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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바탕 내 인생에 풍파가 몰아친지도, 계절이 세 번 지났다.
소개팅 자리가 들어왔다.
1주일 만에 약속을 잡고, 그녀가 일하는 곳에서 가까운 커피샵에서 만나기로 했다.
얼마 전 회사 근처 쇼핑몰 안에 있는 빠나나 공화국에서 산 말끔한 셔트와 카디건, 날씬해 보이는 바지를 입고 창가에 앉아 기다렸다.
woody sage 냄새가 은은하게 나는 향수도 조금 뿌려주고 컨디션이 좋았는데…
그녀가 들어왔고, 인상이 완전 좋았다.
밝게 웃으면서 인사하는 모습은 옛날에 엄마 따라 백화점 가면 화장품 코너에 있는 예쁜 누나 같았다.
그 어렸을 땐 그 누나한테 할 말도 없었고, 화장품 살 돈도 없어서 그냥 예쁜 얼굴만 보고 동경하는 대상이었지만
지금 나는 그런 누나하고 당당하게 소개팅을 할 수 있는 나이와 경제적인 능력을 갖췄다는 게 달라졌다.
Chai Latte 를 두 개 시켜서 양손에 공손히 들고와 한 잔을 드리고, 정중히 인사를 드렸다.
말투도 공손하고 요즘 보기 드문 여자인 것을 첫 몇 마디를 나눠보고 알았다.
게다가 나처럼 등산도 아주 좋아하고 겨울엔 snowshoeing도 거의 매 주말 가족과 다니는 매니악 수준이란다.
일 안 가면 집에서 한국 드라마, 오락 쇼만 보거나 쇼핑으로 돈 써 제끼는 과거 여친들에 비해 매우 건전하시다.
정말 잘 해 봐야겠다는 생각이 마구 들고 있었는데…
‘주말은 보통 어떻게 지내세요?’ 하고 묻자 그녀는 가족과 교회를 간단다.
나는 interjection 이랍시고 내뱉었는데, 튀어나온 말이
“아, 그럼 개독교 신자세요?”
“네?…….아.네에……..”
‘……….!!!’
그리고 나서 한 시간 정도 더 이야기를 하고 헤어졌는데 (7시에 만나 9시까지 있었다),
저 부분에서 반감을 샀는지, 아니면 다른 부분도 마음에 내키지 않는 구석이 있었는 지 영원히 알 길이 없겠지만
아무튼 연락이 없다.
개신교, 기독교란 말을 입에 올리는 일이 별로 없어서 그랬을까.
아니면 유튜브에서 목사들 나오는 비디오를 쓸데없이 많이 봐서 그랬을까.
재수가 없으려니 참, 안 생기는 모멘텀이 한 동안 계속될 조짐이다.
사람은 보기 드문 미인에 성격도 마음에 들었는데, 성직자형 종교인일 듯 한 불안감 때문에
다시 만나보기를 주저하게 된다.
평상심으로 돌아가자는 내부의 외침이 커져온다.
‘닥치고 노후준비 먼저.’
‘오는 여자 막지 말고, 가는 여자 잡지 말자.’
“Women are delicate creatures at the best of times. They are moved by desires unknown by the men that place trust in them.”(얼마 전 다시 방영하기 시작한 스파르타커스에서 Oenomaus가 사랑했던 여자를 두고 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