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에게 전하지 못한 편지 – 눈물

  • #83600
    6년만기 24.***.74.254 4873

    2007년 5월 8일 새벽 2시- 너무 들여다 본 지 오래되었다며 싸이홈피를 좀 보고 오겠다며 웃으며 컴퓨터가 있는 방으로 건너갔던 아내가 떨리는 목소리를 주체하지 못하고 눈물을 흘리며 “오빠… 우리 아버지 돌아가신 거야?”…

    5일전
    2007년 5월 3일 – 둘째출산

    일주일전
    2007년 4월 27일 – 부모님 미국 도착
    같은 날 – 한국에서 어머니께는 아버지와도 같으신 큰 외삼촌 별세
    공항에서 돌아오는 차안에서 슬피 우시던 어머니, 같이 따라 울던 아내…
    그리고 아내가 너무 안쓰러워 같이 눈물 흘리던 나…

    일주일전
    2007년 4월 20일 – 아내에게 전하지 못한 편지


    (97년 4월 20일)

    사랑하는 OO아,

    오늘 새벽 언니에게 온 전화를 듣고 순간적으로 수많은 생각이 머릿속을 스쳐지났다.
    하루종일 망설인 끝에 이런 결정을 내리게 되었지만 아직도 무엇이 옳고 그른지는 확신이 서지 않는구나. 언니, 오빠, 그리고 이모를 비롯한 모든 분들이 아버님의 갑작스러운 죽음으로 인해 힘들어할 너를 걱정해 당분간은 너에게 알리지 말자고 하시고 나 또한 그렇게 하기로 마음먹었다. 당장 비행기에 올라 임종을 지켜드리지 못한 불효를 영정앞에서라도 사죄드려야 도리이겠지만 이제 출산을 얼마 앞두지 않은 네 건강또한 돌보지 않을 수 없기에 내린 결정이다. 하지만 너에게 털어놓지 못하고 거짓으로 평소처럼 대하려니 나 또한 많이 힘이드네…

    아침에 회사에 나와서 언니랑 통화하며 참 많이 울었다. 아버님은 언니랑 새벽기도를 마치시고 집에 돌아오셔서는 현관앞에 주무시는 것처럼 누워계셨다는 구나. 언니가 들어가서 주무시라고 깨워도 일어나시질 않아 자세히보니 이미 숨을 거두신후 였더란다. 평소 아버님 소원대로 어머님 무덤을 개장하여 어머님과 함께 화장후 납골당에 모시기로 하였단다. 무슨 말로도 위로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주무시는 것처럼 돌아가셨다고 하니 식구들 모두 아버님께서 더 좋은 평안한 곳으로 가셨을 것이라 자위해 보는 모양이더라.
    다른 사람들이 알게 되면 혹시라도 니가 알게 될까봐 하루종일 흐르는 눈물을 숨기며 화장실만 들락거리는구나. 앞으로 너를 어떻게 봐야할 지… 니가 사실을 알게 될 그날까지 어떻게 해야 니가 모르게 할 지… 또 나중에 사실을 알게 되고 니가 어떻게 받아들일 수 있을 지… 모든게 걱정이 되지만 그래도 그렇게 너에게 말하지 못하는 오빠를 용서해줘…

    니가 알게되는 그 날까지 매일매일 아버님을 위해 기도드리는 마음 잊지 않을께… 그리고 아버님도 큰 아픔 씩씩하게 이겨내는 널 보고 싶으실 거라 믿고… 이 글을 볼때부터는 꼭 힘내줬으면 좋겠다.

    눈물이 너무 많이나서 더이상 글쓰기가 힘드네… 또 화장실로 가봐야겠다…

    사랑해 OO아… 아무리 힘들어도 니 옆엔 항상 오빠가 있다는거 잊지 말고… 힘내…

    사랑한다… 미안해…

    오빠가.



    8년전 한국에 나가 뵌 것이 마지막이었습니다. 경제적인 이유… 영주권 문제 등으로 차일피일 미루다가 결국 장인어른 임종도 지켜드리지 못하고 1년이 훌쩍 지난 지금까지도 영주권이 해결되지 않아 영정앞에 엎드려 울 수조차 없는 죄인의 심정으로 지내내요…

    모든 것을 마음에 담아두고 꿋꿋히 견뎌주는 제 아내가 너무도 고맙습니다. 몇번을 망설이다가 끝내 아내에게 전하지 못한 편지… 읽을때마다 가슴이 저려옵니다. 아마 끝내 전하지 못하게 될 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렇더라도 아내가 제 마음을 알아주겠죠?

    괜시리 무거운 글로 커플스 식구들의 하루가 우울해지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대신 한국에 부모님 계신 분들은 전화통화라도 한번씩 해 보실 수 있었으면 좋겠네요…

    • 회색빛 75.***.191.86

      먼저 삼가 조의를 표합니다.
      같은 남자로서 이해가 됩니다.
      부인하테 잘 해주시는 것 밖에는 없네요
      빨리 영주권 받고 한국가셔서 늦게라도 인사드릴수 있기를
      바랍니다.

    • 꿀꿀 129.***.69.169

      6년 만기님,, 정말 마음이 무겁네요,, 이민생활중인 우리에게 누구나 닥칠수 있는 이야기 이지만,,맘이 아픕니다,, 6년만기님의 속깊은 배려와 아내사랑이 느껴집니다,,

    • Dignity 67.***.118.126

      미국에 살면서 제가 요즘 가장 걱정하는 부분입니다.
      부모님,장인,장모께 무슨 일이 생기면 어쩌나? 아무리 빨리 달려가도 하루는 걸리는데..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빌며 원글님 영주권 문제도 빨리 해결되길 바랍니다.

    • 건들면 도망간다 71.***.206.77

      영주권을 기다리는 모두에게 공감가는 이야기입니다.
      전해지지 못한 편지일지라도
      안타갑고 애끓는 마음이 충분히 전해졌으리라 믿습니다.
      모든 부부들이 이런 마음으로 살아간다면
      불행한 일들은 발생하지 않을것 같은데….
      글 속에 만기님의 인간미가 한층 돋보입니다

    • 산들 74.***.171.216

      정말 마음이 안타깝고 무겁습니다. 좋은 곳으로 먼저 가신 아버님께서 항상 만기님 가족을 지켜보고 기도하고 계실거에요.
      정말 부모님께서 옆에 계실때 잘해드리라는 말이 새삼 가슴을 칩니다.

    • 크리스맘 24.***.151.53

      미국에 살면서 가장 안타까운 부분 중 하나인 것 같습니다.
      저도 임신중에 아빠가 크게 다치셨던 일이 있었는 데,,
      한국에 올수도 없는 막내동생이 임신중에 걱정만 하게 될까 염려하여
      온 가족이 저한테만 비밀로 하였다는….
      엄마 아빠가 하두 연락이 안 되어 언니오빠한테 물어보니,,
      입원해 계신 것을 저한테만 두 분이서 여행을 가셨다고…
      상황도 모르는 철부지 막내딸은 그 얘기에..
      “엄마 아빠 사이가 날로 날로 좋아지시나 보네?! ^-^ “
      그러면서 한심하게 농담이나 하고 말이죠….

      나중에 아빠가 좀 호전이 된 뒤에야 저에게 알려주었죠..
      제 자신이 얼마나 어이가 없고,,, 눈물이 나던지요…

      그래도 6년만기님처럼 자상하고 따뜻한 남편이 있어서
      아내는 많이 든든하고, 또 위로가 되었을 겁니다!
      참 좋은 분이십니다요 그려…. ^ ^

    • done that 66.***.161.110

      저희 부모님도 제가 걱정할까봐, 암검사에 들어가신 걸 숨기신 적이 있읍니다.
      그때 동남아 여행을 가면서 집에 들릴려고 하는 데, 한국에 오지말고 그냥 놀러가라고 하시더군요. 아니 자식이 가서 보겠다는 데, 그러지 말라고 하신다고 마음만 상했지, 부모님의 깊은 마음은 생각도 못했지요. 그래도 우겨서 집에 갔더니 아버님은 병원에 입원해 계시더군요.

      부모님의 마음이 더 힘드셨겠지만, 난 내게 숨겼다고 화만 싫컷 냈네요. 살아 계실 적에 왔다갔다 보고싶지, 장레식에 가서 보고싶지 않다고. 나중에 숨겼다가 큰일이 생기면 장례식에 가지 않는다고 까지 말을 했네요. 두고두고 후회합니다.

    • PEs 75.***.161.167

      영주권, 그리고 미국에서의 삶…
      미국에서의 삶이 사실 끊임없는 도전과 하루만 더 하루만 더 하면서 가족과의 일들을 차일 피일 사정상 미루게(?) 되는 그런 것 같습니다. 저도 그렇고 주위를 봐도 대개 그렇습니다.
      원글님의 마음, 상황 충분히 이해가 가고 또 이해가 갑니다. 위로의 마음을 전합니다.

    • 6년만기 24.***.74.254

      댓글 모두 감사드립니다. 살다보면 이런 힘든일, 한번쯤은 모두 겪으셨리라 생각됩니다. 특히 부모님에 관한 일들은 언제나 우리를 가슴아프게 하는 것 같습니다. 이렇게 편한 마음으로 힘든일 같이 나눌 수 있는 커플스가 너무나도 좋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