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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데스크] 묵비권 뒤에 숨은 한상렬
1981년, 공안사건을 수사하던 검사가 검사실에서 피의자와 마주 앉았다. 피의자가 말했다. “검사님은 역사의 발전법칙도 모릅니까. 머지않아 자본주의가 끝나고 공산주의 사회가 옵니다. 그러면 우리가 검사님을 심판할 겁니다.” 검사도 당황하지 않았다. “난 공산주의 사회에 살고 싶지 않다. 내겐 자유민주사회를 지켜야 할 책임이 있고, 그래서 당신을 기소할 수밖에 없다.” 지금은 변호사가 된 그 검사는 “당시 피의자는 되레 나를 설득하려 했는데, 마치 자신의 종교를 전파하려는 전도사 같았다”고 했다.
1990년대 후반, 한국대학총학생회연합(한총련) 의장을 지냈던 A씨는 검사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내 행위가 국가보안법 위반이 될지 모르지만, 나는 옳은 길을 갔다고 믿고 있다. 법이 잘못됐다고 생각하지만 내 행위에 대한 책임은 지겠다.”
1980~90년대 이른바 공안사범들은 대체로 검찰에서 자신의 행위에 대한 정당성을 주장했다. 당시의 운동권은 이미 민주화가 아닌 김일성 주체사상 운동으로 변질되고 있었지만 자신이 옳다는 생각만큼은 달라지지 않았다. 어떤 이들은 검찰이 모르던 혐의까지 털어놓으면서, 자신이 독재와 권위주의에 맞서고 있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당시 수사 검사들은 “그들 행위의 옳고 그름을 떠나 상당수 공안사범이 검찰을 향해 제 할 말은 했던 것 같다”고 기억한다.
하지만 최근의 공안사범들은 다르다. 불법행위를 하다가 잡히면 거의 예외 없이 묵비권(진술거부권)을 행사한다. 조사 과정에서 자신의 혐의를 줄이고 허점을 노출하지 않으려는 ‘전술’이다. 이런 전술은 통상 사기범들이 자주 쓰는 수법이다. 검찰에서 말을 되도록 줄이는 것이 가장 유리하다고 나름대로 계산하기 때문이다. 이런 ‘잡범’의 전술을 이른바 공안사범들이 쓰는 날이 올 줄은 수사관들도 미처 예상하지 못했다.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지난달 23일 구속된 한상렬 한국진보연대 상임고문도 그 묵비권 전술을 썼다. 검찰이 9일 그를 기소할 때까지, 그는 18일간의 수사 과정에서 일상적인 대화는 하면서도 조사를 전제로 한 질문엔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고 한다.
한씨는 지난 6월 12일 북한에 가 70일간 머물면서 “천안함 사건은 한·미동맹으로 주도권을 잃지 않으려는 미국과, 선거에 이용하고자 했던 이명박 정권의 합동사기극” “이명박이야말로 천안함 희생 생명들의 살인 원흉”이라고 했다. 한씨는 국내 좌파세력들조차 “우리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라고 생각한다는 인물이다. 그런 사람이 한 말을 갖고 따지는 것이 부질없는 것 같기도 하지만, 북한에서는 할 말 못할 말 가리지 않다가 여기서는 갑자기 입을 닫았다니 앞뒤가 맞지 않는다.
그는 평양에서 “민족의 화해와 평화, 통일에 이바지하기 위해 목숨 걸고 평양에 왔다”고 했다. 정말 그랬다면 당당하지 못할 것이 무엇인가. 평화·통일 운운하다가 이제는 유·불리를 재면서 계산하는 모습을 보니 그의 과거 행적 전체가 어떤 것인지 알 수 있을 것 같다.
헌법(12조2항)은 ‘모든 국민은 형사상 자기에게 불리한 진술을 강요당하지 않는다’고 규정하고 있다. 대한민국을 부정하고 능멸하는 사람들이 대한민국 헌법은 잘 이용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