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지니어의 외국기업 이직을 금지해야 한다는 주장을 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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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K 75.***.144.57 2896

    원본: http://www.smartplace.co.kr/blog_post_174.aspx


    제목: 엔지니어의 외국기업 이직을 금지해야 한다는 주장을 읽고

    분노한 어떤 독자로부터의 메일

    며칠 전 어떤 독자로부터 저한테 메일 한 통이 왔습니다. 어떤 신문의 사설을 읽고서는, 엔지니어로서 정말 화가 나고 울화통이 터지는데 글재주가 없어 욕만 할 거 같아서 혼자 울분을 삭이고 있다는 내용이었습니다. 그러면서 저한테 이에 대해 글을 한번 써달라고 부탁을 하셨습니다.

    문제의 신문사설: [서울신문] 핵심 엔지니어 국가가 관리해야 (기사의 덧글들도 보세요)

    글쓴이의 주장을 요약하면, 엔지니어의 머리 속에 들어있는 지식은 국가재산이며 그들이 지식을 머리에 담아 외국기업으로 이직하는 ‘보이지 않는 기술 유출’을 막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글쓴이는 엔지니어의 외국기업 이직을 일종의 산업스파이 행위로 치부하며, 국가핵심기술의 개발에 참여한 인력에 대해서는 해당 기술의 수명이 끝날 때까지 외국기업 이직을 금지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참으로 놀라운 주장이 아닐 수 없습니다. 엔지니어들을 잠재적 범죄자로 치부하고, 그들의 생존권과 행복추구권을 제한하겠다는 위헌적 발상이기 때문입니다. 이런 논리라면 외국과 거래하여 국가에 큰 손실을 입힐 가능성이 있는 비즈니스맨, 정치인들도 국가가 관리해야 할 것입니다.

    기업의 지적 자산은 이미 특허를 통해 강력히 보호되고 있습니다. 그리고 외국에서는 전직장에서 수행 했던 기밀 사항을 노골적으로 요구하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만일 이직한 직장에서 그런 요구를 했을 경우, 회사를 고소하면 엄청난 배상을 받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지식사회의 핵심은 개인의 가치를 인정받는데 있습니다. 물론 회사의 업무로서 어떤 성과를 이루어냈을 경우 그것은 회사의 소유입니다. 왜냐하면 회사는 그 업무의 대가로 임금을 지불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오로지 통상적인 임금 밖에 없다면 누가 혼신의 힘을 다해 기술 개발을 하겠습니까? 그래서 외국에서는, 성공시키기 어려운 기술 개발을 해냈을 경우 상당한 성공 보수(인센티브) 내지는 스탁옵션 등이 주어지며 그것은 바로 “개인에 대한 보상”입니다.

    선진 외국에서는 그러한 보상 메커니즘이 동작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한국은 어떠합니까? 반도체를 개발하고, 핸드폰을 개발하고, 와이브로를 개발한 핵심 엔지니어들이 도대체 얼마나 탁월한 보상을 받았습니까? (말마따나 15조원의 기술이 아닙니까!)

    한국기업들의 이율배반적 행태

    그것이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라면 핵심 기술이 될 수도 없었을 것입니다. 한국기업들은 그런 핵심기술 개발이 누구나(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라는 것에는 동의하지 않으면서, 그 일을 해낸 개인에게는 별다른 보상을 하지 않습니다. 대단히 이율배반(二律背反)적입니다.

    그런 핵심기술의 개발이 개인의 장인정신 없이 기업의 투자만으로 가능할까요? 그렇다면 엄청난 투자를 한 수많은 기술 개발이 실패하는 이유는 무엇이겠습니까? 삼성전자 또한 지금 이 순간에도 기술 개발에 상당한 어려움과 실패를 겪고 있습니다. 과연 그것이 돈이 없어 그렇겠습니까?

    기술 개발의 핵심 요인은 사람입니다. “누가 그것을 하는가”가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개인이 가진 전문 지식과 경험, 거기에다 (수치적으로 측정할 수 없는) 열정과 한계격파의 정신이 그것을 가능하게 합니다. 사람 때문에 성공하고 사람 때문에 실패합니다.

    그것이 바로 인간으로서의 가치이며, 지식사회의 핵심 자산인 것입니다. 그것을 부정하면 인간의 가치를 부정하는 것이며, 지식사회가 아니라는 것의 반증입니다.

    조직에 대한 만족도는 어떠한가? 보상 체계는 있는가?

    엔지니어들을 잠재적 범죄자로 취급하기 전에 무엇보다 먼저 고민되어야 할 것은, 조직에 대한 만족도 및 그들의 성과에 대한 보상입니다. 신문사설에 나오는 것처럼 과연 15조 원짜리 기술을 만든 사람들에 대한 보상이 어떠하였는지 몹시 궁금합니다.

    조직에 대한 만족도가 떨어지고 보상이 극히 취약한 현실에서, 엔지니어는 연봉 1천만 원을 더 준다는 제안에 이직을 고민하게 됩니다. 이직을 좋아하는 엔지니어는 거의 없습니다. 그들은 환경의 변화를 즐기지 않으며 좋은 환경에서 연구개발에 집중하고 싶어 합니다. 도전적인 일, 그리고 근무 환경과 보상 체계를 통해 만족을 시켜준다면 헤드헌터가 아무리 달콤한 제의를 한다고 할 지라도 스스로 옮겨가지 않을 것입니다.

    근무 환경을 개선하고 보상 체계를 마련할 의지가 없는 기업들이 자꾸 엔지니어 이직 금지를 위한 사회적 합의를 얻어내려고 하고 있으며, 과장된 산업스파이 이슈를 만들어내며, 언론 로비에 의한 것인지 아니면 언론이 스스로 오버한 것인지 모르겠지만 위에 소개한 신문사설과 같은 주장이 부끄럼 없이 소개되고 있습니다.

    이런 사회적 환경에서 누가 엔지니어를 할 것인가?

    한국의 기술 위기는 산업스파이를 막지 못해서 발생하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똑똑한 젊은이들이 엔지니어 되는 것을 몹시 기피하기 때문에 발생하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엔지니어의 신분이 불안정하고 또한 성공 모델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런 상황에서 오히려 엔니지어의 피를 말리는 이런 주장이야말로 진정한 반국가적 행위인 것입니다.

    정리하자면, 핵심 기술의 개발 성과는 기업의 투자와 개인의 장인정신이 결합한 결과이며 개인은 자신의 지식과 경험에 대한 소유자가 될 자격이 명백하게 있습니다. 경쟁기업 이직 금지, 외국기업 이직금지와 같은 노예제도는 산업의 부흥이 아니라 오히려 산업의 황폐화를 불러올 것입니다.

    끝으로 제가 지인으로부터 들은 인적자원 관리(외국기업 vs. 한국기업)에 대한 에피소드 하나를 소개하며 글을 마치겠습니다. 이것은 실화입니다.

    에피소드:

    국내 모대기업에서 일을 하다가 외국으로 취업한 K씨가 있었습니다. 몇 년간 외국기업에서 일을 탁월하게 한 결과, 어느 날 매니저가 K씨를 불러서 회사에서 학비를 대어 대학원에 보내주게 되었다는 기쁜 소식을 전했습니다.

    K씨는 한국 기업들처럼 당연히 “학업을 마친 후, 학업 기간 x 2배수의 기간을 필수 근무해야 하며 그러지 않을 경우 받은 학비를 되돌려 주어야 한다”고 생각을 하고, 그 내용을 물어보았습니다. 그랬더니 매니저는 의아한 표정으로, “그것은 당신의 업무 성과에 대한 인센티브로 주는 것이다. 어떤 조건은 없다.”라고 했습니다.

    K씨는 그 말이 이해가 안되어서, “만일 내가 학교를 마치자마자 회사를 그만두면 어떻게 하는가? 헤드헌터가 더 많은 연봉을 제시하는 기업을 소개해서 내가 이직을 하면 어떻게 하는가?”라고 되물었습니다.

    그랬더니 매니저는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그것은 당신의 선택이다. 만일 당신이 여기에서의 연봉보다 더 많은 연봉으로 스카우트가 될 경우, 우리가 판단하기에 당신이 필요하다면 그 이상의 연봉을 주어서 당신을 붙잡을 것이다. 그것이 당신의 시장 가치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당신의 가치를 인정하지 않는다면 당신은 떠나면 된다. 하지만 우리는 당신이 흡족할 만한 조건을 제시할 것이므로 당신은 떠나지 않을 것이다. (웃음)”

    • 연구자 69.***.202.153

      미국에서 연구자로 생활하는 한 사람으로서 정말 공감이 가는 글입니다.

    • dinkin fli 67.***.10.136

      예전부터 기술자를 천시하던 그 버릇 남 줄까. 하여튼 엔지니어로서 한국을 떠난걸 천만다행으루 생각하면서…

    • 타고난혀 71.***.229.7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난다고 외치시는분 여럿 본 입장에서, 이런 저런 글보다는 후딱, 빨리, 주변의 핵심 엔지니어한테 좋은 절을 소개 시켜주시는게, 가만히 앉아서, 펜으로 돈 먹고 사시는 분들에게 좋은 한방이 아닐까 합니다..

      …절이 싫으면 떠나라고 해놓고, 떠나니, 절에 불상 정보를 알고 있다면서 바로 배신자로 찍어 버리네요.

      윤리적 책임을 이 글 적은 사람에게 물어 버려야 하는데 말이지요..

    • 산경 75.***.16.83

      언젠가 이공계 기피 현상을 막기 위해 대안을 강구하고 있다는 어느 정치인의
      인터뷰 기사가 생각 나는군요. 이공계 기피 현상을 막기 위해 고시과목에 더욱
      이공계 계통 과목을 포함하겠다고 했는데.. 이번에도 정말 슬프지만 어이없는
      발상을 하는 사람의 글이 또 나왔군요.

    • ㅇㅇㅇ 151.***.85.50

      엔지니어들의 지식이 국가 재산이면 천금을 주고라서도 잘 관리할 것이지 더 좋은 삶을 찾아가는 개인의 야망을 무슨 역적질 취급하는 미개한 발상은 정말 어쩔 수 없이 많이 봐왔던 토속적이면서도 가공할 코메디 입니다. 아무 생각없는 애국 슬로건 앞에서 커먼센스가 마비되는 현상은 언제쯤 사그러 들까요? 참으로 안타까운 조국의 의식 수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