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호근칼럼 `요코 이야기`와 민족주의 [중앙일보] (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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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렇게 너그러울수가 68.***.41.14 2494

    어떤 분의 말을 인용하고 싶습니다. “약자가 베푸는 아량과 관용은 진정한 아량과 관용이 아니라 비굴함이라고 생각합니다” 아무말이 필요없이 이말만 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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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송호근칼럼> `요코 이야기`와 민족주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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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피니언] 송호근 칼럼

    한국의 민족주의는 여전히 인화성이 높다. 작은 불씨만 튀어도 금시 발화하는 활화산이다. 일본이 독도 문제로, 중국이 동북공정으로 역사적 경계선을 무단 침입한 탓도 있으려니와, 그들을 점잖게 타일러 주저앉힐 만큼 국가 역량과 정신적 자산을 풍요롭게 만들지 못한 것도 사실이다. 외침에 의해 눈을 뜬 한국의 민족주의는 저항성이 강하다. 이 ‘저항성’은 경제성장으로 돌파구를 찾았지만, 아직 역사적 원혼을 달래지 못해 자주 가슴앓이를 한다.

    ‘요코 이야기’를 둘러싼 최근의 사태가 그렇다. 가해자와 피해자가 뒤바뀐 이 소설의 역사적 편파성에 항의해 재미동포 2세가 등교를 거부했고, 이를 계기로 미국 동부지역 한인들이 ‘역사 바로 알리기’ 운동을 벌일 참이다. 감성적 스토리 속에 일본의 야만적 침탈 행위가 은폐될 위험이 있고, 역사적 실상이 외국인들에게 잘못 이해될 소지가 많다는 것이다. 읽어 보니, 그럴 위험이 충분하기는 하다.

    ‘대나무 숲을 떠나 머나먼 고국으로’가 원제인 이 책은 소설 형식을 빌린 수기다. 남만주 관료였던 아버지와 군에 입대한 오빠를 남겨 두고, 세 모녀는 일본의 패전 소식을 전해준 지인의 권고로 야반도주를 감행한다. 나남에서 서울역으로, 부산항에서 후쿠오카로, 다시 교토역으로 이어지는 여정은 열두 살짜리 소녀 요코에게는 지옥이었다. 패망한 제국 일본도, 폐허가 된 일본 사회도 돌보지 않는 그들은 결국 난민이었다.

    한국인의 상처를 건드린 것은 조선인들이 피란 행렬의 일본 여자를 겁탈하는 장면이다. 이 구절에서 한국인 독자라면 수치심과 분노와 적개심이 동시에 폭발한다. ‘너희들은 어땠는데?’라고 되묻고야 만다. 북한의 민병대(작품에는 인민군으로 잘못 표현)는 일본인 피란 행렬에 무차별 총격을 가하고 주검을 약탈한다. 마치 일본군들이 우리에게 그랬듯이 말이다. 그렇다고, 소설 속 장면의 역사적 근거를 작가에게 요구하는 것은 조금 무리다. 어차피 논픽션적 픽션이고, 진위는 역사가의 몫이다. 침략전쟁이 일으킨 참상의 한 조각에 불과하다고 생각하면 그만이지만, 여전히 작가의 기억에 의문이 가라앉지는 않는다.

    조금 차분히 생각해 보자. 그 장면에 대해 민족주의적 분노를 표하기 전에 작가의 집필 의도를 폭넓게 해석하는 것이 필요하다. 조선인은 물론 일본 서민들도 전쟁의 희생자라는 인식과, 모든 사람을 짐승으로 만드는 전쟁은 반드시 사라져야 한다는 반전 메시지가 그것이다. ‘악한’ 일본인과 ‘선한’ 조선인이 자주 등장하는 것으로 미뤄 작가도 한국의 민족감정에 신경을 썼던 것 같다. 유년시절을 악몽으로 만들고 가족을 앗아간 것은 다름 아닌 자신의 고국 일본이라는 비판적 인식이 스토리의 배경에 스며 있다. 문학성이 다소 떨어지는 이 작품이 1980년대 미국에서 호평받은 것도 그 반전 메시지 때문이고, 진주만을 습격한 일본 정부의 도발 행위를 비난하는 대사가 미국 독자들의 감동을 자아냈던 것이다. 여기에 일본 예찬론이 휩쓸었던 80년대 미국의 문화계를 생각해 보면 공립도서관의 ‘추천 도서’로, 심지어 교사위원회가 뽑은 ‘좋은 책’으로 선정된 이유가 충분히 짐작되기는 한다.

    아무튼, 이역만리에서 벌어지는 ‘역사 바로 알리기’ 운동은 역사적 상처를 안고 사는 우리에게 신선한 격려임에 틀림없다. 그 낯선 이국 생활에서도 진실을 밝히고 민족의 자존심을 추스르는 것은 얼마나 눈물겨운가. 그런데 그 장면의 진위에만 매달리면 ‘저항적 민족주의’의 투박한 수준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는 점에 주의해야 한다. 상처투성이 요코의 소녀 시절을 끌어안고, 작가 요코 윗킨스의 메시지를 수용하는 것은 피해자만이 할 수 있는 성숙한 일이다. 그는 사실 제국 일본의 피해자이며, 전쟁의 희생자라는 점에서 조선인과 다를 바 없다. ‘요코 이야기’는 일본의 ‘내셔널 히스토리’가 겨냥하는 자국 중심적 이데올로기를 부정하는 힘을 갖고 있다. 전후 독일과는 달리 식민지 강점을 통렬하게 반성하지 않은 채 다시금 국가와 민족담론을 강화하는 일본의 용의주도한 역사 전도(轉倒) 기획에 대해, 사실 ‘요코 이야기’는 오히려 해 줄 말이 많은 스토리다. 작가의 아픔까지 감싸안는 태도야말로 우리의 역사적 원혼을 달래는 데 필요한 마음가짐이다.

    송호근 서울대 교수.사회학

    • 타고난혀 71.***.220.248

      작가의 아픔까지 감싸안는 태도야말로 우리의 역사적 원혼을 달래는 데 필요한 마음가짐이다.

      …. 역사적 원혼이 무덤에서 걸어 나오죠, 이런걸 감싸 안으면..

    • ㅇㅇㅇ 70.***.242.167

      이런 보편타당하고 성숙한 글을 쓰시는 계몽의 용기는 높이 사지만 한 몇개월 후에 쓰시는 편이 좋았을꺼라는 노파심이… 달아오른 냄비는 재풀에 식을 때까지 기다려야지 식힌다고 손데면….

    • dg 75.***.218.52

      I agree 100% about this opinion.
      But, the problem is it is kids who will read and study this book and they can not understand so complicated meanings between the lines.

    • 하하 69.***.149.197

      어떤분이 남기셨더군요.
      요코의 이야기는 한국남자 몇에의해 이루어진일이고 위안부의 경우는 일본국가적으로 이루어진일이다.
      무엇을 감싸안아야한다는 말이야. 호근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