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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5월 8일 새벽 2시- 너무 들여다 본 지 오래되었다며 싸이홈피를 좀 보고 오겠다며 웃으며 컴퓨터가 있는 방으로 건너갔던 아내가 떨리는 목소리를 주체하지 못하고 눈물을 흘리며 “오빠… 우리 아버지 돌아가신 거야?”…
5일전
2007년 5월 3일 – 둘째출산일주일전
2007년 4월 27일 – 부모님 미국 도착
같은 날 – 한국에서 어머니께는 아버지와도 같으신 큰 외삼촌 별세
공항에서 돌아오는 차안에서 슬피 우시던 어머니, 같이 따라 울던 아내…
그리고 아내가 너무 안쓰러워 같이 눈물 흘리던 나…일주일전
2007년 4월 20일 – 아내에게 전하지 못한 편지
(97년 4월 20일)사랑하는 OO아,
오늘 새벽 언니에게 온 전화를 듣고 순간적으로 수많은 생각이 머릿속을 스쳐지났다.
하루종일 망설인 끝에 이런 결정을 내리게 되었지만 아직도 무엇이 옳고 그른지는 확신이 서지 않는구나. 언니, 오빠, 그리고 이모를 비롯한 모든 분들이 아버님의 갑작스러운 죽음으로 인해 힘들어할 너를 걱정해 당분간은 너에게 알리지 말자고 하시고 나 또한 그렇게 하기로 마음먹었다. 당장 비행기에 올라 임종을 지켜드리지 못한 불효를 영정앞에서라도 사죄드려야 도리이겠지만 이제 출산을 얼마 앞두지 않은 네 건강또한 돌보지 않을 수 없기에 내린 결정이다. 하지만 너에게 털어놓지 못하고 거짓으로 평소처럼 대하려니 나 또한 많이 힘이드네…아침에 회사에 나와서 언니랑 통화하며 참 많이 울었다. 아버님은 언니랑 새벽기도를 마치시고 집에 돌아오셔서는 현관앞에 주무시는 것처럼 누워계셨다는 구나. 언니가 들어가서 주무시라고 깨워도 일어나시질 않아 자세히보니 이미 숨을 거두신후 였더란다. 평소 아버님 소원대로 어머님 무덤을 개장하여 어머님과 함께 화장후 납골당에 모시기로 하였단다. 무슨 말로도 위로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주무시는 것처럼 돌아가셨다고 하니 식구들 모두 아버님께서 더 좋은 평안한 곳으로 가셨을 것이라 자위해 보는 모양이더라.
다른 사람들이 알게 되면 혹시라도 니가 알게 될까봐 하루종일 흐르는 눈물을 숨기며 화장실만 들락거리는구나. 앞으로 너를 어떻게 봐야할 지… 니가 사실을 알게 될 그날까지 어떻게 해야 니가 모르게 할 지… 또 나중에 사실을 알게 되고 니가 어떻게 받아들일 수 있을 지… 모든게 걱정이 되지만 그래도 그렇게 너에게 말하지 못하는 오빠를 용서해줘…니가 알게되는 그 날까지 매일매일 아버님을 위해 기도드리는 마음 잊지 않을께… 그리고 아버님도 큰 아픔 씩씩하게 이겨내는 널 보고 싶으실 거라 믿고… 이 글을 볼때부터는 꼭 힘내줬으면 좋겠다.
눈물이 너무 많이나서 더이상 글쓰기가 힘드네… 또 화장실로 가봐야겠다…
사랑해 OO아… 아무리 힘들어도 니 옆엔 항상 오빠가 있다는거 잊지 말고… 힘내…
사랑한다… 미안해…
오빠가.
8년전 한국에 나가 뵌 것이 마지막이었습니다. 경제적인 이유… 영주권 문제 등으로 차일피일 미루다가 결국 장인어른 임종도 지켜드리지 못하고 1년이 훌쩍 지난 지금까지도 영주권이 해결되지 않아 영정앞에 엎드려 울 수조차 없는 죄인의 심정으로 지내내요…모든 것을 마음에 담아두고 꿋꿋히 견뎌주는 제 아내가 너무도 고맙습니다. 몇번을 망설이다가 끝내 아내에게 전하지 못한 편지… 읽을때마다 가슴이 저려옵니다. 아마 끝내 전하지 못하게 될 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렇더라도 아내가 제 마음을 알아주겠죠?
괜시리 무거운 글로 커플스 식구들의 하루가 우울해지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대신 한국에 부모님 계신 분들은 전화통화라도 한번씩 해 보실 수 있었으면 좋겠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