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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 반헌 할머니 옆에는 한 충자 할머니가 앉아 있었다. 지금은 여기 시 창작 교실 맨 앞자리에 앉아 있지만 그녀는 일흔 두 살까지 완전히 문맹이었다.
그녀는 나고 자라고 사는 동안 한번도 음성을 떠난 적이 없다. 그녀의 친정 동네는 꽤 큰 마을이었고 친정집도 컸다. 딸이라 하면 그저 집에서 끌어안고 귀여워하면 되는 줄로만 알았던 부모들은 그녀를 학교에 보내지 않았다.
먼 친척의 중매로 스물 다섯에 옆동네인 하루동으로 시집 왔다.한충자 할머니는 너무 부끄러워서 결혼하고 사흘이 지난 뒤에야 신랑 얼굴을 간신히 바라봤다. 시집은 아침 한끼만 밥을 먹고 두끼는 죽을 먹어야 할 정도로 무척 가난했고 가족이 많았다.
방은 아랫방 윗방 두 개가 있었는데 여덟 명이 이불 하나 덮고 발만 넣은채 동그랗게 누워서 잤다. 시할아버지는 새색시가 들어오자 방을 비워주고 다른 집으로 자러 나갔다. 노인네를 쫓아내고 자는 것 같아서 한 충자 할머니는 신혼인데도 이건 사람 사는게 아니야라고 생각했다. 친정 엄마는 딸이 굶어 죽을까 딸을 출가시킨 후 하루도 편한 잠을 자지 못했다.
친정 엄마는 딸 집에 딱 한번 찾아왔다. 집안에는 들어오지도 못하고 집 앞 느티나무 밑을 서성거렸다. 그저 손자만 안고 들여다보고 있다가 한 충자 할머니가 얻어다 준 국수 한 그릇 서서 먹고는 그냥 집으로 돌아갔다 그리곤 며칠 뒤에 돌아가셨다. 그게 한충자 할머니 평생의 슬픔이 되었다.
그런데 또 다른 슬픔도 있었다. 씨뿌리고 고추심고 모내고 밥해먹고 자식 기르느라 그녀가 문맹인걸 아무도 몰랐다 .그런데 뜻밖의 일로 그녀가 문맹인걸 모두 알게 되었는데 한충자 할머니의 남편의 이야기를 옮겨보면 이렇다.
“난 결혼하고 군대에 갔어요.군대에 가서 아내에게 편지를 썼는데 아무리 기다려도 답장이 안와요. 그래 제 맘에 없는 결혼을 해서 그런가보다 라고 추측을 할 수 밖에 없었지요. 그러다 휴가를 얻어 집에 왔어요. 그런데 집에 오니 아내가 날 반겨줘요. 그래 날 싫어하는 것 같지 않은데 왜 답장을 안하느냐고 물었지요.
그랬더니 펑펑 울어요. 문맹자라 그러더군요. 그때 아내가 문맹자인 걸 처음 알았어요. 한번은 구촌뻘 되는 처녀가 집에 놀러왔는데 그녀는 글을 알아요. 그래서 아내는 내 편지를 꼭 쥐고 편지를 보여줄 수는 없고 답장 한통만 써달라고 했어요. 그렇게 해서 딱 한번 답장이 오긴 왔었어요.
그런데 군대에서는 꼭 일주일에 한번씩 편지를 써야만 했어요. 그래서 동생들에게 쓸 수도 없고 아내가 읽지 못하는 걸 알면서도 계속 아내에게 편지를 썼지요.내 맘에 있는 비밀 이야기 같은 건 못했지요. 읽지 못하니까. 대신 부모님 모시고 잘 있어달라고만 했지요”
그녀 나이 일흔 두 살이 되었을 때 그녀는 노인 복지관 한글반에 들어갔다.아이들이 길 바닥에 함부로 해놓은 낙서만 봐도 저것이 무엇일까? 그녀는 엄청 부러웠었다고 한다.죽을 때까지 글을 배우지 못하면 나 죽어 저승 가서라도 꼭 배워야지 하는 생각도 있었지만 그전에 죽기 전에 이름 석자라도 쓰고 싶었다.
일주일에 두 번씩 삼년을 다녔더니 한글반 졸업이었다.아이고!난 받침도 아직 모르는데.하는 생각이 들어서 어디가서 한글 좀 더 배울데 없느냐고 물었더니 시창작반으로 가라고 했다.‘배운 거라고 잊지 말아야지!’ 하는 생각으로 시가 뭔지 모르면서도 시 창작 교실까지 오게 되었다.배우기 시작하자 기쁜 일들이 생기기 시작했다. 한글을 배우고 몇 년 뒤에 남편에게 편지를 썼다.오십년 만의 답장이다.그 편지의 전문은 이렇다.
당신을 만난 지가 벌써 오십년이 지났군요. 그동안 부모님을 모시고 아들 딸 가르치느라고 힘들고 가난한 살림에 세월 가는 줄도 모르고 우리 인생이 다 되었어요. 당신을 챙길 시간 조차 없어 너무 소홀히 생각한 것 같습니다. 지금에 와서 후회하고 있어요.
그동안 나에게 사랑을 베푸신 당신에게 감사드립니다. 당신이 말하지 않아도 눈빛만 봐도 알 수 있지요. 당신을 군대에 보내놓고 그 뒤에 편지가 와서 읽을 수도 없어 가슴이 얼마나 답답한지 슬퍼서 울 때 살고 싶지도 않았죠. 편지를 쓰지도 못하고 읽지도 못하는 나에게 편지를 써서 보내신 당신이 너무나 고마웠어요. 그때부터 공부를 하기로 결정했지요.
2004년 3월 11일 음성군 노인 복지 회관에 가서 내 마음을 열고 한글 학교 문을 두드렸습니다. 힘이 된 것은 당신의 사랑이지요.일 주일에 두 번씩 데려다준 덕분이지요. 이렇게 연필을 들고 쓴다는 것이 너무나 신기하고 기쁨과 감격의 눈물이 납니다. 이제 소원이 하나 풀리고 그 동안의 부끄러움을 면하는 것 같습니다.
당신에게 그동안 사랑한다는 말 한 번도 써보지 못했고 이제야 당신께 사랑이란 말을 씁니다. 당신을 이 세상 끝까지 사랑할 겁니다. 여보 고맙습니다.
2006년 4월13일 당신의 아내가
그런데 그녀는 무슨 시를 쓸까? 내가 처음 읽고 충격을 받은 시의 제목은 무식한 시인이었다
시는 아무나 짓는게 아니야
배운 사람이 시를 써 읊는거지
가이 갸 뒷다리도 모르는게
백지장 하나
연필 하나 들고
나서는게 가소롭다
꽃밭에서도 벌과 나비가
모두 다 꿀을 따지 못하는 것과 같구나
벌들은 꿀을 한 보따리 따도
나비는 꿀도 따지 못하고
꽃에 잎만 맞추고 허하게 날아갈뿐
청용도 바다에서 하늘을 오르지
메마른 모래밭에선 오를 수 없듯
배우지 못한게 죄구나
아무리 따라가려해도
아무리 열심히 써도
나중엔
배운 사람만 못한
시,시를 쓴단다
무식한 시인 (한충자)
그녀는 정말 무식한 시인일까? 나는 이 특별한 시 앞에서 할 말을 잊고 있다가 그녀의 집에 따라갔다.그리고 시를 좀 보여달라고 했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녀는 매일 밤 시를 쓰고 있는게 아닌가? 벽마다 그녀가 쓴 시가 비닐 코팅된 채 붙어있었다나는 그녀가 백살 된 시어머니의 점심 식사를 차리는 동안 정신을 잃다시피 그녀의 시를 읽었다. 나는 그때의 경이로움을 이렇게밖에 묘사하지 못했다.
부끄러워 얼굴 붉히고 스스로 무식한 시인이라 말하는 그녀가.
깊은 밤
조심조심 불을 밝히고 화장대 서랍을 연다
치약과 몇 장의 비누 뒤에 숨겨놓은 두툼한 갈색 종이 봉투를 꺼낸다
대체 무슨 보물이길래 깊숙이 숨겨놓았을까?
그 안에서 나온 것은 원고지 뭉치다.
밤마다 또박또박 써놓은 시가 수백편이다.
그녀의 시 속에서 애석하게 죽어버린 엄마는 가을빛으로 살아난다
콩다발을 머리에 이고 가는 젊은 어머니는 가을볕 아래
하늘의 축복을 받는다
증재록 시인과 치는 손뼉 아홉 번은
우리를 시인으로 만들어주는 기쁜 손짓으로 살아난다
손뼉 아홉 번은 열 번보다 좋다
더 채울게 있으니까.
그리고
봄 씨앗 뿌리는 날은 이렇게 변한다
바가지에 씨앗을 담고
밭으로 가는 길
개나리 민들레 진달래
꽃이 만발하고
벌 나비 이꽃 저꽃으로 날아다닌다
저 건너 산에는 아지랑이 아롱아롱
마음을 사로잡아 씨뿌리기 힘들게 하고
밭에는 이얏 쩌쩟 소모는 구성진 소리
괭이질하다가 앉아 쉬는데 깜빡 오는 잠
종달새 지지배배 잠이 깨어
집으로 가는 발걸음이 무겁다
그녀는 무식한 시인일까? 물론 아니다. 절대로 아니다. 오히려 무지한 시인(관찰력과 의지로 스스로 새롭게 세상을 배워나간다는 의미의 무지)일 수 있지 않을까? 그녀는 어떤 시인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