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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블럭버스터란? 미국의 대표적인 비디오 대여점 체인입니다.
몇년전 아이들에게 Blockbuster.com 어카운트를 만들어주었습니다. 그래서 아이들이 직접 온라인으로 빌려보고 그 봉투는 갖다주면 새로운 영화를 빌려볼수 있습니다. 언제부터인지 그 곳 가게에 들어가는 것이 너무나 꺼려졌고 며칠전에는 도저히 영화를 고를 수 없을 만큼 괴로워져서 그냥 나왔습니다. 그리고 식구들에게 미안하다고, 하지만 이곳에 다시는 들어갈 수가 없을 것 같다는 한 가정의 가장치고는 좀 한심한 말을 했습니다.
지금껏 그곳에 들어가는 것이 웬지 모르게 마음이 불편해왔는데 문득 이곳에 진열된 영화들 때문이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가보신 분들은 알겠지만 절반 정도는 공포영화입니다.
큰 갈고리에 사람의 뒤통수를 찍어 쇠고기처럼 걸어놓은 그림, 눈동자 대신 그 구멍이 썩어서 그냥 움푹파인 검은 구멍의 얼굴을 그려놓은 것, 큰 접시에 야채를 깔고는 그 위에 여자의 머리를 잘라 식탁에 올려놓은 것, 사람을 꿇어앉혀놓고는 뒤에서 칼을 휘둘러 목에 닿기 직전의 그림, 얼굴이 썩어 문드려져 핏기라고는 없지만 입에는 피를 흘리며 고함지르는 남자의 모습 …
또 위로 하늘에 있는 것이나 아래로 땅에 있는 것이나 땅 아래 물속에 있는 것의 아무 형상이든지 만들지 말며 그것들에게 절하지 말며 그것들을 섬기지 말라
하나님의 말씀을 생각합니다. 왜 그 많은 비디오 표지중에 밝고 아름다운 것은 참으로 드물고 이처럼 더러운 것들은 이렇게 많을까요? 여러분이 받아들이든 그렇지 않든 그것은 바로 하나님에게 도전하는 마귀의 마음을 나타내는 것이고, 하나님을 떠난 죄인들의 마음의 Projection 입니다. 마귀는 하나님께 도전할수 없기 때문에 바로 하나님의 복사본인 사람을 그렇게도 죽이고 싶어하는 것입니다.
저는 과거에 공포영화를 참 좋아했습니다. 고전에 속하는 알프레드 히치콕부터 금요일씨리즈, 나이트메어등 몇번씩 보곤 했습니다. 딱히 원인을 나도 모르지만 웬지 굉장히 끌렸습니다. 눈하나 깜짝 하지 않고 스크린에서 사람이 죽어가는 것을 즐겨보고는 했습니다. 그리고는 집에 와서는 가위에 눌리곤 했었지요. 어떤 때는 말 그대로 밤새 가위에 눌린적도 있었습니다. 이러다가 죽는 건 아닌지 하는 생각을 하기도 했지만 또 하루가 시작되면 마치 아무 일도 아닌 것처럼 여겨버리곤 했었습니다.
예수님을 진정으로 영접하고는 제 인생에서 가위에 눌린다는 건 없어졌습니다. 실제로 단 한번도 없었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이 오심은 마귀의 일을 멸하려 하심이요 …” 저는 하나님의 말씀을 믿습니다. 일전에 잠시 말씀드렸지만 교만을 내려놓고 예수님의 이름을 불렀던 제 인생의 얼마 안되는 시간들을 통해 하나님은 믿음과 평안을 주셨습니다. 물리학, 심리학 그리고 털없는 원숭이 씨리즈를 통해 세상과 생명의 창조원리를 이해하려고 애쓰던 저에게 성령님의 인치심은 세상 지식을 훨씬 넘는 것으로 주어졌습니다.
이것이 바로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겨졌다”는 복음일 것입니다.
비디오 가게를 못가게 막아서는 것은 성령님의 역사입니다. 제가 잘나서가 절대로 아닙니다 (이것이 복음과 종교의 차이입니다). 그 하나님의 영이 내 안에 있으니 그를 따라가는 것입니다. 지금껏 살며 (교회를 그냥 다녔던 때가 아니라) 거듭난 이후의 삶은 대략 이런 식이었습니다. 나는 좋아하는 영화들인데도 내 안의 성령님이 막아서는 것입니다. 그것은 흔히 잘못 생각하는 금식 기도원의 모습처럼 내가 기절하고 어떤 존재가 나를 끌고가는 것이 아니라, 지금이라도 내가 또 비디오 빌리러 갈수도 있지만 성령님이 내 마음에 말씀하는 것 그것을 말합니다. “인격적”인 성령님이라고 하시지요.
여러분이 긍정하든 부정하든 여러분은 하나님이 자기 모습대로 만드신 귀한 존재들입니다. 그렇기에 양심도 있고 죄를 지으면 괴로운 것입니다. 그 귀한 형상이 하나님을 떠남으로 스스로는 돌이킬 수 없는 상태로 들어간 것이고, 사랑하는 아버지는 괴로워하는 우리의 목소리를 듣고 모든 계급장을 떼시고 나대신 십자가에서 나의 죄값을 대신하신 것입니다. 그리고는 우리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보라 옛것은 지나가고 새것이 되었도다.
예수님(하나님)이 이 말씀을 해주시기 위해 기분내키는 데로 키마이로 “야 오늘부터 죄없다 해라”고 하신 것이 아니고 나의 죄를 하나도 남김없이 자기가 받으신 것이지요. 부끄러운 십자가위에서 발가벗긴 채로 … 그런 방법으로 우리에게 깨끗함을 주셨습니다.
어떤 분은 예수만 믿으면 모든 못된 짓이 용서되냐고 고함치지만 그 분까지도 예수님의 용서는 해당됩니다. 그리고 그 분은 하나님이신 예수님이 우리에게 행하신 일이 어떤 건지 몰라서 그렇게 말하는 것입니다. 그 분들이 예수님이 자신을 위해 하신 일을 참으로 (성령님을 통해) 알게 된다면 기쁨과 고통속에 몇 시간이고 울수 밖에 없을 것입니다. 10여년 전 어떤 자가 그랬듯이 말입니다.
여러분에게 하나님의 은혜가 임하기를 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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