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조심의 값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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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77년 4월의 소련공산당 서기장 브레즈네프와 아프가니스탄 대통령 모하마드 다우드 간의 정상회담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은 으시시한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다.

    1977 년 4월 다우드의 모스크바 방문 시 브레즈네프는 매우 무례한 태도(*)로 다우드의 정책에 대해서 불만을 장황하게 늘어놓았다고 한다. 그의 불만을 듣고 난 다우드는 브레즈네프에게 “지금 귀하는 동유럽 위성국의 대통령이 아닌 독립국가의 대통령과 이야기하고 있다는 점을 분명히 해두고 싶소. 당신들은 지금 아프가니스탄의 내정에 간섭하려 하고 있지만 나는 이것을 용서할 수 없소”라고 내뱉고서 수행원들과 함께 회담장으로부터 나왔다. 한 수행원이 다우드에게 다음과 같이 말했다고 한다. “대통령 각하, 각하께서 말씀하실 때 브레즈네프의 얼굴을 보셨습니까? 이제 끝장입니다.”
    Thomas T. Hammond, Red Flag over Afghanistan: The Communist Coup, the Soviet Invasion, and the Consequences, Westview Press, Boulder, 1984, pp. 42, 44n

    『워싱턴 스타』 기자로 카불에서 취재활동을 했던 핸리 브래드셔도 비슷한 이야기를 전하고 있다.

    아 프가니스탄의 전직 관리와 다른 아시아 국가들의 고위관료들과의 인터뷰를 통해서 그가 들은 바로는 “브레즈네프는 다우드 정권의 각료구성에서 친미적인 자들을 배제하고 인민의 이익을 대변할 수 있는 자들(즉 공산당)을 기용할 것을 요구하면서 … 다우드를 협박하려고 했다 … 아프가니스탄 대통령은 주먹으로 테이블을 치면서 아프간인은 자신들의 집의 주인이며 어떤 외국도 아프가니스탄의 일에 간섭할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 러시아인들과의 교섭 경험이 많은 아프가니스탄의 고위관료들은 브레즈네프의 분노의 표정을 보고는 다우드가 사형선고문에 서명했다고 수근거렸다”는 것이다.
    Henty S. Bradsher, Afghanistan and the Soviet Union, Duke Univ Press, 1985, pp.65-66 311n

    (*) 브레즈네프는 체코의 두프체크(68년)나 폴란드의 야루젤스키(81년)와 회담할 때도 상대방을 ‘너(ты)’라고 호칭했다고 한다. 두프체크와 야루젤스키가 감히 브레즈네프에게 ‘너’라고 하지 못했음은 물론이다. 그들은 모두 브레즈네프를 ‘귀하(Вы)’라고 불렀다.

    이웅현, 『소련의 아프간 전쟁 -출병의 정책결정과정-』, 고려대학교 출판부 p.47-48에서 재인용

    다우드 정권은 딱 1년 후인 1978년 4월 아프가니스탄 인민민주당(PDPA)이 주도한 공산 쿠데타로 무너졌고, 다우드는 대통령궁에서 살해당하고야 만다. 대저 강대국의 역사하심이란 이와 같다.

    이 사건 이래 30년째 아프가니스탄은 피비린내나는 난세의 길을 걷고 있다. 난세 자체는 다우드 한 사람의 탓은 아니지만, 다우드가 조금 더 영리한 정치가였다면 역사는 달라질 수도 있었지 않을까?

    시비를 가리자면야 다우드는 옳고 브레즈네프는 잘못했다. 그러나 문제는 삐딱하고 오만한 성격을 가진 강대국 지도자에게 입바른 소리를 잘못했다가는 시비곡절이야 어쨌건 이처럼 골로 가는 수가 있다는 것이다. 약소국의 지도자는 조국의 보신을 책임지는 지위이다. 오늘날 국제사회에는 한 마리의 상처입은 야수가 배회하고 있다는 점을 명심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