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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은 청와대 홈페이지에서 직접 말씀드리고 싶었는데, 수많은 시민들의 ‘참여’ 덕에 서버가 다운됐더군요.
우선 감사드릴게요.
아수라장이 된 서울에서 시위대의 안전을 위해 무려 특공대까지 보내주셨더라고요. (이런 어폐가 또 어디 있겠나 싶지만.)
그네들이 한 일이 비록 시민들의 안전을 위한 일은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만, 일단 취지는 ‘참 잘했어요.’라 할만하군요. 진심이셨다면 말이에요.
본론으로 들어갈게요.
있잖아요, 아시는지 모르겠는데요, (아아, 돈 버시느라 한참 정신이 없으셨을 때라 잘 모르시겠지만) 지금, 아니 석 달 전까지의 민주정치는요 우리 아빠가 (안 그래도 윤년이라) 4년에 한 번밖에 못 얻어먹던 그 생일 미역국을 먹다가 ‘똑 똑 똑, 여기 있는 거 다 아니까 나와!’ 해서 끌려간 취조실에서, 옆방에서는 친구가 죽어가던 그 취조실에서 온갖 고문과 심문을 견뎌내며 이뤄낸 민주화거든요.
저는 아빠한테 그 얘기 들으면서 울었거든요.
잡혀갈 거 뻔히 알면서, 엄마가 (그러니까 우리 할머니요.) 끓여준 미역국을 먹으려고 들어간 집에서, 얼마나 무서웠겠어요. 우리 아빤 그때 스물 갓 넘은 대학생이었잖아요? 그렇게 이뤄낸 민주화랬어요.
그러니 지금 청계 광장이며 시청 앞 광장이며 하는 ‘아고라’들에서 용감한 척, 센 척 당신에게 맞서 싸우는 제 친구들과, 동생들과, 언니들과, 오빠들과, 그리고 이미 5공화국을 겪은 아저씨 아줌마들은, 얼마나 무섭겠어요.
정말, 물대포가, 그 방패가, 그 특공복이, 얼마나 무섭고 두렵겠어요.
근데 감히 당신은, 경제 살리라고 뽑아줬더니(솔직히 저는 그 말을 믿지도 않았지만요.), 민주는커녕 처음부터 작은 정부를 표방한 큰 정부로 온갖 민생을 위한 부서들을 통폐합하셨죠. 그것들의 참된 의미도 모르면서요. 공공연한 비리를 위해 기업 핫라인을 개설하셨죠.
마음대로 하고 싶은 공부도 하지 못하게 학교까지 자율화해 주셨어요. 저는 그렇게 하고 싶은 디자인 공부를, 눈치 보면서 해야 해요. 앞으로 감당해야 할 학비가 너무 무섭거든요.
레임덕이라는 말도 아깝게 이른 레임덕을 맞은 부시 미국 대통령을 위해 쇠고기 시장도 내 놓으셨죠. 정례 브리핑도 없애셨잖아요. 걸핏하면 엠바고라고 들었어요. 국민의 알권리는 이쯤이면 충분히 무시하셨어요.
그런데 있잖아요, 대통령 아저씨. 국민들은 말이에요, 심지어 91년생에 모의고사를 보름 앞두고 있는 저도요, 사실 알 건 다 알아요. 이건 당신만 모르는 비밀인데요, 요즘 한겨레 판매 부수가 늘고 있거든요. (그건 아저씨가 당선 됐을 때부터 예상된 일이긴 했죠.)
아무리 조선일보, 중알일보, 동아일보에서 북한 미사일을 떠들어도 국민들은 당신이 하는 일을 다 지켜보고 있거든요. 이 세상은 벌써 너무 ‘좋아’ 졌거든요.
이젠 인터넷 ‘시작화면’으로 네이버 대신 다음을 쓰는 사람들이 더 많아요. 아무리 많은 금칙어를 남발해도 말이에요.
아까도 말했듯이 우리 아빠가, 아빠의 친구들이, 아빠의 선배들과 후배들이 지켜낸 그 소중한 민주화 때문에라도 당신이 원하는 대로는 되지 않을 거에요.
이미 우리는 너무 많은 자유를 맛보았잖아요. 우린 이미 청와대 홈페이지에 대통령 험담도 할 수 있는 자유를 맛보았잖아요. 그런 민중에게 복종을 강요한다면, 당신은 헌법재판소로 가실 수밖에 없어요.
그건, 91년생인 저도 알잖아요.
아까 조금 전에, TV에서 내각을 쇄신하겠다며 환하게 웃고 계신 당신을 보았어요. 참 환하게, 당신 이마만큼 환하게 웃고 계시더라고요. 그런데 같은 시간에, 시위대는 울고 있었어요. 그곳에 나갈 수 없는 내가 미워서, 나도 울었어요. (부끄럽지만, 지금도 울고 있어요.)
청와대 앞에서 분신자살이라도 하면 눈은 한 번 깜빡여 주실까, 혹시 당신의 경찰들이 시민들에게 물대포를 쏘고 있는 사실은 알고 계실까, KBS 사장이 바뀌면 KBS는 물론 드라마, 스포츠 케이블도 안보겠다고 생각하는 여고생이 서울 어딘가에 살고 있다는 걸 알고 계실까.
저는 당신한테 관심이 많거든요. 어떻게 하면 당신이 저와 제 친구들에게 진심 어린 애정을 줄까 하고. 국민들도 당신한테 관심이 참 많거든요. 어떻게 하면 당신이 조금이라도 ‘성장’보다는 ‘분배’를 우선해주실까 하고.
그런데 그런 우리에게 좌파 운운하실 거에요? 웃기지 않나요. 민주주의를 원하는데 좌파라니요. 오히려 당신들을 우파라 하기엔, 당신의 친구들은 그저 기득권 친일, 친미파일 뿐인걸요.
얼마 전에 당신의 여동생이 우리 학교에서 ‘간증’을 했습니다. 당신을 ‘우리 이명박 장군님’이라 칭하며 어릴 적 자식들이 나라를 위해 일하게 해달라고 했던 어머니의 기도가 이루어져 기쁘다고 했지요.
하지만, 나는, 우리는, 점심시간까지 뒤로 미루어 가며 열정적으로 간증을 한 그분의 말을 납득할 수 없었습니다.
나라를 위해 일하다니요, 그건 또 무슨 비약입니까.
당신의 어머님이 울고 계실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내가 다 분해서 눈물이 날 것 같았어요. 저는 기독교인이에요. (개신교인지 천주교인지는 아직 모르겠지만요.) 한 신도의 입장으로, 그분의 간증이 ‘주님을 영접한 경험’에 대한 것이라고 생각할 수가 없습니다.
당신의 사학 보호와 당신 누이 동생의 간증, 그것은 신을 믿는 제가 학교 예배를 거부하게 만들기에 충분할 뿐입니다. 어떻게 사립학교 재단 교회에서 하는 예배에 고개를 숙이고 기도할 수 있을까요.
쇠고기 시장 열어도 당신한테 좋을 것 하나도 없다는 건 아저씨가 가장 잘 아시잖아요. 공화당 출신 대통령이 나올 수 없다는 것, 알고 계시잖아요. 제발, 재협상이란 말도 이제 지겨워요.
참여정부가 벌인 일을 설거지한다느니 하지도 마세요, 제발. 선정이 펼쳐질 때에 국민들은 자기네 나라 대통령이 누군지도 모른다고 하죠. 당신들의 언론 덕분에 묻혀버린 노무현 전 대통령의 노력을 욕되게 하지 마세요.
정치는 제1야당이었던 당신들이 하셨죠. 그의 ‘정치’를 욕하다니요. 나는 아직 어리지만,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후 가장 훌륭한 행정부였다고 확신하거든요. 하나 하나 따져보고 싶지만, 그조차도 이젠 지겹네요.
저 시위대, 5만 명 안팎의 숫자로 국민 대다수를 대변하고 있는, 그 참담함을 아프게 겪고 있는 저 민중들을 한 번 진심으로 돌아봐 주세요.
있잖아요, 정말, 정말, 간곡하게 말하는 거에요.
우리 아빠가, 정말 고생고생해서, 아무것도 바라지 않고 사심 없이 얻어낸 민주화예요. 이런 식으로 짓밟지 말아주세요. 그러기엔 우리 부모님들의 희생이 너무 슬프고 헛된 게 되잖아요.
당신이 만든 광장에서, 당신의 국민들이 울고 있어요.
어느 언론인은 그 안에서 울고 있는 헌법을 보았다고 하시더군요. 당신의 광장, 당신의 국민, 당신의 헌법이 울고 있어요. 모두가 통곡을 하고 있잖아요.
제발, 정말 제발 이예요.
저는, 그만 울고 싶어요. 나는 진심이예요.
2008년 6월 1일, 당신의 취임 100일과
6월 항쟁 기념일을 며칠 앞두고
서울에서, 수많은 여고생 중의 한 명이 드립니다http://bbs1.agora.media.daum.net/gaia/do/debate/read?bbsId=D101&articleId=17137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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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누리고 있는 자유와 민주화는 수많은 대학생들, 시민들의 피를 거름으로 일구어진 것입니다. 군부 독재에 대항하여 싸웠던 사람이든지, 마음은 있지만 용기가 없어서 동참하지 못했든지, 아니면 아예 관심이 없었든지, 민주화를 위해 싸우는 사람들을 빨갱이라고 욕을 했든지 모두가 그들의 희생으로 일구어진 이 자유를 누리고 있습니다.
이 미국에 우리가 나와서 공부하고 직장을 얻고 살고 있는것도 전두환 군부독재가 무너졌으니 가능한 것 아니겠습니까?
이렇게 그들에게 빚을 진 자들로서, 우리가 누린 자유가 얼마나 소중한지 다시한번 생각하며 목숨을 바치고, 고문으로 불구가 되고, 후유증으로 평생 고생하시는 그분들에게 잠시나마 감사한 마음 가졌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