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서 창피하던 일중에서

  • #83709
    done that 74.***.206.69 5844

    타국에서 살면서 창피한 일을 겪지 않으신 분들이 얼마나 있으시겠어요?(그런 분들은 존경합니다.) 무식하게 달려드는 성향이 강한 저로서는 창피한 일이 수도 없이 많지만, 이건 그중에서도 가장 큰 것이네요.

    다른 주에 수술을 하러 가는 데 수혈할 가능성을 말하더군요. 남의 피를 받기는 꺼림칙해서 여러군데를 연락한 결과 한 클리닉에서 해준다고 하더군요. 워낙 피와 주사를 보지 못하다보니, 거기까지 가는 게 고통이었읍니다.
    하지만 클리닉에 들어가자 마자 병원같지 않은 분위기에 미소가 가득한 친절한 사람들을 만났읍니다. 그런데 서류를 작성하는 데, 영 이게 아닌 것같아 여기 무슨 클리닉이니 물었읍니다. “헌혈을 하는 곳”이었읍니다.
    난 그래서 온게 아니다라고 했는 데도, 웃으면서 검사를 하고 아주 상냥스럽게 피를 뽑기 시작하였읍니다. 다른 봉사자들이 와서 헌혈을 해서 고맙다고 하면 옆에서 날 챙겨주는 사람은 “이사람은 수술때문에 자신의 피를 뽑는 거다”라고 설명해 주어도, 표정하나 바꾸지 않고 불편하지 않는 가를 물어 보더군요.
    난 나만을 위해서 하는 일인데도, 와서 신경을 써주는 분들에게 많이 미안하더군요. 게다가 옆에서 헌혈하는 간호사는 단골인 지, 이름을 부르고 친해 보이는 데, 육주마다 와서 헌혈한다고 하더군요.
    그 사람을 보면서 난 인간답게 사는 게 아니구나 많이 창피하였읍니다. 그후부터는 가끔가다가 헌혈하고 있읍니다. 아직은 주사와 피때문에 정기적이지는 않지요.

    헌혈을 갔읍니다. 아시는 분은 아시겠지만 몇장이나 되는 질문에 대답을 해야 합니다. 그걸 하고 나면 손끝을 따서 검사를 하는 데, 질문중의 하나가 영 마음에 걸렸읍니다.
    “나 황열병 예방주사를 맞았는 데, 헌혈해도 되니?”
    “그건 왜 맞았는 데?”
    “아마존 정글에 갈 까 했는 데, 그건 포기하고 고산지대에 다녀왔어.”
    “언제?”
    “이개월전에.”
    “어디로?”
    “페루와 볼리비아에”
    “장소가 어디인 데?”
    여행객들이 많이 가는 곳이므로 아무생각없이 다녀온 곳을 말했읍니다. 그랬더니 다른 사람이 책을 가져오더니만 그지역을 살피더군요.
    “너 헌혈못한다. 그러니 만 일년이 지나거든 다시 와라.”
    “왜?”
    “라파즈가 말라리아 지역이거든.”
    “라파즈가 고산지대인 데 말라리아라니. 말라리아가 무서워서 정글에 가지 않았는 데—.”
    헌혈도 못하고 클리닉에서 나올 때의 창피함이란, 학교에서 낙제를 먹었을 때보다 더 처참하더군요.

    • 간접경험 71.***.171.171

      done that님/
      전혀 창피하게 느끼실 필요가 없는 일입니다.
      얼마나 자랑스러운 일인지 모르겠습니다.
      헌혈은 또 다음에 하셔도 되지요…
      그곳까지 가신 용기에 감사 드립니다.
      정말 훌륭한 일을 한 것 입니다.
      부럽습니다.

    • 저도 131.***.0.75

      어릴때 한국에서 맞은 b형간염 예방접종 때문에 미국에서 헌혈 못 하고 있습니다.

      항체가 형성되어있다고 헌혈하지 말라더군요.

    • h1b 24.***.83.85

      창피한일이 아닌데요..2

      요즘엔 바뀌었는지 모르겠지만
      언젠가부터 우리나라 대한민국도 말라리아 지역으로 지정되는 바람에 헌혈하지 못했었습니다. 일년후에 오라고..
      90년대 말이었나요? 북한에서 말라리아가 창궐해서 DMZ지역까지 내려온적이 있었다죠? 그 영향이라고 생각됩니다.

      done that님이 말씀하신 “책”은 CDC에서 매년 발간되는 자료구요.
      손끝을 따서 하는 검사는 빈혈검사입니다. 저는 이 단계에서 걸린적이 몇번 되네요..

    • 이제겨우 71.***.57.243

      제가 사는 주는 아직도 한국에서 온 사람의 헌혈을 받지 않습니다. 한국 여행 1년이 지나야 하더군요. 안내서에는 이유가 써있지 않아서 왜 안 받아주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아무튼, 남가주 있을 적에는 무척 자주 헌혈을 했는데, 여기 와서는 헌혈하러 갔다가 과자만 먹고 왔습니다.

    • 커피향 99.***.17.152

      간호사인 저는.. 피가 얼마나 많이 모자른지 알기에.. 헌혈을 열심히 할라고 하는데… 요즘은 정말 iron검사에서 맨날 fail중.. 그래도.. 몇번은 붙어서 한적이 있는데.. 제가 다니던 블러드 뱅크에.. 50gallon을 목표로 하시는 분들이 있더라구요.. 잘은 기억이 안나서 50갤론이 한분 있었던거 같기도 하고 아닌거 같기도 하고.. 19갤론 까지 봤는데.. 솔직히.. 미국이 멋있다라고 느껴지는 순간이었습니다..

    • dinkin flc 99.***.121.0

      주로 패스트푸드에서 많이 일어나는데 미국온 초기에 쿠폰한번 잘못가져갓다가(쿠폰을 많이들 쓴다는 정보는 어떻게 또 알아가지고) 여기는 그 쿠폰 안받아 주는데란말을 이해 못하고 캐쉬어와 어설프게 싸우던적이 생각납니다. 뭐 그런거지요. 그 계기로 배우고 담에 잘하면 되는거 아니겟습니까? 화이팅입니다.

    • done that 66.***.161.110

      그게 빈혈검사였군요. 검사할 때마다 한번으로 통과가 되지 않더군요. 그런 검사를 보면서 병원에서 수혈받아도 되겠다는 안심이 들더군요.

      다른 창피한 일은 하루에도 다반사로 생기다보니, 더이상 창피한 게 아니고 무덤덤해지더군요. 요새도 내발음때문에 못알아들으면 내발음 탓하기보다는 그사람을 탓하는 경우도 생겨서–. 이러면 안되는 데.

    • dma 128.***.57.18

      한국에서도 꾸준히 헌혈했고, 미국에서 2갤론 넘게 했습니다. 헌혈할때 설문지 작성, 철분검사 다음에 본인이 사용할지 다른사람에게 donation할지 물어봅니다. 본인이 직접 사용하더라도 헌혈을 시작하는게 중요한거 같습니다.

    • 점프 128.***.229.11

      페루와 볼리비아라니 심히 부럽습니다. 한번 가보고 싶은데. 산안토니오 river walk라는 곳에 인디오 밴드가 나와서 잠포냐(zampona – 발음 맞나요?)로 엘콘도르 파사랑 마이하륄고원 같은걸 연주하는데요… 가면 실망스런 부분도 있겠지만, 해아래 첫동네의 느낌이 참 좋을 것 같네요.

    • done that 66.***.161.110

      페루와 볼리비아는 아직 개발이 되지 않아서인 지, 굉장히 흥미있는 곳이었읍니다. 고산지대에 가시면 처음 며칠을 고생하시지만, 그후부터는 괜찮아집니다. 여행객들이 가는 코스만 돌으셔도 볼게 굉장하지요. (저희는 배낭족으로 가서 고생스러운 적도 있지만, 단체관광이나 여행사를 통하시면 쉽다고 들었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