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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매뉴얼에 “참나, 누가 이런 걸 모르나? 이건 그냥 EBS만 열심히 들어도 대학 간다는 소리네.”라는 댓글이 달렸는데, 그 댓글이 참 안타까웠다. 댓글이 달린 매뉴얼에서 “슬픈 예감만 하고 앉아 있으니, 슬픈 예감이 전부 들어맞는 것 같은 겁니다.”라는 얘기를 한 것처럼, 부정적인 시각을 고수하는 사람에겐 세상 모든 일이나 이야기들이 부정적으로 보이거나 들리는 법이다.
개인적으로 EBS에서 하는 <공부의 왕도>라는 프로그램을 즐겨 본다. 언어영역 다음에 수리영역 이었는지, 외국어영역 이었는지 생각도 나지 않을 정도로 수능과는 오래 전 작별했지만, 그 프로그램을 보며 자신의 공부방법을 설명하는 꼬꼬마들의 ‘열정’에 자극과 도전을 받는다.
그 프로그램에서 이야기 하는 ‘공부의 왕도’는 결국 ‘집중’과 ‘지구력’, 그리고 ‘노력’이다. 가장 기억에 남는 출연자는 알파벳밖에 몰라 영어과목에서 전교 꼴찌를 맡아 놓고 하던 학생이었는데, 공부를 못하니까 공부가 싫어지고 공부를 안 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렇게 지내던 고등학교 2학년의 어느 날, 지체장애를 갖고 계신 어머니가 밭에서 일하고 계신 모습을 보곤, 뭘 하나라도 열심히 해서 성공해야겠다며 영어공부를 시작한다.
이 친구는 웹에서 ‘영어공부방법’이라고 검색한 뒤, 문장을 외우는 방법으로 공부하는 것이 효과적이라는 글을 보곤 무작정 영어 문장을 외우기 시작한다. 중요한 건, ‘참나, 누가 이런 걸 모르나? 문장으로 공부한다는 건 남들 다 아는 거고, 난 기초가 없으니까 영어 기초가 필요한 거라고. 기초를 알아야 문장을 읽든 해석하든 외우든 할 거 아냐.’라는 생각을 하지 않았다는 거다. 우선 그 방법대로 시작한 이 친구는, 첫 문장부터 아는 단어가 하나도 없었지만 모조리 사전에서 뜻을 찾아가며 읽고, 듣고, 외운다.
1000문장이 들어있는 책을 한 권 다 외우며 자연히 필수어휘와 문법을 습득하게 되고, 두 달이 넘는 시점에 찾아온 변화는 ‘독해 만점’이었다. 다른 과목에서의 부진 때문에 수능에서 좋지 못한 점수를 받았던 이 친구는, 훗날 재수하며 다른 과목까지 파고들어 K대에 합격한다. 이 친구가 “문장 외우라는 거 말고, 영어를 잘 할 수 있는 방법을 알려달라니까요?”라는 포지션만 유지했다면 어땠을까?
그대나 나나 인생에서 ‘나침반’이 되는 것은 결국 각자가 가지고 있는 ‘생각’이며, 그 ‘생각’으로 행한 ‘선택’이 만든 것이 바로 지금 이 ‘상황’이다. 나쁜 생각은 나쁜 선택을 하게 만들고, 나쁜 선택은 나쁜 상황을 만든다. 그리고 나쁜 상황에 놓여 지면, 결국 계속 나쁜 생각 밖에 할 수 없는 것이다. 이런 일을 막기 위해, 오늘은 연애를 못하게 만드는 ‘나쁜 생각’에 대해서 함께 살펴보자.
1. 주위 사람들은 정말 당신 얘기를 하고 있을까?일반적으로 평범한 상황에 처해있는 사람이라면, “주위 사람들이 내 얘기를 한다고? 뭔 말이지?”라고 하겠지만, 분명 사람들이 나에 대해 좋지 않은 이야기를 하고 있을 거라는 생각을 하는 나쁜 상황이 있다. 얼핏 보면 ‘피해망상’으로도 오해할 수 있는 이 부분은, 나쁜 상황이라는 먹이를 먹고 마음속에서 무럭무럭 크기 마련이다.
이 주제를 가지고 <광기의 전이>라는 소설도 한 편 쓴 적 있는데, 왼 발로 쓴 까닭에 공개는 못하겠고, 대략 줄거리를 설명하자면, 사장님과 나 둘이 일하는 식당에 새 종업원이 들어온다. 난 주방장이고, 사장님은 홀서빙 및 계산을 담당하고 있다. 새 종업원이 홀서빙을 담당하며 사장님은 계산만 담당했는데, 손님이 자꾸 줄자 신메뉴를 개발한다며 주방에 들어오는 일이 많아졌다. 사장님이 주방에 자주 들어오자 새 종업원은 나와 사장님이 자신의 흉을 보거나 긴밀한 얘기를 나눈다고 생각해 “형, 사장님이랑 무슨 얘기 했어요?”라고 묻는 일이 벌어진다. 심지어 주방에서 일을 하다 누군가 쳐다보는 것 같아서 고개를 들면, 새 종업원이 홀과 주방이 연결된 커튼을 들치고 둘을 쳐다보고 있는 일도 생긴다. 그런 일이 점점 더 많아지며, 사장님에게 혼이나면서까지 새 종업원이 주방 출입을 자주 하던 어느 날,
“형, 사장님이랑 내 흉 보는 거지? 안 그러면 그렇게 숨어서 얘기할 거 없잖아.”라는 이야기를 새 종업원이 한다. 무슨 헛소리를 하는 거냐며 그런 거 아니라고 설명하지만, 새 종업원은 이미 마음속에서 유죄판결을 내렸다. 그 소리를 들은 이후 새 종업원의 말이 계속 신경 쓰이고, 사장님과 같은 공간에 있는 일이 괜히 죄를 짓는 것 같아 불편해진다. 그렇게 지내는 사이, 새 종업원은 사장님과 친해지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게 되고, 나는 사장님이 나를 대하는 행동이 점점 이상해지는 것 같은 느낌을 갖는다.
핸드폰을 식당에 두고 와 퇴근 후 다시 식당엘 들렀는데, 거기서 새 종업원과 주인이 퇴근하지 않고 술을 마시고 있는 장면도 목격하게 된다. 그 이후, 분명 새 종업원이 사장님에게 자기에 대한 안 좋은 얘기를 하고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한다. 사장님의 행동도 그렇고, 예전보다 형식적으로만 대하는 새 종업원의 태도를 봐도 그렇다. 결국 새 종업원이 예전에 하던 행동들을 자신이 똑같이 하게 된다는 걸 발견한다. 그리고 그 모습이 싫어 식당을 그만 둔다. 새로 취직한 식당에서 3개월 후 원래 일하던 종업원이 그만 두는 것으로 이야기가 끝난다.
이거 쓰다 보니 내 소설 줄거리 소개가 되어 버렸는데, 아무튼 지극히 정상적인 사람도 ‘상황’의 문제로 인해 피해의식을 갖거나 피해망상에 시달릴 수 있단 얘기다. 마음이 예민해지고 방어적으로 변했을 때 연애를 시작하면, 상대에 대한 갖가지 상상과 의미부여로 인해 괴로움만 쌓이게 된다. 분명 일어나지 않은 일이지만, 당신의 상상과 의미부여가 만든 ‘피해’는 그 데미지가 고스란히 당신에게 남는다.
문자 확인을 늦게 해 답문이 늦었을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상대에게 ‘어장관리’ 판정을 내린다던가, “연락이 귀찮으시거나 연락하는 게 싫으면 그냥 말씀해 주세요.”라는 이야기를 하거나, ‘그래, 너 어디 한 번 두고 보자.’라며 복수의 칼날만 간다면, 누구를 만나도 계속 그런 포지션만 유지하게 될 것이다.
이런 상황을 겪고 있는 대원들에겐, 지금 당신에게 일어나는 모든 일이 그저 ‘해프닝’이라고 생각하란 얘기를 해 주고 싶다. 지금 당신에 대해 발 없이 돌아다니는 말들이 있다고 해도, 그 말들은 발이 없기 때문에 오래 머물지 않고 떠나갈 것이다. 당신의 인생을 경부고속도로라고 가정하면, 지금의 어려움은 그저 천안쯤에서 잠시 막히는 것 정도의 일이란 얘기다. 막히면 막히는 대로 라디오라도 들으며 여유롭게 가보자.
2. 당신이 늘 옳아야 한다고 생각하면, 피곤해진다누군가에게 지적 받는 것을 못 견디거나, 자신에게 싫은 소리 하는 것에 과잉반응을 일으키는 대원들이 있다. 뭐, 나 역시 위와 같은 일은 그닥 달갑지 않지만 세상을 살다보면 누군가와의 마찰은 피할 수 없는 법 아닌가. 그러한 마찰의 순간에 늘 당신이 옳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순간, 당신 스스로 피곤해질 뿐만 아니라, 상대에게도 당신은 참 피곤한 존재가 된다.
이러한 특징을 가지고 있는 대원들은 소개팅에 나가서 토론을 하고 들어오거나, 이제 막 친해지려는 상대에게 지적하려 들거나, 자신이 구상한 연애 시나리오와 어긋나는 일을 상대가 벌이면 상대에게 ‘반격’하기 위해 가시 돋친 말을 마구 뱉어내는 등의 일을 벌이기 마련이다.
타협이 불가능한 상대와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은, 인연의 끈을 끊는 일이다.
“
아니, 회식이라며 열두시까지 안 들어 가길래 걱정이 되니까 전화 한 것 가지고 부담스럽다네요? 관심이 있으면 당연히 그 사람이
걱정되는 거 아닙니까? 전 관심의 표현을 한 것뿐인데, 이제 전화도 받지 않으니 이 오해를 어떻게 풀어야 할 지 모르겠습니다.
상대가 절 다시 만나지 않을 생각을 가지고 있는 거라 해도, 남의 연락을 이런 식으로 받지 않는 것은 잘못된 거라는 것만은 꼭
말해주고 싶습니다.”라는 사연은 철저히 자신의 입장에서 자신의 감정에만 충실한 모습을 잘 보여주고 있다. 상대는 그냥
당신 인생의 들러리가 아니다. 상대가 회사 모든 임원들이 모이는 중요한 회식자리에서 30분에 한 번꼴로 걸려오는 당신의 전화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는 상황이었다면? 부담을 느꼈기에 부담이 된다는 얘기를 하자, 당신은 그게 왜 부담이 되냐는 이야기만 계속
늘어놓았다면? 결국 당신도 피곤하고, 상대도 피곤하고, 나도 피곤해지지 않았는가.당신이 늘 옳다고 생각하거나, 옳아야 한다고 생각하기 전에 상대의 입장을 살피고 상대를 존중하는 태도를 먼저 갖추자. 당신이 틀렸다고 해서 엉덩이로 이름을 쓰거나 발가벗고 동네를 도는 벌칙을 받는 게 아니지 않은가. 상대가 옳다고 얘기하는 것 하나 만으로도 당신을 둘러 싼 많은 피곤한 문제들이 풀려 나갈 것이다. 이제 그만 당신이 들고 있던 ‘부정의 방패’를 내려놓자.
눈 내려 사랑하는 사람과 거리를 걷기 딱 좋은 이런 날, 저 눈을 ‘아름다움’으로 볼 것인가 ‘토사물’로 볼 것인가는 당신에게 달린 문제다.
울퉁불퉁한 마음엔 아무도 들어와 쉴 수 없다.
10평짜리 반 지하 원룸과 30평짜리 전원주택이 있다면, 당신은 어느 곳에서 살고 싶은가. 가끔 “전 반지하가 좋아요. 태양을 피하고 싶거든요.”라고 말하는 대원들이 있기도 하지만, 대부분의 대원들은 후자를 선택하리라 생각한다.
바로 그거다. 빛도 잘 들어오지 않고 곰팡이가 쉽게 피는 마음을 택하는 사람은 없다. 그저 연애하고 싶다는 욕구에만 기댄 채 상대에게 구애를 할 것이 아니라, 상대가 보금자리로 삼고 싶은 넓고 포근한 마음을 먼저 마련하라는 얘기다. 우울함이 짙게 묻어나는 미니홈피 다이어리, 욕설이 섞인 부정적인 대화명, 마음에 곰팡이가 이만큼이나 피었다는 것을 증명하듯 써 놓은 글들, 당신은 그저 감정에 충실했을 거란 이야기로 얼버무리지만, 그것들이 모여 당신을 타인에게 ‘증명’하고 있는 것이다.
가운데 손가락을 들고 찍은 증명사진이 멋지다고 생각하는 꼬꼬마라면 뭐 이런 말들도 다 소용 없겠지만, 당신의 ‘나쁜 상황’을 만드는 가장 근본적인 원인인 ‘나쁜 생각’을 먼저 떨쳐 버리자. 그래야 당신의 상처에서 나는 피 냄새를 맡고 몰려드는 ‘나쁜 사람’들도 피할 수 있을 것이다. 자, 그럼 다음 매뉴얼에서는 ‘나쁜 사람’에 대해 살펴보기로 하며, 오늘 매뉴얼은 여기서 마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