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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 근래 뭔가 좀 정리할 개인사도 있고 해서 몇자 적어 봅니다.
1. 이유가 뭐던 간에 외국에 나가서 살아봐야겠다고 생각한 것은 오래 된 것 같습니다. 주로 몬스터 붙잡고 되도 않는 이력서를 근 백통가까이 뿌린 것 같습니다. “wiiling to relocate anywhere in US” 라던가 “working visa support required” 같은, 문구를 이력서 첫머리에 쓰는, 무식하면 용감한 짓거리도 해 보았고.
2. 어느날, 캘리에 있는 한 회사 사장이 고국 회사 전화번호로 전화를 했더군요. 근무시간에 회사전화로, 영어로 인터뷰 했습니다. 그리고 그 사람이 말레이지아 갔다가 귀국하는 길에 힐튼호텔에 묵으면서 불러서 인터뷰를 하고. 연봉과 베니핏이 너무 좋았었습니다.
3. 교포 한분이 제가 일하는 회사에서 몇년 근무하면서 좋은 인간관계가 되었었는데, 이 분이 또 연락을 했더군요. 자기 회사에서 사람을 구한다고. 그래서 자비로 미국와서 인터뷰 봤습니다. 호텔비는 내 주더군요.
4. 캘리회사에 비하면 이 회사는 이것 저것 따져보니 연봉이 절반 정도이더군요. 별 미련없이 싼 곳을 골랐습니다. 왜 싼곳을 골랐을까요?
5. 그 교포분과 사모님의 콩놔라 팥놔라하는 잔소리가 참 견디기 힘들더군요. 저 자신이 별다른 애국심도 없지만서도 사사건건 “한국사람들” 하는 소리도 귀에 거슬리고. 누군가가 이야기 한 대로, 비행기를 탔었던 그 순간의 고국 이미지만 가지고 생각하시더군요.
6. 그 부부에게 “정착할 때 필요할 때만 단물 빨아먹고, 어느 정도 익숙해 지니까 연락을 끊더라” 하는 뒷다마를 평생 들을 것을 각오하고 연락 끊었습니다. 오세화라는 인간이 나는 불란서의 택시 운전사라는 책에서, 많이 한국 사람들이 자기들을 처음에만 이용해 먹고 어느정도 파리 생활에 익숙해지자 자신을 떠났다는 글을 읽고, 왜 자기 자신이 얼마나 덜 떨어졌으면 모든 사람들이 그럴까 생각을 못하는지 한심스러웠습니다.
7. 미국생활이 오년이 넘어가는데, 영어 수준은, 옛날 중국집 할아버지의, 도저히 알아 들을 수 없는 한국말 수준입니다. 어쩌면 이렇게 안 늘 수 있는지, 기적같습니다. 하기사 허구헌날 한글 사이트나 돌아다니니 당연하겠지요.
8. 자기 합리화같지만, 뭘로 보나 한국사람인데, 영어를 빨리 배우려면 “한국말”을 빨리 잊으라던가, 김치를 먹지 말고 미국음식만 먹으라던가 하는 말을 들이면, 좀 재수 없습니다.
9. 친척 여자아이가 유학와 있는데, 젊어서 그런지 발음하나는 끝내 주더군요. 같이 어디 가다가 과속으로 경찰에 잡혔는데, 계속 damm damm 하는 것을 보니 참 4가지 없이 보이더군요. 고급 영어는 못하는 주제에 어디서 damm은 배워가지고.
10. 오년만에 연봉은 거의 두배로 올랐습니다. 자신이 기특하더군요. 늦은 나이에 미국와서, 눈치코치로 빨빨거리면서 살아온 자신이 참 대견했습니다.
11. 아주 일찍 부터 가족을 봉양해야 했기에 미국유학같은 것은 꿈도 못꾸고 고국에서 삼류대학을 나와서 빨빨거리면서 살아온 것도 기특하고, 뒤늦은 나이에, 한번 뿐인 인생 나도 큰물 가서 한 번 살아보자고 결단 내린 것도 기특하고, 영어가 딸려 심지어는 맥도날드 여직원에게 핀잔듣는 것도 참아가며 살아온 것도 기특하더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