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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격이 좀 내성적이기도 하겠지만, 똥폼잡는 것 좋아해서 고국에서도 연봉가지고 싸우는 성격은 아니었습니다. 온갖 난리를 피우고 사표를 가지고 장난을 치는 사람들도 보면 한달에 많아야 한 돈십만원 더 받던데 그래봐야 일년에 백이십만원.
차라리 품위유지하다가 적시에 잘 포장된 해외출장 품위 올려서 일이주 해외 나갔다 오는 것이 훨씬 실속있다는 생각이었었습니다.
제가 일하는 분야는 건축설계 비슷한 쪽인데, 아주 특별한 능력이 있는 사람보다는 결국 짠밥 순으로 능력이 결정되기 때문에 사실 남보다 특별하게 더 주고 싶어도 줄 수 없는 분야이고 한 사람이 능력 100이라면 95정도 되는 사람들은 널려 있는 분야입니다.
미국 회사에, 일전에 말씀 드린 바와 같이 동유럽 사람이 제 시니어 비슷하게 하나 있었습니다. 이 사람은 좀 유별나게 능력이 있어서 흔하게 볼 수 없을 정도로 아까운 사람이었습니다. 하지만 성격이 하도 유별나서, 별로 악의는 없어 보이는데 온갖 사람을 나중에 등뒤에서 흉을 보거나 씹거나 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지난 몇년간 이 사람하고 일을 같이 해본 사람들은, 정말 하나도 예외없이 회사를 떠나거나 아니면 업무를 같이 하지 않게 되었고, 이 사람은 계속 되는 오버타임으로 일을 꾸려나갔었습니다. 나중에는 잔무하는 여직원까지도 이 사람 잔소리와 푸쉬를 못견뎌서 회사를 떠나가게 되었고, 파트타임으로 몇몇 사람을 붙여 봤지만 역시 계속 같은 사람이 이 사람하고 일을 하는 것은 못보았습니다.
저는 포용력이 별로 있는 사람은 아니지만, 불쾌한 것을 좀 참고 일을 부탁하거나 하면 흔쾌히 오버타임으로 해결해 주기에, 나쁘게 말하면 이용한다는 차원에서 계속, 최소한 표면적으로는 방긋 방긋 서로 웃으면서 지냈습니다.
작년에 5명이 붙은 프로젝트가 있었는데 이 사람이 휴가를 가면서 사장에게 모든 것이 완전히 잘못되어있다, 모든 것을 다시 해야 한다는 메일을 보냈습니다.
이일로 다시 파트타임 2명이 회사를 떠났고, 1명은 꼭 이 때문은 아니지만 은퇴를 했습니다. 그리고 역시 그 사람이 저도 씹었는데 저도 손을 띠고 그 사람 혼자서 예산을 엄청 초과하는 초인적인 오버타임을 해서 프로젝트를 마무리 지었습니다.
저도 마음이 좀 많이 상해서, 이제 나도 회사를 떠날 때가 되었다 싶었고, 그냥 조용히 떠날까 아니면 그 사람에게 쓴맛을 보여줄까만 고민하는 상황이 작년 말이었습니다. 저 이런, 권모술수, 맘 먹고 하면 잘 합니다. 고국 대기업에서 14년을 버티면서 산전 수전 다 겪어 보았는데, 여기에 비하면 서양사람들의 잔머리는 귀여운 수준인 것 같습니다.
은퇴한 매니저 대신 새 매니저가 왔는데 보통 사람이 아니더군요. 결국 4월 말일 자로 그 사람이 사직을 합니다. 모양새는 의원면직에 다른 회사로 전직인데, 내용을 조금 들여다 보면 새 매니저의 건의에다가 그 동안 참고 참았던 사장이 폭팔을 해서 거의 해고에 가깝습니다.
사장이 별로 친하지도 않은 제게, 이 사람에 대해서 그동안 참았던 것을 털어 놓는데 결국 인간의 감정은 다 똑같더군요. 연봉 인상때마다 사표를 들어내밀고, 매니저의 승인이나 예산의 범위에는 관계없이 주말이면 집에서 계속 오버타임을 하고, 역시 사전 승인없는 온갖 잡품 구입, 회사 행사에는 바쁘다고 대부분 빠지고 등등.
결정적이 키 포인트는, 발주자와 만날 때 마다 argue를 한다는 점이더군요. 대부분 웃으면서 서로 서로 참으면서 넘어가곤 했었는데, 몬타나라고 시골 일을 했었는데, 몬타나 사람들이 왜 순박하고 인정있는 잘 생긴 백인들이면서, 똥고집과 자존심이 무척 강한 사람들로 느껴집니다. 영화에서 나오는 바와 같이 공식 복장이 청바지+부츠+카우보이 모자 등등.
대도시에서 왔다고 자기들을 가르치려고 하는 느낌을 강하게 받았는지, 회의에 갔던 매니저 말로는 전혀 argue할 상황이 아니었는데 마지막까지 악착같이 argue를 해서 감정이 상하는 발주자를 얼굴을 보면서 식은 땀을 흘렀다고 합니다., 결국 회사로 공식 레터를 보낸답니다. 일 좀 똑바로 하라고. 마지막에 그 사람은 결국 일 한 것을 수정하겠다고 했다고 하고.
나중에 사장을 따로 만났는데, 회사 자체에 문제 있는 것 아니냐면서 비웃는데, 정말 죽고 싶었다고 했습니다. 발주자와 지난 몇년간 갖은 아부를 떨어가면서 계속 관계유지를 하고 있는데 일거에 날려버렸으니 충분히 그럴만도 합니다.
저는 미국 사람들은 능력만 있으면 이런 특이한 사람들은 기꺼이 수용하는 줄 알았었습니다. 아니더군요. 단지 참고 표현하지 않는 능력이 탁월하더군요.
왜 옛날에 저희들 자랄때는 미국에는 거지가 없는 줄 알았습니다. 그야말로 엘도라도.
제가 미국 오기 전에는 미국 사람들은 완전히 다른 생각을 하고 사는 줄 알았습니다. 결국 인간의 거기서 거기인 모양입니다.
자기가 하던 일을 마무리하겠다고 해도, 그만 됐으니 어서 떠나라고 완곡하게 표현하고, 살면 얼마나 산다고 이런 꼴을 당하는지 참 안타깝습니다. 그 흔한 farewell party 하나 진심으로 참가할 사람도 없으니, 사무실에서 조그만 케익 하나 놓고서, 다시 만면에 미소를 짓고 안녕을 고하겠지요.
저도 저렇게 살면 안된다고 다시 다짐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