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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지도 않은 과거의 이야기이다. 개구리가 중국을 방문했을때 존경하는 지도자가 모택동이라고 하였다. 만약에 부시가 러시아를 방문했을때 스탈린을 존경한다고 했었으면 과연 미국국민이 어떠한 반응을 보였을까?
요즘 봉화마을의 개구리가 인기라고 몇 신문사에서 언급하는 것을 보면서 우리 국민들이 참 잊기를 잘하는 국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면서, 우리나라 한복판에서 짱깨들의 저런 폭력행동을 보면서, 모택동을 존경한다는 개구리의 말이 생각나는 것은 무엇때문일까???
[조선데스크] 열정아닌 이성으로 모택동 보기
1980년 대학 생활을 시작한 기자에게 강렬한 인상을 준 인물 중 하나가 중국 공산당 지도자 모택동(毛澤東)이었다. 많은 젊은이들이 우리가 신(新)식민지에 살고 있다고 생각하던 당시 상황에서 중국 인민을 해방의 길로 이끈 모택동은 위대한 인물이 아닐 수 없었다.그가 이끄는 홍군(紅軍)이 천신만고 끝에 중국을 장악한 후 모택동이 천안문 광장을 내려다보며 중화인민공화국의 수립을 선포하는 사진은 제국주의(帝國主義)의 억압에서 벗어나는 것이 당면 과제라고 생각하던 젊은이들의 가슴을 뛰게 했다.
모택동에 대한 이런 인식에 큰 변화가 생긴 것은 1990년대 들어 몇 차례 중국을 여행하면서였다. 대학 시절 열심히 읽은 책에서 보았던 자주적이고 풍요로운 중국의 모습은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었다. 도시와 농촌 할 것 없이 낙후된 상태였고 사람들은 무기력해 보였다.
그런 상황에서 벗어나려는 젊은 세대들의 모택동에 대한 평가는 무관심이거나 부정적이었다. 모택동은 과거의 인물일 뿐 미래의 인물은 아니었다. 한때 세계적으로 엄청난 인기를 끌었던 모택동에 대한 내부의 평가가 너무 다른 점이 곤혹스럽지 않을 수 없었다.
모택동에 대한 혼란스러운 인식을 정리할 수 있었던 것은 중국에서 ‘사상계의 등소평(鄧小平)’이라고 불리는 이택후(李澤厚)의 저술을 읽으면서였다. 생존하는 중국 최고의 철학자로 꼽히는 이택후는 20세기 중국사를 “구망(救亡)의 열정이 계몽(啓蒙)의 이성을 압도했고 거기서 비극이 빚어졌다”고 정리한다.
국권 상실의 위기를 극복해야 한다는 조급함 때문에 산업화, 민주주의, 인권 등 근대 사회의 정상적인 발전을 제대로 추진하지 않은 것이 현재 중국의 어려운 상황을 가져왔다는 것이다. ‘구망의 열정’을 대표하는 인물은 물론 모택동이다.
최근 한국에도 번역된 대담집 ‘고별혁명(告別革命)’에서 이택후는 모택동에 대해 “이데올로기를 맹신(盲信)하면서 경제를 무시했고, 전시(戰時)와 평시(平時)를 구분하지 못했다”고 비판했다.
노무현(盧武鉉) 대통령이 중국 방문 때 존경하는 중국 정치인으로 등소평과 함께 모택동을 든 것을 두고 논란이 한창이다. 한쪽에서는 인권을 가혹하게 탄압한 독재자에 대한 무감각을 지적하거나 6·25 전쟁 때 우리와 싸운 적국(敵國)의 우두머리를 존경할 수 있느냐며 노 대통령을 비판한다.
다른 쪽에서는 모택동에 대한 역사적 평가가 엇갈릴 뿐 아니라 대통령의 외교적 발언을 문제 삼는 것은 지나치다며 이런 비판을 ‘닫힌 시각’으로 규정한다.
기자가 ‘모택동 존경’ 발언을 접하면서 불편함을 느낀 이유는 다른 데 있었다. 노 대통령은 모택동의 어떤 점을 존경하는 것일까. 노 대통령이 직접 그 부분을 밝히지는 않았지만 80년대의 지적 세례를 받았던 경험으로 미루어 어느 정도 짐작할 수 있다.
그는 20년 전의 젊은이들처럼 모택동의 강철 같은 ‘구망의 열정’에 깊은 감명을 받았던 것은 아닐까. 그러나 ‘열정’이 ‘이성’을 짓밟아 버릴 때 어떤 결과가 초래되는지 우리는 이미 문화대혁명의 역사적 경험을 통해 알고 있다.
20세기의 한국은 중국에 비해 ‘구망의 열정’보다 ‘계몽의 이성’이 더 강한 힘을 발휘했다고 볼 수 있다. 지난해 월드컵과 대통령 선거를 치르며 열정적 분위기에 급격히 빠져든 것은 그런 과거에 불만을 지닌 사람이 꽤 많다는 사실을 드러냈다.
하지만 그렇다고 지구화와 정보화의 시대에 역사의 시곗바늘을 거꾸로 돌려 이성보다 열정을 계속 앞세울 수는 없다. 아직도 모택동을 존경하는 사람이 있다면 “이성의 눈으로 중국을 보아야 한다”고 거듭 강조하는 이택후를 꼭 읽어보라고 권하고 싶다.
/이선민 문화부 차장대우 smlee@chosun.com2003-07-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