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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국에서 살면서 창피한 일을 겪지 않으신 분들이 얼마나 있으시겠어요?(그런 분들은 존경합니다.) 무식하게 달려드는 성향이 강한 저로서는 창피한 일이 수도 없이 많지만, 이건 그중에서도 가장 큰 것이네요.
다른 주에 수술을 하러 가는 데 수혈할 가능성을 말하더군요. 남의 피를 받기는 꺼림칙해서 여러군데를 연락한 결과 한 클리닉에서 해준다고 하더군요. 워낙 피와 주사를 보지 못하다보니, 거기까지 가는 게 고통이었읍니다.
하지만 클리닉에 들어가자 마자 병원같지 않은 분위기에 미소가 가득한 친절한 사람들을 만났읍니다. 그런데 서류를 작성하는 데, 영 이게 아닌 것같아 여기 무슨 클리닉이니 물었읍니다. “헌혈을 하는 곳”이었읍니다.
난 그래서 온게 아니다라고 했는 데도, 웃으면서 검사를 하고 아주 상냥스럽게 피를 뽑기 시작하였읍니다. 다른 봉사자들이 와서 헌혈을 해서 고맙다고 하면 옆에서 날 챙겨주는 사람은 “이사람은 수술때문에 자신의 피를 뽑는 거다”라고 설명해 주어도, 표정하나 바꾸지 않고 불편하지 않는 가를 물어 보더군요.
난 나만을 위해서 하는 일인데도, 와서 신경을 써주는 분들에게 많이 미안하더군요. 게다가 옆에서 헌혈하는 간호사는 단골인 지, 이름을 부르고 친해 보이는 데, 육주마다 와서 헌혈한다고 하더군요.
그 사람을 보면서 난 인간답게 사는 게 아니구나 많이 창피하였읍니다. 그후부터는 가끔가다가 헌혈하고 있읍니다. 아직은 주사와 피때문에 정기적이지는 않지요.헌혈을 갔읍니다. 아시는 분은 아시겠지만 몇장이나 되는 질문에 대답을 해야 합니다. 그걸 하고 나면 손끝을 따서 검사를 하는 데, 질문중의 하나가 영 마음에 걸렸읍니다.
“나 황열병 예방주사를 맞았는 데, 헌혈해도 되니?”
“그건 왜 맞았는 데?”
“아마존 정글에 갈 까 했는 데, 그건 포기하고 고산지대에 다녀왔어.”
“언제?”
“이개월전에.”
“어디로?”
“페루와 볼리비아에”
“장소가 어디인 데?”
여행객들이 많이 가는 곳이므로 아무생각없이 다녀온 곳을 말했읍니다. 그랬더니 다른 사람이 책을 가져오더니만 그지역을 살피더군요.
“너 헌혈못한다. 그러니 만 일년이 지나거든 다시 와라.”
“왜?”
“라파즈가 말라리아 지역이거든.”
“라파즈가 고산지대인 데 말라리아라니. 말라리아가 무서워서 정글에 가지 않았는 데—.”
헌혈도 못하고 클리닉에서 나올 때의 창피함이란, 학교에서 낙제를 먹었을 때보다 더 처참하더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