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기 드문 명문 이네,

  • #97688
    잘읽었음, .감사 68.***.244.241 2584

    그래요, 대통령이 "신"일 필요는 없지만

    평범한 인간 이어서도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한 나라를 이끌어갈 수 있는 리더쉽과 또 거기에 걸맞는 도덕적 우위,,,

    대통령은 걸음걸이 하나에도 신경써야 되지요.

    말이라고 함부로 해서도 아니되고 행동에도 신경을 써야 되지요.

    그런데 노무현은 안그러했지요,

    대통령이 되었으면 이미 그는 한 자연인이 아님을 알텐데도 말입니다.

    깽판만 치고다닌 결과입니다.

    중도님의 글


    저 역시…공감가는 글이 있어…퍼옵니다.

    http://www.another0415.net/ 에 실린 박기범님의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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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탄핵에 대한 두 가지 마음

    -실은 탄핵받아 마땅한 정권이었다

    어제 낮 후배에게 전화가 걸려왔다. 우리 집에 텔레비전이 나오지 않는다는 걸 알고 부러 건 모양이다. 대뜸 텔레비전 봤느냐 한다. '어, 봤어. 아까 읍내에 우체국 나갔는데 그 때 막 의사봉 두드리더라. 야, 그래서 일부러 뉴스 좀 더 보느라고 괜히 해장국 집 들어가 밥 시켜 먹었거든, 그런데 으, 씨발 ……'.

    탄핵 발의가 있던 날부터 어제까지, 아니 지금까지 내 기분은 사실 '황당' 말고 다른 것이 없다. 그리고 그 황당의 실체는 어처구니없이 도둑질을 당했다는 것. 하지만 이 '도둑질'이라 말하는 의미는 어제 저기 여의도에 모인 사람들, 오늘 광화문으로 모인다는 이들이 말하는 것과 같지는 않다. 내가 정말로 어이없고, 화가 나는 것은 썩은 한나라네, 민주네 하는 이들에게 노무현(열우)의 권좌가 도둑질당한 것이 그토록 억울하거나 분해서가 아니다. 혹은 개혁세력의 숨통이 조여든다는 위기의식 같은 것도 아니다.

    노무현의 1년 남짓 재임 기간을 엄격히 평가한다면 나는 그가 탄핵되어 마땅한 대통령이라 생각한다. 노동자들이 줄줄이 죽어가고 있다. 한-칠레 자유무역협정으로 농업의 마지막 선까지 다 내주고 말았다. 농만 한 분이 저 멀리 멕시코까지 가서 할복을 해도 눈 하나 꿈쩍하지 않았다. 부안에서는 주민들에 대한 폭행이 전쟁터를 불사할 정도였다. 새만금 공사를 재개했다. 이 땅에 들어온 이주노동자들에게는 마치 저 옛날 백인들이 흑인 사냥을 하듯 무자비하게 잡아 짓밟고 있다. 그리고는 침략전쟁을 벌인 전쟁국가와 강한 동맹을 약속하고 침략전쟁에 동참했다. 어디 그 뿐인가, 자신의 불법 선거자금에 권력 주변부의 비리…….

    그래, 탄핵받아 마땅한 대통령. 그리고 지금은 한나라, 민주당의 썩은 국회의원들에 밀려 탄핵안이 통과되었다. 아, 이런 씨발. 나는 노무현이 탄핵받아 마땅하다고 생각했지만 저들에 의해 이런 식으로 탄핵되는 것에는 동의할 수 없다. 저런 식으로 저들의 더러운 권력찬탈 아귀다툼 속에서 쫓겨날 일은 아니었다. 노무현은 FTA 안을 가결하던 날 국회 앞에서 물대포를 맞던 농민들의 손으로, 인간답게 살고 싶다고 절규하다 끝내 목숨을 끊은 노동자들의 손으로, 생명의 땅을 지키겠다고 저항하는 새만금의 주민들에 손으로, 침략군의 백성이 되고 싶지 않다고 애원하는 사람들의 손으로 물러났어야 했다. 하지만 어디 민중의 분노와 눈물만으로 당장 정권을 바꾸어낼 수 있었나? 우리 스스로의 힘이 모자란 것을 안타까워하면서 아파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면서 좀 더 절실한 이들은 곳곳에서 목숨을 걸며 할 수 있는 만큼의 저항을, 싸움을 하며 우리의 힘을 키우고자 하고 있고, 또 보통 나 같은 소시민들이야 술자리의 호기로 한 번 욕이나 해 보다가, 혼자 기운 빠진 어깨가 되어 부끄러워하다가, 어쩔 수 없음에 안타까워하는 정도였다. 그리고는 속으로 돌아오는 총선과 지방 선거 같은 것을 기약하곤 했겠지.

    하! 그런데 대통령이 탄핵되었다. 그것도 피눈물을 삼키던 이 땅 민중에 의해서가 아니라 점점 힘을 잃어 가는 보수정치 다수파가 보수정치 소수파를 쫓아낸 것이었다. 탄핵 사유부터 어이가 없다. 물론 노무현이 잘한 것 하나 없다. (이 점 또한 명확히 짚어야 한다.) 도둑질을 1/10만 했으면 괜찮지 않느냐는 말이 대통령이 할 소리인가? 세상에 그렇게 고무줄 같은 법이 어디에 있는가? 그런데 여기에 또, 열 배 넘게 도둑질한 게 바로 자신이면서 1/10이 넘었으니 물러가라 하고 말을 하는 게 말이나 되는가? 자신들은 의원뱃지를 버젓이 달고 있으며 말이다. 어거지도 그런 어거지가 없다. 그건 어디 할 것 없이 이쪽 저쪽 다 마찬가지이다.

    그래서 나는 황당한 거다. 어이가 없는 거다. 노무현이 탄핵된다면 그 사유는 침략전쟁에 동참하는 것이어야 하고, 노동자들이 스스로 목숨을 끊게하는 정책 때문이어야 하고, 농민들을 도탄에 빠뜨린 협정체결에 있어야 하지, '왜 니가 우리의 1/10보다 더 처먹었냐'가 되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노무현을 탄핵한다면 그 주체는 노무현 정권 아래에서 눈물을 삼키던 민중이어야 하지, 노무현보다 더 썩었으면 썩었지, 덜 썩지는 않았을 한나라/민주 따위의 국회의원들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런 씨팔, 씨팔일 수밖에 없다.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권이라는 게 어디 보수정치꾼들 사이에서 세력다툼을 하다가 다수파가 소수파를 쫓아낼 때 써먹으라고 만든 것인가? 국민 생활을 도탄에 빠뜨리고, 나라를 잘못된 방향으로 이끌 때 국민들이 마지막으로 쓸 수 있는 자위권이 아닌가? 어제 국회의 사태를 보면서 내가 황당해하는 것은, 도둑질 당해 안타까운 것은 노무현이 앉은 대통령의 직위가 아니라 마지막 자위권이던 '탄핵소추권'마저 그놈들에게 빼앗겼다는 것이다. '탄핵소추권'이 왜 권력찬탈 놀음을 하는 니들 거냐, 그건 가진 게 눈물뿐인 우리 민중이 마지막 순간 쓰라고 있는 것 아니냐?

    나는 노무현이 탄핵받아 마땅한 대통령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16대 국회의 3.12 탄핵에는 반대한다. 그래서 기분이 이렇게 더러운 것이다.

    어느 게시판에 가보니까 누군가 그렇게 말을 써 놓았더군. 지금 우리가 해야 할 것은 탄핵 불복종 운동과 병행해야 할 것은 한나라/민주 규탄 집회가 아니라 <국회의원 전원소환> 운동이어야 한다고. 그래, 그런데……

    2. 그네들의 둔갑술

    – 위기감을 강요하면서 무언가를 말하는 사람들

    그래, 분명히 어수선하기는 하다. 뒤숭숭하다. 하지만 나는 이 일이 크게 위험스럽다거나 두렵다고 여기지는 않는다. 어떤 사람들은 이 일을 두고 마치 이 나라 민주주의가 완전히 허물어졌다는 듯, 혹은 상식이 완전히 박살났다는 듯, 최소한의 가치마저 무너진 듯 흥분하고 있다. 그리고 이 나라의 장래를 걱정한다. 개혁세력(사실 나는 이 말이 이렇게 쓰이는 것에 동의하지 않는다)의 숨통이 조이는 상황이라며 극한 위기상황으로 이야기한다.

    위기? 글쎄다.

    이 탄핵 소동으로 해서 가장 큰 타격을 입게 되는 건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도 아니고, 건강한 사람들의 상식이나 가치도 아니다. 오히려 그런 거야 이 소동을 통해서 무엇이 옳고 그른지 우리에게 더 또렷이 가르쳐주고 있다. 혹자는 어제 국회의 장면을 청소년이 볼까 걱정이라 하지만, 내 생각에는 그것도 걱정할 것 하나 없다고 보여진다. 다행스럽게도 이 나라 어린이와 청소년은 웬만한 어른들보다 훨씬 똑똑하며 판단력이 있다. 아이들이 어제 국회 중계를 보았다면 그 상황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지 분명히 알 것이다. 그야말로 산 교육이었다. 저래서는 안 된다는 걸 똑똑히 보여주었으니 말이다. 또는 아직 그 상황을 이해하지 못할만한 아이들이라도 걱정 없다. 집집마다 아홉 시 뉴스를 보는 엄마 아빠가 적절한 논평을 해 주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도무지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일, 이 나라에 살고 있는 사람들 가운데 적게 잡아 80이상은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 '말도 안 되는 짓'이 국회에서 저질러졌다고 말이다.

    탄핵이 되어 대통령은 직무수행이 정지되었다. 총리의 국정운영 속에서 정국의 운영에서 열우당은 어느 만큼 소외되는 처지에 놓일 것이다. 글쎄, 이것? 이것이 개혁세력(아, 정말 이렇게 표현하고 싶지 않다!)의 숨통을 조이는 극한 상황이며 이 나라 민중의 위기인가? 아니다. 이 탄핵 소동으로 가장 타격을 입을 곳이 어디인가는 말하지 않아도 누구나 다 알고 있다. 그건 몰락해 가는 한나라당이 그 속도에 스스로 가속을 더하는 것이며 한나라당과 마찬가지로 지역에만 기반하고 있는 쇄락한 민주당이 스스로 무덤을 판 것이다. 그리고 가장 큰 기운을 얻게 되는 곳은 물론 노란 개혁의 옷을 입고 있는 열우당일 거라는 짐작은 그리 어려운 게 아니다.

    이것은 정치에 대한 감이 조금만 있는 사람이라도 곧 느낄 수 있다. 물론 열우당 의원들이나 열우당을 적극 지지하는 이들 또한 그렇다. 그런데 그네들은 이것 또한 알고 있다. 지금 어떻게든 위기의식을 불러일으켜야, 사람들을 불안하게 느끼게 해야 열우당으로 더 많은 기운이 모이게 된다는 것을 말이다. 탄핵안이 발의되기 전부터 그러한 조짐은 슬슬 보이기 시작했고, 탄핵안 발의와 통과를 전후로 해서 그 불길이 다시 크게 일어나고 있다. 우리가 지켜주어야 한다, 이것은 노정권을 지키는 게 아니라 민주주의를 지키는 것이다, 이 싸움은 유신잔당과 5, 6공세력 대 민주세력, 친미사대세력 대 민족자주세력, 극우수구세력 대 개혁진보세력의 싸움인 것이다. 그러니 다시 한 데 모여 저들 수구세력으로부터 민주세력을 지키자!! (그런데 이 단락 안에는 말도 안 되는 논리의 비약이 있다. 정말 심각한 '바꿔치기' 또는 '둔갑술' 혹은 '착각'.)

    실제로 어제오늘 나는 인터넷을 보면서 깜짝 놀랐다. 말도 안 되는 국회의 탄핵소동을 보며 비판하고 분노하는 것까지야 이해가 되지만, 그게 어느 순간 대통령을 구해야 한다, 개혁 세력을 지켜야 한다는 쪽으로 둔갑이 되어갔다. 내가 정말 걱정스러운 것은 바로 이 지점이다. 어째서 노무현 정권을 다시 개혁세력이라 부르는가? 노무현 정권이 반개혁적인 정권이라는 것은 지난 1년 반 동안 충분히 검증되었다. 아직도 모자란가? 반개혁일 뿐 아니라 반민중적이며 아주 사대적인 정권이라는 것 또한 드러났다. 대통령이 되면 눈 도장 찍으러 미국에 가지 않겠다 하면서 아주 배짱있는 제스츄어를 보였지만, 이 정권은 누구보다 앞장서 미국의 귀여운 푸들이 되고자 했고 그네들의 용감한 용병부대를 자청했다. 노동자들이 마지막 수단으로 목숨을 끊었어도 대통령이라는 사람은 애도의 말 한 마디는커녕 아주 짜증스럽게 '분신을 투쟁수단으로 삼지 말라‘고 했다. 대통령이라는 사람은 그가 통치자로 있는 국민에게 대해 최소한의 도리조차 보이지 않았다.

    아, 그런데 이거 정말 분위기 이상하게 돌아가고 있다. 어제 탄핵안을 가결시킨 수구 세력들은 용서받지 못할 이들이다. 누가 그걸 모르나? 아니, 그런데 어쩌자고 그네들이 꼴통 짓을 벌였다 해서 다시 노무현과 그 둘레의 정치무리가 '개혁세력'으로 둔갑할 수 있는가? 우리는 바로 지난 해 이맘 무렵부터 수경스님과 문규현 신부님이 삼보일배를 할 때 그 모습을 눈물을 흘리며 지켜보았다. 그리고 그 걸음에 우리의 간절한 마음을 보탰다. 그런데도 새만금 공사를 재개시킨 정권이 누구인가? 백오십 미터 상공의 크레인에서 백오십여 일을 버티다 간 김주익 씨, 인터넷에 떠돌던 김주익 추모식 동영상을 보며 많은 분들이 눈물을 흘리지 않았던가? 그것 또한 오랜 일이 아니다. 일 년도 채 못 되었다. 그리고 김주익 씨가 죽고 난 뒤 노동자 다섯 사람이 잇달아 죽고 있다. 일 년도 채 되지 않았다. 멀지도 않다, 겨우 한 달 전 농민을 버리지 말라고 올라온 시골의 우리 아버지 어머니들을 물대포로 밀어버린 건 또 어느 정권인가? 아니, 바로 나흘 전 나이 육십의 송두율 교수를 '빨갱이'라며 15년의 형을 내린 정권이 어느 정권이냐는 말이다. 나이 육십에 15년이면 그건 무기형이나 다름없다. 도무지 무얼 보고 이 정권을 '개혁세력', '개혁정권'이라고 말을 할 수 있는가!

    많은 사람들이 위기를 말한다. 그런데 나는 정말로 모르겠다. 그 위기라는 것이 누구의 위기이고, 어떤 모습의 위기인 건지. 말로는 민주주의의 위기, 대한민국의 위기라고 하지만 그것도 선뜻 공감이 되지 않는다. 몰락해 가는 수구세력의 마지막 몸부림, 어떤 통과의례 정도로 느껴진다. 그런데도 방송이나 언론, 또는 인터넷 곳곳에서는 자꾸만 위기감을 부추긴다. 이건 민주주의의 위기라고, 그리고 이건 개혁세력의 위기라고……. 아! 이거였다. 노무현 정권과 열린우리당을 '개혁세력'으로 둔갑하게 만드는 과정. 이 상황을 수구본당의 쿠데타로 규정을 했을 때, 그 쿠데타에서 밀려가는 소수정권은 바로 수구와 대척지점에 있는 '개혁 세력'이 되는 거였다. 아주 자연스럽게.

    3. 괴물은 없다

    – 그러나 그들은 괴물을 만들지 않으면 살지 못한다

    솔직히 말하면 나도 한나라니 민주당이니 열우당이니 하면서 정당 이름을 거들먹거리고 싶지가 않다. 왠지 정당 이름을 거들거리게 되는 순간부터 괜히 내가 하는 얘기들이 몽땅 후져지는 것 같기 때문이다. 한나라가 어떠네 열우가 어떠네 하는 것보다 민주주의를 지키자, 개혁세력을 지키자 하는 말이 얼마나 고상해 보이나? 그러나 말하지 않을 수 없다. 이 탄핵 정국이란 발의를 준비하던 그 때부터 '총선'을 겨냥하고 있었고, 가결된 이후의 행보 또한 모두 그것에 따라 짜여 있다는 게 눈에 훤히 보이기 때문이다.

    '비판적 지지'의 망령이 되살아나고 있다. 탄핵 정국이 시작되기 전에도 영화배우 문성근은 '공화국 시민권'이라는 말을 자기 멋대로 갖다 붙이며 국민참여운동본부로 복귀해서는, 개헌을 저지할 수 있는 의석수로 '개혁의회'를 만들자고 목청을 돋웠다. 개혁이라고? 그들에게 '개혁'이란 선거 때만 되면 갖다 붙이는 악세사리 정도이다. 왜? 한 보름 전이었나? 노무현 대통령이 그렇게 말했다. 자신은 진보 시절의 노무현이 아니라고. 다시 반복. 자신이 그렇게 말했다! 나는 진보 시절의 노무현이 아니라고.

    (이쯤 되었으면 대통령 탄핵은 사실은 노사모가 앞장서서 하는 게 가장 아름다웠다. 노사모가 그야말로 한 개인의 추종이 아니라 노무현으로 대표된다고 보았던 시대정신을 지지하는 모임이었다면 말이다. 노무현으로 대표되던 개혁성, 깨끗함, 서민성, 민족적인 원칙, 민주적인 원칙, 냉전이 아닌 평화세력, ……. 그런데 지난 일년 남짓 동안 노무현 정권은 이러한 것들을 완전히 배반했다. 어느 것 하나 박수를 쳐줄 수 있는 게 없었다. 그리고 보름 전 쯤에는 드디어 고백까지 했다. 나는 더 이상 진보 시절의 노무현이 아니라고. 그래, 이쯤 되었으면 노사모는 더이상 노사모여서는 안 되었다. 노사모가 지지한 것은 노무현의 정신, 노무현의 입장, 노무현의 정책이 아니었나? 노사모는 노무현의 그러한 덕목을 대통령으로 뽑고자 한 것이 아니었나? 그런데 이제는 아니래. 물론 노무현이 아닌 건 알았지만 이제는 자기가 스스로 아니라고까지 말을 했다.)

    왜 갑자기 노무현 정권과 열우당이 반민주세력에 쫓겨난 민주세력이 되었는지 나는 모르겠다.

    왜 갑자기 노무현 정권과 열우당이 수구보수세력에 핍박받는 개혁진보세력이 되었는지 나는 모르겠다.

    왜 순식간에 이 정권과 열우당이 친미사대정권이 아니라 민족자주세력이 되었는지 나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

    그저 다 똑같은 반민주세력 아닌가, 다 똑같은 수구보수이며 다 똑같은 친미사대 세력이 아닌가? 노무현정권과 열우당이 보인 지난 한 해, 어디 한 번이나 민주세력으로서, 개혁진보세력으로서, 민족자주세력으로서의 모습을 보였던가. 지금의 탄핵정국은 그 나물에 그 밥인 반민주/수구보수/친미사대인 보수정치꾼들 사이에서 자신들의 지분을 더 얻기 위한 그들만의 리그일 뿐이다.

    여기에 동원되는 논리는 딱 하나. 괴물을 만들어내는 거다. '쟤네들(괴물)은 더 나쁘다, 쟤네들이 국회도 과반수 먹고, 나중에 대통령되고 그러면 우리나라 더 나빠질 거다. 그러니까 개헌저지선 만들어 주라, 2급수라도 골라줘라……' 그런데 이거 내가볼 때에는 협박이고, 공갈이다. 그런데 사실 지금까지 우리나라 정치는 언제나 이 논리에 기대어 왔다. 유신부터 군사독재 시절에는 그 괴물이 북한이었다. '북한이 쳐들어온다, 북한이 수상하다, 그러니 딴 말 말고 총화단결하자. 이런 상황에서 딴 말 하면 그게 빨갱이다, 총화단결하자.' 지금도 그렇다. 한나라당은 지금도 북한을 그런 식으로 이용하고 있고, 열우당은 한나라당을 그렇게 이용하고 있다. 도무지 자신들의 모습을 가지고 국민들에게 똑바로 설 수가 없기 때문이다. 괴물을 갖다 놓는다. 괴물을 들이대고 협박한다. '이것 봐 니네가 아무리 유신 어쩌구 해도 북한에 비하면 여기가 자유로운 나라지?', '이것 봐, 니네가 아무리 똑같은 보수라고 해도 한나라당 애들이 5, 6공으로 돌아가는 것보다 낫지?'

    (아, 이것 하나 먼저 해명하자. 한나라당이 된다 해서 5, 6공의 엄혹한 시절로 돌아갈리는 없다. 그 때보다 지금 이만큼이라도 시민 공간이 넓어졌고, 발언이 자유로워진 것은 국민의 정부가 만들어준 것도 아니요, 참여정부에서 해 준 것도 아니다. 이건 시민들이 스스로 만들어낸 공간이며 발언권인 것이고, 지배 계급 또한 지배의 방식을 달리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자꾸만 공갈을 던지며 협박한다. 한나라당이 잡으면, 이회창이 되었으면 더 무시무시했다, 더 나빠진다 하면서. 아니다. 노무현 정권이 들어서도 노동관계법은 더 개악되었고, 노무현 정권이 들어서도 자유무역협정은 통과되었고, 노무현 정권이 들어서도 미국의 용병, 침략군을 보낸다. 노무현 정권이지만 송두율 교수는 빨갱이라는 이름을 얻어 15년을 살아야 하고, 노무현 정권이 들어서도 반교육 정책으로 아이들의 삶은 나아질 것이 없다. 전교조의 많은 선생님들이 '그래도, 노무현'을 지지했지만 정권이 시작하자마자 그 선생님들은 바로 그 정권에 맞서 네이스 투쟁을 벌여야했다. 아주 질기게도…….)

    그래, 지난 한 해 나는 충분히 겪었다고 생각한다. 비판적 지지의 망령, 무늬만 개혁인 보수 정치세력에게 또다시 속지 말아야 한다는 것을 충분히 배웠다고 생각한다. 정권 초 아이들 교육을 생각하며 가슴 아파하며 거리로 나섰던 네이스 투쟁의 현장에서, 80년 광주를 방불케 하는 시위진압, 주민들을 상대로 전투를 벌이던 부안의 현장에서 충분히 배웠다고 생각한다. 150미터 상공 크레인 위에서 150여일 절규를 내보내었어도 아무도 들어주지 않은 채 끝내 죽어가야 했던 아버지의 죽음에서 충분히 배웠다고 말이다. 우리가 지불한 수업료가 모자라서인가? 우리는 그 값으로 벌써 몇 분의 목숨까지 바쳤다. 그리고 그 뜨거운 여름, 추운 겨울을 아스팔트 위에서 촛불을 들었다. 세 걸음에 한 번 절하며 죽음과도 같은 절규를 보냈다. 아이들과 함께 촛불을 들었다. 그리고 또 많은 이들은 이 정권이 쏘는 물대포를 맞아가면서도 파병을 하지 말라고 애원했다. 그런데 나는 이상하다. 아무래도 이상하다. 개혁세력, 민주세력을 지키기 위해 국회 앞, 광화문으로 모이자는 데, 도무지 거기에서 말하는 개혁세력이 내가 아는 그 정권이 맞는지. 우리가 그 정권을 구하기 위해 촛불을 들어야 하는지 말이다.

    (이런 저런 얘기들 가운데에는 어제 텔레비전 중계에서 국회 경위들 두서넛이 열우당 국회의원을 끌어내는 모습을 보며 어떻게 저런 폭력을 쓰냐고 하는 말이 많다. 물론 그 지경까지 갈 수밖에 없는 건 안타까운 일이지만 그걸 지적하려거든 '국회의장이 경호권을 발동할 수 있다'는 법규정을 지적해야지, 그걸 이유로 해서 나라에 망조가 든 것처럼 개탄할 것도 없다는 생각이다. 방송은 아주 선정적이었다. 만약에, 만약에 방송에서 단 한 번이라도 지금 이 정권이 노동자들을 어떻게 때려잡고, 국회 앞으로 나온 농민 어머니 아버지들 머리통을 깨고, 방패로 찍어대는지를 보여준다면. 또는 이주노동자들을 어떻게 짐승 잡듯이 쥐어 패는지를 보여준다면 어떨까? 부안에 투입된 기동대들은 70대 할머니의 목뼈마저 부러뜨렸다. 모두 이 정권에서 한 일이다.)

    결국 지금의 탄핵 정국은 총선을 앞둔 보수 정치권의 싸움이다. 불씨마저 사그라드는 민주당은 마지막 발악처럼 전세를 뒤집고 싶었을 거고, 한나라당 또한 당의 몰락을 어떻게든 되돌리고 싶었을 것이다. 그리고 열우당은 이러한 상황을 나름 껏 이용했다. 한나라와 민주당이 악수를 두는 걸 기대했을 거고, 거기에 대한 반사 이익으로 '개혁세력'이라는 무늬를 다시 찾고 싶었을 것이다. 이것 보라, 어느 순간 짧은 일 년 사이에 노무현 정권이 벌인 그 어마어마한 짓들은 싹 지워지지 않았나? 탄핵안을 가결시킨 한나라당과 민주당만이 모든 원죄를 다 뒤집어 써야 하는 것처럼. 한나라당과 민주당은 몰락의 길을 걸을 것이다. 다만 열린우리당만이 참여정부 1년 동안 실망하고 분노하며 떠난 지지자들을 다시 결집하게 하는 덕을 보고 있다. 어부지리로 또 한 번 개혁세력, 민주세력이라는 무늬까지 얻었다. 여기에 진보정당들은 원내 의석이 없기 때문에 저들로부터 철저히 배제된 채 안타까워할 뿐이다.

    탄핵 정국이라 하지만 내가 느끼는 슬픔은 다른 데에 있다. 권한대행 체제가 그리 혼란스러울 것 같지도 않고, 이 틈을 노린 군부가 탱크를 밀고 들어올 것 같지도, 그렇다고 민중 봉기가 일어날 것 같지도 않다. 헌재 판결로 넘어간 탄핵안은 통과될 가능성이 별로 없다고 보인다. 만에 하나 헌재에서마저 통과되어 대통령을 다시 뽑아야 하는 상황이 온다 해도 한나라당 대통령이 되지 않을 거라 생각한다. 내가 진정으로 슬픈 것은 함께 전쟁을 반대한다고, 파병을 막겠다고 싸우던 이들이 엊그제부터 갑자기 이 정권을 개혁세력이라 말하는 걸 보기 때문이다. 민주세력이라고도 하고, 친미사대가 아니라 줏대있는 정권이라고 말하기 때문이다. 그게 슬프다. 몸살이 온다.

    나는 어제 처리된 대통령 탄핵에 반대한다.

    탄핵되어야 할 건 대통령 뿐 아니라 보수정치권 모두이기 때문이다.

    저네들은 탄핵을 놓고 줄다리기를 하며 사실은 415총선의 선거운동에 들어가 있다.

    진보정당은 그대로 배제된 채.

    그래서 나도 선거운동 한 번 해야겠다.

    그래도 또 보수정당 가운데에서만 찍으시겠습니까?

    괴물은 없습니다.

    아니, 열우당 또한 한나라당과 똑같은 괴물일 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