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개팅 no. 2

  • #410294
    Osprey 70.***.220.239 5244

    한 바탕 내 인생에 풍파가 몰아친지도, 계절이 세 번 지났다.

    소개팅 자리가 들어왔다.

    1주일 만에 약속을 잡고, 그녀가 일하는 곳에서 가까운 커피샵에서 만나기로 했다.

    얼마 전 회사 근처 쇼핑몰 안에 있는 빠나나 공화국에서 산 말끔한 셔트와 카디건, 날씬해 보이는 바지를 입고 창가에 앉아 기다렸다.

    woody sage 냄새가 은은하게 나는 향수도 조금 뿌려주고 컨디션이 좋았는데…

    그녀가 들어왔고, 인상이 완전 좋았다.

    밝게 웃으면서 인사하는 모습은 옛날에 엄마 따라 백화점 가면 화장품 코너에 있는 예쁜 누나 같았다.

    그 어렸을 땐 그 누나한테 할 말도 없었고, 화장품 살 돈도 없어서 그냥 예쁜 얼굴만 보고 동경하는 대상이었지만

    지금 나는 그런 누나하고 당당하게 소개팅을 할 수 있는 나이와 경제적인 능력을 갖췄다는 게 달라졌다.

    Chai Latte 를 두 개 시켜서 양손에 공손히 들고와 한 잔을 드리고, 정중히 인사를 드렸다.

    말투도 공손하고 요즘 보기 드문 여자인 것을 첫 몇 마디를 나눠보고 알았다.

    게다가 나처럼 등산도 아주 좋아하고 겨울엔 snowshoeing도 거의 매 주말 가족과 다니는 매니악 수준이란다.

    일 안 가면 집에서 한국 드라마, 오락 쇼만 보거나 쇼핑으로 돈 써 제끼는 과거 여친들에 비해 매우 건전하시다.

    정말 잘 해 봐야겠다는 생각이 마구 들고 있었는데…

    ‘주말은 보통 어떻게 지내세요?’ 하고 묻자 그녀는 가족과 교회를 간단다.

    나는 interjection 이랍시고 내뱉었는데, 튀어나온 말이

    “아, 그럼 개독교 신자세요?”

    “네?…….아.네에……..”

    ‘……….!!!’

    그리고 나서 한 시간 정도 더 이야기를 하고 헤어졌는데 (7시에 만나 9시까지 있었다),

    저 부분에서 반감을 샀는지, 아니면 다른 부분도 마음에 내키지 않는 구석이 있었는 지 영원히 알 길이 없겠지만

    아무튼 연락이 없다.

    개신교, 기독교란 말을 입에 올리는 일이 별로 없어서 그랬을까.

    아니면 유튜브에서 목사들 나오는 비디오를 쓸데없이 많이 봐서 그랬을까.

    재수가 없으려니 참, 안 생기는 모멘텀이 한 동안 계속될 조짐이다.

    사람은 보기 드문 미인에 성격도 마음에 들었는데, 성직자형 종교인일 듯 한 불안감 때문에

    다시 만나보기를 주저하게 된다.

    평상심으로 돌아가자는 내부의 외침이 커져온다.

    ‘닥치고 노후준비 먼저.’

    ‘오는 여자 막지 말고, 가는 여자 잡지 말자.’

    “Women are delicate creatures at the best of times. They are moved by desires unknown by the men that place trust in them.”
    (얼마 전 다시 방영하기 시작한 스파르타커스에서 Oenomaus가 사랑했던 여자를 두고 한 말이다.)
    • ggg 137.***.232.22

      글이 담백하며 재미있군요.

      중간에 읽다가 개독에서 뻥터졌습니다.

      맘에 있다면 알량한 존심 접고 연락해보는것도 남자로서의 의무감이 아닌 권리라고 생각합니다.
      이곳에서 자란 아가씨들 생각보다 보수적이거든요.

      물론 여자도 맘에 드는 남자가 있다면 먼저 연락할수 있는 배짱이 있어야 하겠지만.

    • 개독 24.***.186.221

      저 같은면…개독이라고 않하고… 중동 사막 잡신 야훼라고 했을 텐데…..

      좋은 결과 있으시길 바라겠습니다.

    • 우째… 67.***.163.10

      어쩌면 좋아… 저도 여자지만 멀쩡해보이는 남자분이 친하지도 않은데 ‘개독교’라는 표현을 쓰면 좀 많이 실망할듯. 종교를 떠나 꼭 욕같은 느낌이 들어서요… 그래도 용기를 내셔서 다시한번 연락해보심이 어떨까요? 소개팅 이후엔 여자가 먼저 연락하긴 좀 그렇잖아요. 문자라도 한번 보내보심이… 소개팅도 정말 안들어오지만 소개팅에서 마음에 드는 사람 만날 확률 정말정말 낮습니다. 꼭 연락해보세요!

    • 괴독 204.***.79.48

      개독이든 괴독이든, 그건 사람 사이에 예의가 아니죠. 원글님도 그래서 좀 미안해하신듯. 혹시 개독이 나쁜 놈들이기에 정당화된다고 우기는 사람이 있다면 그건 그 사람의 수준을 잘 말해주는 것이고. 하여튼 어차피 안될 관계라면 확실히 끝맺음을 한 것이니 원글님 입장에서 손해본 것은 아닌듯. 상대방에게 좀 미안한 것이지만. 신사답게 미안하다고 한마디 해주셔도 되겠습니다. personal한건 아니였다고 말이죠.

      앞으론 그런 사람이 나오면 건전녀인지 개독인지 찔러보십쇼. 원칙적인 질문들을 던지는거죠. 왜 믿느냐? 그리고 안믿는 사람들에 대한 뷰는? 배타적인지 포용적인지? 심각하게 고민하고 신실하게 추구하는게 있다면 적어도 한심한 사람은 아닐겁니다. 그냥 현혹되어 따라가는 사람이라면 지금 개독이 아니어도 미래에 그렇게 될 가능성이 있는 사람이고요.

    • 개독 174.***.92.64

      정 관심있으면 개독 부분 진심으로 사과하고 들어가세요. 사귀다보면 님이 개독될 수 있으니까.

      근데, 여자에게서 연락오길 바라시나요? 약간 짝찾지 힘들거같은..

    • Osprey 70.***.220.239

      어제 문자를 받았는데, 여자 쪽 부모님께서 종교관이 다른 사람과 교제하는 것을 원치 않으시는 것 같더군요. 그래서 오히려 저도 종교 문제는 시간이 지나도 근본적으로 합의가 불가능한 것이라 보기에, 일찌감치 잘 되었다 싶습니다. 본의 아니게 실수한 것에 대해 정중히 사과를 하고, 좋은 인연을 만나길 바란다고 짧게 답문을 보내드렸습니다.

      성격, 외모 다 조금씩 중요하지만 종교,이념,정치적 견해 같은 문화내지 인문적인 영역도 장기적으로 건강한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critical 하다고 생각하는데, 경험 있는 분들은 어떻게 생각하시는 지 궁금하네요. 뭐 어려서 연애할 때야 감정만 좋으면 그만이니까 이런 거 신경 쓸 필요 없어서 편했죠. 실패하면 reset 할 수 없는 인생이라 조심스럽고 싶습니다. ㅋ

    • 인생선배 24.***.130.87

      종교 진짜 중요합니다. 특히 미국에서는 더욱.
      될 수 있으면 같은 종교로 찾으시구요. 천주교(카톨릭)는 좀 낫습니다.
      참고하세요.

    • ㅎㅎ 68.***.142.232

      ㅎㅎ 재밌네요^^… 말씀을 참 재밌게 하시는 것 같아요.. 빠나나 공화국도 그렇공 ㅎ

    • 72.***.52.33

      비신자로서 일욜마다 교회에 끌려가는 그 기분 당해보지 않으면 모릅니다.
      싫으면 안가면 되지 않냐고 하실지 모르지만 안가면 결혼생활 유지 불가할 정도로 관계가 틀어집니다. 그러면 아예 이혼하면 되지 않냐고 하실지 모르지만 이혼이 그리 쉬운게 아닙니다.

    • e 68.***.143.225

      기독교를 개독이라고 생각하는 예쁘고 멀쩡한 여자분들도 수없이 많습니다.
      그런분 만나시면 되겠습니다.

    • 98.***.234.183

      연락은 여자가 하는게 아니고, 님이 해야되는것 같고,
      여자 본인은 사이비 개독일 가능성도 배제하지는 마시고,
      심각한 신자면 좀 골치아프긴 한데, 해독의 가능성도 배제하지 마시고,
      장인, 장모될 사람이야 뭐, 데리고 사는것도 아닌데.

    • 111 71.***.193.22

      젤 밑에 영어로 된거, 한국말로 그럴싸하게 해석좀 해주세요.

      영어 대사 자체가 별로 멋있는 말은 아닌거 같은데, 영어로 어렵게 해놓으니까 괜스리 아주 멋있는 말처럼 느껴집니다. 한국말로 그 실체를 까발겨주세요 플리~즈.

      그리고 그 여자분 다시 혹시 임프레스 시킬려면, 이글 위에 제가 댓글 영어로 달아놓은거 있어요. (영어로 써놓으면 좀 멋지게 들릴까봐 ㅎㅎ) 그정도 구절은 응용해야 임프레스 되지 않을려나? ㅎㅎ 농담입니다 ㅎㅎ. 제 생각엔 그냥 잊어버리는게 낳겠지만서도.

    • 열린 종교인 66.***.75.114

      2008년 sbs 4부작 다큐 ‘ 신의 길 인간의 길’을 보세요. 이제 우리도 열린 종교인이 많아졌으면 합니다.

    • Osprety 70.***.220.239

      지난 일이라 잊기로 하고, 앞으론 종교처럼 중요한 문제는 사전에 알아보기로 했습니다.
      부모님이 사람만 좋으면 백인도 좋으니 너 좋아하는 여자 만나랍니다.
      아무래도 한국인들은 물이 작다보니…

    • 수도승 98.***.161.4

      일년 365일,
      그리고 30년이면 10950일…

      스물살에 정신을 차려보니 하루하루 아니 일분일분이 지루하게 느껴졌던 시절이 있었다.

      마치 권태로와서 죽을 것만 같은 느낌이 온 몸을 감싸안았고

      그리고 죽음에 대해 생각하였다.

      그 종교의 시작은 삶의 싫증에서 태어났을 것같다…

      코카콜라보다 뽕가는 느낌을 주는 그 믿음을 기둥#$삼아…

      현재의 한반도보다 더 처절한 사막의 하루를 살고 있었을 사람들에게도 삶의 권태는 찾아왔겠지..

      수도승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