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시, 최장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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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장집 교수 “언론비판 귀막은 盧…사이비 민주주의”
    입력: 2007년 05월 30일 03:07:03

    -최교수 ‘임기말 盧대통령’을 말하다-

    최 장집 고려대 교수는 29일 고려대 아세아문제연구소 소장실에서 경향신문과 인터뷰를 갖고 취재제한 조치 등 노무현 대통령의 임기말 권력 행사의 문제점을 조목조목 지적했다. 최교수는 대통령이 선거에 의해 선출되었다 해서 국민에게 모든 권한을 위임받은 것이 아닌데도 노대통령이 ‘대통령의 지시’라는 이유로 무한 권력을 행사, 민주주의를 위기에 빠뜨리고 있다고 비판했다. 〈대담/이대근 정치·국제 에디터〉
    최장집 고려대 교수가 29일 경향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취재 제한 조치 등 노무현 대통령의 임기말 권력남용을 강하게 비판하고 있다. /김문석기자

    -노대통령이 임기말을 맞아 많은 갈등적 이슈를 제기하고 있다. 최근 브리핑룸 통·폐합 조치에 이어 29일 언론이 계속 반발하면 기사송고실도 없애겠다고 협박하는 등 감정대응이 도를 넘고 있다.

    “위 험한 상황이다. 대통령이 언론을 바라보는 태도는 민주주의 원리에 부합하지 않는다. 이견을 싫어하고 비판을 싫어한다. 그러나 민주주의에서 이견과 비판은 필수불가결하다. 그런데 자신에 대한 비판에 적대적으로 대한다. 이번 조치도 그런 태도에서 비롯된 것 같다. 그 정책이 만들어지게 된 중요 계기가 대통령이 국무회의에서 한 발언에서 비롯된 점은 시사적이다. 대통령 말 한마디에 정부조직이 그대로 움직여서 정책으로 만들어내는 과정이 권위주의 독재자들이 했던 행태와 같다. 이런 조치가 시민사회 내에서 필요하다는 여론이 생기고 그게 모아져서 이루어졌다면 문제는 다르다. 그러나 다수의 의견과 배치되는 대통령의 말 한마디가 정책으로 만들어지는 과정은 전혀 민주적이라고 보기 어렵다. ‘기자들이 발로 뛰어서 취재하라’고 하는데 도대체 정부란 게 무엇인가. 정부가 원하는 방식대로 일방적으로 정보 제공할 테니 나머지는 기자들이 알아내라고 하는 것은 민주주의 정부의 책임을 방기할 뿐 아니라 위반하는 것이다. 민주주의는 정당, 언론, 학자, 시민사회의 의견을 폭넓게 수렴해서 대통령과 정부가 이에 반응하고 대화하는 것이 필수이다. 이 과정을 초월하고, 우회해서 결정하는 것을 국민투표제적 민주주의(plebiscitarian democracy)라고 하는데 이는 온전한 민주주의가 아니다.”

    -임기말 정부내 정책결정 과정에 결함이 있는 것 아닌가.

    “노무 현 정부의 임기말 현상이 보여주는 특징은 앞선 정부와도 다르게 청와대 중심으로 폐쇄적인 방식의 정치를 하고 있다는 점이다. 브리핑룸 통·폐합 문제의 경우 정책결정 과정의 심각한 문제점을 보여줬다는 점에서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추진 결정 과정과 비슷한 부작용을 낳고 있다. FTA는 한국의 경제체제나 정치 사회에 미치는 영향이 엄청난 사안인데, 대통령과 극소수의 정책 결정자들이 보이지 않는 내부 메커니즘을 통해 결정하고 일방적으로 밀어붙인 것이다. FTA는 아주 소수의 테크노크라트와 대통령이 함께 정책을 추진했던 1960~70년대 박정희 정권의 방식과 유사하다. 미국의 정치학자 로버트 달은 50%정도의 투표율에 50% 미만의 득표를 하고도, 그리고 상·하 양원에서도 소수파인 대통령이 국민적 위임(mandate)을 받았다고 주장하거나 그에 근거해 정책을 추진하는 것은, 미국 헌법에도 위배되고 민주주의 원리에도 부합하지 않는 ‘대통령직의 사이비 민주화(pseudodemocratization of presidency)’라고 했다. 대통령 권력이 매우 사인(私人)화된 것을 지칭한다.”

    “여론 무시한 정책 소수가 밀실 결정”

    -정부는 언론을 철저히 불신하고 여러 온·오프라인 매체를 운영하면서 스스로 언론이 되려 하고 있다.

    “노 대통령의 통치 스타일이 정당을 통하지 않는 것과 관계된 문제다. 집권당을 파괴하다시피 한 후에 대통령은 청와대를 중심으로 정치를 하고 있다. 소수의 폐쇄적인 집단이 청와대를 중심으로 정당의 역할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청와대 밖에서는 국정홍보처, 참여평가포럼 등이 이런 일의 중심이 되고 있다. 역사상 처음으로 레임덕을 극복한 대통령이 되겠다는 식의 태도로 보이는데, 이러한 무리한 접근은 심각한 문제를 낳을 수밖에 없다.”

    -청와대가 앞으로 기자들의 부도덕성을 청와대 브리핑에 연재하겠다고 나섰다.

    “정 부가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언론 자유 원리에도 위배된다. 시민사회에서 자체적으로 여론에 의해 문제가 제기되고 일정한 합의를 만들어 개선돼야 할 일임에도 반대를 억압하기 위해 도덕적 고발의 방법을 동원하겠다는 것은 곤란하다. 정부가 법적 문제를 떠나 윤리적인 문제까지 제기하는 것은 그 권한을 넘어서는 것이다. 대통령이 민주주의를 오해한 결과가 고스란히 드러난다. ‘나는 민주적으로 선출된 대통령이고, 개혁적인 유권자의 지지를 받았기 때문에 도덕적으로 정당하다’며 반대자를 모두 부도덕의 문제로 보려는 인식이 바탕에 있다.”

    -최근 사회적 혼란을 부채질하는 노대통령의 임기말 행보를 어떻게 보나.

    “민 주주의는 선거로 대표를 선출해 인민 또는 시민들의 의사를 대변하는 체제인데 지금 대통령의 행태는 갈등을 수렴하고 합의를 도출하는 역할보다 갈등 제조자, 갈등 유발자 역할을 하고 있다. 꼭 하지 않아도 되고 할 필요도 없는 사안을 제기하면서 한국사회를 분열시키고 있다. 좁게는 정치적 문제, 넓게는 한국 민주주의의 건강한 발전에 해악적 요소가 되고 있다. 대통령이 갈등을 의도적으로 유발해 시민사회와 여론을 양극화시키고 이로부터 정치적 이득을 취하려는 것이 아닌가 한다.”

    -대통령은 인사권이 고유 권한이라고 얘기한다. 대통령은 제한 없는 권한을 부여받은 존재인가. 29일 국무회의에서는 “기자실 개혁 문제는 대통령의 지시로 하는 일”이라고 주장했다. 대통령의 지시면 모든 것이 가능한가.

    “대 통령의 고유 권한이란 주장은 헌법적 규정으로부터 정당화의 근거를 찾는 것이다. 그러나 헌법의 규정에 앞서 민주주의 원리가 작동하는 것이 우선돼야 한다. 선거를 통해 대표를 선출하고 그 대표가 국민에게 책임을 지는 것이 민주주의다. 기본적으로 정치가 책임을 지고, 헌법은 정치가 안정적으로 잘 작동하게 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 대통령은 자기 스스로 인사권을 포함한 모든 권력 행사를 ‘맨데이트’(국민적 위임)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이런 맨데이트 개념 자체가 민주주의 하에서는 올바른 인식이 아니다. 내가 국민의 지지를 받아 집권했으니 헌법이 정한 권한을 ‘내 마음대로’ 한다는 것은 잘못된 것이다. 노대통령은 민주주의를 기본적으로 오해하고 있다. 내가 대통령에 선출됐으니 전체 국민들의 위임을 받았고, 국민이 반대하더라도 내가 생각하는 대로 추진할 수 있다고 보는 것 같다. 우리의 경우 70% 안팎의 투표율과 50% 미만의 지지율로 대통령이 된 데다, 그간 여러 재·보궐선거에서 계속 패배했고, 지금 국회 사정을 보면 대통령은 당적도 갖고 있지 않다. 집권했다고 해서 임기가 끝날 때까지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느냐. 그건 민주주의 원리에 합당치 않다.”

    “자의적 권력행사는 권력남용”

    -노대통령이 민주주의적 지도자라고 보기 어렵다는 말인가.

    “라 틴아메리카에서 정치학자들이 정의하는 개념 중에 ‘위임 민주주의(delegativedemocracy)’라는 게 있다. 대통령에 당선돼 의회를 뛰어넘고 무시하면서 권한을 행사하고 국민에 대해 책임지지 않는 대통령을 말한다. 의회 동의를 얻지 않고, ‘대통령 명령(decree)’만 내놓는 방식이 대표적이다. 노대통령는 라틴아메리카와는 좀 다르긴 하지만 민주주의를 이해하는 방식은 상당히 닮았다. 대통령이 자의적으로 권력을 행사하고, 행정부 수반이자 국가 전체를 대표하는 지도자로서 민주주의가 부여한 역할을 벗어난다는 점에서 ‘권력 남용’이다. 정치가 점점 나빠져서 어디로 갈지 예측도 안되고, 일반 사람들이 정치 환멸감을 느끼고, 참여의 효능을 경험하지 못하면 민주주의의 미래는 없다.”

    -노대통령은 통합 논의의 한 당사자로서 통합을 일정한 방향으로 이끌려고 한다.

    “임 기말 대통령이 자기 정당은 해체해버리다시피 하고, 자신의 욕구를 실현하려 스스로 정치 세력화를 하고 있는 모습이다. 현직 대통령으로서 헌법이 정한 모든 권한을 행사하겠다는 것과, ‘나도 정치인이니까 경선에 개입할 수 있다’는 것은 굉장히 편리하게 자신의 역할을 규정하는 것이다. 임기말 대통령의 일차적 과제는 정권이 안정적으로 승계될 수 있도록 관리하는 역할이다. 대통령의 역할 중 민주주의가 지속적으로 작동되게 하는 것만큼 중요한 것은 없는데 그걸 방기하고 있다. 좋아하지 않는 예비 후보들을 공격하고, 당원과 지지자들에 의해 결정되어야 할 후보 결정과정을 대통령이라는 강력한 영향력을 이용해 개입하고, 아웃사이더임에도 경쟁의 틀 자체를 요동치게 하는 것은 곤란하다. 그런 점에서 김대중, 김영삼 등 전직 대통령들의 행동도 비판받아야 한다.”

    〈정리 손제민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