..좋으시겠어요~
      전 여자라서 그런지 밤에 혼자 걸어다니기 무섭던데…^^
      요즘 북가주는 좀 따뜻해졌나요? 사실 저도 북가주 출신이거든요~~
      그립네요………살짝 코끝만 시린 시원한 날씨가……

    • Lymph 75.***.242.183

      Esther// ㅎㅎㅎ 요즘 잘 지내고 계시죠?
      Le // 전혀 스타일리쉬하지 않습니당..그냥 어디 나갈땐 옷만 깨끗하게 입습니다..
      70.113.202.x // 음 영혼을 빼앗긴단 말이 무슨 말인지 잘 실감이 안 나네요..
      어차피 너무 무미건조해서, 영혼을 빼앗겨도 되지 않을런지..?^^;
      지미생 // 요즘 북가주 날씨 좋습니다. 오늘은 단연코 최고의 날이였던것 같습니다
      오늘 책방에 갔다가, 바닷가쪽에서 2시간동안 드러누워있다 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