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인 이야기에 보면

  • #100138
    Sampronius 141.***.206.239 2169

    아우구스투스의 뒤를 이어 황제가 된 티베리우스가
    왜 민중에게 인기가 없었는지를 설명하는 대목이 나옵니다.
    티베리우스의 치세하에서 로마의 경제는 상당히 좋은 편이었습니다.
    식량이 부족한 적도 없고, 교역은 활발했고,
    국가의 안전보장도 만족스러운 상황이었습니다.
    하지만 티베리우스는 재정 건전을 위해 긴축정책을 실시하여
    로마의 기본적 서민정책인 빵과 서커스 중
    서커스를 대폭 줄여버립니다.
    공공사업도 반드시 필요한 것이 아니면 아우구스투스 이전에
    시행된 것들을 유지 보수하는 일만 하고
    거창하고 화려한 공공사업은 전혀 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래서 시민들은 실제로는 그리 불황이 아닌데도
    체감불황감에 시달렸다고 합니다.
    물론 그 밖에도 티베리우스는 고독을 즐기는 타입이라서
    인격 자체에도 문제가 있었다고는 합니다만
    원래 민중의 본질은 자신에게 정말 필요한 것이 충족된다고 해서
    그것으로 만족을 하는 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

    물론 한국의 현재 경제 상황이 국민이 만족할 수준은 아니지만
    노무현 정권 5년간 국민소득이나 외환보유고는 꾸준히 늘어났습니다.
    세금폭탄을 쓰긴 했지만 아파트 값도 3% 인상 정도로 잡았습니다.
    민주주의는 제도적으로 더욱 잘 정착되었고,
    대통령도 타인에게 불만이 있으면 민형사상의 소송, 즉 법적 절차에 따라
    자신의 억울함이나 이해관계를 관철해야 한다는 선례도 남겼습니다.
    노무현의 형이 약간 튀긴 했지만 친인척 관리도 어느 대통령보다 잘 했고,
    측근 비리도 일부 불거져 나왔지만 김대중 정부 때보다는 훨씬 나았습니다.

    노무현이 잘못한 정책도 물론 있긴 하지만
    국민이 노무현에 대해 가지는 그 폭발적 증오심을
    단순히 정책 실패의 탓으로 보긴 어렵다고 생각합니다.
    대북 퍼주기 문제만 해도 북한에 투자하거나 지원한 돈을 전혀 주지 않고
    그 돈을 모두 무기에 투자했다고 해서
    과연 현재 수준의 안전보장이 이루어질 것인지를 생각하면
    북한에 투자한 돈이 과연 과다하다고 볼 수 있는 것인지 의문입니다만
    노무현을 극단적으로 싫어하는 사람 중 상당수는 대북 퍼주기가 노무현 혐오의 가장 큰 이유 중 하나인 것 같습니다.
    저는 정치를 잘 모르긴 하지만 노무현 정부는 이런 국민정서를 다치지 않으면서 정책을 끌고 나가는 운영의 묘미를 몰랐던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대북퍼주기 문제가 제기되자 노대통령이 직접 이런 말을 한 적이 있습니다.
    “북한에 아무리 많이 줘도 그건 남는 장사다.”
    저는 안전보장이나 장기적으로 북한의 경제가치를 생각한다면 노무현 대통령의 취지가 옳다고 생각합니다만 이 발언은 당시 노무현 대통령의 자질을 의심하는 근거로 떠돌았습니다.
    정책적 문제보다 노무현 대통령의 발언 때문에 말썽이 나는 일이 너무 많았습니다.

    MBC에서 방영한 무릎팍도사 대선 특집에서는 대통령이 무엇인지를 국민들에게 물어봤는데 50대 이상 국민들의 대답 중 인상적인 게 ‘국가의 어른’, ‘국민의 아버지’였습니다.
    아직 상당수 국민인 대통령이라고 하면 가부장적이고 근엄한, 뭔가 듬직한 모습을 원합니다.
    노무현처럼 나불대고 실언하고 같잖아 보이는 대통령은 대통령으로 인정하고 싶어하지 않습니다.
    게다가 노무현은 최종학력이 비천한(?) 상고 출신입니다.
    같은 상고 출신이라도 고대를 나온 이명박이나 묵직한 김대중과는 차원이 다릅니다.
    거꾸로 그런 가벼운 점이 일부 고정팬을 묶어두는 매력이기도 하지만 국민 대다수는 그렇지가 않습니다.

    여기에 인사의 문제도 적지 않았다고 생각합니다.
    정책의 방향이 문제가 아니라 노동운동가나 운동권 스타일이 몸에 밴 이들이 행정관료들, 정부실무자들과 접촉할 때 보인 행태들은 이들에 대한 혐오감을 일으키기에 충분했습니다(허준영 전 경찰청장처럼).
    김명곤씨가 문광부 장관이 된 후 문광부 공무원인 제 동생은 김명곤 장관과 직접 접촉할 일이 없는 산하기관 소속의 말단임에도 장관에 대한 혐오감을 쏟아냈는데 큰 정책적 과오도 없고 직접 피해를 본 일도 없었지만, 무능하고 역사 의식 없는 사람이 대통령과 코드가 맞는다는 이유로 중용되어 문화부 내에서 뜬금 없는 언행을 하는 것이 아주 눈꼴 사나웠던 것 같습니다.
    그 결과 한동안 노빠이던 제 동생의 노무현에 대한 지지도가 다소 내려가기도 했습니다.
    아마 김명곤씨 같은 사람들이 많이 기용되면서 실제로 눈에 보이는 피해를 당하지 않더라도 많은 사람들이 노무현 정권에 대해 증오심을 키웠을거라고 생각합니다.
    능력 없고, 머리에 든 것도 없고, 으쌰으쌰만 하던 것들이 아마튜어리즘을 가지고 정책을 좌지우지할 뿐 아니라 이것들이 깨끗한 순수성도 잃고 양주나 따고 있다고 생각하면 누구라도 혐오감이 팽배할 수 밖에 없겠죠.
    애만 낳지 않는다면 아버지의 외도는 좀 용서가 되지만 어머니의 외도는 용서가 안되는 심리나 같은 스캔들도 남자 연예인은 괜찮고 여자 연예인은 매장당하는 경우를 종종 보는데 도덕성과 개혁을 외치는 좌파는 작은 도덕적 흠결도 치명적인 문제로 느껴서 혐오감을 품게 해버리는 핸디캡이 있는 것 같습니다.

    저는 모든 정책에 동의하지는 않지만 노무현 정부의 기본적 정책 방향은 옳았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이들에 대한 실망감과 혐오감을 증폭시킨 것은 이들이 추진한 정책보다도 이들이 겉으로 보인 행태들의 탓이 더 크다고 생각합니다.
    이명박에게 투표한 사람들에게 전국민의료보험 폐지, 경부대운하, 공교육 말살 같은 이명박씨의 중점 공약에 정말 찬성하는지 묻는다면 답이 그렇게 나오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이번 선거의 본질은 그런 정책이 아니라 5년간 상처받은 감성을 분노의 표출로 좀 위로 받는 데에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이명박이 대통령이 되어도 이제는 대한민국이 대통령 한사람의 힘으로 좌지우지되는 사회는 아니기 때문에 국민의 힘으로 그걸 콘트롤할 자신이 있다고 생각해서 공약 따위는 자세히 읽어보지 않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이번에 참패한 진보진영은 티베리우스, 클라우디우스가 여러가지 지표로 보면 꽤 괜찮은 성과를 올렸는데도 왜 민중에 인기가 없었는지를 먼저 연구해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 tracer 68.***.125.164

      좋은 말씀 공감합니다.

    • shaqkqh 125.***.142.162

      국민소득이 늘어난 것은 달러 약세 때문이고, 외환보유고 문제는 imf이후에 정부에서 꾸준히 외환보유고 신경을 쓴 것입니다.

      그리고, 노무현도 공공사업을 시도하려고 노력은 했죠.

      충청표 얻으려고 행정도시 만든다고 삽질하다가, 땅사려고 보상금 풀었더니 그돈이 모두 버블세븐으로 몰리고 그러니까 이곳 집값이 오르고, 그러니까 세금으로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다가 이 지경까지 온 것입니다.

      한마디로 말하자면, 선거용 정책을 밀어부치다가 문제가 생기니까 그것을 국민들에게 전가시킨 것이지요. 즉, 설익은 정책에 문제 해결능력도 없는 아마추어 정권이라는 것입니다.

      노정권의 부정부패는 아직 뭐라고 이야기할 단계가 아닙니다. 총선이 지나서 내년 정도가 되면, 그들도 그들이 타도 세력으로 삼던 군부독재세력들과 별 반 다르지 않다는 것이 밝혀질 것입니다.

      진보세력이 다음 정권에라도 희망을 가지려면, 머리에 빨간띠 두르고 상대방의 잘못이나 물고 늘어지는 전략보다는 국민들에게 뭔가 납득할 수 있는 정책과 결과를 보여 주어야 할 것입니다.

      이명박은 대운하, 부동산 세제 개편등을 내세울 동안, 정동영이 내세운 정책이 무엇이었습니까? 정동영이 내세운 것은 BBK밖에 없지 않습니까?

      김대중, 노무현 정권을 거치는 동안 국민들도 알게 된 것이지요.

      민주 세력이나 군부 독재 세력이나 다 똑같은 놈들이라는 것을…그래도 똑같이 나쁜놈들 중에서 능력이 있는 사람을 뽑자가 국민들의 생각입니다.

      깨끗한 척 하는데, 사실은 더 구린놈이고 거기다가 머리까지 나쁜놈이면 결국 고생은 국민만 하는 것을 국민들이 알게 된 것이죠.

    • 지나가다 68.***.75.127

      To shaqkqh/
      님의 분석이 정말 옮은 분석이기를 바랄뿐입니다.
      아마추어 정권의 대항마 프로페셔널 MB가 하는 정책들이 얼마나 큰 성공을 거두는지 한번 지켜보도록 하지요…