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 이야기] 중증 지체장애 송명희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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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OTL 72.***.252.108 2527

    “나 가진 재물 없으나,

    나 남이 가진 지식 없으나,
    나 남에게 있는 건강 있지 않으나,
    나 남이 없는 것 있으니,
    나 남이 못 본 것을 보았고,
    나 남이 듣지 못한 음성 들었고,
    나 남이 받지 못한 사랑 받았고,
    나 남이 모르는 것 깨달았네,
    공평하신 하나님이,
    나 남이 가진 것 나 없지만,
    공평하신 하나님이,
    나 남이 없는 것 갖게 하셨네.”

    이 시를 지은 송명희 시인은 심한 장애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 시를 통해 저는 이 분이 예수님을 만나서 늘 대화하시는 분이구나하는 것을 알았습니다. 우리는 마음속에 있는 것을 통하여 봅니다. 우리 안에 예수님이 계시면 예수님이 보일 것입니다. 우리 안에 세상것이 있으면 세상것이 보일 것입니다.



    주옥 같은 많은 시(詩)를 써서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감동시키고 많은 사람을 예수 그리스도께로 인도했던 송명희 시인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면서 함께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1) 송명희 시인은 약하고 보잘 것 없는 깨어진 질그릇이었습니다.

    송명희 시인은 태어날 때부터 깨어진 질그릇이었습니다. 의사의 부주의로 아기의 뇌를 집게로 잘못 건드려 소뇌를 다쳤습니다. 태어난 아기는 울지도 못하고 몸을 가누지도 못했습니다. 여물지 못한 계란처럼 아기 머리가 만지는 대로 푹푹 들어가 만질 수도 없었습니다. 집안은 너무 가난해서 뇌성마비로 태어난 아기에게 아무 것도 해 줄 수가 없었습니다. 아버지는 약한 몸과 술과 담배와 과로로 병이 들었고 어머니도 몸이 약해 아기에게 젖도 먹이지 못하고 우유도 사 먹이지 못했습니다. 쌀가루 끓인 물만 아기에게 억지로 떠 먹이곤 했습니다. 송명희 시인은 어린 시절의 고통을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나는 일곱 살까지도 누워만 있다가 업으면 머리가 등 뒤로 고꾸라져 허리가 빠지고 목이 꺾일 듯한 고통을 느꼈다. 어머니는 나를 업고 은사 집회에 가서 안수 기도를 수없이 받기도 했고, 침 맞는 곳에 가서 머리와 팔 다리에 침을 꽂기도 해서 난 자지러지게 울기도 했다. 그때의 고통을 지금까지도 기억해 낼 수 있음은 지독한 고통이 너무나 컸기 때문이다.”

    송명희 시인은 열 살이 넘어가면서 하나님과 어머니를 원망하기 시작했습니다. 마치 18살 때 다이빙을 하다가 머리를 부딪혀 목 이하의 전신이 마비된 “조니 에릭슨”이 자신의 삶을 저주하고 하나님께 반항했던 것처럼, 송명희 시인도 자신의 삶을 저주하며 하나님과 어머니를 원망하기 시작했습니다. 어느날 불쑥 어머니에게 대들었습니다.

    “엄마는 애기를 자연 유산도 잘하면서, 왜 난 이렇게 났어? 나도 그렇게 유산해 버리지 왜 이렇게 나은 거야?”

    송명희 시인은 자기를 사랑하면서도 때로는 욕설을 퍼 붓는 아버지가 원망스러웠고 자기에게 아무 것도 해 주지 못하는 어머니가 원망스러웠고 그런 집이 싫었고 그런 세상이 싫었다고 고백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원망스러웠습니다. 그녀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는 어머니가 미웠고 하나님이 원망스러웠다. 온 몸이 멍 투성이가 될 때까지 맞으며 비인간적인 안수기도를 받고 있노라면 그 고통이 나를 견딜 수 없도록 했다. 나를 이렇게 만들어 놓고 나타나지도 않고 뭔가 해주지도 못하는 하나님을 향해 불신하며 원망하며 반항했다. 한없이 외로웠고 답답함에 가슴이 터질 것 같았다. 자살하려고 했다. 무조건 반항이었고 무조건 원망이었다. 미치고 싶었으나 미쳐지질 않는게 더 큰 고통이었다. 애지중지하던 긴 머리를 잘라버렸다. 모든 것이 절망이었다.”

    송명희 시인은 깨어진 질그릇이었습니다. 몸뿐 아니라 그의 마음과 정신과 영혼은 완전히 망가지고 깨어진 질그릇이었습니다.

    (2) 송명희 시인은 보배를 담은 고귀한 질그릇이 되었습니다.

    송명희 시인은 16살 되던 해 그가 극심한 절망에 빠졌을 때 하나님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하늘의 빛을 받게 됩니다. 예수님의 생명을 몸에 담게 됩니다. 약하고 보잘 것 없던 깨어진 질그릇이 하나님의 집에서 가장 귀하게 쓰여지는 고귀한 그릇으로 바꾸어지게 됩니다. 예수님은 어느날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 25 ○ 그 때에 예수께서 대답하여 말씀하시기를 “오 하늘과 땅의 주이신 아버지여, 이런 일들을 지혜롭고 슬기로운 자들에게는 숨기시고 어린 아기들에게 나타내심을 감사하나이다. 26 그러하옵니다. 아버지여, 이는 그렇게 하시는 것이 아버지 보시기에 선함이니이다. 』(마태복음 11:25, 26)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의 비밀을 세상의 지혜롭고 슬기 있는 자들에게는 숨기시고, 어린 아이와 같이 힘 없고 연약하고 병들고 쓸모없는 사람들에게 나타내신다는 말씀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시기도 했습니다.

    『 23 ○ 또 주께서 제자들에게 돌아서서 따로 말씀하시기를 “너희가 보는 것을 보는 눈들은 복이 있도다. 24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많은 선지자들과 왕들이 너희가 보는 것을 보고 싶어하였으나 보지 못하였고, 너희가 듣는 것을 듣고 싶어하였으나 듣지 못하였느니라.”고 하시니라.』(누가복음 10:23, 24)

    주님은 이 말씀처럼 어린아이와 같은 송명희 시인에게 자신을 나타내 주셨습니다. 송명희 시인이 16살 되던 해 그가 극심한 절망에 빠졌을 때 교회 강단 밑으로 들어가서 하나님께 부르짖었습니다. 교회 강단 밑으로 기어들어가서 넋 나간 사람처럼 이렇게 중얼거렸습니다.

    “하나님! 제발 저를 만나주세요. 제발 저를 만나주세요. 제 모든 걸 다 드릴게요.”

    그런 기도를 한 후 이상한 현상이 일어났습니다. 작은 빛이 소녀 송명희의 머리 위에서 밤낮으로 반짝거렸습니다. 사흘 뒤 밤 열 두 시에 다시 기도를 했습니다. 그랬더니 그 반짝이는 빛이 위로 올라가고 밝은 빛이 비추이면서 두루마리 같은 것이 눈 앞에 서더니 양쪽으로 펼쳐지고 이상한 글이 적혀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한글도 영어도 한자도 일어도 아니었고 생전 처음 보는 글이었지만 읽을 수가 있었습니다.

    “하나님을 믿으라! 네가 하나님을 믿지 아니하면 죽으리라!”

    그 두루마리는 말려서 다시 올라가고 밝은 빛도 사라지고 다시 작은 빛이 반짝거렸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빛을 소녀 송명희에게 비추어주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믿으라는 말씀을 보여주셨습니다. 그 해, 1979년 10월 어느날 저녁 어느 부흥회에 참석했다가 송명희 시인은 자기가 죄인인 것을 깨닫고 통곡을 하며 울기 시작했습니다.

    “아버지! 아버지! 저는 죄인입니다.”

    그렇게도 원망하고 반항했던 하나님을 향해 ‘아버지’라고 부르며 통곡하기 시작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소녀 송명희에게 아버지로 나타나셨습니다. 그 후부터 소녀 송명희는 성경을 읽기 시작했고 하루에 다섯 시간 동안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깨어진 질그릇에 그분의 빛을 비추어 주셨고 아버지로 나타나 주셨고 그분의 음성을 들려주시기 시작했습니다. 성경에 나타난 이적들에 대한 의심이 생길 때 이런 주님의 음성이 들려왔습니다.

    “너는 그것도 못 믿으면서 어떻게 나를 믿겠느냐!”

    마음 속에서 사탄의 유혹이 일어나고 그래서 죄책감과 낙심과 좌절의 늪에 빠져 있을 때 이런 음성도 들려 왔습니다.

    “그래도 나는 너를 사랑한다. 그래도 나는 너를 사랑한다.”

    어떤 때는 극심한 몸의 고통 중 자리에 누어 있을 때 십자가에 못 박히신 주님의 손이 나타나기도 했습니다.

    “누어서 고통 중에 있는데 어두움 속에서 나무 토막이 나타나고 그 위에 손바닥이 올려지고 돌로 된 못이 박혀서 손바닥을 부수며 뚫고 나갔다. 붉은 피가 터져 나오고 뼈에서 흰 진액이 나오는 광경을 보게 되었다. 주님의 못 박히신 손이었다. 꿈이 아니었다.”

    소녀 송명희는 예수 그리스도의 비밀을 하나하나 발견하고 체험하기 시작했습니다. 성경에 숨겨져 있는 예수 그리스도의 비밀이 하나하나 나타나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의 은혜는 값없는 은혜라 하여 가볍게 여길 만한 게 아니라 값이 너무나 커서 그 값을 붙일 수 없다”는 사실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녀는 감격해서 울면서 성경을 읽고 또 읽었습니다. 가슴이 터질 것 같았습니다. 그 사랑에 자신의 마음을 주체할 수가 없었습니다. 주님의 놀라운 사랑에 감동한 이 소녀는 사도 바울처럼 그리스도의 비밀을 전하고 싶었으나 몸을 움직여 전할 수가 없어서 깨달은 말씀을 노트에 기록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때마다 하나님께서는 그녀에게 시를 불러주셨고 시를 쓰게 했습니다. 소녀 송명희는 울고 또 울었습니다. 주님이 깨어진 질그릇 같은 자기에게 주님 자신을 보여주셨고, 주님 자신의 음성을 들려주셨다는 사실 앞에서 기쁨과 감격에 사로잡혀 울고 또 울었습니다. 그녀는 이렇게 기록했습니다.

    “주님은 일기장 한 장도 채우지 못할 정도로 문학에 소질이 없었던 나에게 문학을 가르치셨고 예술성을 불어넣으셨다. 시를 불러주시고 성경을 알려주셨다. 그 누구도 나와 말하지 않았고 아무도 나에게 성경을 알려주지 않았지만 주님이 함께 하셨고 주님이 하나하나 알려주셨다. 나는 하나님께서 불러주시는 대로 노트에 시를 썼다. 그 비밀스런 은혜의 말씀을 알고 얼마나 울었는지! 나는 주님과 울고 웃으며 그렇게 살았다.”

    이 무렵 송명희 시인은 ‘에바다’【 ※ Ephphatha (엡파다):마가복음 7:34에 나옴. ‘열리라’라는 뜻. 】란 제목의 시를 썼습니다. 아니 자기가 쓴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시를 그에게 불러 주셨습니다.

    “열어 주소서 열어 주소서 내 눈을 열어주소서
    주님 바라볼 수 있도록.
    열어 주소서 열어 주소서 내 귀를 열어주소서
    주님 말씀 들을 수 있도록.
    열어 주소서 열어 주소서 내 맘을 열어주소서
    주님의 뜻 깨달을 수 있도록.
    열어 주소서 열어 주소서 내 입을 열어주소서
    주님 말씀 전할 수 있도록.”

    송명희 시인은 이렇게 주님과의 친밀한 교제의 삶을 살면서도 세월이 흘러 이십 대가 되면서 또 한번 번뇌와 좌절에 빠지기도 했습니다. 하나님에 대한 불만을 가지기도 했습니다.

    “나는 무익한 종입니다. 왜 나를 이렇게 만드셨나요? 휠체어도 없어서 교회도 못 가고 봉사도 전도도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나는 도대체 무엇에 쓸 수 있나요?”

    그때마다 주님은 이렇게 말씀하시곤 했습니다.

    “내가 너를 이렇게 만들지 않았다면 네가 나를 믿었겠느냐? 너는 지금 기도로 나를 기쁘게 하고 있다. 내가 너를 반드시 들어 쓰리라! 내가 너에게 많은 사람을 주리라!”

    이렇게 말씀하시면서 머리에 기름을 부으시고 안수하심을 느꼈습니다. 그러나 그런 말씀을 늘 들었지만 현실과는 너무나 거리가 멀어서 안타까움과 서글픔에 잠길 때가 많았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연희동 집 주인이 집을 비워 달라고 해서 서초동으로 이사를 가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연희동 교회에서 가장 친하던 친구 최인자 언니와 헤어져야만 했습니다. 그녀는 아무 것도 없다는 생각에 너무 슬퍼서 방바닥에 엎드려서 부르짖으며 울기 시작했습니다.

    “나는 아무 것도 없어요! 친구도 집도 휠체어도 아무 것도 없어요!”

    바로 그때 주님이 그에게 시를 불러 주셨습니다.

    “내가 말하는 대로 써라!”

    왼 손에 토막 연필을 쥐고 울먹이면서 알아볼 수 없는 글씨로 시를 썼습니다.

    “나 가진 재물 없으나,
    나 남이 가진 지식 없으나,
    나 남에게 있는 건강 있지 않으나,
    나 남이 없는 것 있으니,
    나 남이 못 본 것을 보았고,
    나 남이 듣지 못한 음성 들었고,
    나 남이 받지 못한 사랑 받았고,
    나 남이 모르는 것 깨달았네,
    공평하신 하나님이,
    나 남이 가진 것 나 없지만,
    공평하신 하나님이,
    나 남이 없는 것 갖게 하셨네.”

    너무나 엉뚱하신 말씀에 기가 꽉 막혀서 도저히 쓸 수가 없었습니다. 폭발하는 울음을 발산하며 소리쳤습니다.

    “아니요! 못 쓰겠어요! 하나님 공평해 보이지가 않아요! 내겐 아무 것도 없잖아요!”

    그러나 주님은 화를 내시면서 말씀하셨습니다.

    “시키는 대로 공평하신 하나님이라고 써라!”

    송명희 시인은 하나님의 고집을 자신이 꺾을 수가 없음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결국 송명희 시인은 하나님이 시키는대로 그 유명한 “나”라는 제목의 시를 썼습니다.

    (3) 송명희 시인은 주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는 반짝이는 별이 되었습니다.

    이제 송명희 시인은 일약 주님에 의해 주님을 증거하는 반짝이는 별이 되어집니다. 그녀는 극동 방송을 늘 들으면서 극동방송을 교회로 삼고 예배를 드렸습니다. 극동 방송이 재정적으로 어려움에 처해있다는 소식을 듣고 극동방송을 돕고 싶다는 생각을 품기도 했습니다. 그녀는 계속 주님께 기도하며 주님이 주시는 시를 썼습니다. 그가 21살이 되던 1984년 8월 16일 극동방송에 가서 면담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의 간증은 많은 사람들을 울게 만들었습니다. 유관지 목사님은 울음보를 터뜨렸습니다. 소원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노트에 써 놓은 시를 책으로 출판하는 것이 소원이라고 대답했습니다. 결국 1년 후인 1985년 5월 여운학 장로의 도움으로 규장에서 그의 시집이 출판되었습니다. 왼손으로 몽당 연필로 쓴 원고지 열 권 분량의 시와 왼손으로 몽당 색연필로 그린 그의 그림을 표지로 한 송명희 시인의 시집 3권이 출판되어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송명희 시인의 영혼의 고백 소리를 들으면서 함께 울기 시작했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주님 품으로 돌아오기 시작했습니다. 송명희 시인은 너무너무 행복해서 얼마나 울었는지 모릅니다. 책만 봐도 눈물겹도록 기쁘고 감사한데 원고료로 백만원이 주어졌습니다. 생전 처음으로 번 돈이었습니다. 그 당시 송명희 시인의 집은 전세금이 부족해서 50만원의 빚을 지고 있던 때였습니다. 그래서 송명희 시인은 원고료가 나왔을 때 휠체어도 사고 전동 타자기도 사고 빚도 갚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그녀는 원고료 전부를 봉투째 자기가 교회로 삼고 있던 극동방송에 헌금으로 드렸습니다. 그때부터 하나님께서는 송명희 시인을 시인으로, 간증자로, 주님을 증거하는 반짝이는 별이 되게 하셨습니다. 헌금 사실이 알려지자 많은 사람들이 충격과 감동을 받았습니다. 자신들의 탐욕을 부끄럽게 느꼈습니다. 고무송씨의 “명희양에게 전동타자기를 주옵소서”란 제목의 기사가「빛과 소금」지에 실리자 이름 모를 독자가 그에게 전동 타자기를 생일 선물로 보내주기도 했습니다. 송명희 시인은 이듬 해인 1986년부터 하용조 목사님이 기증한 휠체어를 타고 이 곳 저곳을 다니며 주님을 증거하게 됩니다. 그러던 어느날 극동방송의 임경섭 부사장이 송명희 시인의 집을 방문했습니다. 송명희 시인을 극동방송에 맡겨보지 않겠냐고 제안했습니다. 미국에 데려가서 치료를 받게 하면 어떻겠느냐고 제안했습니다. 뜻 밖의 제안에 송명희 시인과 어머니는 당황했고 한 동안 아무 말도 할 수 없었습니다. 어머니는 침착하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본인이 결정할 문제이지요.”

    송명희 시인은 놀란 토끼처럼 가슴이 뛰고 혀가 떨리기 시작했습니다. 모든 시선이 그에게 집중되었습니다. 긴장감이 돌고 침묵이 흘렀습니다. 송명희 시인은 순간적으로 기도를 했습니다. 가만히 눈을 감았습니다. 입술이 떨렸습니다. 그의 입에서 이런 말이 흘러나왔습니다.

    “난 이대로 가 좋아요. 주님이 만들어 놓으신 이대로 그냥 살겠어요! 난 이대로 가 좋아요. 주님이 만들어 놓으신 이대로 그냥 살겠어요!”

    임경섭 장로는 전기에 감전이라도 된 것처럼 부들부들 떨더니 갑자기 목 놓아 울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송명희 시인을 덥석 껴 안았습니다. 후에 임경섭 장로는 극동방송에서 송명희 시인에 대한 말을 다음과 같이 하면서 흐느꼈습니다.

    “명희양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대로가 좋아요. 주님이 만드신 이대로 살겠어요.’ 여러분! 부끄럽지 않습니까? 우리 이거 사지 육체 멀쩡해서 누릴 것 다 누리면서도 원망 불평하는데, 나는 이 말을 듣고 부끄러웠습니다!”

    송명희 시인은 1985년 5월부터 국내외 곳곳을 다니며 1천 6백여회 집회를 인도하며 주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게 됩니다. 기쁨과 보람을 느낄 때도 있었지만 섭섭함과 괴로움을 느끼는 때도 있었습니다. 너무 피곤해서 쓰러지는 때도 있었습니다. 때로는 너무 힘이 들어 가기 싫을 때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때마다 주님은 그에게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너는 가서 네 몸만 보여도 된다.”

    그래서 그녀는 가서 몸만 보이기도 했습니다. 수많은 장애인들을 찾아갔고 교도소와 소년원을 찾아갔고 큰 교회 작은 교회를 찾아갔고 미국, 일본, 대만, 유럽 곳곳을 찾아가서 예수님을 증거했습니다. 자기에게 보여주시고 나타내 주신 예수 그리스도의 비밀을 몸으로 영혼으로 증거했습니다.

    “내,,내가,,, 이,,이런 몸이,,, 아,,아니었다면 여,,여기 오지 않았을 거,,,것입니다. 그,,그 이름의 비,,,,비밀은 그,,,그 이름 안에 들어가야만 알 수 있습니다. 그 이,,이름 안에 내가 있고 내가 그,,,그 이름 안에 있어야 합니다.”

    그가 알아들을 수 없는 소리로, 10분 정도만 머뭇거리며 말해도 많은 사람들은 흐느끼며 울었습니다. 자기의 부끄러운 죄를 회개했습니다. 수없이 많은 사람이 그녀의 알아들을 수 없는 목소리에 감동을 받아 주님의 품으로 돌아왔습니다. 이 시간 우리 “그 이름” 이란 제목의 찬양을 다같이 한번 부르겠습니다.【 ※ HanSaRang 註. ─ 지금 배경음악으로 듣고 계시는 곡입니다.⌒_⌒’/악보/mid 】 송명희 시인은 수많은 사람들에게 자기가 만난 주님을 증거했습니다. 주님은 약하고 보잘 것 없는 질그릇 속에 자신을 나타내시기를 기뻐하시고 약하고 보잘 것 없는 질그릇을 통해서 자신을 수많은 사람들에게 증거하시기를 기뻐하시는 것 같습니다. 사도 바울은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 5 우리는 우리 자신을 전파하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 예수가 주이신 것과 우리 자신이 예수를 위하여 너희의 종인 것을 전파하노라. 6 이는 어두움 속에서 빛이 비치라고 명령하신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에 있는 하나님의 영광을 아는 빛을 주시기 위하여 우리 마음에 비추셨기 때문이라. 7 그러나 우리가 이 보물을 질그릇에 가졌으니 이는 그 능력의 탁월하심이 하나님께 있는 것이지 우리에게 있는 것이 아님이라. 8 우리가 사면에서 고난을 당하여도 괴로워하지 아니하며 당혹스런 일을 당하여도 절망하지 아니하며 9 박해를 받아도 버림받지 아니하며 내던져져도 멸망하지 아니하며 10 항상 주 예수의 죽으심을 몸에 지니고 다님은 예수의 생명이 또한 우리 몸에 나타나게 하려 함이라. 11 살아 있는 우리가 항상 예수를 위하여 죽음에 넘겨지는 것은 예수의 생명도 우리의 죽을 육신에 나타나게 하려는 것이라. 12 그러므로 죽음은 우리 안에서 역사하나 생명은 너희 안에서 역사하느니라.』
    (고린도후서 4:5∼12)

    하나님께서는 연약한 질그릇 송명희 시인의 몸에 자신을 나타내시기를 기뻐하셨습니다. 그녀를 통해서 주 예수 그리스도께로 돌아온 사람들을 일일이 다 열거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사지가 멀쩡하면서도 주님을 증거하지 않고 살아갑니다. 부끄럽지 않습니까? 그토록 가장 약한 몸으로 세계를 누비고 다니며 자신의 몸을 주님을 위해 헌신했던 송명희 시인은 몇 년 전부터 몸이 극도로 쇠약해졌습니다. 지난 수년 동안 고통스런 투병생활을 해 오고 있습니다. 어머니 권사님과 아버지 장로님과 여동생의 극진한 사랑의 돌봄을 받으며 지금도 투병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멀쩡한 우리들이 해야 할 일을 그 가누지 못하는 몸으로 피를 흘리며 주님을 전하다가 그녀가 쓰러졌습니다. 그러나 그녀는 병든 몸으로, 누어있는 몸으로, 때로는 슬픔과 외로움과 괴로움을 지니고 있는 몸으로 살면서도 여전히 주님을 가장 순수하게 증거하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은 지금 멀쩡한 사지 육체를 가지고 어떤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습니까? 조금 힘들다고, 어렵다고, 원망과 불평으로 미워하며 짜증내며 투정부리며 살고 있지는 않습니까? 우리가 어렵기로 따지면 이 송명희 시인만큼 하겠습니까? 저렇게 전신의 장애를 가지고도 주님의 이름을 찬양하며 사는데…저렇게 아파하며 고통 받으며 죽어가면서도 주님의 이름을 찬양하며 살아가는데… 여러분은 지금 어떻게 살아가고 있습니까? 조금만 힘들고 어려워도, 원망하고, 불평하고, 미워하고, 짜증내며, 투정부리며 살고 있지는 않습니까? 사랑하는 여러분 그렇게 사시면 안됩니다! 이 전신지체장애 시인 송명희 자매를 생각해 보세요! 여러분이 송명이 시인보다 못한 것이 무엇입니까? 그런데 저렇게 엄청난 장애를 가지고도 감사하며, 찬양하며 살아가는데 여러분은 멀쩡한 육신을 가지고 살면서 여러분을 위해 십자가에 못박혀 대신 죽으신 그 사랑에 감사는 못할망정 보배로우신 주님의 이름을 욕되게 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여러분을 위해 십자가에 못박히신 그 사랑을 헛되이 받지 마시기 바랍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무엇이 여러분을 힘들게 합니까? 무엇이 여러분의 삶을 힘들게 합니까? 가난입니까? 병입니까? 아닙니다. 가난한 것이 문제가 아닙니다! 병든 것이 문제가 아닙니다! 주위에 나를 돕는 자가 없는 것이 문제가 아닙니다! 무엇이 문제입니까? 예수 그리스도가 없는 것이 문제입니다! 구세주 예수님을 믿지 않는 것이 문제입니다! 송명희 시인은 질그릇과 같은 보잘 것 없는 존재였습니다. 이 땅에서는 의지할 것도 바라볼 곳도 희망도 없었습니다. 그녀는 스스로의 힘으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아주 보잘 것 없는 질그릇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안에 주 예수님께서 들어오셨습니다. 연약한 질그릇 안에 예수 그리스도께서 들어오셨습니다. 그러자 그녀는 강한 자가 되었습니다. 그녀는 이제 질그릇이 아닙니다. 그녀는 이제 외로운 자가 아닙니다. 그녀는 슬픈 자가 아닙니다. 이 작고 보잘 것 없는 질그릇 안에는 놀라우신 이름, 능력의 이름, 생명의 이름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리하고 계십니다. 그러기에 이제 그녀는 이제 서럽지 않습니다. 이제 그녀는 무섭지 않습니다. 가난도, 병도, 심지어 죽음도 무섭지 않습니다.
    여러분 안에 이 예수 그리스도께서 계십니까?
    여러분 안에 이 놀라운 이름, 예수 그리스도가 있습니까?
    진정 자기 안에 이 예수 그리스도가 있는 사람이라면 절대로 가난해서 힘들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병들어서 힘들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주 예수님 때문에 감사하다고 말하게 됩니다. 말씀을 마무리하겠습니다.

    여러분 안에 예수 그리스도가 있으십니까? 있으시다고요?
    그렇다면 여러분은 그 예수님을 믿고 계십니까? 믿으신다고요?
    그런데 진심으로 믿고 있으십니까? 다시 한 번 묻습니다.
    진심으로 믿고 있으십니까?
    세상의 모든 것이 없어도 그 한 분 만으로 만족할 만큼 믿고 있으십니까?
    만일 그렇지 못하다면 여러분의 믿음을 한 번 점검해 보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이 믿고 있는 주 예수 그리스도는 온 우주 만물을 창조하시고 주관하시는 만왕의 왕이십니다. 그 분은 바다를 잔잔케 하시는 분이시오, 바람을 멈추게 하시는 분이시오, 죽은 자를 다시 살리시는 분이십니다. 해와 달과 별들을 다스리시는 분이십니다. 그런 엄청난 능력의 주님을 믿는 자가 어찌하여 염려와 불안과 두려움 속에 살고 있습니까!
    그 분이 나의 구세주가 됨을 믿는 자가 어찌 세상 것이 좀 부족하다고 투정이며, 불평이며, 짜증을 내고 삽니까! 이제 주님께서 여러분에게 말씀하십니다.

    『 내가 이런 일들을 너희에게 말한 것은 너희가 내 안에서 화평을 지니게 하려 함이라.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할 것이나 기운을 내라. 내가 세상을 이겼노라.』(요한복음 16:33)

    세상을 이기신 주님이 여러분의 구세주이십니다. 그 분이 다시 말씀하십니다.

    『 보라, 내가 세상 끝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마태복음 28:20b)

    세상을 이기신 주님이 여러분과 세상 끝까지 항상 함께 있으리라 말씀하셨습니다. 이 약속의 말씀을 믿으시고 기죽지 말고, 절망하지 말고, 약해지지 말고, 힘내시고, 강하고 담대하게 사시기 바랍니다.
    아멘, 할렐루야.

    • Dreamin 63.***.211.5

      머리속으로는 믿음만 가지면 쉽게 해결될 줄은 알지만
      실제 생활에서는 제 믿음이 작음을 알게 해주는 글에 감사드립니다.

    • 깬다 76.***.217.226

      좋은 노래도 3번
      좋은 강의도 두번 들으면 지겨워지는데
      길게도 썼군
      왜 갑자기 멀쩡하게 가던 교회가기 싫어질까?
      이제 아프간에 못가니 인터넷으로 진출한것일까?
      아 이것이 진정 전도의 역효과일까?

      아 혹시 부시아저씨랑 같은 교회다니시면
      전쟁좀 고만하자고 말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