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선택은 가능한가

  • #99625
    레디앙 68.***.94.65 2166

    87년 6월이 지나고 네 번의 정권이 들어섰다. 5년 단임의 직선제는 다른 것은 몰라도 5년 단위로 세상을 평가하기 쉽게 만들어주는 점이 있다. 노태우, 김영삼의 10년이 지나갔고, 다시 김대중, 노무현의 10년이 지났다.

    기계적으로 본다면 박정희로부터 계속된 군사정권을 민간정권이 인수할 수 있도록 준비하는 기간이 앞의 10년이라고 할 수 있고, 그리고 드디어 민간 정권 혹은 민주화 정권이 국가 운영을 물려받은 10년이라고 말해도 과언은 아니다. 그 이상의 의미가 있을까? 현재로서는 그 이상의 의미를 이 흐름에 부여하기는 어렵다.

    먼저 내 입장을 간단하게 밝히자면, 나는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것만큼 노태우 정권과 김영삼 정권을 최악으로 평가하지는 않는다. 87년 9차 개정 헌법의 정신에 비추어보면, 이 두 사람도 헌법이 지명하는 호민관의 역할을 아주 못하지는 않았던 것 같다.

    노태우 대통령의 경우 억지로 역사를 뒤로 돌리려고 하지 않았고, 북방 외교를 통해서 지금의 평화체계의 단초를 만든 것이 사실이다. 김영삼 정권의 경우에도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아무것도 아닐 것 같지만 하나회 청산과 실명제 도입이라는 몇 가지 중요한 변화들을 만든 것이 사실이고, 단위 기간 동안에 가장 인기가 높았던 대통령이었다는 사실도 변하지 않는다.

    김대중 대통령에 대해서는 평가가 엇갈린다. 애증의 관계라고 하는 것이 가장 적합할 것 같은데, 만약 그의 시절의 한국 경제에 신자유주의가 도입되었다면 그것은 ‘완화된 신자유주의’라고 불러야 할 것이고, 북한에 대한 ‘내부 식민지화 전략’이라는 또 다른 지적에도 불구하고 그의 대북 정책이 한반도에 중요한 전기를 만들어놓은 것이 사실이다.


    ▲ 87년 이후 네번의 정권이 들어섰다. 군사정권 인수기간 10년과 민간정권 10년 무엇이 달라졌을까.

    노무현 대통령은 아직 임기가 지나지 않았는데, 그의 시절에 우리나라는 실제로 지하경제의 비중이 높아지면서 전반기에는 ‘한국형 뉴딜’을 통해서 지역 토호들과 연관된 깡패들을, 중반기에는 ‘바다이야기’를 통해서 이보다 규모가 작은 소형 깡패들을, 그리고 임기 마지막에는 이자제한법을 폐지하면서 사채업자들의 전성시대를 맞게 된다.

    큰 흐름으로 본다면, 노태우 대통령이 ‘범죄와의 전쟁’으로 지하 경제에 대한 1차 공격을 한 이후에, 김영삼 정부에서 지하 자금들이 움직이기 아주 어렵게 만든 금융실명제로 2차 공격을 했는데, 이러한 지하 경제가 김대중 대통령 시절의 IMF 경제위기 이후로 다시 틀을 잡기 시작하다가, 노무현 정권 시절에 전성기를 만든 셈이다.

    일부 사채업자들이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와 같은 곳에서 공식적인 자문 역할을 맡게 되었다는 사실은 현재 한국에서의 지하 경제가 차지하는 위상과 역할을 어느 정도는 이해하게 만들어준다(인터넷 신문 《대자보》 2007년 6월 15일자 참조).

    지하 경제의 흐름만으로 본다면 노무현 정권은 무지했고, 소위 민중들의 ‘경제적 삶’에 대해서 거의 이해하지 못하는 표층적 담론에서 얘기되는 공식적인 ‘효율성’의 세계에서 4년을 보낸 것은 사실인 것 같다. 골프장, 바다이야기, 사채업 등은 모두 다양한 방식으로 서민들의 삶을 직접적으로 황폐하게 하는 요소들인데, 이런 식으로 방기된 문제들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자, 직접적인 질문을 해보자. 이회창 후보가 대통령이 되었다면 이런 문제가 없었을까? 물론 피하기 어렵다. 도저히 이해하기 어려운 일들이 다시 반복되었을 가능성이 높고, 현재의 경제는 어쩌면 더 나빴을 수도 있고, 하루를 살아가는 일상인들의 마음은 지금보다 더 황폐했을 가능성도 있다.

    그렇다면 시계를 돌려서 2002년으로 돌아가 보자. 누가 대통령이 되었든 대한민국의 운명은 암울했을까? 노무현 정권의 심장부에서는 이회창보다 자신들이 더 낫다고 자화자찬을 하는 중인데, 그 말처럼 이회창 후보가 대통령이 되었더라도 세상이 지금보다 나았을 가능성이 없다면, 2002년에는 우리에게 아무런 선택도 사실상 없었다는 말이 아닌가.

    그렇다면 2007년, 지금 우리는 선택할 것이 새롭게 있는가, 아니면 여전히 2002년의 구도가 반복되는 것일까? 그 누구를 국민들이 선택하더라도 지난 4년간의 경험과 마찬가지로 똑같은 일이 반복되지 않을 것이라는 보장이 도대체 어디에 있는가? 게다가 지금은 노무현 대통령의 영웅적인 활동에 의하여 ‘한미 FTA 체제’라는, 87년 체제의 9차 헌법과는 전혀 질적으로 다른 새로운 여건을 맞이한 상태가 아닌가?

    • ELE 122.***.243.211

      분명히 김영삼 정권의 업적(?)이 과소평가 된 것 같다.
      김영삼 자신이 보수 세력과의 합당을 통해 대통령에 당선되었다는
      태생적 한계 때문에 개혁의 한계에 부닺히기는 했지만 오히려 현정권이 김영삼 집권때 보다 민주적인 측면에서는 오히려 퇴보되었다.

      금융실명제와 공기관 축소 민생과 행정 관료에 대한 전분야에 걸쳐 폭발적인 개혁이 이루어진 것은 사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