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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미래가 우려되네요……
최근 다국적 네트워크 장비 업체들의 아시아 지역 R&D 센터 설립과 대대적 투자가 잇따르고 있지만 한국은 이러한 움직임에서 소외되고 있다.네트워크 장비업체 시스코시스템즈는 최근 일본 도쿄에 연구개발(R&D) 센터를 설립하고, 향후 5년간 1200만 달러를 투자한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2월 개소 예정인 도쿄 R&D 센터는 IP 기술 개발에 주력하면서 시스코의 IOS 라우팅 소프트웨어와 최근 발표한 최상위 기종인 CRS-1용 소프트웨어인 IOS XR 관련 기술을 개발할 예정이다.
시스코는 핵심 분야 중 하나인 IOS 개발기지로 도쿄를 선정한 이유에 대해 초고속인터넷 부문에서 일본이 가진 우위 때문이라고 밝히면서 “시장 잠재력과 인재가 있는 곳에 R&D 센터를 구축한다”는 시스코의 기본 전략과도 부합한다고 강조했다.
도쿄 외에 시스코는 중국 상하이에서도 오는 3분기에 R&D 센터를 연다. 시스코는 상하이 R&D 센터에 5년간 3200만 달러를 투자, 차세대 유망 분야인 VoIP 기술을 집중 개발토록 한다는 계획이며, 18개월간 총 100여 명의 연구인력을 채용해 아시아 지역 R&D 거점으로 키울 방침이다.
주니퍼네트웍스도 지난해 12월 중국에 R&D 센터를 새로 설립했다. 중국 R&D 센터는 주니퍼가 최근 진출한 SMB 시장용 네트워크 보안 장비를 중점적으로 개발하는 중책을 맡았다.
이외에도 네트워크 장비업체 쓰리콤은 2003년 대만에 이어 지난해 10월 인도에 VoIP 기술 개발을 위해 R&D 센터를 건립했으며, 노텔네트웍스는 중국 베이징, 광저우 R&D 센터에 지난 3년동안 총 2억 달러를 투자, 중국을 3G 기술 개발의 아시아 지역 거점으로 키우고 있다.
매출 증대 위한 상품개발 기지 역할
이처럼 다국적 네트워크 장비 업체들이 앞다퉈 아시아 각국에 R&D 센터를 설립하거나, 이미 설립한 R&D 센터를 집중 육성시키고 있지만 정작 ‘신기술의 시험대(test bed)’로 통하는 한국은 이러한 움직임에서 제외되고 있다.
업계는 이 같은 현상이 발생하는 이유는 한국이 신기술 도입이 빠르고 인프라가 우수해 시장성은 있지만 R&D 센터를 설립할 만한 여견은 갖추고 있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한 외국계 장비업체 관계자는 영업 일색의 지사 형태에 대해 “한국이 인도만큼 저렴한 고급인력이 풍부한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현지 친화적 활동을 위해 R&D 센터를 설립할 만큼 시장이 큰 것도 아닌 것이 사실”이라고 지적했다.
실제로 중국은 세계 최대 시장이라는 장점을 내세워 시장과 기술을 맞바꾸는 정책을 추진, 기술력을 빠르게 흡수하고 있다. 최근 개통한 세계 최대규모의 순수 IPv6 네트워크 ‘CERNET2’에 자국 기업이 개발한 코어 라우터를 사용할 만큼 이미 네트워크 부문 기술력은 세계 상위권에 올라섰다.
인도의 경우 미국 기업들의 오프쇼어링(offshoring) 바람과 맞물려 R&D 센터가 몰려들면서 아시아 지역 R&D 허브로 이미 자리를 굳힌 상태다.
1998년 설립된 인도 방갈로어의 시스코 R&D 센터에는 현재 500여 명의 연구원이 각종 네트워크 관련 기술을 개발하고 있으며, 주니퍼 R&D 센터에서도 100여 명의 연구인력이 근무하고 있다.
이외에도 쓰리콤을 비롯한 네트워크 장비 업체들이 속속 인도나 중국, 일본에 기술개발 기지를 설립하면서 네트워크 부문에서 한국 시장이 갖는 위상은 급격히 위축되고 있는 상황이다.
동북아 R&D 허브 전략「주춤」
우리나라의 경우 2000년 설립된 시스코 R&D 센터에서 현재 2명의 직원이 주문형반도체(ASIC) 부문 연구원을 겸하고 있는 수준이며, 대부분 업체들은 장기적으로도 R&D 센터 설립은 계획조차 갖고 있지 않다. 한국에는 영업과 기술지원 조직이면 그만이라는 얘기다.
캐스피언 네트웍스 등 현재 R&D 센터 설립을 고려하는 일부 기업들도 광대역통합망(BcN), IT839 등, 신사업을 통한 매출 기회를 노리고 양해각서(MOU)를 교환하는 수준에 그치고 있어 설립 여부, 또 설립 후 실제 연구개발 센터로의 활용 여부 등은 불투명한 상황이다.
이에 따라 중국과 인도가 각각 시장과 풍부한 인적 자원을 내세워 R&D 센터를 유치하며 기술 유통의 중심지로 부상하는 동안 한국은 시장 역할만 충실히 해주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한 공공 연구기관 관계자는 “단순히 R&D 센터 설립에 따른 혜택을 주는 것으로는 안된다. 핵심 기술을 개발할 R&D 센터를 유치하기 위해서는 장기적인 관점의 유인책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즉 지금 상황에서는 단기적 당근책으로 R&D 센터를 유치해봐야 기술 개발보다는 매출 증대를 위한 상품개발 기지 역할에 그칠 가능성이 큰 만큼 먼저 실질적인 R&D 센터 설립에 적합한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최근 외국인투자지원센터가 국내 진출한 주요 외국계 기업의 부설연구소 책임자들을 대상으로 한국, 중국, 일본, 말레이시아, 싱가포르 등 동아시아 5개국 중 R&D 센터 환경이 좋은 국가를 설문 조사한 결과 한국은 일본은 물론 중국보다도 환경이 좋지 못하다는 결과가 나왔다.
이들은 저해요인으로 우수 이공계 연구인력 확보 곤란과 R&D 관련정보 부족, 지적소유권제도 미비, 연구인력에 대한 동기부여 부족 등을 꼽았다. 결국 전반적인 투자 여건이 조성돼있지 않다는 것이다.
여기에 정부의 R&D 센터 유치 전략도 아직 별다른 효과를 발휘하지 못하면서 선진 기술 업체들의 발길은 속속 중국과 일본, 인도로 향하고 있어 야심찬 ‘동북아 R&D 허브’ 구축 계획도 무산될 위기에 처했다는 지적이 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