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도 순복음교회 왜 이러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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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의도 순복음교회 왜 이러시나?

    2008/08/22 오 전 6:54 | 종교 | [아리랑]

    무엇을 사탄이라고 하는가? 하나님은 선이고 사탄은 악이다. 상대적 논리에 의하여 이해를 구한다면 사탄은 하나님의 선을 부각시키는 비교성 존재라고 말할 수 있다. 한마디로 사탄을 악으로 규정하면 틀림이 없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사람을 선하게 이끌어 천국으로 인도하는 것처럼 사탄은 사람을 악하게 이끌어 지옥으로 인도한다” 고 보면 될 것 같다.

    그렇다면 악은 또 무엇인가? 기독교는 예수를 믿지 않는자를 악인으로 정의한다. 객관적인 악하고는 개념이 다르다. 물론 하나님은 선하시니 하나님을 믿는자도 선하다. 라고 본다면 틀린 말은 아니지만, 여기에는 善이 윤리적으로 증거되어야 하는 것을 전제로 한다. 따라서 기독교인은 하나님을 대신하여 행동으로서 하나님이 선하다는 것을 보여주어야 함은 당연하다.

    그렇치만 기독교인들에게 선은 예수를 믿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아니다. 예수만 믿으면 무조건 천국을 가고 믿지않으면 지옥을 간다는 것이다. 그러나 악이란 사회와 사람에게 해를 끼치는 것이라고 보면 더이상 설명이 필요없다. 악을 행하는 자가 바로 사탄이라는 결론이다. 이로서 믿지 않는 것을 악으로 보는 기독교인들의 개념은 성경을 오도한 관념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예수의 가르침을 행하지도 않으면서 믿는 것만을 선이라고 주장하는 기독교인들의 사고방식은 문제가 있어도 크게 있다 할 것이다.

    성경에 보면 하나님을 믿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십계명은 고도의 윤리성을 요구하고 있다. 예수님에 이르러 윤리성은 그 강도를 훨씬 더한다. 대표적인 것으로 오른뺨을 치거던 왼뺨을 내놓으라는 말씀과 원수를 사랑하라는 가르침을 들수 있다. 윤리성이 결여된 신앙을 예수님은 인정하지 않았으니 날더러 주여주여 하는 자마다 다 천국에 이르는 것이 아니라고 한 말씀이 그 증거이다.

    십계명에는 여호와의 이름을 망녕되이 일컫지 말라고 하였다. 여호와의 이름을 망녕되이 일컫는자는 죄없다고 하지 못한다고 기록되어 있다. 무엇이 망녕됨인가? 성경에 있는대로 행하지 않으면서 믿는자를 망녕된 자라고 한다. 오늘날 정치적 마각을 드러내어 종교의 순수성을 망치고 정치와 종교에 갈등을 부추기는 일부 개신교 지도자들은 망녕된 자들이 아니겠는가. 망녕되지 않다면 그 증거를 대야 할 것이다.

    ◀ 20일 조계사 보시함에서 발견된 헌금봉투와 ‘예수천당’ 스탬프가 찍힌 1천원권. ⓒ<불교신문> 평양조용기심장전문병원건축헌금이라는 글이 보인다.

    그러나 정치꾼 목사들에게서 선은 중요하지 않아 보인다. 성직자의 본분을 망각하고 정치관여의 발언만 쏟아내는데 열중이다.
    사랑할만하므로 사랑하는 것은 성경에서 말하는 사랑이 아니다. 성경에 기록된 예수님의 사랑은 사랑할 수 없는 자를 사랑하는 것을 말한다. 이명박 정권에 반대하는사람들도 같은 동족이며, 불교도들도 이웃이며 친척이며 국가의 구성원이다. 아무리 기독교가 유일신을 모신다고 해도 사랑하지 않으면 않될 사람들이다.

    사정이 이러함에도 촛불집회하는 사람들을 사탄으로 몰아 탄압을 종용하고 불교도들을 이단으로 몰아 종교갈등을 부추겨 나라를 망국의 길로 이끄는 사탄 목사들이야말로 하나님의 망녕된 자들로서 악의 축이며 사탄의 무리들이 아니겠는가? 성경에 기록되기를 땅위에 쌓으려말고 하늘에 쌓으라고 하였다. 하늘에 쌓는 것은 선을 말함이요. 땅위에 쌓는 것은 악을 말함이다. 권력욕이나 물욕은 다 땅에 쌓는 대상으로서 하나님의 뜻과 다름이 여기에 있으니 성직자로서 이를 탐하는자가 악을 행하는자로서 사탄된 것이 너무나 명백하다.

    성직을 갖은 자들은 일반 신자들과는 다르지 않으면 안된다. 예수는 그 제자들에게 전대를 차지 말것이며 두벌 옷도 마련하지 말라고 일렀으며 지팡이도 준비해서는 안된다고 가르쳤고, 제자들은 그렇게 살았다. 그러므로 성직자로서 재물을 쌓는 것은 하나님보다 재물을 더 사랑함이요, 권력을 탐하는자는 하나님보다는 권력을 더 사랑한다고 보면 틀림없다. 성직자로서 우상을 섬기는 것이 다른데 있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는 것이 있다면 그것이 바로 우상을 섬기는 것과 마찬가지라 하겠다. 탐욕에 떨어진 것이 우상에 절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고 보면 틀림없다.

    정치관여에 열중인 목사들의 특징은 큰 교회에서 넘쳐나는 각종헌금에 묻쳐 고급승용차를 굴리고 훌륭한 저택에 사는 공통점이 있다. 개신교가 탐욕적인 그 지도자들에 의하여 순수성을 잃고 망녕됨을 드러낸 가운데 여의도 순복음교회는 아예 노골적으로 종교갈등을 증폭시키고 나섰다. 서울 조계사 대웅전 보시함에서 20일 ‘예수 믿으면 천당, 불신자는 지옥’이라는 스탬프 글씨가 찍힌 돈과 함께 여의도 순복음교회의 헌금봉투 다섯개가 발견돼 불교계를 격노시키고 있는 사건이 벌어진 것이다.

    이것은 종교적이면서 정치적 사건이다. 종교편향문제가 정치적 성격으로 변질 된 상황에서 벌어진 일이고 보면 정치적 사건으로 본다해도 잘못된 것은 아니다. 이로서 개신교는 종교단체인지 정치단체인지 구분하기 어렵게 되어 버렸음이 드러났다. 일부 신도들의 소행으로 보여지는만큼 이제 개신교는 그 신도들까지 정치에 관여하기 시작했다고 보여진다. 이대로 나가다가는 어떤 돌발사태가 벌어질지도 모를 일이다.

    한국의 정치와 종교적 현실로 볼 때, 정치와 종교가 야합을 하게되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 예측하기 어렵지 않다. 그 댓가를 톡톡이 치를 날이 점점 닥아오고 있다. 종교분쟁으로 쑥밭이 되어 버린 나라가 어디 한둘이던가. 단일민족으로 유구함을 자랑하던 우리가 정치적 야욕을 드러낸 일부 개신교 목사들로 인하여 분리되고 있음을 개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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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tracer 68.***.105.176

      그거시님/
      기독교의 하나님이 절대선인 것은 확실합니까? 어떻게 그것을 확신하십니까?

    • tracer 68.***.105.176

      그거시님/
      아주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많은 부분 동감합니다.

      원칙을 지키려고 한다면 사회에 해를 끼칠 수 없다고 하셨는데, 그거시님이 생각하시는 기독교의 “원칙”이 다른 기독교인의 원칙에 비해 더 올바르다는 것에 대한 믿음을 어떻게 가지시는지요? 그것은 혹시 기독교 바깥에 있는 가치관을 바탕으로 가지시는 확신은 아니신지 궁금합니다.

      저도 본능적으로는 인간의 존재와 고도의 사유능력이 어떠한 궁극적인 의미와 목적을 가지고 있지 않는가하는 느낌이 들지만, 자연과 세상이 보여주는 것들을 조금씩 알면 알 수록, 궁극적인 목적이나 존재의 의미는 없다는 생각이네요. 이렇게 말하면, 마치 염세주의자인 것처럼 받아들이는 사람들도 많고, 혹자는 궁극의 의미가 없다면 우리는 동물과 같이 살아갈 수 밖에 없다고 결론 내리는 사람들이 있지만, 저는 오히려 이렇게 로또보다도 더 희박한 확률에 의해 주어진 짧은 삶을 최대한 가치있게 살아보려는 노력에 동기를 부여하는 긍정적인 세계관이라고 생각합니다.

    • k 96.***.31.101

      그렇지요. 저도 tracer 님께 묻고 싶은 것이 그것이었습니다. “궁극적인 목적이나 존재의 의미는 없다”면 어떤 가치를 위해서 노력을 하시는지요. 시비를 가리고자 하는 것이 아니고 궁금해서 물어봅니다.

      그거시님은 위에서 “종교적 실험”, 지난번 글에서는 “신의 존재에 대한 도전”을 언급하셨는데, 구체적으로 어떤 방법이나 행위를 지칭하는 것인지 설명해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그거시님은 역시 기독교구나 생각하고 있는었는데, 마지막 문장을 보니 그렇지 않으신 것 같습니다.

      “가장 근본적 문제에 있어서 흐지브지함에 빠지는 것”을 굳이 그렇게 부정적으로 볼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multiple choice 문제에서 “d. none of above” 를 선택했다고 해서 꼭 그 사람이 답을 찾기를 포기한 것은 아닙니다. d를 너무 부정적으로 봐서 a,b,c 중 조급한 선택을 하는 것이 더 위험한 것 아닐까요. 제가 만난 몇몇 분은 그런식으로 말씀 하시더군요. a가 제일 먼저 있으니까, a가 제일 기니까, 또는 다른 사람들도 a를 많이 골랐으니까.. 그래서 a를 선택 했다고.
      d가 맞는 선택일 수도 있고, 그렇다고 해서 진짜 답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뜻도 아닙니다. 단지 현재 제시된 a,b,c 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결론을 얻었다고 생각하고 동물적 삶과 조기 종결 두가지 중 하나를 택하는 것도 성급하게 보입니다. “없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은 힘듭니다. 다른 조건이 없다면 불가능한 경우도 많습니다. 혹시 없다고 결론이 날 것 같으면 남은 시간은 그것을 검증하는데 보내면 되지 않을까요. 무의미를 끝내는 행위 차체도 별 의미있는게 아니니, 굳이 재촉할 필요도 없습니다. 끝이야 재촉하지 않아도 오는 것이고요.

      그거시님이나 tracer 님 같은 분들이 마지막 두 가지 길 중 하나를 택하는 일이 벌어지지 않았으면 하는 개인적인 바램이 생기는군요.

    • tracer 68.***.105.176

      그거시님, 기독교의 원칙에 대해 말씀드린 것은 수많은 기독교인들이 교리의 중요한 부분에 대해 서로 다른 해석을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거시님이 비난하시는 일부 괴독교인들의 믿음과 행태, 즉 믿기만 하면 구원된다는 도그마가 틀리다는 확신은 어디에서 근거하시는가하는 질문이었습니다. 그것이 틀렸다는 근거가 혹시 기독교 철학 내에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속세의 도덕관과 가치관에 기반하는 것은 아닌지요?

      가치는 우리가 만들고 부여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인간이 생존을 위해 사회를 이루고 살아가면서 많은 사람들이 동의한 바람직한 가치들이 있지요. 가족관계라든가, 남을 돕는데서 오는 보람이라든지, 타인에게 피해를 주지 않으면서 개인의 꿈과 이상을 실현한다든지 말이지요. 이것들이 바로 동물이면서도 “인간”답게 사는 가치(고도의 사회성과 창의력, 사유능력의 계발)라고 생각합니다. 왜 속세의 가치 이상의 것을 꼭 찾아야 한다고 생각하시는지요. 꼭 두 가지 중 하나를 선택해야만 한다고 스스로를 가두게 되는 것은 내가 궁극의 가치를 찾고자 하는 노력을 합리화 하려는 행위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전자도 후자도 선택하지 않고 즐겁고 보람있게 살아간 사람이 없다고 생각하십니까?

      죽고 나면 다 의미가 없어진다면 살아있을 때 최대한 의미있게 살면 되는 게 아닐까 싶습니다. 그래서 저는 이 삶이 단 하나의 삶이라는 것이라고 보는 세계관이 현세의 삶을 더욱 가치있고 중요하게 볼 수 있게 한다는 생각이지요. 복권에 당첨된 사람은 그 돈을 낭비하지 말고 바람직하게 쓰는 것이 보람있는 일이니까요.

    • tracer 68.***.105.176

      만일 인간이 동물로서 가진 특별한 능력들(사회성과 발달된 이타심/도덕성과 사유능력)에 가치를 부여하고 살아가는 것도 결국 동물적인 삶이라는 범주에 포함시키신다면 저는 거기에 대해 이의가 없습니다. 저는 인간도 동물이라는 시각에 전혀 이의가 없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