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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이 시작된지 벌써 3일이 지났다.
눈이 그치고 장마의 날씨처럼 비가 자주 오는 4월은 오래도 어김없이 찾아왔고 하루종일 내리는 비는 이게 봄비인지 겨울비인지 참 헷갈리게 만든다.어제 퇴근길에 물만 사러 갔다 들린 슈퍼에서 싱싱한 야채를 보고 지나칠수가 없어 장을 본게 화근인듯 하다. 그 시간에 김밥을 만들겠다고 당근채를 썰다가 그냥 사정없이 왼쪽 엄지 손가락을 내려쳐 버렸다. ㅠㅠ
일하는데 머리도 중요하지만 나에게는 손도 얼마나 중요한데… 그나마 오른손이 아니어서 다행이다 했지만, 오늘 일을 하다보니 이만 저만 불편한게 아니다. 타이핑은 그냥 그럭저럭 할수 있지만 이 손으론 도저히 실험을 할수가 없어 사실상 오늘 일은 그냥 접었다. 검지 손가락을 다쳐도 이렇게 불편했을까? 하는 생각도 들고, 비 내리는 금요일 오후를 그냥 손가락 핑계 삼아 일을 접고 보니 오마저만 생각도 다 나고 손가락을 보니 괜히 한국에 있는 엄마 생각이 더 난다.남자없이 딸만 있는 집에서 자란 나는 항상 이런 투정을 했다.
“엄마는 꼭 누구만 더 좋아하고…” 그러때 마다 나의 엄마는 이렇게 항상 말씀하셨다.
” 세상에 열 손가락 깨물어도 안 아픈 손가락이 어디 있냐고…”
그럴때마다 난 또 대꾸했다. ” 손가락도 길이가 다르고 기능이 달라… 아픈거야 매 한가지겠지만 그래도 좋아하는게 있을걸…”
이런 대화가 있고 나면 어김없이 엄마는 다른 형제들 모르게 나를 따로 불러 이야기 하곤 하셨다. ” 그때 다들 있어서 말은 그렇게 했지만 사실 엄마는 넷 딸 중에 내가 제일 믿음직하고 네가 참 자랑스럽고 대견해.” 그 말을 듣고 나면 나는 또다시 엄마의 특별한 딸로써 힘을 얻고 열심히 살수 있었다. 하지만 그것이 나한테만 그렇게 말한 것이 아니었다는것은 내가 미국에 오기로 결정이 난후 가족들이 모여 대화를 하다가 사정없이 들통 나고 말았던 것이다. 알고보니 엄마는 나 한테만 그런 말을 한게 아니라 세명의 언니 동생들한테도 따로따로 이런 저런 이유를 대며 ” 너한테만 말하지만 엄마는 널 제일 좋아한단다” 라고 하셨던거다. 각자가 엄마의 특별한 딸이었던거다.
이런 이런… 그 날 대화로 우리 모두는 이십년이 훨씬 넘게 엄마의 특별한 딸에서 깨어나 속았다고 징징 거렸지만…우리 모두 서로 말은 안 했지만 그렇게 해야만 했던 엄마의 마음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그래서 우리 모두 반듯하게 잘 성장 할수 있었다는걸…이십대 중반에 이곳에 왔으니 벌써 십여년이 다 되어 간다. 학위만 따고 한국에 돌아가서 자리 잡고 살아야지 했던 내 바램은 예상과 전혀 다르게 흘러가고 있고, 쉬운 과정은 아니었지만 부족함 없는 현재의 삶을 이루는 동안 엄마는 나의 버팀목이자 안식처였고 힘이었고 희망이었다. 그런 엄마는 우리들을 키우면서 얼마나 힘들었을까? 누구를 더 좋아한다는 말도 안되는 딸들의 투정을 들으면서도 그때 엄마의 힘은 어디로서부터 왔었고 엄마의 희망은 무엇이었을까? 아내한테는 결코 좋은 모습이 아닌 가부장적인 아버지가 힘이었을 확률은 더더욱 아니었을테고…
새삼스레 손톱 살점이 떨어져 나간 엄지 손가락 때문에 손가락 길이 ,기능을 탓한 내 어리석은 지난 어린 시절이 창피하고 민망스러울뿐이다.
검지 손가락이 잘려도 불편했을거란걸 그때는 왜 몰랐을까?
아픈건 당연했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